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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11.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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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자가 된 실업운동가의 항변

유의선 | 집행위원
실업자가 된 실업운동가의 항변

유 의 선 | 집행위원

"어떤 이야기가/ 그것이/ 너무 많이 이야기된 것이므로/ 거의 일종의 죄악이라면/ 그것은 어떤 시대인가?" 이것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탈출한 루마니아 출신의 시인 파울 첼란의 시이다. "너무 많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단지 이야기되기만 할 뿐 어떤 실천도 상실해 버린 이 죄악의 시대는 어떤 시대냐고 절규하는 첼란의 시 앞에서 우리의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인가? 자본의 폭력이 조장하는 참혹함을 참혹함으로 느끼지 조차 못하는 이 시대는" 한 젊은 여성 시인은 첼란의 시를 소개하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서울지역실업운동연대(약칭 서실연)의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활동했었다. 서실연은 12월 20일 해산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내게 남은 일은 4년 좀 못되는 서실연의 활동을 백서로 남기는 것이다. 99년 초에 서울지역실업극복연대로 출발하여 지금까지 서실연의 활동을 정리하는 것은 내게는 매우 뼈아픈 과정이다. 단지 서실연만이 아니라 대량실업 이후 실업과 관련된 이러저러한 논의와 시도와 조직적 행보들이 그 역사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며, 그 과정과정에 나의 운동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지면을 통해 '실업운동'을 통해 가졌던 질문을 다시 던져보려 한다. 실업운동을 평가하거나 문제를 제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단지, 내 활동의 경험을 통해 느꼈던 고민들이, 그저 개인의 것이 아님을 항변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고민으로 실업운동을 다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에게 실업(혹은 실업운동)은 이미 너무 많이 이야기되었으나, 어떤 것도 이야기되지 않은 문제는 아닌지 돌아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실업운동은 왜 부문운동이 되어버렸을까?

대량실업 초기, 노동사회운동단체들은 실업문제에 대해 수다한 입장과 대응방안을 내놓았다. 민주노총이나 진보정당에서는 '실업자 조직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했고, 사회운동진영에서는 노동, 경제, 여성, 복지, 정보통신, 보건의료 등 각 부문에서 나타나는 실업의 문제를 진단하고 각각의 대응과 총체적인 실업운동이 필요함을 제기했다. 그러나 실업률의 하락과 함께 실업의 문제가 사그라들면서, 실업문제는 경기가 악화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예문으로나 등장할 뿐이었다. 그나마 실업률이 IMF이전 수준으로 낮아진 이후에는 언론은 물론 어느 진영에서도 실업에 대해 발언하지 않는다.
실업의 양상이 바뀌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실업은 불안정노동의 가장 첨예한 문제로 일상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왜 바뀌어진 실업의 양상에 대해, 그 폭력에 대해 분석하지도, 대안을 모색하지도 않는 것일까? 실업문제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투쟁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언젠가 몇몇의 실업노동자가 조직되어 그들이 거리로 나와 '상징적'으로 외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실업운동은 전체운동의 과제가 아니라 일부 조직되어야할 실업노동자의, 아직은 그것을 대리하고 있는 실업단체들의 운동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실업운동이 실업단체들의 운동이 되어버린 순간, 모든 활동의 기준은 주체가 얼마나 있느냐, 실업노동자를 얼마나 조직 동원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치환되어 버렸다. 지금도 묻는다. 실업노동자의 요구가 무엇이냐고.
나는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나 고통스럽다. 요구조차 분명히 정식화하지 못한 현재 실업운동의 상황이 뼈아파서가 아니다. 누구를 실업노동자로 규정하고, 누구를 비정규직 노동자로 구분하고, 누구를 빈민으로 구분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실업운동진영은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왜 사람들은 실업운동에 대해 모두 '잘 모른다'고 할까?

