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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8-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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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행하는 휘파람, 어떻게 볼 것인가

박준도 | 편집부장
- 38선만 넘으면 귤이 탱자가 되는 이유 -

포스터모던한 시대, 휘파람

"북한은 진정 화해와 평화공존을 원하고 있는가, 다시는 적의(敵意)를 보이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이에 대한 확신이 아직 서있지 않다. 따라서 북한의 의도와 변화를 더 지켜보아야 하며 변화도 그에 따라 맞추어 나가야 한다. 지금 하룻밤 사이의 '우호일색' 변화는 지나칠 정도로 빠르며,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정체성이 흔들려선 안된다."
==[북한이 남한을 변화시키고 있다]- 문화일보 7. 3 문명호 논설주간


'휘파람'이 우리 사회를 떠돌 때 한 논설주간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쓴 칼럼이다. 남북의 '동질화'가 두려워서 쓴 것은 아닌 듯하다. 스스로 지적한 대로, '보안법철폐·주한미군철수론이 목소리가 높아'지고, '휘파람'이 횡행하면서 정당화되는 듯한 분위기가 싫어서 썼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여하튼 지금은 시대착오적인 구시대 인물로 자연스럽게 배제되니까 애처로운 시선만 주면 그만이다. 문제는 오히려 다음에 있다. 좀더 세심히 살펴보길 바란다.

"디젤광고가 묘사한 평양에서의 하루는 3년이 지난 지금 '평양에서의 사흘'로 다시 각색되어야 한다. 더이상 북한은 그 어느 밀사의 고백처럼 청산가리를 품고 잠입해 들어가야 할 만큼 무섭고도 먼 길이 아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는 외롭고 쓸쓸한 망각의 땅으로 바라봐서도 안된다. 또한 붉은 머플러와 조악한 한복차림 따위로 묘사되어 1960년대식 향수를 자극하는 키치 취향의 광고소재 정도로 머물러 있지도 않을 것이다. 인민복하면 실패한 이데올로기의 걸레조각, 청바지 하면 자유와 풍요, 성공의 상징이라는 디젤광고 식의 이분법도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됐다."
[평양 이분법]- 씨네21 263호 이현우 제일기획 제작국장·광고 칼럼니스트


이 칼럼은 우리 사회가 현 상황을 어떻게 문화적으로 해소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객이라는 이분법에 노골적인 적개심을 품고서, 단선적 시간과 공간의 비교(남-21세기/북-20세기)라는 시·공간관을 거부하는, 나아가 남/북 공간의 역사적·지리적 거리감마저 부정하는, 그래서 21세기 풍요와 성공이라는 역사의 진보(미국식 메타담론)에 대한 믿음마저 져버리는 심오한 사회철학(포스트모더니즘)마저 느껴진다. 지나친 과찬인가? 그가 국내 광고업계 제1순위인 제일기획의 제작국장이자, 현대자본주의 문화의 꽃인 광고의 칼럼니스트라는 점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하튼, 이 사람이 어떻게 남북정세를 콜라주해서 포스트모던하게 광고를 만들지, 몹시 궁금하다.

사실 이는 보다 충격적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기획이 아니라 이미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앞서의 불쌍한 극우주의자, 보수주의자가 자연스럽게 내몰리는 건 대결구도 설정 자체가 이미 구시대적인 것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며, 시간·공간·역사적 거리감은 '휘파람' '반갑습니다' 등으로 해체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사회의 문화는 이미 풍요와 성공이라는 근대적 미덕을 잠정 유보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 친구가 불쌍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가 포스트모던한 시대에 특정한 문화적 경향이 정치적 신념과 보편적 이해를 이끌 거라는, 모더니스트들에게서나 볼법한 믿음(불안을 동반하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음의 질문이 남는다. 이 기획은 우리에게 낙관적인가? 배제되고 착취당하는 민중들의 일보전진을 기대하는 이든, 근대민족국가건설에 대한 미완의 과제로써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이든, 그 누구에게라도 말이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게는 이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지만...


