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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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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 어머니론

장귀연 | 회원,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오, 어머니, 당신의 아들…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 주간행사처럼 열렸던 교투 때마다 가장 많이 불렸던 투쟁가 중에 '선봉에 서서'라는 노래가 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투박하고 촌스럽기 이를 데 없어 피식 웃음조차 나오지만, 4/4박자 전형적인 군가풍으로 스크럼을 짜고 싸움을 할 때에는 매우 적합한 노래였다. 노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선봉에 서서 하늘을 본다. 고향집 하늘 위엔 굴뚝 연기가" 그리고 중간 부분, "오, 어머니, 당신의 아들, 자랑스런 민주의 투사…(중략) 영광의 장정, 뿌려진 피땀, 어머님의 눈물이런가".
아련하게 한 풍경이 떠오르지 않는가. 동구 안 고향집 굴뚝에 근심처럼 피어오르는 연기, 싸리울에 기대서서 아들 걱정을 하는 어머니의 눈물겨운 주름살, 그런 어머니의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아니 그리워하기 때문에, 민주화라는 영광의 장정에 한몸을 바치겠다고 다짐하는 투사인 아들, 아들 때문에 눈물바람을 하면서도 "그려, 누가 뭐래도 넌 내 아들이니께, 착하기만 한 내 아들이 못된 일을 할 일은 없지"하고 아들을 믿어주시는 어머니…….
지금 시대에 생각하면 심지어 목가적이라고까지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이러한 풍경은 지금까지 면면히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를 받아보고 있는데, 거기에 연재되는 '떠난 자와 남은 자'라는 난은 거의 예외없이 이 풍경을 반복하여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인 인용은 하지 않겠다. 혹시나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봐 덧붙이지만, 당연히 나는 이 란에 나온 열사 가족들의 한이나 민가협·유가협의 투쟁을 트집잡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는 실체다. 내가 문제삼고 싶은 것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담론화되고 각인되는 방식, 담론화 기제이다.
}} 열사와 어머니의 울혈 맺힌 한. 그건 두말할 것 없이 가슴을 치는 광경이다. 그 누가 그 앞에서 입을 뗄 수 있으랴.
그건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그 란의 (내용과 사연이 아니라) 반복된 구조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느낀다. 왜 어머니인가? 왜 우리는 자꾸만 '어머니'를 부르는가?
우리는 '어머니'를 호명한다. 즉, 정확히 이데올로기의 호명 기제다. 사랑으로 충만한 어머니, 무량히 넓은 팔을 벌리고 있는 어머니, 자식이기에 다 믿고 들어주는 어머니, 희생하는 어머니, 어떤 공격 앞에서도 온몸으로 자식을 보호하는 어머니, 그렇게 나동그라지는 맨발의 어머니, 자식을 위해 산 넘고 물 건너 발톱이 빠지도록 허위허위 달려가는 어머니.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 아버지는 증오하더라도 어머니 생각엔 애틋해질 수밖에 없는 아들, 어머니의 눈물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그 어머니가 뒤에 있기에 힘을 얻어 싸우는 아들, 모두가 적이라도 어머니만은 내 편임을 의심치 않는 아들.
물론 현실이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다. 모든 이데올로기적 상징이 그러하듯이 하나의 이념형이거나 또는 현실적 관계에 대한 상상적 관계다. 그러나 그것은 끊임없이 호명된다. 노래에서, 민주노동당 기관지에서, 무수한 예술작품에서, 무수한 선전물에서. 그것은 우리의 가슴을 뒤흔들고 무한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러나 역으로 우리가 그 호명에서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편안한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편안함이 불편하다.

