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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3.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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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게 된 사람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

진재연 | 평택지킴이
대추리에서 보내는 마지막 설에 주민들과 지킴이들은 함께 모여 윷놀이를 했다. 촛불행사장인 농협창고 앞에 모여 풍물을 치고 고기를 굽고 윷가락을 던졌다. (사진출처 : 민중의 소리)


지난 2월 13일 대추리 주민들은 정부와의 열두 차례 대화를 통해 '이주'를 '합의'했습니다. 마을에 있던 지킴이들은 언론을 통해 그 소식을 접하고 서둘러 기자회견이 열리는 평택시청으로 향했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아직 열두 번째 대화가 끝나지 않았고 많은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자회견을 하기 전부터 국방부의 보도자료를 통해 '이주합의'소식을 알게 된 언론은 평택미군기지확장사업의 걸림돌이 제거되었다고, 이제 순탄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며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국방부는 대추리 주민들이 3월 31일까지 팽성 인근지역으로 이주할 것을 합의했다고 발표했고, '평화적인 해결을 위한 노력의 성과'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기자회견장에서 주민들은 말이 없었고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에 김지태 위원장은 "합의한 마당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 할 뿐이었습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한참을 막혀 있던 김지태 위원장이 겨우 밖으로 빠져나왔고 "위원장님, 힘내세요."라며 장난치는 지킴이들에게 그는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열두 차례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국방부는 고압적인 자세로 주민들을 협박했습니다. 주민들은 이주단지가 마련되기 전까지는 나갈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국방부는 당장이라도 강제철거를 하겠다며 이주를 강요했습니다. 결국 주민들은 3월 31일까지 마을에서 나가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팽성읍 송화리에 있는 빌라에 전세로 들어가 2년 정도 살다가 이주단지가 다 만들어지면 그 때 다시 이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이주를 결정한 주민들은 한국정부에게 세 가지를 요구했습니다. 첫째는 평택미군기지확장사업을 위해 한국정부가 저지른 야만적인 폭력에 대한 진정한 사과이며, 둘째는 평택투쟁으로 구속된 사람들을 석방하고 재판을 받고 있거나 벌금형을 선고 받은 사람들을 사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셋째는 이주단지로 이사를 간 이후에도 '대추리'라는 주민공동체를 보존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국방부는 보도자료에서 "주민이 고향을 떠나야 하는 아픔과 어려움을 겪게 된 데 대해 정부 측은 유감표명과 구속자에 대한 사법처리 선처를 사법당국에 요청키로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추리' 마을 공동체를 지키고 싶다

처음에 이주 단지로 거론 된 곳은 팽성읍에 있는 노와리, 남산리, 신대리 세 곳이었는데, 주민들의 연령과 재산상황에 따라 희망지가 나뉘었습니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땅값이 싼 노와리(평당 매입가격 40만원)를 선택했고, 아이들의 학교 문제와 이후 생활을 고려한 젊은 사람들은 앞으로 개발가능성이 있고 땅값이 비싼 남산리(평당 매입가격 90만원)를 원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이주단지가 두개로 나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가지기도 했고, 구체적인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순금 할머니는 "주민들과 함께 이주단지로 가야 할지, 작은 아들네 집으로 가야할지 결정을 못하겠다. 그게 결정이 안 되니 머리가 아프고 밤에 잠을 잘 수가 없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할머니는 땅이 한 평도 없고 집 한 채가 전부인데 그걸 가지고 보상금을 받는 다 한들 이주단지 가서 집 짓고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작은 아들네 집으로 가면 이웃도 없는 곳에서 답답해서 어떻게 살지 그것도 문제라고, 이래저래 살 길이 막막하다며 눈물을 글썽이셨습니다.