개혁신화, 차이의 문화

우리는 지난 총선이 계급이해는 커녕, 특정한 이해관계에 기반한 정책도, 쟁점도 없는 선거였음을 알고 있다. '개혁'은 스스로를 지상에서 천상의 영역으로 옮겼다. 자신을 좀더 분명히 드러내는 현실의 정치적 쟁점(구조조정과 생존권)을 비켜가면서, 신화로 안주한 것이다. '민주화'를 해체해버린 해체된 신화로. 이 신화 아닌 신화는 두개의 경로를 통해 생성된 것으로 보인다. '민주화 투사에서 개혁의 선구자로'가 그 하나요, 다른 하나가 지리한 정치폭로전을 통한 '정치의 실종'이다. 하나 더 있다면, 386과 시민운동세력이 전자를 통해서, 자민련과 한나라당이 후자를 통해서 책임 보증한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현실정치는 이 신화에 의해 끊임없이 조롱당했고, 쟁점은 계속 미끄러졌으며 '바꿔'의 이미지만 남았다. 이 이미지는 대중의 취향을 그럭저럭 만족시키는 것이었고 그만큼 빠르게 자태변화를 시도했다. 대중의 취향은 결코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곳을 남북정상회담이 지나간다.

새롭게 나타난 이미지는 정확히 그려지지 않는다. 이산가족에게는 헤어진 가족의 극적-실현불가능에서 가능성으로-인 만남으로 그려졌고, 줄지어선 상봉신청으로 드러났다. 이 '휘파람'은 기대에 가득찬 휘파람이다. 하지만, 신세대들에게는 이색적이며 이국적인, 신비스런 무엇으로 그려진 듯하다. 그리고 이는 김정일 패션으로, 반갑습니다 핸드폰소리로, 오른손을 높이 치켜드는 치기어린 장난으로 드러난다. '휘파람'은 그저 휘파람일 뿐이다.
문제는 이 이미지가 현실 정치쟁점구성에 주는 효과이다. 분단상황이 가져온 모든 정치, 사회적 쟁점을 상대화시킨 것이다. 조국통일, 국가보안법철폐, 주한미군 철수, 평화체제 등 해방의 기획에서 제기된 쟁점은 물론이거니와 흡수통일, 반북-반공 등등의 부와 성공의 기획까지 모조리 날려버린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위험하며, 낡고 구태의연한 것이 되었다. 그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쟁점이 해소된 것이 아니라 해체된 것이다.

보다 분명히 살피기 위해 대중가요사-민중가요사를 포괄하는-로 시선을 돌려보자.

"아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 너를 찾아 삼팔선을 탄한다."[가거라 삼팔선 1946]
[해방가-원제'독립행진곡']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 동포여 일어나라 해방 그날까지 " [민족해방가]

앞서의 세 곡은 해방직후 불려진 곡들이다. 첫번째 곡은 회한과 한탄 속에서 분단 현실을 퇴폐적인 낭만성으로 그린 곡이다. 두번째 곡은 우파적인 이념을, 세번째 곡은 좌파적인 이념을 앞세워 그린 곡이다. 해방직후 격동기에 걸맞게 세곡 모두 근대 모더니스트들의 기획이 엿보인다. 6.25 전쟁직후 이는 더욱 격하게 드러난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굳세어라 금순아 1953]
"미아리 눈물 고개...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고개" [단장의 미아리 고개 1955]

전쟁직후 대중들에게 널리 회자된 이곡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어떤 분위기였는지 십분 짐작하게 한다. 반공을 훨씬 초과하는 반북적인, 전쟁의 황폐함에 대한 낭만성도 허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대로 담겨져 있고, 기획도 하나 뿐이다. 반북/북진 통일.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1970년대 유신, 1980년대 전두환파시즘과 맞물려, 각종 검열장치를 통해 1980년대까지 고스란히 반영되는데, 마치 1970·80년대 남한에서의 자세변화가 의사변화라는 것을 웅변하는 듯 하다.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에 빛나는 눈... 나하고 강가에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의 이름을 모르시나요"[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 1965]

이 곡은 사실 1960년대 헤어진 연인을 그리는 곡인데, 단지 첫가사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이유만으로 KBS 이산가족 상봉 주테마곡으로 채택된 것이다. 이산가족의 테마를 다룬 곡조차 제대로 없는 대중가요의 척박한 현실을 보여준 것이다.
결국 주류 대중문화는 기획력과 상상력에서 한계를 드러내는데, 이 한계는 반문화적인 경향(포크, 록)과 마주치면서 극복된다.

