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8-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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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를 통한 사회적 서비스제공의 정치학-남아메리카에서의 시민운동[1]

제임스 기던(James Gideon) | 번역>최이숙 편집부장
들어가며

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적 변화에 따라 비정부국가기구, 그리고 사회보장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있어서 그들이 수행하고 있는 역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NGO에 의한 사회보장 서비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NGO는 작고 효율적이며, 잘 운영되는 기관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정부의 분권화와 부정부패를 막고, 시민사회를 성숙시키며, 풀뿌리 민주주의의 구현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세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응수한다. NGO는 준정부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풀뿌리 조직들에게 실제적으로 해를 가하고, 그들의 성공적인 임무수행은 지불하지 않은 노동의 결과라고 말이다. 빈곤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은 외면한 채, NGO가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과연 빈곤을 완화시키는가? 간접적으로 관료적이고 비능률적인 행정라인에 대한 개혁의 압력을 경감시키는가의 문제는 오랜 논쟁거리였다. 민주화와 시민의 권리를 증진시키는 NGO의 능력에 대해, 초기에 가졌던 낙관주의는 현재 의문의 여지가 있다.

신자유주의적 모델이 수행되는 데 있어서 경제적 원조와 함께 제반의 요구들이 증가된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경우 국제적 원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적인 개혁성적표로 국제기부자들의 호감을 얻어야 한다. 세계은행(World Bank)와 같은 기구들이 빈곤을 완화시켜나감에 따라, 이는 -세계원조- 민주화를 진행시키는 데 있어서 점점 더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갔다. 이들 국가의 국민과 국제사회로부터 정당성을 얻기 위해, 정부는 경제적·사회적 개혁을 수행하려는 의지를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NGO들이 이러한 개혁의 과정에서 해왔던 역할과 NGO들이 국가의 정당성을 보장해주고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그 역할의 정도를 밝히고자 한다. 또한 이러한 활동이 NGO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역시 밝히고자 한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 과정은 위로부터의 통제의 과정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전반적으로 사회에 아주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러한 공고화의 과정은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과 아주 밀접하게 상호연관되어 있다.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대한 간단히 언급한 뒤에, 경제 구조조정에서 NGO가 하는 역할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물론 이들 역할이 지니는 정치적 함의에 대해서도 논할 것이다. 이는 수많은 이슈를 제기할 것이다. 성적 문제에 대한 NGO의 대처능력,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증진시키는데 있어서의 능력, 국제적 기금을 보장받기 위해서 행하는 역할, 탈중심화 및 관료주의적 개혁을 보조하는 이들의 능력, 국가와 NGO와의 관계,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NGO내에서의 책임성에 대한 문제, NGO의 프로젝트에서의 성적 특성과 지역참여의 의미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라틴아메리카의 경제모델과 민주화 과정에서 NGO의 잠재적 능력에 거는 기대는 과도하게 낙관적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NGO는 국가에 의해서 강화되었고,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이들 고유의 의제가 왜곡되었다.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NGO가 지역적인 차원에서 민주화의 주력부대로 활동할 수 없었다. 이들의 역할은 점차적으로 국가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NGO가 실행한 프로그램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그룹을 대상으로 했으며, 경제적 구조조정을 지속하는 정치적 수단이 되고 말았다. 좀더 급진적인 문제의식과 의제를 지니고 있었던 NGO의 경우, 자원을 얻기 위한 경쟁에서 점차적으로 주변화되었다.

국가의 지배에 문제를 제기하는 NGO-성적 평등, 계급 평등을 일구도록 노력하는 그룹들-은 점차적으로 정치영역에서 배제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이슈를 논의하는 글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것도, 대부분은 성적인 또는 도시적인 관점에서이다. NGO가 처한 호의적인 환경에 대해서 이제는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해야 할 때이다.