나쁜 어머니

나는 임신중절 수술을 한 적이 있다.{{) 이 경험에 대해서 나는 몇 년 동안 아무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그것을 발설한 것은 몇 년 후 페미니즘이론 수업 뒷풀이 때였는데, 그때 나는 꽤 당황했다. 그 자리가 다른 자리도 아닌 페미니즘이론 수업 종강 뒷풀이(참석자는 물론 여성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말을 한 순간 갑자기 주위가 썰렁해졌기 때문이다. 즉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나의 말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감을 잡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주 친밀한 친구 사이에서 고민과 눈물을 동반하며 나온 것이었거나, 또는 심각한 공개고백이었다면, 오히려 그에 대해 심리적으로 반응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뒷풀이 잡담 중에 얼핏 지나가는 얘기로 한 것이었으며, 어떤 식으로든 '고백'의 형식을 띠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랬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당황해 했을 테고 나는 그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일년 동안 페미니즘 이론을 열강했던 선생님은 "미혼의 여자가 그런 체험을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건 한국에서는 처음이다"라고 말하면서 "미국에서는 모이기만 하면 그런 얘기 자주 해"라고 썰렁한 분위기를 수습했다. 이 발설의 경험도 내게는 꽤 흥미로웠지만, 그건 이 글의 주제에서는 약간 벗어나는 얘기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이 글은 물론 생명권에 근거한 낙태 논쟁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낙태 논쟁에 대해서도 개념화하고 싶은 몇 가지 지점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쓸데없이 각주를 늘릴 이유는 없을 것 같다.
}} 당시 나는 이미 대학도 졸업하고 독립적인 사회인이었기 때문에, 여고생 임신의 경우처럼 '피치 못하여…'라고 핑계댈 여지도 없다. 결혼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거야 간단히 해결될 문제, 이른바 결혼 적령기 때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순간의 방심에 의한 계획에 없었던 임신이었으므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내가 세워놓았던 삶의 계획에서 최소한 몇 년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나아가 영영 인생의 방향이 달라질 가능성도 많았다.(물론 그런 의미에서 출산과 양육이 전적으로 사적 부담인 우리나라의 사회 시스템의 탓이 크고, 그것이 우리나라의 출산저하에 큰 몫을 차지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니까 아주 이기적인 이유였던 셈이다.
어쨌든 참 '기묘한' 경험이었다. 나의 심리적인 경험은 삼중이었다. 나는 거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에 대해 반발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나는 매우 신속하게 낙태를 결정했고 수술 전이나 후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린 적도 없으며, 어떤 육체적-심리적 후유증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경험은 내 일상이나 심리에 거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자유주의적이기는 하되 그래도 양가집이라고 할 수 있는 집안에서 정통적인 모범생으로 성장했다.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생명이라는 것 때문에 벌레 한 마리도 잘 죽이지 못하며,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으니 모성이 결핍될 이유도 없었다.) 2) 따라서 나는 내가 죄책감이나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매우 당황했다. 내가 죄책감을 느꼈던 것은 바로 그 지점, 자연스럽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 불쌍한 내 아기!'라고 하룻밤을 울고 새우든지, 적어도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지 않는가. 이기적인 이유에서 자식을 살해한 어머니라면 그게 정상적인 것이 아닌가. 내가 이렇게 극악한 사람이었던가. 3) 그러나 곧이어 나는 그것의 '정상성'에 대해 반발하고 부정하였다. 그것은 '어머니는 이래야 한다'라는 것에 근거한 정상성이다. 그것은 정확히 어머니를 '호명'하는 메카니즘이다. 모든 여성 속에 내재하는(것으로 전제되는) 모성의 이상형이 선언되며, 그것에 근접하지 않으면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결국 내가 그 경험에서 느꼈던 것은, 자연스런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이 아니라, 호명되는 모성(母性)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순종과 반발 사이의 순간적인 갈등이었다. 나의 낙태 경험에 대해 동정하거나 비난할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하게도, 나에게 그것은 단지 성찰적 경험이었을 뿐인데, 우리가 그 내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이데올로기의 기제란 문제적 상황에서 섬광처럼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나쁜 어머니'이다.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주는 어머니, 사랑과 희생으로 충만한 어머니, 이 '좋은-정상적인-위대한 어머니'의 대척점에 서 있는 '나쁜 어머니', 즉 자신의 이기적 욕구를 위해서 자식을 가차없이 버리는 어머니, 어머니'답지 않은' 어머니. 그러나 그 분류는 누구의 시각인가.

