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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5.35호

세계적인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의 태도

유나경 | 회원
‘세계적인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의 태도’

유나경 | 회원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아니, 위아래가 없다니, 그게 자랑인가?...’
아무런 수식어 없이 ‘위아래가 없다’는 두 어절이 이다지도 한국사회의 반(半)봉건적 문화를 뒤틀어 놓을 줄이야...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제도권 교육 틀 내에서 국가가 주는 ‘문명적(?) 국가의식’을 주입받고 자라난 한국사회의 구성원인지라 민족적 전통을 일소하는 듯한 도전적인 책 제목 앞에서 부러움을 감춘 채, 자존심 상해 한 것이 사실이다.
박노자가 서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반폭력과 인권, 그리고 노동을 중시하는 노르웨이의 사회․문화적 분위기를 체험과 역사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서구 중심주의’를 표방한다거나, 민족의 우열을 따지는 작업은 아니다.
자본주의의 정글이 되어 버린 한국사회 안에서 자본주의적 배제와 불평등으로 인한 차별과 폭력, 비정규직을 현대판 ‘천민’으로 대우하는 시대,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발가벗고 수색하고, 곤봉세례를 가하는 시대, “부자 되세요”가 사회전체의 유일한 관심사가 되는 시대를 하루 빨리 종식하고자 하는 필자의 간절한 바램이 담겨져 있다.
더 나아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한 전인류의 노력을 촉구하기도 한다.
박노자가 소개하는 노르웨이는 어떤 완벽한 이상사회라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노동자서민을 천시하고 약자를 괄시하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한국의 사회의식을 비춤으로써 한국사회의 그릇된 편견을 추출할 수 있게끔 하는 구실을 한다.
그 첫째가 ‘나이’로 상징되는 위계서열화다. 뿌리깊은 유교사회에서 위계질서는 무시 못할 권력으로 작동된다. 박노자는 형식적 위계질서에 얽매였을 때 일상적으로는 일처리의 비효율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권위주의와 보수성을 심화시킨다고 경고한다.
특히 위계서열화가 생존과 경쟁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적 습성과 결부되어 생존요령으로서의 맹종과 아부가 횡행하고, 취직과 성공을 위한 연줄만들기, 술실력(?)으로 일의 실력도 평가받는 남성중심(우월)주의 등은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된다. 나이와 위계를 통한 인간 위에 인간의 군림은 변형된 신분사회를 재창조해 낼 뿐이다. 이는 필자가 이 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있는 ‘구속 없는 개인의 자유’라는 가치에도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이에 더하여, 인간의 종족적인 집단결속 본능을 자극함으로써 배타성과 야만성을 키워내는 역할을 한다. 특히 한국사회는 민족주의의 기반 위에서 체제옹호적인 국방정신을 강조하고, 남한의 모든 남성들이 군복무를 해야 하는 합법화된 폭력에 동원됨으로써, 규율과 권력, 일상화된 하향식 폭력에 길든 사람이 될 것을 주문받는다. 이는 커다란 기계와 같은 산업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고, 전쟁과 같은 무의미한 대량살육에 쉽게 동원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최근 이라크 민중들에게 자유를 주겠다며 어처구니없는 침략전쟁을 강행했을 때, 한국사회의 왜곡된 민족주의는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은 반대하면서 파병안에는 찬성하는 어리석은 세계의식을 부추키기도 했다. 박노자의 표현에 의하면 대량살육 위주로 꾸며낸 ‘제도권 역사’, 서구중심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외부 세계 서열화 패턴을 미국이 그대로 재활용하는데, 한국은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파병을 결정함으로써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의 재편에 ‘효자정권’으로서의 몫을 다한 셈이다.
노르웨이인들이 인종차별이나, 배타적․공격적 문화를 지니지 않은 것은 다인종, 다민족 국가를 이룬 역사적 배경도 있지만, 문화적 ‘중심부 지향주의’(그놈의 영어타령!!)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점과도 연관됨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박노자는 이 책 전체를 통해서 현재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재생산되는 핵심도구로서 ‘폭력’을 단연 강조한다.
박노자는 무엇보다 인간의 자본주의적 소외로 인한 공격성과 폭력 충동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지점으로 경제적 우열에 따른 성 상품화와 성착쥐의 성행을 예로 들고 있는데, 남성지배사회에서 출세를 보장하는 도구로서의 ‘성’ 이데올로기가 현재와 같은 육체 상품화, 여성 상품화 경향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여성가학적인 포르노의 창궐 등 여성에 대한 가혹한 폭력과 차별에 담겨있는 상업적 이미지는 성 상품화 경향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노르웨이에서조차 포르노를 풍부한 성생활에 필요한 ‘필요악’이라고 사고하였는데, 한 여성 감독이 다큐를 통해 포르노는 단지 ‘합법적’, ‘직업적’ 윤간일 뿐이며, 포르노에 종사하는 여성들 대부분이 어려서 강간을 경험하였거나, 이 일이 자신들을 중산층으로 만들어 주지도 못할뿐더러, ‘동물들이나 하는 짓’으로 규정하고 심한 혐오를 드러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들이 배움의 기회도 얻지 못해 감히 거대한 포르노 산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심한 성착취에 시달리는 하급노동자 신분일 뿐임을 고발한 것이다.
이 계기를 통해 노르웨이 안에서 포르노 규제 움직임이 대대적으로 촉발된 사례를 소개하면서 박노자는 여성에 대한 가혹한 폭력과 차별에 담겨있는 상업적 이미지가 자본주의적 억압의 일면을 대표하고 있으며 이런 사회의식의 대중적 확산에 주력해야 함을 강조한다.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 폭력을 매개로 얼마나 몸부림치고 있는지는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도 금방 알 수 있는데 박노자의 시선속에서 폭력을 재생산하는 중심에는 역시 군대가 있다.
필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군대해체를 상상하자!” 자본가들의 이익만 챙겨주는 국가를 위해 자신의 피를 흘리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세계관에 익숙한 우리에게 박노자는 “부유한 쪽에서 사는 우리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큰 폭격기를 타고 제3세계에서 ‘또 하나의 작은 목표’를 파괴하려는 조종사의 눈으로 이 세계를 보고 있다”고 일침을 가하고 있다.
관용과 공존, 평등과 평화는 폭력을 재생산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점차적 해체를 위해 노력하자는 필자의 주장 핵심에 위치하고 있다. ‘세계적인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의 태도’라는 박노자의 지적은 개인의 생활 주변에 놓여진 위계서열화, 폭력 등에 아부하거나 굴종으로 대응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이 가치들은 다소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것만 같아 보이지만, 제국주의 반대,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거대담론에 젖어 있는 우리들에게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그 야만성과, 공격성을 무기로 인간의 근본적 공존 가치들과 윤리마저 잔인하게 앗아가고 있음을 잘 일깨워준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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