신자유주의 전략에 대한 개요

신자유주의 모델은 라틴아메리카의 이전모델인 국가주도의 경제정책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Hojman의 주장처럼, 수많은 요소들이 이 지역에서의 시장을 자유화하기 위한 움직임을 설명해 준다. 하지만, 이 여러 요소 중 어느 하나를 예외적인 요소로 골라내는 것은 잘못된 일일지도 모른다. 서로다른 나라에서 이 요소들을 다르게 조합하는 것이 있을 수 있고,이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사례를 개별적으로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경제적 자유화는 안정성(stablisation)과 조정(adjustment)라는 두가지 중요한 요소와 연관되어 있다. 이 정책은 투자와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자원을 현실적으로 배열하고, 수출부분을 증대시키려고 한다. 신자유주의 모델에서 국가주도의 발전은 경제 여건을 호전시키는 데 있어서는 비생산적이라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비효율적인 자원배분과 공공부분의 운영에 있어서 불필요한 특권부여를 초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에서 경험하는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비롯하여 빈곤과 같은 여타 현상은 국가주도의 경제정책의 결과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NGO를 선호한다. 그리고 NGO는 여러 방면에서 민간기관에 비견할만한 것으로 여겨진다.

NGO옹호론자들에게 NGO는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작고, 효율적이며, 유연하고, 쉽게 운영되는 조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수많은 신자유주의 전략은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NGO에 직접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경제구조조정에 뒤따르는 빈곤의 증가를 고려한다면, NGO는 그들의 사회적 서비스를 대다수 사람들에게까지 확장시켜야 할 것이다. NGO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정책은 공공부문의 축소이다. 많은 NGO가 이전에 국가가 수행하였던 바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부 지출의 축소는 정부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였으며, 이는 대체로 공공부문에 대한 지출축소로 나타났다. Wilson에 따르면 공공 지출의 우선순위를 정해나갈 때, 관리들은 수입을 늘이는 것보다 지출을 줄이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군사비 관련 지출은 통치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기술관료들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지출이 축소되는 부분은 정부관련 지출이나 보건, 교육과 같은 공적 서비스 부분이다.

Helleiner의 주장에 따르면, 정부 예산의 절박함은 시골 보건소의 도시 병원으로의 이동, 의무교육의 대학교육으로의 이전, 중요한 투자를 월급으로 돌리는 것과 같이 정부예산의 범주내에서 요소들간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빈곤(의 수위)은 현저하게 증가한다.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면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책임은 NGO들에게 주어졌다. 공적 서비스의 제공에 대한 부분은 민간위탁자들에게 개방되었고, NGO는 이러한 위탁자들과 경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담고 있는 함의는 이후에 더욱 자세하게 체계적으로 논의할 것이다.

공공부문의 민영화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중심적인 요소이다. 민영화는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매각을 통해서, 그리고 장기적으로도 정부의 재정부담을 덜어주는 것을 도와준다고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투자를 하는 데 더 이상 정부가 보조를 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민간기업은 민간운영자에게 더 많은 직접적인 특혜를 부여하기 때문에 공공기업에 비해서 더 효율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 점 역시 위에서 개괄하였던 추측된 이익의 결과로 NGO에 직접적인 의미를 지닌다.

신자유주의 옹호자들은 민주적 정부가 경제자유화를 수행하기 위해 적합하다고 주장한다.따라서, 정치적 민주화에 뒤따르는 정치적 자유가 강조되어 왔다. 자원의 효율적인 배치를 가로막는 특권을 제거하고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좀더 책임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있다.
정치 주변부에 있는 다양한 세력의 정치참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국가권력의 탈집중화가 강조되었다. 이를 통해 국가는 지역적인 수준에서 좀더 책임을 지면서, 동시에 정치영역에서 주변화된 사람들의 정치적 참여를 증대시킬 수 있다. NGO는 국가권력의 탈집중화 움직임에서 중요한 조직으로 부각되었다. 왜냐하면 기층 민중들을 강력하게 연결하는 망을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부국가기구들은 지역적 수준의 탈집중화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이 점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을 이후에 제시할 것이다.


