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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5.35호

세계화된 전쟁 The Globalized War Economy

메리 켈도어| 런던 정경대학 지구시민사회연구소(Gcsp)소장 | 번역; 김용현|회원, 한반도팀
* 원문사항: Mary Kaldor, "Chapter 5: The Globalized War Economy", New and Old Wars: Organized Violence in a Global Er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1.





전쟁 경제라는 용어는 보통 20세기의 총력전의 경우에서와 같은 집중화되고, 총체적이고 전제적인 체계를 지칭한다. 행정은 전쟁의 효율성을 높이고 전쟁에 사용하기 위한 세금을 최대화하기 위해 집중화된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군인 또는 무기 및 군수물자의 생산과 같은 형태로 전쟁 수행에 참여하기 위해 동원된다. 대개, 전쟁 수행은 자기-충족적인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소련이 미국으로부터 무기대여 원조를 받은 것은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전쟁 수행의 주요 목표는 전투에 돌입하여 적을 패배시키기 위한 무력의 사용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전쟁 경제의 새로운 유형은 위의 서술과 완전히 반대이다. 새로운 전쟁들은 ‘세계화된’ 전쟁들이다. 그것은 국가의 파편화와 탈집중화를 포함한다. 전쟁 참여는 인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데, 왜냐하면 교전중인 분파들에게 자금과 정당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군수품의 국내적인 생산은 거의 없고, 따라서 전쟁 수행은 거의 지역적 약탈과 외부 원조에 의존한다. 전면적인 전투는 거의 없고, 대부분의 폭력은 민간인들에게 향하며, 교전중인 분파들간의 연합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전통적인 클라우제비츠적인 용어들로, 규정가능한 지정학적 목표들에 기초하여 전쟁을 인식하려는 사람들은 전쟁의 지속됨에 따른 중요한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들을 이해하는데 실패한다. 그들은 중요한 경제적 논리를 제시할 필요 없이 정치적 해결책이 발견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동시에, 전쟁의 전통적 인식과 관련없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전쟁들에서 드러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관계들의 복합성을 관찰한 사람들은 이러한 폭력의 유형이 무정부상태와 같다고 볼 수 있다고 결론내리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은 예컨대 인도주의적 원조(humanitarian assistance)를 통해 증상들을 돌보는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새로운 전쟁들의 전형적인 정치경제가 분석될 수 있고 따라서 가능한 대안적 접근법들이 도출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사실 그러한 분석은, 전쟁의 성격에 관한 전통적인 가정들에 기초한 다양한 국제적 행위자들의 선의의 노력들 대부분이 역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판명된다는 함의를 갖는다. 위로부터의 분쟁 해결은 단지 교전중인 분파들의 정당성만을 강화할 것이고 자원을 보충할 시간적 여유를 줄 뿐이다. 인도주의적 원조는 전쟁 경제가 기능하는 데 기여한다. 평화유지군들은 끔찍한 범죄들이 자행될 때 방관하거나 그 범죄들을 자행하는 집단들의 편에 가담함으로써 정당성을 상실할 것이다.
첫 번째 절에서는 현대전에 전형적인 다양한 전투부대들 및 그것들이 국가의 형식적 안보 역량의 탈-통합으로부터 어떤 식으로 출현해 왔는지를 묘사한다. 그리고 폭력의 유형들과 군사 전략의 특성, 그리고 그것들이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발전한 분쟁들로부터 [생겨나], 근대의 재래식 전쟁 ― 게릴라전, 폭동진압 및 1980년대의 ‘저-강도’ 분쟁을 다루거나 대항하기 위한 방도로서 진화해 온 방식을 분석한다. 다음으로 전투부대들이 그것을 수단으로 새로운 전쟁을 수행하는 자원들을 어떻게 획득하는지와, 전쟁의 맥락 속에서 가동되는 폭력의 새로운 유형과 사회적 관계들 간의 상호작용을 고찰할 것이다. 마지막 절에서는 새로운 전쟁 혹은 차라리 새로운 전쟁의 사회적 조건이 어떻게 경향적으로 확대되어 가는지를 묘사한다.