나는 99년 2월부터 실업단체에서 활동했다. 4년 동안 외부의 사람들을 만나면, 실업단체나 실업운동의 상황을 설명하기에 바빴다. 왜냐면, 모두들 잘 모르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잘 모르니까, 설명을 해줘야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것 아니냐는 이야기일 게다.
실업극복국민운동과의 관계, 자활후견 기관과의 관계, 민주노총과의 관계, 지역주민운동과 지역노조 등 지역별 운동의 특성... 물론 간단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서실연의 백서작업을 하면서, 내가 모르고 있었던 일들이 허다함을 확인하게 된다. 한 개인이 그 운동의 전체를 세세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정보만의 문제일까?
일례로, 사람들은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나 투쟁, 사업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실업운동의 전국조직인 전실연(전국실업극복단체 연대회의)은 민주노총 고용안정센터에서 사무국을 담당하고 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자료집에 실린 민주노총 사업계획서를 보면, 전실연의 사업계획서와 토씨하나 틀리지 않은 사업계획이 고용안정센터의 사업계획으로 제출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예산의 집행도 담겨져 있다. 마찬가지로 실업단체에게조차 정보가 차단되어 있는 실업극복국민운동의 상임위원단체로 민주노총이 들어가 있다.
그렇게 민주노총의 사업계획으로 실업운동진영이 노동부의 지원을 받아 민간고용안정센터를 건설하자는 계획을 통과시켜놓고, 민주노총은 묻는 것이다. 실업운동은 무엇을 하고 있냐고. 전실연은 12월에 법인총회를 앞두고 있다. 법인화하여 안정적인 지원 등 조직의 안정을 꾀해보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기층에서 질문한다면(사실 아무도 묻지 않지만), 민주노총은 무엇이라고 대답할 지 궁금하기도 하다.
민주노총을 예로 들은 것은, 실업운동에 대해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묻는다. 실업운동은 무엇을 하고 있냐고, 어떤 상황이냐고.


서실연은 왜 해산되어야 했나?

서실연은 실업자종합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던 [서울지역실업'극복'연대]에서 2001년 초[서울지역실업'운동'연대]로 명칭을 개칭하며, 다음의 문제의식에 합의했다. "앞으로의 실업 관련 활동에 관해 모아지고 있는 생각의 합일점은, '운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실업자의 곤궁한 처지를 일시적으로 완화시켜 주는 구호사업, 실업극복국민운동 같은 기금에서 돈을 타다가 나누어주는 사업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을 매개로 한 주민과의 만남은 지역운동의 기반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금 확인했다." 그리고 2002년 말, 더 이상 지역단체나 전실연{{) 전실연 2002년 4/4분기 ~ 2003년 1/4분기 사업목표는 다음과 같다
○ 실업자종합지원센터의 사업의 방향을 세우고 센터 사업의 지원체계를 갖춘다. ○ 실업운동의 전망을 세우고 실업자조직을 강화한다. ○ 중앙조직을 법인화하여 민간 단체의 장기적 안정적 사업 체계를 수립한다. ○ 사회적 일자리 창출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체계를 마련한다. ○ 자활지원특별법제정, 고용보험법 개정, 기초법 개정운동 등 제도개선을 위해 투쟁한다.
}}, 그리고 서실연이 '실업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확인했다. 사안별 쟁점은 그때그때 연대할 수 있으며, 지원센터는 지원센터간 협의구조에서 조율할 문제이기에 이름만 있는 조직은 빨리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10월부터 실업극복국민운동의 지원을 받아 지원센터를 운영하게 되면서, 전실연은 10월말 전체 수련회에 최다인원의 참가(110여명)를 기록했다.
서실연은 해소되지만, '실업'의 문제가 해결되어서가 아님을 우리모두 알고 있다. 여전히 일상적이고 위협적으로 존재하는 '실업'의 문제를 '운동'으로 형성해내지 못한 반성이 존재할 뿐이다. 서실연에 참여했던 지역단체들은 앞으로도 꾸준히 지역내 빈곤계층을 만나며, 그들을 조직하고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서실연의 평가는 이미 서실연의 몫이 아니다. 서실연의 반성을 여타의 운동진영이 함께 하고 있다면 말이다.


적어놓고 나니 푸념의 글이 되어버렸다. 현재의 실업운동 자체의 평가는 실업운동진영에서 보다 강인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단지 실업운동진영의 평가로 한정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음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라고 이해해주면 좋겠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잔인한 겨울이 빨리도 찾아오고 있다. 건강한 사람과 건강한 조직만이 이 겨울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갈월동은 난로의 온기보다 사람의 온기로 더 훈훈한 곳이길 바래보며.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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