사회복지 제공에 대한 사회적 기금 측면에서의 접근

조정(adjustment)노력이 진행됨에 따라서, 1980년대 중반까지 평등에 대한 문제가 전면적으로 제기되었다. 그리고 경제적인 조정이 빈곤층에게 단기적으로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은 널리 인정되었다(Nelson 1990). 1990년까지 사회적 기금의 형태로 빈곤을 완화시키고, 사회적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증대시키는 정책들이 조정 프로그램의 공통적인 요소였다. 이와 같은 형태의 최초의 기금은 볼리비아의 '긴급사회기금'(Fondo Social de Emergencial 이하 FSE)이었으며 1992년에는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전역을 통틀어 12개의 사회기금이 운용되었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에서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다른 여러 기금의 예는 아프리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사회적 기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정치적으로 선호되었다. 첫째, 이는 국제적으로 조성되었기에, 국내적 자원의 이동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Wurgaft에 의하면 기금의 설립은 공공부문이 담당할 수 있는 능력을 뛰어넘는, 빠르고 효과적으로 성과를 얻는 방법으로 여겨졌다. 게다가 여러 기금은 해외의 재원을 모으고, 동시에 재정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기능하였다. 기금이 조성되었을 때 이것은 단지 단기적인 방편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외국의 기부자나 정부로부터 자금을 조성하는 것은 용이하였다. 국제적인 자원은 이러한 목적으로 종종 사용되었기 때문에, 정부지출을 줄이자는 신자유주의 교리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기금은 국가를 통한 기금 전달을 피하려는 이들에 대한 반응이었다. FSE의 경우 기금이 운용되기 시작한 처음 4년 동안 2억3천9백5십달러를 모았다. 그리고 NGO를 이용하여 국가는 국제사회와 쌍무협상국의 기부자들(bilateral donors)로부터 더 많은 돈을 조성할 수 있었다.

두번째로 사회적 기금은 경제구조조정 초기에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된다. 이것은 단기적인 역효과를 완화시키고, 불안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한다. 기구들은 사회적 기금을 가능한한 빨리 사용하고자 한다. NGO는 사회적 기금을 이용하여 실행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같다. 이는 부분적으로 NGO가 기층의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민간단체로 불리는 그들의 위치 등 NGO에 대한 가정의 결과이다. 하기에, NGO가 작은 규모이며, 효율적, 저비용구조일 뿐만 아니라, 쉽게 운영된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Bebbington, 1993;50, Brellano L pez와 Petras, 1994;561) 그러므로 신자유주의적 패러다임의 원칙과 연동되어서 NGO들이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적합한 기관처럽 보이는 것이다.


NGO와 신자유주의 패러다임

경제구조조정에 뒤이어 새로이 나타난 NGO들은 지방 수준에서 정부의 탈집중화와 기본적 권한을 증진시키는 그들의 잠재력에 대한 초기의 낙관주의에 대해서 의심하게 한다. Arellano L pez와 Petras는 이제까지 나타난 변화의 효과에 대해 논증하고 있다. 우선 지금의 NGO는 조직화를 위한 노력보다 발전계획을 수행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이는 주로 외국 기부자들에 의해 조장된다. 왜냐하면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민의 참여를 호소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NGO가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자원-기금-을 NGO에 직접 전달하기 때문이다. De Kadt가 주장하듯이 칠레에서는 지역적 차원에서 실행이 가능하고 혁신적인 마을 공동체 규모의 프로젝트를 판별하기 위해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둘째로 국제기금이 활용가능하다는 점은 재정적 자원을 이용하는 새로운 NGO가 폭발하는 현상을 낳았다. 이 점 역시 Wurgaft(1992)가 확증하고 있다. 볼리비아에서는 1980년경에 100여개에 불과했던 NGO가 1980-92년 사이에 약 530여개에 육박할 정도로 많이 증가하였다.(Arellano L pez와 Petras, 1994;562)