군사력의 사유화

미국의 전 국무장관이었던 메들린 올브라이트는 허약하고 중앙의 권위를 상실한 국가들을 묘사하기 위해 ‘몰락한 국가들’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제프리 허브스트(Jeffrey Herbst)는 많은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결코 근대적 의미에서의 국가주권―즉, 규정된 영토에 대한 의심의 여지 없는 물리적 통제 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에 대한 행정의 존재 및 국가의 이념에 대한 주민들의 충성―을 누린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몰락하는 국가들의 핵심적 특징들 중 하나는 물리적 강제의 도구들에 대한 통제력의 상실 및 분열이다. 탈-통합적인 주기(cycle)는 근대 국가들이 확립되었던 통합의 주기와 정확히 반대다. 영토에 대한 물리적 통제 및 인민적 충성을 명령하는 것에 대한 실패는 세금을 걷을 수 있는 역량을 감소시키고 국가의 재정적 기초를 크게 약화시킨다. 게다가, 부패와 독재는 국가 재정의 추가적인 낭비를 의미한다. 종종, 정부는 더 이상 세금 징수의 신뢰할 수 있는 형태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18세기 유럽에서 성행했던 것처럼, 때때로 [세금]취득의 일부를 가져가는 사적 대리인들이 고용된다. 국가 정당성의 상실과 ‘보호세’를 요구하는 새로운 세력들의 부상으로 인해 세금 기피가 확산된다. 이는 국가 지출 삭감의 외부적 압력으로 귀결되고, 더 나아가 군부대들에 대한 통제력을 감소시키고 그 분열을 조장한다. 게다가, 외부 원조는, 이러한 국가들의 대부분이 체질적으로 이행할 수 없는, 정치적 경제적 개혁들[구조조정]에 근거한다. 무질서와 군사적 분열을 증가시키는 재정과 정당성의 하락 추세는 새로운 전쟁들이 발생할 수 있는 맥락을 창출한다. 사실상, 국가의 ‘몰락’은 폭력의 증대하는 사유화를 수반한다.
대체로, 새로운 전쟁들은 공적인 동시에 사적인, 국가적인 동시에 비국가적인, 또는 얼마간 혼합적인 전투 부대들의 유형들의 다수성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논의의 간결함을 위해, 나는 다섯 가지 유형을 구별해 보고자 한다: 1) 정규군 또는 그 부속군; 2) 준군사적 집단들; 3) 자위군(自衛軍); 4) 해외용병들; 5) 일반적으로 국제적인 원조에 의지하는 정규 해외부대들.
정규군은, 특히 분쟁 지역들에서, 쇠퇴하고 있다. 군비 지출의 삭감, 몰락하는 위세, 군장비 예컨대 예비부품들, 연료, 총탄의 부족, 그리고 불충분한 훈련, 이러한 모든 것들은 사기의 엄청난 상실에 기여한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과 소비에트 해체 이후 국가들에서, 군인들은 어떠한 훈련이나 정기적 급여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자원들을 자기 스스로 찾아야만 하는데, [이 자금은] 군사 위계의 무규율과 와해에 기여한다. 종종 이것은 분열로, 즉 타지키스탄(Tadjikistan)에서처럼, 지역의 군 지휘관들이 지방 군벌들처럼 행동하는 상황들로 귀결된다. 아니면 예컨대, 자이르(Zaire)에서, 무급여 상태의 군인들이 강탈이나 약탈에 고용되었던 것처럼, 군인들은 범죄 행위에 참가할 것이다. 다시 말해, 정규군들은 정당한 무기소지자로서 자신의 성격을 상실하고 점차 사적 준군사집단들과 구별하기 어렵게 된다. 이것은 의도적인 정책의 결과로 이미 보안군들이 파편화된 상황들에서 복잡해진다; 각 국내 보안군들의 다양한 유형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종종 국경수비대, 대통령 경호부대, 헌병대들은 존재한다. 결국에는, 자이르의 모부투(Mobutu) 대통령은 자신의 안전을 오직 자신의 개인 경호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공통적인 전투부대는 준군사집단들,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리더를 중심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집결한 자율적 집단들이다. 종종 이러한 집단들은 폭력의 극단적 표출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서[직접적인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는 아마도 보스니아의 아칸의 타이거스(Arkan's Tigers)의 사례에 해당하거나, 아니면 아칸 스스로 그렇게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1994년 이전의 르완다 정부는 실업 상태의 청년들을 집권당과 연관된 새로 구성되는 시민군에 모집했다. 이들은 르완다 정부군에 의해 훈련을 받았으며 약간의 봉급을 받을 수 있었다.1) 비슷한 맥락에서, 남아공 정부는 비밀리에 무기류와 훈련을 인카타자유당(Inkatha Freedom Party: IFP)에게 제공했고, 이는 민주주의로의 이행기에 줄루족(Zulu) 노동자 집단들의 폭력적 활동들을 유도해온 바 있다. 종종, 준군사집단들은 특정한 극단주의적 정당들 또는 정치 분파들과 연계를 갖고 있다. [러시아으로부터] 독립 이후, 그루지야(Georgia)에서, 녹색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은 자신의 시민군을 갖고 있다. 권력을 장악한 세바르드나제(Eduard Shevardnadze)는 이러한 시민군들을 정규군으로 결합함으로써 폭력 수단에 대한 독점을 재확립하고자 하였다. 아브하즈 공화국(Abkhaz Republic)에서 아브하즈 방위군과 러시아 전투 부대들의 합동군에게 패배했던 것은 바로 이 무장한 떼거리들의 잡동사니였다.
준군사집단들은 대개 [곧 강제제대나 퇴역을 앞둔] 잉여 군인들(redundant soldiers), 혹은 잉여 부대 전체나 이탈 군인들로 구성되고 때때로 여기엔, 예전에 유고슬라비아에서는 그런 목적으로 감옥에서 의도적으로 출소시킨 바 있듯이, 일반 범죄자들도 포함되고, 여기에 생계수단을 찾는 청년들이 대의에 이끌려 또는 모험심에 투신한다. 그들은 군복을 거의 입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비-전투원들을 구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물론 이들도 구별되는 의복이나 상징들을 착용한다. 세계적인 물질 문화의 심볼들은 종종 유사-군복의 역할을 한다: 예컨대, 레이밴(Rayban) 선글라스, 아디다스(Adidas)의 운동화, 조깅복, 모자가 그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소년병들의 사용은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정부군으로 충원되는 많은 소년들은 대개 부랑아들이다. 이들은 충원되기 전에 [빵과 같은 음식을 훔치는] 사소한 도둑질 정도를 했을 뿐이다. 이제 그들의 손에는 AK47 자동소총이 주어지고 보다 큰 규모의 도둑질에 참가할 기회가 왔다.’2)
자위부대들은 자신의 터전을 방어하려는 자원자들로 구성된다. 여기에는 지역의 민간인들을 보호하려 했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지역 민병대들(예컨대, 투즐라(Tuzla)에서)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르완다에서 1994년의 대량살상을 막으려 했던 후투족과 툿시족의 자위부대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부대들은 유지되기가 매우 어렵다. 주로 불충분한 자원들 때문이다.
해외 용병들에는 특정 전투 부대와 계약한 개인들과 용병 집단들이 포함된다. 가장 유명한 용병 집단은 무자히딘(Mujahidiin)으로, 아프간 전쟁을 경험한 베테랑들로 구성되었고, 이슬람과 관련된 모든 분쟁들에 개입하였고, 이슬람 국가들, 특히 이란에 의해 자금이 지원되었다. 사설 보안회사들의 등장은 새로운 현상이다. 이들은 영국 또는 미국의 퇴역 군인들을 고용하며, 정부들과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일을 수주받는다.
마지막 범주로 국제 조직들의 후원하에 운영되는 정규 외국군[이른바 평화유지군]이 있다. 이 부대들은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들은 다른 전투 부대들과 상이한 성격을 갖고 있다. 어떤 점에서 이들은 게릴라 부대와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긴 하지만, 게릴라 부대들에서 전형적인 위계, 질서, 수직적 명령체계를 갖고 있지 않다. 이 다양한 평화유지군들은 독립적으로 그리고 연합적으로 작전을 수행한다. 이 부대는 정규군, 지역 민병대 또는 자위부대, 범죄집단, 광신도 집단, 부대 내의 관계설정과 분업 및 공통의 목적을 협상하는 엽관(獵官)들에 이르는 다양한 집단들의 수평적 연합으로 구성된다.
마지막으로, 아프간 또는 남아프리카에서처럼 냉전의 종식과 그와 연관된 분쟁들의 엄청난 증가는 남아도는 무기들의 가용성을 증가시켰다. 결국 새로운 전쟁들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군사적 축적의 시기였던 냉전으로 인해 생겨난 불필요한 잉여 무기들을 써서 없애버리는 군사적 폐기처분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폭력의 방식들