"나 태어나,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나 죽어 이 강산에 묻히면 그만이지" [늙은 군인의 노래]

여기서 우리는 분단상황하에 있는 한 군인의 아픔을 직접 목도할 수 있는데, 그 아픔은 너무도 솔직담백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1980년 광주민중항쟁이후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면서, 정치·역사적 갈등을, 민중의 고통을 직접 노래하는 "민중가요"가 탄생한다.

"죽은자 무엇으로 남았는가..... 투쟁이 염원으로 만나는 세상, 아 통일의 땅에 우리가리라."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로]

이 곡에서 우리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을 만나는데, 보다 분명하게 해방의 기획으로서의 통일을 그린 것이다.
한편 1970-80년대 대중문화의 암흑기를 지나면서, 기획력의 한계를 포크와 록이 극복하려 할 즈음, 우리 사회는 87년 민주화투쟁의 허무한 종결을 목격한다. 이는 1970-80년대 정치적 암흑기, 대중의 보편적 이해인 "민주화"담론에 대한 절망으로 드러난다. 1980년대 중반 국민가요로서 트로트의 위치확인은 포크와 록의 도전을 거세했으며, '부와 성공'의 미덕을 문화적으로 해체한 미국의 댄스음악은 그대로 직수입되었다. 트로트의 부흥과 댄스음악의 공전의 히트는 이렇게 시작된다.

1991년 계급투쟁의 패배는 보다 직접적이다. 모든 정치적 기획(진보, 의회민주주의)은 실패하거나 의심받았다. 이에 대한 책임은 세대의 이름으로 추궁되었다. 이마저 비켜간 것이다. 그리고, 신세대라는 실체없는 집단이 횡행한다. 신세대 문화가 대중문화로 이해되고, 신세대 음악이 대중음악으로 대변된다. 그리고 신세대 음악은 자신의 내적 논리의 부재와 함께 미국음악의 유행은 물론이거니와 변화의 속도마저 그대로 쫓는다. 이 빠른 속도감에 고유한 기획력을 가지려는 모든 노력은 버티지 못하고 해체된다. 조그만 차이를 만들 수 있는 기획력만 있으면 되었고, 그런 기획은 너무도 손쉬웠다. 이 손쉬움은 속도를 더욱 빠르게하여, 시간과 공간 그리고 역사적 거리감마저 해체한다. 그리고 이렇게 빠르게 나오는 문화상품은 상품생산 시간과 소요경비를 대폭 줄였고, 문화상품의 양은 크게 증가했으며, 수요는 빠른시간만큼 늘어났다. 자본주의 문화시스템은 이에 환호했다.

그나마 '저항'이라는 담론으로 자기 기획력을 확신했던 록도 흔들린다. '저항'은 신세대들에게 자신의 차이를 드러내는 중요한 말이었고, 이는 신세대들에게 놓칠 수 없는 자존심이었다. 그들은 더욱 빠른 속도감을 원했고, 록은 거기에 휩쓸렸다. [발해를 꿈꾸며〕여기서 노래 내용과 장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신세대의 취향을 만족시키면 그만이다. 잠깐이라도 남들과 다르다는 차이만 드러내면 그만이다. 그들은 내일이면 잊을 것이기에.

포크는 자신의 역사가 얼마나 되었는지(포크페스티발), 그 긴 시간을 잊지 말 것만을 기획했고 자신의 역사는 곧 민주화의 역사였음을 자임한다. 그리고 민주화운동과 함께 했던 민중가요를 상대화시키며, 아련한 추억의 길에 자신을 위치지운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 2만원... 꿈속에라도 신명나게 달려볼란다"〔서울에서 평양까지〕

록은 뿌리가 누구였는지(신중현, 산울림 트리뷰트)를 기획하며, 퇴색하는 음악의 향연으로 자리잡는다. 그리고 퇴폐적 낭만주의 모더니스트들의 추억과 극적으로 만난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을... 딱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라구요]

다시 민중가요를 돌아보자.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민중운동의 위기는 민중가요의 정체성마저 뒤흔들어 놓았다. 리얼리즘/표현주의 논쟁은 완전히 뒤로 제껴졌으며, 무기로서의 민중가요와 생활로서의 민중가요는 온전한 평가도 없이 버려졌다. 전형창출이라는 기획은 구태의연함으로 내몰렸고, 대중가요와 민중가요의 변증법은 각종 형식의 야합으로만 끝난다. 그리고 민중예술로서의 민중가요는 투쟁가라는 앙상한 뼈만 남긴 채 모든 살점을 다 떼어준다.