이러한 현상으로 인하여 예전의 NGO가 지녔던 정통성과 신뢰는 손상되었다. 특히 기회주의적인 새로운 NGO가 정부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고, 정부가 이들과 일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는 데 아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게 되면서 더욱 그러하다. 현재, 이전의 NGO는 기금을 희구하는 경향에 합류하게 되었으며, 이전에 그들이 가졌던 정치적 역할을 해나가기 보다는 개발단체(development organization)로서 그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MacDonald는 대항이데올로기 그리고 사회운동에 복무하느냐에 따라서 좀더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NGO와 신보수주의와 관련있는 NGO를 구분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의견에 따르면, 급진적인 NGO를 신보수주의적 NGO와 구별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그들의 변혁적 이데올로기와 민중적 진영과 연대하여 사회운동을 강화하려는 노력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다국적 또는 국제적 기관으로부터 기금을 받는 곳은 바로 신자유주의적 전략과 연계된 NGO이다.
NGO의 이러한 변화는 여러 가지 논쟁거리를 양산해왔다.

비판가들은 NGO가 준정부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풀뿌리민주주의의 토대를 갉아먹고, 그들의 성공을 위해서 무임노동에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Arellano L pez와 Petras, 1994;MacDonald, 1994;Valla,1994: Wood, 1997) 또한 NGO에 의해서 제공되는 사회적 서비스는 빈곤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문제제기를 뒤로 한 채, 빈곤현상을 완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또한 NGO는 변화과정에 대한 분석이 부재한 채, 변화만을 역설하기 때문에 그리고 극빈계층 전체가 아니라 몇몇 빈자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데에만 도움을 주는 수입증대 프로젝트를 촉진시키기 때문에, 진보정치를 형성할 수 있는 힘을 약화시킨다는 데에 비판론자들은 의견을 같이한다.(Edwards와 Hulme, 1992;20) Angell과 Graham은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공공부분에서 자원의 배분은 퇴보하였다고 주장함으로써, 위에서 제기한 것과 유사한 주제를 확대한다. 보건영역을 예로 들자면, 병을 예방하는 조치보다는 치료약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서 사회적 서비스가 부적절하게 제공되고 있으며, 서비스의 제공이 부정한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되고 그 대상이 정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바로 위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공공부분의 제도개혁은, 개혁을 어렵게 만드는 부정이익이 과도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어려워진다. NGO를 이용하는 것은 국가로 하여금 국가기관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해주고, 그 결과 간접적으로 관료제와 비효율적 행정절차를 개혁시켜야 한다는 압력을 줄여줄 수도 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NGO와 국제기금

많은 사람들은 NGO를, 다양한 개발활동에서 국가가 물러나면서 나타난 공백을 채워주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Bebbington,1993) Arellano L pez와 Petras가 주장하듯이 실제 몇몇 NGO의 경우 재정적 자원을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Alatorre와 Aguilar는 Bebbington의 의견을 다시한번 확인하면서, 멕시코의 경우 국가 예산이 줄어들면서, 이전에 국가기구가 수행하였던 많은 역할을 NGO가 담당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국가를 대신할 새로운 기금대상자를 찾았던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에 의해서 촉진되어왔다. 이들은 더 이상 국가에 노골적으로 그들의 재원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Alatorre와 Aguilar, 1994; Brodhead, 1987) L pez와 Petras가 기술하듯이 NGO가 명목상 민간단체로 규정된다는 점 때문에 이들 기구들은 국가보다는 NGO를 선호하였고, NGO는 국제기구에게 있어서 국제개발을 보조하는 매력적인 통로가 되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새로운 어려움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기금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한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해, NGO는 짧은 시간내에 엄청난 성과를 일구어야 했고, 이로 인해 이들은 사회적 필요보다는 더욱더 시류에 부응하였다.


성적 문제를 제기하는 NGO의 능력

이 글에서 제기하고 있는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는 바로 NGO의 스텝(간사)의 성비이다. Sally Yudelman(1987,180)가 지적했듯이 스텝으로서든 또는 서비스의 수혜자든간에 'NGO의 프로그램 속에 여성을 융합시키기 위해 그들이 무엇을 해왔는가?'에 대한 글은 거의 없다. Yudelmann은 (이것이) 주로 NGO의 남성간사들이 삶의 많은 영역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문화적 편견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NGO가 온전하게 여성의 경제적 권리증진의 문제를 제기하고 기존의 성역할에 도전할 생각이 있는 지는 사실 의심스럽다. 많은 국제적 NGO들은 그들이 여성문제에 간섭하여 -제3세계 국가들의 NGO로부터(역주)- 문화제국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를 원치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Yudelmann은 역설한다.