새로운 전투부대들의 기술들은 대개 2차 세계전쟁 기간과 그 이후에 근대적 전쟁에 대한 반작용으로 서 발전된 전쟁의 유형들에 빚지고 있다. 마오쩌뚱과 체 게바라에 의해 정교화된 혁명 전쟁은 재래식 병력들의 대규모 집중을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만들어진 그리고 재래식 전략 이론에 정확히 상반되는 전술들을 개발하였다.
혁명 전쟁의 중심적 대상은 적 부대로부터 영토를 쟁탈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지역 주민의 지지를 획득하는 것을 통한 영토의 지배이다. 혁명의 지배 하에 있는 지역들은 보통 중앙 행정이 쉽게 이를 수 없는 그 나라의 변경(邊境)들이다. 주민들은 혁명군이 적 부대의 사기와 효율성을 점차 약화시키는 전술들에 사용할 수 있는 기지들을 제공한다. 혁명 전쟁은 기동전 이론과 몇 가지 유사성들을 갖는다. 그것은 기습 공격과 기동력이 매우 중요한 탈집중화되고 분산된 군사 활동을 수반한다. 그렇지만 혁명 전쟁의 핵심적 특징은 게릴라 부대들이 부대의 규모와 장비 면에서 열등하기 때문에 패배할 가능성이 큰 정면 충돌을 회피한다는 점이다. 전략적 후퇴가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마오에 따르면, ‘후퇴할 수 있는 능력은 정확히 게릴라들의 특징들 중 하나이다. 후퇴는 포위 상태로부터 빠져나와 주도권을 다시 획득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다’.3)
모든 혁명적 저자들은, 게릴라들이 마치, 마오의 유명한 격언처럼, ‘바다의 물고기처럼’ 활동할 수 있도록, 물론 폭력적 수단들 또한 사용되지만, 혁명의 지배 하에 있는 영토뿐만 아니라 적의 영토에서도 ‘마음’을 사로잡아야 함을 엄청나게 강조하였다. 거의 모두 실패해 왔던,4) 대(對)-게릴라전술(couter-insurgency)은 이러한 유형의 전쟁에 대해 재래식 군사력을 사용하여 대처하는 것으로 구상되었다. 주요 전략은 ‘물고기가 있는 바다에 독을 뿌려서’ 혁명군이 활동하는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알제리에서 프랑스가 개발했던 강제 이주와 같은 기술들, 또는 베트남에서 미국이 개발한 구역 파괴(area destruction)나 지뢰, 고엽제, 네이팜탄을 쏟아 붓는 기술들은, 예컨대, 동티모르에서 인도네시아와 쿠르드족에 대해 터키 정부에 의해 사용되었다.
새로운 전쟁술은 혁명 전쟁과 대-게릴라전술 양자를 모방한다. 그것은 혁명 전쟁으로부터 적 부대로부터 영토를 쟁탈하는 것이 아닌 정치적 지배를 통한 영토 지배 전략을 모방한다. 이것은 얼마간 혁명군들 이상으로 용이한 전술인데, 대부분의 경우 중앙의 권위가 매우 취약하고 영토를 지배하려는 주요 경쟁자들이 정부들―유사한 유형의 전투 부대라기보다는 재래식 근대 군대를 갖고 있는―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혁명 전쟁의 경우에서처럼, 다양한 분파들은 군인과 장비를 보존하기 위해 [정면]전투를 계속 회피한다. 전략적 후퇴는 전형적이며 앞으로 강력한 정파가 될 것으로 보이는 분파에게 얼마간 양보된다. 종종, 다양한 분파들은 그들 간에 영토를 분할함에 있어서 연합한다.
그런데, 혁명군과 새로운 전사들 간의 중요한 차이는 정치적 지배의 수단에 있다. 혁명군에게 있어서, 이데올로기는 매우 중요하다. 심지어 공포가 중요한 요소일지라도, 혁명적 이념에 대한 대중적 지지와 신념이 중심적 목표이다. 그래서, 혁명군은 자신의 지배 하에 있는 구역들에 모범 사회들을 건설하려고 노력한다. 이와 반대로, 새로운 전사들은 어떤 이념보다는 ['우리'와 다르다는] 표지(label)에 대한 충성을 통해 정치적 지배를 확립한다. 새로이 민주화된 세계에서, 여기서 정치적 동원은 표지들에 기초하고 선거와 국민투표는 종종 인구조사의 형태를 갖는데, 이것은 지배 하에 있는 영토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바로 그 표지에 대해 반드시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누군가는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 사실상, 비민주적 구역들에서조차, 반대, 의견의 차이, 폭동에 대한 두려움은 동일성에 기초한 인구의 동질화에의 이러한 요구를 강화한다.
이것은 영토적 지배의 주요 수단이 혁명 전쟁의 경우에서의 대중적 지지가 아니라 잠재적 적대자들을 제거하는 인구의 전위(轉位)인지의 이유이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전쟁술은 대-게릴라전술의 ‘바다에 독을 뿌리는’ 기술들을 차용한다. 게릴라 운동들에 의해 다듬어진 그 기술들은 1980년대의 ‘저강도’ 분쟁들에서 좌익 정부들을 붕괴시키기 위한 대-게릴라전술 운용의 경험―모잠비끄에서 RENAMO,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자히딘(Mujahidiin), 또는 니카라과에서 콘트라스와 같은―을 통해 서구의 정부들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장려되었다. 사실, 이러한 경험은 베트남과 남아공에서 대-게릴라전술의 실패에 대한 반작용이자 더 이상 재래식 근대 전쟁은 실행가능한 선택지가 아님에 대한 암묵적인 깨달음이었다.
새로운 전쟁은, 게릴라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보다는, 그들이 지배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불리한 환경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새로운 전쟁의 황폐하고 무질서한 조건들에서, 제공될 수 있는 이득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기편을 지배하는 것은 실질적인 이해득실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계속되는 공포와 불안에 그리고 타인에 대한 원한과 증오의 영구화에 의존한다. 그래서 극단적이고 분명한 잔학 행위 그리고 이러한 범죄들에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는 것, 그럼으로써 증오하는 ‘타인’에 대한 폭력을 부가하는 그리고 그들과의 분할을 심화하는 행위들의 공범화를 확립하는 것에 의존한다.
인구를 전위시키는 기술들은 다음과 같다:

1) 르완다의 경우와 같은, 다른 표지의 사람들에 대한 계획적인 살인. 1994년 툿시족에 대한 살인은 정부 관료와 군에 의해 지시되었다. Human Rights Watch에 따르면, ‘르완다 남부의 냐키주(Nyakizu)의 자치구와 같은 곳에서, 지역 장교들과 여타 살인자들이 아침마다 “일하러”("work") 왔다. 툿시족을 살해하는 하루의 “일”을 마친 후, 그들은 “노래를 부르며” 퇴근 시간에 집으로 돌아갔다.... “노동자들”은 맡은 작업이 다 끝날 때, 즉 모든 툿시족을 살해할 때까지 매일 출근했다’.5)
2) 인종 청소, 다른 말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또는 트랜스코카시아에서와 같은, 강제적인 인구 추방. 또 다른 예로는, 아브하즈에서, 아브하즈 거주자들은 전체 인구 중 17%를 차지할 뿐이다. 영토를 지배하기 위해, 분리주의 세력들은 남아있는 대부분의 인구를 쫓아내는데, 주로 그루지야의 경우가 해당한다.
3) 어떤 구역을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기. 이것은 대인지뢰를 살포하는 것을 통해 또는 민간인들을 표적으로 삼아―예컨대, 민가, 병원, 시장이나 급수지 같이 사람들이 많은 곳을 사격하거나 폭격하는 것을 통해서 물리적으로 실행될 수 있다. 또 이것은 기아나 난치병들을 강제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실행될 수 있다. 사람들의 생계 수단을 그들에게서 박탈함으로써, 그들은 남부 수단에서처럼 굶어 죽이거나 그곳을 떠나 이주하도록 강제된다.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사회적 의미에서든 모독을 가하여 그들의 가정에 참을 수 없는 기억들을 심어줌으로써 심리적으로 실행될 수 있다. 사람의 특정 집단들에게 사회적 환경을 규정하는 물리적 경계들을 제거하는 것을 통해 역사와 문화를 파괴하는 것도 하나의 수단이다. 종교적 건물과 역사적 유적들을 파괴하는 것은 특정 지역에 대한 문화적 요구의 모든 흔적들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바냐 루카(Banja Luka)에서, 전쟁이 절정일 당시, 세르비아인들은 하나의 카톨릭 교회를 제외하고 17개의 모스크들 모두를 파괴하였다. 특히, 그들은 상당히 아름다운 16세기에 지어진 모스크 두 곳을 파괴해버렸다. 또 다른 수단은 몇몇 전쟁들에서 특징적이었던 계획적인 강간과 성적 학대를 통한 아니면 다른 공개적이고 매우 가시적인 야만적 행위들을 통한 여성 학대였다. 심리적 수단들은 다른 표지를 갖는 사람들을 분류하는 것에도 도움이 된다.

본질적으로, 과거의 전쟁에서 바람직하지 않고 불법적인 부작용들로 여겨지던 것이 새로운 전쟁들에서의 전투 양식에 중심적인 것이 된다. 그것을 두고 새로운 전쟁은 원시주의로의 역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원시적인 전쟁들은 고도로 의례적이었고 사회적 제약들에 의해 제한되었다. 이 새로운 전쟁들은 전쟁의 목표에 대해 합리적 사고를 적용하고 규범적인 제약들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합리적이다.
새로운 전쟁 유형에서 폭력의 모형들은 새로운 전쟁들의 통계들에 의해 확인된다. 전투를 회피하는 경향과 민간인들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의 부가는 사망자들 중 군인 대비 민간인 비율의 극적인 증가에서 확인된다. 20세기 초반에, 전쟁에서 사망자들 중 85-90%가 군인이었다. 2차 세계전쟁에서, 모든 전쟁 사망자들 중 대략 절반이 민간인들이었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100년전의 비율은 거의 정확하게 역전되었는데, 오늘날 전쟁들에서 모든 사망자들 중 80%가 민간인들이다.6)
인구 전위의 중요성은 난민들과 전위된 개인들의 수치들에 의해 분명해진다. 유엔난민고등사무소(UNHCR)에 따르면, 세계적인 난민의 수는 1975년 2백4십만명에서 1985년 1천5십만명으로 증가하였고 1995년 1천4백4십만명(1992년 1천8백2십만명에서 본국으로 돌아간 대략 9백만명의 사람들 때문에 감소한 수치)으로 증가해왔다. 이러한 수치는 오직 국경을 넘은 난민들을 포함한 것이다. 같은 통계에 따르자면, 5백4십만명의 사람들이 국내유랑민(IDPs, intrnally displaced persons)화되었다.7) 난민문제에 대한 미국 위원회에 의해 제공된 수치들은 보다 높아서, 1980년 2천2백만명에서 1995년 3천8백만명으로 증가하였는데, 그들 중 대략 절반 가량은 국내유랑민들이다.8) 이 수치를 사용하여, 와이너(Myron Weiner)는 분쟁당 난민수가 1969년 이후 거칠게 배가되었는데, 분쟁당 28만7천명에서 1992년에 분쟁당 45만9천명으로 증가하였다고 계산하였다. 하지만 국내유랑민들의 증가는 보다 극적인 증가세를 보여주는데, 1969년 분쟁당 4만명에서 1992년 85만7천명으로 증가하였다.9)