얼마 전 908일 째 촛불행사에서 팽성주민대책위 김택균 사무국장은 "대추리 44가구가 모두 노와리로 이주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5가구를 제외하고 모든 주민들이 노와리로 가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함께 싸워왔는데 마을이 둘로 나뉠 수는 없다고 판단해 다 함께 노와리로 가기로 한 것입니다. 주민들은 한국정부에 주민들이 살게 될 지역의 행정구역 명칭을 대추리로 바꿀 것을 요구했습니다. 언제나 "대추리, 그 문패라도 꼭 지키고 싶다." 던 정태화 할아버지 말씀처럼 그렇게라도 대추리를 잃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노와리는 대추리에서 차로 25분정도 걸리는 곳인데, 경기도의 최남단 마을로 팽성읍에서도 매우 구석진 곳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노와리로 가기를 원했던 것은 땅값이 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미군기지 철조망이 보이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고, 먼저 마을을 나간 사람들과 만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와리는 남산리와 신대리에 비해 먼저 떠난 사람들과 부딪힐 일이 적으니 감정의 골이 깊게 파인 주민들은 그저 조용한 곳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908일째 촛불행사에서 주민들은 "전세집에 살다 세상 뜨지 말고 다시 대추리 만들면 거기서 다 같이 살자."고 하셨습니다. 지킴이들은 주민들에게 "이제 걱정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곳에서 즐겁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촛불행사가 끝나고 이순금 할머니를 쫓아가 슬쩍 여쭈어 보았습니다. "할머니도 노와리로 같이 가기로 결정 하신거죠?" "그럼, 동네 사람들이랑 같이 가서 살아야지, 그래야지 어떡해." "할머니, 잘 하셨어요. 거기서 노인정도 만들어 할머니들이랑 화투도 치고 그러면서 사셔야죠." "결정하고 나니까 마음은 편해.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얼마 전부터 대추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공공근로사업에 나가 하루 품삯 3만 3천원을 받고 쓰레기 줍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평택시청이 제공해 준 일자리입니다. 만 75세까지만 가능한 일이라 그것도 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909일째 촛불행사에서 "공공근로 신청하신 분들은 내일 아침 10시까지 팽성읍사무소로 나가시면 됩니다."라고 광고를 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아침에 함께 모여 읍사무소로 나가셨습니다.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아 온 노인들이 자기 땅을 빼앗기고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거리로 나갔습니다. 손이 갈퀴가 되도록 일구어 온 땅을 전쟁기지를 만들기 위해 빼앗은 정부가 농민들에게 제공한 최초의 일자리인 것입니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며칠 전 지킴이들은 주민들의 이주단지가 만들어 질 노와리에 다녀왔습니다. 농림부 소유의 그 땅에 이제 이주단지가 만들어 질 것이고 2년 후 대추리 주민들이 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국방부가 얼마나 합의사항을 잘 이행할 것인지는 지켜 볼 일입니다. 그곳에는 굉장히 큰 규모의 닭 농장이 있는데 여름이 되면 닭 분뇨의 냄새가 매우 심하다고 합니다. 냄새가 심한데 괜찮겠냐는 물음에 할머니들은 "철조망 있는 데서도 살았는데 거기서 못 살겠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제 곧 마을을 떠난다는 생각에 답답함을 떨치지 못합니다. 노영희 할머니는 "여기서 어떻게 나가냐. 여기가 어떤 땅인데 이렇게 나갈 수가 있는거냐."라며 가슴이 꽉 막혀서 너무 힘들다고 하십니다.
요즘 할머니들은 지킴이들을 볼 때마다 "니들이랑 어떻게 헤어지냐." "이제 니들은 어디로 가는 거야." 라고 말을 건네십니다. 910일째 촛불행사에서 송재국 할아버지는 "지킴이들이랑 이렇게 정이 든 줄 몰랐다."며, "설에 세배하러 왔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 해서 같이 울었다."고 하셨습니다. 주민들과 지킴이들은 전쟁기지를 막아내고 평화마을 대추리를 지키기 위해 온 몸으로 싸웠습니다. 마을에 찾아온 낯선 젊은이들을 기꺼이 맞아 준 주민들은 함께 어울려 마을을 지켜왔고, 지킴이들과 주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변화시키며 살아왔습니다. 지킴이들은 주민들의 뒤를 이어 이 싸움을 이어갈 것입니다. 이곳에 살면서 배운 것들을 기억하며 싸움을 끈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주민들은 곧 마을을 떠나게 됩니다. 3월 8개월 동안 질기게 싸워왔던 대추리 주민들은 야만적인 국가폭력의 벼랑 끝으로 몰려 어려운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대추리 주민들은 우리가 패배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헬기가 철조망을 실어 나르고, 파릇파릇한 싹이 나는 논에 구덩이가 패이고, 농수로에 시멘트가 부어질 때, 그 때 이미 한국정부는 진 것이라고, 이런 짓을 하는 정부에 맞서 싸운 대추리 주민들은 이미 승자라고 말씀하십니다. 평택미군기지확장을 막아내기 위한 투쟁을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국정부는 주민들이 떠난 자리에 전쟁기지를 만들기 위한 공사를 진행할 것이고 그들의 사활적인 과제를 관철시키기 위한 폭력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전략적 유연성을 기반으로 하는 주둔미군재배치계획은 전 세계에, 한반도 곳곳에 군사시설을 만들고 더욱 넓혀 가고 있습니다. 전쟁기지를 막아 내기 위한 민중들의 싸움 또한 여기저기서 새로운 싹을 틔우며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추리 주민들의 역사적인 투쟁은 야만적인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민중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이고 힘이 될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평화가, 인권이 짓밟힌 이 땅에서 바로 지금 싸움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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