따라서 NGO내의 고위간사들 중 여성활동가가 부족하다는 것은 좀더 많은 조사가 요구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Siddharth는 NGO 그들 자체가, 성적인 문제에 대해 더 잘 인식하면서 발전문제에 접근하는 것을 언제나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세계은행 내에서 여성문제에 대해 압력을 행사한 것은 NGO라기보다는 지원을 하였던 기부자들(bilateral aid donors)이었다. 여성문제 때문에 개발을 실행시키는데 협조하지 않겠다고 압력을 넣은 것도 NGO가 아니라 위의 기부자들과 은행직원들이었으며, NGO는 여성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성문제에 좀더 민감한 프로그램들을 실행시키는 데 NGO가 난항을 겪고 있음은 성비의 문제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일반적으로 NGO는 다른 기관들에 비해 경직되어 있지 않다고 소개되곤 한다. 즉, 성문제에 있어서는 좀더 책임성이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Goetz는 기관 및 단체에서도 성적인 편견은 암시적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즉 성에 있어서의 선호체계-남성을 선호하는 체계-가 규범적으로 구조적으로 그리고 기관의 관습으로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남성에 의존하는 존재로서 사회적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고 가정한다. 단체들 역시 실용적이고 물질적인 측면에서 성적으로 편향될 수 있다.

근로일, 경력, 생활주기와 같은 물리적 시공간에 있어서도 여성보다는 남성이 필요를 반영하고 있는 구조에 따라서 움직일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제도적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데 있어서 개개인의 역할은 종종 무시되곤 한다. 이러한 인자들을 고려한다면, 정책적으로 이러한 인자가 미치는 영향, 진보적인 여성정책의 목표와 그 실행과정에서 어떻게 뒤집어질 수 있는 지를 우리는 잘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NGO가 성적으로 중립적인 조직인지, 그리고 NGO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존재하는 성적인 편견으로 인하여 그들의 프로그램과 프로젝트에서의 성적으로 편향된 결과가 어느 정도로 나타나는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NGO에서 일하는 간사들의 성비에 대한 Yudelmann의 주장은, NGO가 과연 성적 평등을 증진시키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 필요하다는 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성비 분석은, NGO를 포함한 단체가 왜 남성편향적인지 그리고 성적으로 편향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규명하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여러 가지 면에서 NGO에 대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경제적인 모델 그리고 이를 실행하는 방식이 성적 불평등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NGO가 시행하고 있는 많은 프로그램에서 성적 편견은 사라지지 않는다. NGO는 진공상태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그리고 기부대행자와 상호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거시적인 정책들이 성문제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는다면, 거시적인 수준에서 NGO프로그램이 성문제에 대해서 세심하게 영향을 끼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일례로 중앙아메리카의 경우, 사회적 기금사용에 대한 결정과정에서, 성문제는 포함되지 않았다.(Elson과 Gideon,1996) Beneria와 Mendoza는 사회기금의 지원아래 NGO가 실행한 여러 프로젝트는 성적 불평등의 문제를 거의 제기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멕시코와 니카라과의 경우, 성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여성 역시도 기금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성문제 전문가는 한사람도 채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Beneria와 Mendoza;) Moser 역시 유사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회적 기금프로젝트는 생산자로서의 남성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반면, 여성의 경우 엄마와 가정의 보호자로서 재생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여성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기금이 음식과 영양에 관한 프로그램만을 사용한다는 점은, 위 주장을 잘 뒷받침해주고 있다. 게다가 대체적으로 볼 때, 개입에 뒤따르는-프로젝트의 시행에 뒤따르는 이전에는 프로젝트에 따르는- 일자리와 수입도 오직 정규부문의 고용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여성에게 혜택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개입은 가사노동에 대해서는 수입의 손실과 관련된 부문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다. 이와 유사하게 NGO 프로그램은 여성의 전략적 필요보다는 실용적 필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존하는 성관계에 이의제기하는 등, 보다 급진적으로 (성문제)에 접근하는 NGO의 경우 정부로부터 대접받지 못한 채, 점차 주변화되어간다. Siddharth가 주장하듯이 NGO는 참여를 유도하지도 책임있지도 않은 방식으로, 조정을 정치적으로 현실화시키는 서비스를 실행한다. 게다가 새로이 생겨난 NGO의 경우, 서비스의 수혜자들-여성- 보다는 프로젝트의 필요성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Yudelman이 논증하듯이 제한적인 자원만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여성이 배울 수 있는 기술의 유형에도 영향을 끼친다. 바느질, 옷만들기와 같은 가사노동 기술은 (정부의) 단체에 대한 재정지출을 줄여주며, 자원봉사자의 경우 비용은 더욱 줄어든다. 따라서 여성들은 '여성의 일'에 관한 성적인 스테레오타입에 반기를 들 수 있는 다른 기술을 배울 수 없는 상황이다. 1988년 이래로 프로젝트 디자인에 참여하는 NGO가 증가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는 그들이 정부기관 프로젝트의 하위프로젝트에 지원한 데서 기인한다.