전쟁 수행의 자금 동원

새로운 전쟁들은 세계화의 극단적 판본으로서 보여질 수 있는 맥락에서 벌어진다. 영토에 기초한 생산은 자유화와 국가 지원의 철회의 결과로서 또는 물리적 파괴(약탈, 포획, 등등)을 통해서, 또는 국가들의 분해, 전투, 또는 외부의 권력들에 의한 의도적인 봉쇄의 결과로서 시장들이 차단되었기 때문에, 아니면 지상의 전투부대들 때문이거나 재고, 천연자원, 연료를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얼마간 몰락한다. 몇몇 경우들에서, 약간의 값비싼 상품들이 계속 생산되고 있고―예컨대, 앙골라와 시에라 리온에서는 다이아몬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청금석(靑金石)과 에메랄드, 콜롬비아와 타지키스탄에서는 마약이 생산되고, 그들은 ‘보호’를 제공해줄 수 있다면 누구에게라도 소득의 자원을 제공한다. 실업률은 매우 놓은 수준인데, 정부는 계속해서 지출함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만연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통화가 몰락하여 물물교환으로 대체되고, 값비싼 상품들이 통화의 기능을 하거나 달러나 마르크 같은 외환이 사용된다.
생산이 붕괴하고 징세가 매우 어려워짐에 따라 과세 표준이 침식하자, 사유화된 군사 집단들처럼, 정부들은 자신의 폭력적 활동들을 유지하기 위한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대안적인 자원들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생산 활동이 붕괴하자, 자금 동원의 주요한 자원들은 마크 더필드가 ‘자산 이전’(‘asset transfer')10)이라고 명명한 것, 즉 예컨대 전투 부대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자산을 재분배하거나, 외국의 원조와 같은 것이었다. 자산 이전의 가장 단순한 형태는 약탈, 강도, 강탈, 인질 장사였다. 이것은 모든 동시대의 전쟁들에 널리 퍼져있다. 부유한 사람들은 살해되고 그들의 금과 귀중품들은 강탈되었다. 인종 청소의 결과로서 소유가 이전된다. 가축은 민병대가 빼앗아 간다.11) 마을들이 점령되면 가게들과 공장들은 약탈된다. 인질들은 납치되고 식량이나 무기와, 아니면 다른 인질들, 포로들 또는 사체들과 교환된다.
자산 이전의 두 번째 형태는 시장 압박이다. 새로운 전쟁들의 전형적인 특징은 식량과 생필품들의 공급을 통제하는 많은 검문소들이다. 상이한 준군사집단들 간의 영토 분할에 따른 고립과 봉쇄는 전투 부대들이 시장 가격을 통제할 수 있게 하였다. 수단, 구 유고슬라비아 및 여타 지역들에서 관찰될 수 있는, 전형적인 방식은 바로 도시 거주민들 또는 농민들이 자신의 자산들―자동차, 냉장고, 텔레비전, 아니면 젖소들―을, 살아 남기 위해서 엄청나게 비싼 가격의 생필품들을 아주 터무니 없이 낮은 가격에 교환하여 팔도록 강제될 것이라는 점이다.
보다 정교한 소득-산출 활동들에는 일차 상품 생산과 불법 무역의 다양한 형태들로부터 받는 ‘전쟁 세금’ 또는 ‘보호세’가 포함된다. 마약의 생산과 판매는 콜롬비아, 페루, 타지키스탄의 핵심적인 소득 원천이다. 마약으로부터 나오는 소득은, 콜롬비아 게릴라들의 경우 대략 연간 미화 8억 달러에 달한다고 하며, 이는 정부의 방위비 14억 달러에 비견된다.12) 마약 및 무기 거래 또는 자금 세탁은 그리고 세금을 인상시키는 다양한 군사집단들이 연루된 범죄활동들의 모든 사례들이다.
그러나, 국내 생산의 붕괴라는 조건에서, 무기, 탄약, 식량이, 메르세데스(Mercedes) 자동차나 레이밴(Rayban) 선글라스는 차치하고서라도, 수입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해외의 원조는 결정적이다. 해외 원조는 다음과 같은 형태들을 취한다;