"몰아내자 몰아내자" [주한미군 철거가]

민중가요는 실험이라는 미명하에 자기 기획을 소홀히 하면서, 대중성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대중의 장르적 취향을 따른다. 온갖 장르들을 뒤섞기 바쁜 것이다. 현실에의 저항보다 기존 장르에의 저항에 너무 많은 것을 쏟아부었다.

[가장 늦은 통일을 가장 멋진 통일로]

여기에, 진보적인 모든 문화가치는 사회적으로 해체된다. 민중가수 안치환은 국민가수 안치환으로,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는 '앞서서 나가니 전공의여 따르라'로 희화된다. 이는 계급이해를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는 사회적 맥락과 지나치게 유사하다.


휘파람이 38선을 내려와 그들과 만나면

단순한 차이를 드러내고자 하는 대중문화의 이 빠른 속도감과, 정치를 대신한 이미지의 속도감은 위치상 매우 부적절하지만, 불륜의 관계를 맺기에는 너무도 적절했고 잘 어울렸다. 거기에 대중예술의 부재, 민중가요의 무기력과 앙상함이 이 부적절한 관계에 한몫 거든다. 때마침 북한문화 '휘파람'은 들어왔고, 서로의 이해관계는 이를 용인하기에 충분하다.

"어제밤에도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휘 호호호, 휘 호호호"[휘파람]

불길하게도 이 가사는 그대로 해체된다. 이루지 못할 꿈을 이룰 것 같은 휘파람, 혹은 이국적이고 신비스러운 취향을 만족시킬 휘파람으로. 거리에서, 방송에서 특색 있고, 독특한 곳이며, 이색적인 방송을 한다고 유혹하는 휘파람으로. 수많은 대중가요 사이에서 적당히 존재하도록 그럭저럭 놓여서 말이다.
더 이상 '휘파람'은 밀실에서 불러야 할 만큼 무섭고 먼 노래도 아니요, 외롭고 쓸쓸한 망각의 땅에서만 부르는 노래도 아니요, 조야한 가사와 폴카풍의 노래처럼 묘사되어 1960년대식 향수를 자극하는 촌스런 문화소재 정도로 머물러 있지도 않는다. 진보와 보수, 구조조정과 생존권, 전쟁위기와 평화체제, 통일이냐 평화공존이냐 식의 구태의연한 쟁점, 이념적 대립도 더 이상 먹히지 않게끔 말이다. 이는 광고칼럼니스트의 기획과 정확히 일치한다.

따라서 '개혁'의 신화, 차이의 문화와 만난 '휘파람'은 보수주의자가 이야기하는, 대중을 참주 선동하는 무엇도 아니요, 통일지상주의자가 소망하는, 북의 이미지 개선의 결과도 아니다. '개혁'신화의 소모품일 뿐이다. 이 소모품은 이 광고칼럼니스트의 기획의도대로 만들어진 문화상품일 뿐이다. 이 소모품의 흥행 성공에 '개혁' 신화는 무대 뒤에서 조용히 미소지을 것이다. 너무도 너무도 뜻하지 않은 좋은 이미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 다시 자신이 불편한 지상의 정치쟁점으로 내려와 자신의 실체(신자유주의)를 드러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단언하건데, 이 상황은 절대 낙관적이지 않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의 질문이 더 남는다. 그렇다면 '휘파람'은 무엇인가? 결론은 분명하다. 앞서의 광고칼럼니스트 표현방식을 다시 또 빌면 이렇게 된 것이다. "우리가 부르는 '휘파람'은 평양에서의 사흘이 지난 지금 다시 제목 붙어야 한다. '휘파람 탱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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