따라서 NGO가 반드시 이러한 프로젝트를 디자인하는 데 참여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결과 NGO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권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계약자로서만 고용된다.
NGO 프로그램 속에서 여성은 경제적 의사결정과정에서 배제된다. 이를 두고 Goetz는 '여성은 의사결정의 주체가 아니라 의사결정의 수혜자'라고 표현하였다. 계발프로그램의 수혜를 받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성은 흔한 것이 아니다. Ebdon은 이를 현재 나타나고 있는 경제구조조정과 연관시켰다. 신자유주의의 경쟁력의 관점에서, NGO는 그들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변화시켜야 했다.
그녀는 결론내리기를, 기금 증가라는 목적지향적인 전술과 행위지표를 지속적으로 점유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참여와 권리증진이라는 목적을 희석화시킨다고 했다. 빈곤퇴치보다 신용가치를 강조한다는 점은, 결과적으로 최극빈자 여성을 무척이나 위험스러운 존재로 여기며 대부 수혜대상(loan entitlement)에서 배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Goez 역시 유사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작은 규모의 신용상환 서비스는 대체적으로 가정에서 나타나는 서비스의 영향보다는 돈이 움직이는 속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대부금상환 압력으로 신용도가 경제적 자립성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은 관심에서 멀어진다.

NGO들은 재원을 획득하기 위해 성적으로 민감한 계획을 촉진시키고, 관료들은 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일단 재원이 안정되면 (그 계획의) 실행은 요원해지곤 한다. 정부는 이러한 종류의 계획에 대한 기금(지원)을 승인할 수도 있지만, 실행하려는 의지는 없으며, 기부단체 역시 그들의 명확한 목적이 있다. 현재 성적 평등은 NGO가 착목하고자 하는 인기있는 계발대상(development objective)이다. NGO들은 성적 평등을 증진시켜야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이를 실행시킬 수단은 부족하다. 니카라과의 NGO 활동가들과의 토론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일부 NGO내의 몇몇 부분들은 성적 평등에 관한 문제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실현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 단체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은 아니다.

NGO 프로그램의 효율성은 단지 NGO에 좌우되는 문제라기보다는 관련된 주체들- 혜택의 수혜자뿐만 아니라 다자간 또는 양자간기구, 정부기관-의 공조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이다. 서로다른 이해를 가진 관계자들은 성적 관심사를 다르게 규정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여성에 대한 재원분배가 결정되기도 한다. '성적 억압의 원인이 무엇인가?'의 문제는 또한 '어떠한 해결책이 제시될 수 있는가?'를 결정하며, 서로다른 이해당사자들 내에서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성적 민주화를 실행하고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NGO의 능력에 대해 진지하게 제고해야 할 것이다. Siddharth의 결론처럼, 모든 NGO가 성문제 있어서 민감하며 심지어 적극적이라고 가정할 수는 없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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