1) 개별 가족들에 대한 해외의 송금. 예컨대, 중동의 산유국에서 수단 또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들, 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보스니아나 크로아티아 노동자들이 보내는 돈이 그것이다. 이러한 송금들은 이상에서 서술했던 자산 이전의 다양한 형태들을 통해 군사 물자로 전환될 수 있다.
2) 국외의 이주민들로부터의 직접 원조. 여기엔 무기류 및 자금과 같은 물자 원조가 포함되고, 예컨대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의 IRA 원조, 전세계의 아르메니아인들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원조, 캐나다의 크로아티아인들의 유력 크로아티아 정당에 대한 원조 등등이 있다.
3) 외국 정부들로부터의 원조. 냉전 기간 동안, 정규군들과 게릴라들 모두는 초강대국들의 후원들에 의존하였다. 이러한 원조는 완전히 고갈되었다. 물론 미국은 여전히 다수의 정부들에게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인접 국가들은 종종 특정한 분파들 또는 소수민들에 대한 지원을 제공하였는데, 이는 자국에 다수의 난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불법적인) 무역 관계의 다양한 유형들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구 식민 권력들에게 지원을 제공한 다른 해외 정부들은 ‘안정성’에 관심이 있었는데, 예컨대 프랑스와 벨기에는 중앙 아프리카, 또는 이슬람 국가들을 지원하였다.
4) 인도주의적 원조. 정부들과 교전중인 분파들 모두가 자신의 용도로 인도주의적 지원을 전용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한다. 사실 원조 제공자들은 인구 중에서 가장 심각한 상황에 처한 부분들의 필요라는 시각에서 허용될 수 있는 인도주의적 원조 중 5%의 전용을 인식하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전용의] 수단은 '관세'(‘customs duties’)이다. 보스니아의 크로아티아인들은 이른바 헤르첵-보스나(Herceg-Bosna)라는 크로아티아 공동체―전쟁이 절정일 무렵, 중앙 보스니아의 특정 지역들에 이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를 통해 운반하는데 인도주의적 원조의 27%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또다른 방법들도 있었는데, 그것은 강도와 매복이었다. 과대평가된 공식 환율의 사용을 주장함으로써 수단과 에디오피아 정부는 인도주의적 원조로부터 이윤을 챙길 수 있었다.

본래, 전쟁의 파편화와 비공식화는 경제의 비공식화와 평행한다. 산업 생산과 국가 조절에 대한 강조하는 일국적 공식 경제 대신에, 외부 유입들, 특히 인도주의적 원조와 해외로부터의 송금들이 자산 이전과 초법적 무역에 기초한 지방적이고 지역적인 경제로 통합되면서 세계화된 비공식 경제의 새로운 유형이 확립되었다. <표 5.1>은 새로운 전쟁의 전형적인 자원 흐름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어떠한 생산이나 세금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였다는 점이다. 대신에, 보통 사람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원조와 송금의 형태를 띤 외부의 원조는 자산 이전과 암시장에서의 거래와 같은 다양한 형태를 거쳐 군사 물자로 재활용된다. 외국 정부로부터의 직접원조, 상품 생산자들로부터의 보호세, 해외 이주자들로부터의 원조는 다양한 전투 부대들이 보통의 사람들로부터 보다 많은 자원을 추출할 수 있는 역량을 향상시키고 그럼으로써 그들의 군사적 활동들을 유지시킨다.

<표 5.1> 새로운 전쟁에서 자원의 흐름


요컨대, 핵심은 정치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군사 부문과 민간 부문이라는 근대적 구분들이 분해되었다는 것이다. 정치적 통제는 경제적 교환의 새로운 억압적 형태들을 배태하는 것을 필요로 하고, 다음으로 국가의 몰락과 경제적 주변화의 맥락에서 새로운 갱스터들/권력자들에게 유지가능한 금융적 기초를 제공하여야 한다. 사회적 관계들의 새로운 퇴보는 경제와 폭력이 동일성의 정치의 틀 내에서 심각하게 뒤얽힌 곳에서 확립되고 있다.