'아들'의 꼭지점

잘 알려진 논의로, 여성을 보는 남성의 시각은 '성녀(聖女)/창녀(娼女)'의 이분법, 또는 '어머니/애인(성적 대상)'의 이분법에 근거하고 있다. 그 유명한 경구,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은 정확히 이 이분법을 드러낸다. 즉 여성에게 강함과 적극성과 위대함을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기제가, 바로 이 '어머니'라는 호명이다.
더 나아가 '어머니'를 세분화한다면 그것은 좋은 어머니와 나쁜 어머니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나쁜 어머니란 어머니의 부정이다. 즉 어머니답지 않은 어머니, 어머니이기를 포기한 어머니, 어머니가 아닌 어머니이다.
외디푸스 삼각형에서 아버지는 투쟁과 극복의 대상이다. 아버지는 이상(理想)이고 정치이고 대안이다. 텍스트 분석 이론에서 '아버지의 극복'이나 '아버지의 부재'는 매우 중요한 테마를 이룬다. 그러나 '어머니 극복'이나 '어머니 부재의 영향'이라는 주제의 논의는 없다. 살부(殺父)의 테마는 존재하지만, 여성인 어머니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살모(殺母)의 테마는 없으며, 기껏해야 성적 대상(애인)으로 변환(근친상간 테마)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외디푸스는 바로 '아들'이다.{{) 이와 관련하여 '나쁜 어머니'를 그린 텍스트들은 대개 딸의 시각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한국의 소설에서(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장르이므로), 자신의 이기적 욕망에 몰두하여 자식을 유기하는 나쁜 어머니는 주로 딸의 시각에서 묘사된다. 이에 비해 아들의 시각에서 본 어머니는 거의 항상 희생과 사랑에 넘치는 어머니이고 갈등조차도 이에 근거해서 전개된다. 한국 문학에서 실제로는, 주로 여성 작가들에 의해 '나쁜 어머니'를 묘사하고 모녀간의 애증과 갈등을 다룬 작품들이 적지 않은데도, 비평계에서 주목받거나 이론적 개념화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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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말했듯이 진보진영의 많은 선전물들이나 담론 역시 이 효과에 의지하고 있다.{{) 운동권 내에서 여성의 이미지, 즉 어머니, 희생자("순결하고 짓밟힌 누이"), 여성전사 등의 상징화에 관한 논의로는, 김재은의 석사논문(서울대 사회학과, 2003년 2월 예정)을 참고. 가족드라마와 정치운동의 상동성에 관해서는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린 헌트, 새물결) 참고.
}} '선봉에 서서' 투쟁하는 자들도 '어머니의 눈물'이 가장 심금을 울리는 것임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고향이며 궁극적인 빽이다. "그게 왜 문제가 되는데?" 그게 문제인 이유는 그것이 '아들'(남성)의 시각이기 때문이다. 남성/여성, 어머니/애인, 좋은 어머니/나쁜 어머니라는 단계적인 이분화 과정은, 남성 주체가 여성을 보는 시선의 라인을 따라간다.
나는 '세상 뒤집기'를 쓰기 전에 주위 친구들에게 주제를 이야기해 보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번에도 그러하였다. 내가 민가협이나 유가협 어머니들의 투쟁을 폄하하거나 트집잡는 것이 결코 아니라 그것이 호명되는 구조, 비유적으로 말하면 민가협에는 아버지도 형제도 있는데 우리가 '민가협 어머니들'이라고 부르도록 만드는 담론의 기제를 문제삼는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는 친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나를 아연하게 만들었다. 내가 얘기를 꺼낸 두 명의 친구는 모두 남자였고 각각 개별적으로 얘기를 나누었는데, 둘의 반응이 너무나 꼭같았기 때문이다. "그게 왜 문제가 되는데?" 그들의 반응을 정리하면 이렇다. 그것이 이데올로기의 호명 기제라는 점은 분명히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데올로기 없는 투명성 속에서 살 수 없는 한 담론 투쟁이라는 전술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 '어머니의 눈물'이란 강력하고 아름다운 상징이거늘… '그게 왜 문제가 되는데?' 말문이 막힌 나는 으레 그러듯이 억지를 부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넌 남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글을 쓰기로 결정하였는데, 나는 여성이지만 나쁜 어머니, 정확히 말해서 어머니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머니이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들'이라는 꼭지점에 서서 세계를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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