폭력의 확산

전쟁술의 새로운 유형은 하나의 약탈적인 사회적 조건이다.13) 특정 집단들이나 개인들을 내부로 억누르는 것은 가능할지라도,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사회적 조건을 그렇게 하기란 매우 어렵다. 인접 국가들은 거의 동시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제재나 교통 봉쇄가 시도되거나 국경이 봉쇄된 곳에서 무역의 중단으로 나타나는 전쟁의 피해는 계획적이든 아니든 전투 때문이다. 난민문제, 불법적인 무역 연쇄의 확산, 동일성의 정치의 범람, 이 모든 요소들은 폭력의 새로운 형태를 양성하는 조건들을 재생산한다.
비정부기구인 Saferworld는 몇몇 사례에서 인접국가들에 대한 분쟁의 피해를 계산하였다. 하나의 예로 모잠비끄의 전쟁이 있는데, 이 국가는 잠비아, 짐바브웨, 말라위, 보츠와나, 스와질랜드와 같은 내륙의 국가들의 중요한 무역로였다. 말라위는 모잠비끄와의 모든 무역이 단절되었고, 전쟁이 절정일 무렵에 소모된 추가적인 운송 비용이 연간 수출소득의 11%에 달하였다. 마찬가지로, 짐바브웨와의 무역도 극적으로 감소하였고 상품 수출 경로를 남아공으로 재조정하는데 들어간 비용이 1998년 기준으로 8억2천5백만달러에 달하였다.14) 발칸 지역에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의 잇따른 전쟁들로 인한 GDP의 급락―국경들의 봉쇄와 제재로 인한 무역의 상실과 운송 비용이 증가된 결과―은 얼마간 폭력의 진원지로부터의 거리에 반비례하였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GDP 하락은 매우 극적인데, 전쟁의 발발 이전에 미화로 일인당 2,719달러였던 것이, 전쟁이 종결되자 일인당 250달러로 폭락하였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둘러싼 내부원(inner ring) 국가들인 세르비아-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의 GDP는 1989년 의 수준에서 각각 49%, 65%, 55% 하락하였다. 1996년에 이르러, 세르비아/몬테네그로와 마케도니아는 겨우 하락세를 멈출 수 있었고, 크로아티아는 매우 소소한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 세 국가들을 둘러싼 외부원(outer ring) 국가들인 알바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슬로베니아의 GDP는 1989년 수준에서 각각 81%, 88%, 73%, 90% 하락하였다. 가장 외곽의 원을 이루는 국가들인 헝가리, 그리스, 터키 모두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들이 보도되었다.15)
직접적인 경제적 피해들 뿐만 아니라, 난민 문제를 견뎌야 했던 것은 바로 인접국가들이었다. 대부분의 난민들은 인접국가에 주둔한다. UNHCR의 통계들에 따르면, 1995년 1천4백5십만명의 난민들 중에서, 다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각각 6백7십만명, 5백만명)에 주둔한다. 5십만명 이상의 난민들을 수용하고 있는 국가들에는 기니, 수단, 탄자니아, 자이르, 이란, 파키스탄, 독일, 그리고 미국이 있다. 이러한 난민들의 엄청난 집중은 그 국가들에게 엄청난 경제적 부담일 뿐만 아니라, 난민들과 원주민들 사이의 긴장의 항구적인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다―경제적 이유로는, 난민들 또한 자원을 얻기 위해 경쟁에 뛰어들기 때문이고, 정치적 이유로는, 그들이 돌아갈 수 있도록 각 정부들에게 압력을 주기 때문이고, 안보적 이유로는, 난민 캠프들이 다양한 급진 분파들에게 종종 기지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법 무역은 전쟁 경제의 새로운 유형의 확산의 또 다른 원천이다. 무역 경로는 반드시 국경을 넘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알바니아의 불안정은 주로 지배층과 결탁한 마피아 집단들의 성장의 결과였다. 1980년대의 아프가니스탄 게릴라 집단들에 대한 미국의 거대한 무기 이전은 (그 대부분이 전용되었지만)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카슈미르, 타지키스탄을 포괄하는 무기 및 마약 거래 네트워크들로 전화되었다.16) 마크 더필드는 수단에서의 전쟁이 어떻게 불법적인 달러 거래와 연관되는지를 보여주었다: ‘금을 가진 자이르인들은 수입된 재화, 식량, 연료를 원하고, 달러를 가진 수단인들은 식량, 의복, 커피를 원하고, 수입한 상품을 가진 우간다인들은 금과 달러를 원한다’.17)
마지막으로, 동일성의 정치는, 그 자체가 확산으로의 경향을 갖는다. 언어, 종교, 또는 분화의 몇몇 다른 형태들에 의해 정의된 동일성에 기초한 모든 집단들은 국경을 범람한다. 그 결과, 배타주의의 다양한 형태들이 등장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정확히 동일성들의 이질성이다. 한 나라에서 다수자들은 다른 나라에서 소수자들이다: 부룬디, 르완다, 자이르의 툿시족, 소연방 해체로 인해 생겨난 국가들의 러시아인들, 특히 러시아의 국경지대에 사는 이른바 코사크들, 중앙 아시아의 이슬람 집단들―이들은 동일성의 정치가 통과하는 다수의 벡터들이다. 분쟁들은 더 이상 국가간 전쟁으로 표현될 수 없고 분쟁의 새로운 유형들의 특징들의 몇몇은 이미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결론

새로운 전쟁들은 정치적 목표들을 갖는다. 목표는 바로 동일성에 기초한 정치적 동원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군사적 전략은 인구의 전위(轉位) 및 동요이고 그럼으로써 동일성이 상이한 인구를 제거하고 증오와 공포를 조성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치의 분할적이고 배타적인 형태는 그것의 경제적 기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다양한 정치적/군사적 분파들은 보통 사람들의 자산과 국가의 잔고를 강탈하고 희생자들에 대한 해외의 원조를 빼돌리는데, 얼마간 그것은 오직 전쟁이나 전쟁 직전의 조건 하에서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전쟁은 사적인 부를 증대하려는 다양한 범죄 형태들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동시에 이러한 범죄들은 전쟁을 지속하기 위한 재원 충당의 필수적인 원천들이다. 교전중인 정파들은 자신의 권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동시에 각종 자원들에 접근하기 위해 얼마간 항구적인 분쟁을 필요로 한다.
사회적 관계들의 이러한 약탈적 경향은 전쟁 지대들에서 두드러지고, 그리고 또한 그 주변 지대들을 특징짓는다. 전쟁에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보스니아에서, 오직 인구의 6.5%가 직접적으로 전쟁의 수행에 참여했다), 전쟁 지대들과 평화 지대들의 차이는 이전의 시기들처럼 확연치 않다. 정치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군사 부문과 민간 부문을 구분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점차 전쟁과 평화를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새로운 전쟁은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대도시 중심부의 저소득층 거주 지역에서 발견될 수 있는 범죄와 인종주의의 결합으로 시작되었고 폭력의 규모가 최대화된 지역들에서 그것이 가장 격렬하게 표출되는 하나의 연속성으로 표현될 수 있다.
만약 폭력과 약탈이 평화 지대라고 여겨지는 곳에서 발견된다면, 모든 전쟁 지대들의 가까이에 시빌리티(civility)의 지대들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다. 그 지대들은 전쟁 지대들에 비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보도된 것은 정상적 상황이 아니라 폭력과 범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의 국가장치들이 여전히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지역들이 존재하고, 그 지역들에서 세금은 인상되고, [공적] 서비스들이 제공되며 생산은 유지되고 있다. 인도주의적 가치들을 방어하고 분리주의의 정치를 거부하는 집단들이 존재한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투즐라의 어떤 마을은 하나의 유명한 사례이다. 남부 르완다에서 창설된 자위부대들은 또 다른 사례이다. 고립된 상황에서, 이러한 시빌리티의 지대들은 보존하기 어려우며, 폭력의 극단화에 의해 압박되지만, 새로운 유형의 전쟁의 매우 파편적이고 탈중심화된 성격은 그러한 사례들을 가능케 하였다.
정확하게 새로운 전쟁들은 공식적인 정치경제가 쇠퇴하면서 등장하는 사회적 조건이기 때문에, 그것은 종결되기 매우 어렵다. 위로부터의 외교적 협상들은 핵심적인 사회적 관계들을 고려하지 못한다; 그 협상들은 다양한 분파들을 단지 그들이 국가의 초기 형태인 것처럼 다룬다. 일시적인 정전 혹은 휴전은 당시에는 다양한 분파들을 만족시키는 새로운 협정들 또는 계약들을 단지 정당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평화유지군은 영토의 분할을 유지하고 피난민들이 돌아오는 것을 막는 것을 도울 뿐이다. 현존하는 '정치적 권위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제적 재건은 지역의 자산이 증발함에 따른 재원의 새로운 자원들을 단지 제공하는 것일 수 있다. 권력관계가 변함없이 유지됨에 따라, 조만간 폭력은 또다시 만개할 것이다.
공포, 증오, 약탈은 장기적으로 생존가능한 정치체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사실, 전쟁 경제의 이러한 유형은 장기적으로 볼 때 고갈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대안이 될만한 것들이 존재한다. 특히, 어떻게 시빌리티의 지대들이 새로운 전쟁에 대한 반대논리를 제공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PSSP

) Human Rights Watch, Playing the Communal Card: Communal Violence and Human Rights (New York, 1995).
2) David Keen, 'When war itself is privatized', Times Literary Supplement (December 1995).
3) Simkin, Race to the Swift: Thoughts on Twenty First Century War (Brasseys, London, 1985), p. 311에서 재인용[국역: 『기동전』, 연제욱 옮김, 책세상, 1999].
4) 널리 인용되는 엄청난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말레이 반도에서 영국의 경험이다. 주로 중국계 소수민들로 구성된 혁명 운동은 매우 제한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다른 대-게릴라전술의 관행들과는 다르게, 영국은 독립을 약속하는 것을 통해 ‘마음’을 얻고자 노력하고 게릴라들에게 그들과 유사한 군사 전술을 사용하면서 혁명군의 전술을 모방하였다는 것이다. 위의 책, 참고.
5) Human Rights Watch, Playing the Communal Card, p. 9.
6) 초기의 수치들은 Dan Smith, The State of War and Peace Atlas (Penguin Books, London, 1997)을 참고하라. 1990년대의 수치는 나의 계산에 의한 것인데, Mary Kaldor, 'Introduction', Mary Kaldor and Basker Vashee (eds), Restructuring the Global Military Sector: Volume Ⅰ: New Wars (Cassell/Pinter, London, 1997)을 참고하라.
7) UNHCR, The State of the World's Refugees: In Search of Solutions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1995).
8) 이러한 수치들은 난민문제에 관한 미국 위원회(Washington, DC.)가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World Refugee Survey에서 찾을 수 있다.
9) Myron Weiner, 'Bad neighbours, bad neighbourhoods: and inquiry into the causes of refugee flows', International Security, 21, 1 (Summer, 1996).
10) Mark Duffield, 'The political economy of internal war: asset transfer, complex emergencies and international aid', in Joanna Macrae and Anthony Zwi (eds), War and Hunger: Rethinking International Reponses (Zed Press, London, 1994).
11) 데이빗 킨(David Keen)은 남부에서 활동하는 SPLA(수단인민해방군)의 약화를 위해 수단 정부가 지원하는 북부 출신의 Baggara 민병대에 의한 가축 약탈에 의해 발생한 남부 수단의 기아에 대해 묘사했다: ‘젊은 Baggara 민병대원에게, 특히 경제적 주변화와 가뭄을 심각하게 경험한 대원들에게, 약탈은 자신들의 빈약한 자본스톡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을 제공하였다’. David Keen, 'A disaster for Whom? Local interests and international donors during famine. Among the Dinka of Sudan', Disasters 15, 2, 155.
12) ‘Central Asia's narcotics industry', Strategic Comments, 3, 5 (June 1997); 'Colombia's escalating violence: crime, conflict and politics', Strategic Comments, 3, 4 (May 1997).
13) 몇몇 저자들이 동시대의 전쟁 경제들의 약탈적 성격에 대해 지적하였다. Xavier Bougarel, L'Anatomie d'un conflit (Edition Decouverts, Paris, 1995)를 참고하라. 나는 이 책에서 3장을 주로 인용하였다. 또한 R. T. Naylor, 'The insurgent economy: black market operations of geurilla organizations', Crime Law and Social Change, 20 (1993)과 Peter Lewis, 'From prebendalism to predation: the political economy of decline in Nigeria', Journal of Modern African Studies, 34, 1 (March 1996)을 참고하라.
14) Michael Cranna (ed.), The True Cost of Conflict (Saferworld, Earthscan, 1994).
15) Vesna Bojicic, Mary Kaldor, Ivan Vejvoda, 'Post-war reconstruction in the Balkans', European Foreign Affairs Review, 2, 3 (Autumn 1997)을 참고하라.
16) 1986년 말에 이르러, 미국은 약 30억달러 가치의 원조를 제공하였다. 그중 일부는 CIA에 의해 니카라과와 앙골라로 전용되었고, 일부는 파키스탄 군장교들이 개인적 용도로 그리고 암시장으로 전용하였으며, 일부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판매되었고, 일부는 가격을 부풀리거나 화물을 빼돌리는 것을 통해 무기 공급상들에 의해 전용되었다. 네일러(R.T. Naylor)에 따르면, ‘그 결과, 국제구호조직들은 전용된 식량, 의복, 천막, 의약품들을 되사는 것을 통해 시장들을 일소해야만 했고, 아프간의 반군지도자들은 마약거래로부터 생긴 이윤들을 가지고 이미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에 의해 제공되었었던 무기를 구입해야만 했다’. ‘The insurgent economy', p. 19.
17) Duffield, 'Political economy of internal war', p.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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