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5.35호
첨부파일
0305특집_백승욱.hwp

고삐풀린 미국과 세계질서의 반동적 재편

백승욱 | 편집자문위원, 한신대 교수
고삐 풀린 미국과 세계질서의 반동적 재편

백 승 욱 | 편집자문위원, 한신대 교수

다음 목표는 어디인가?

역사는 역시 좋은 방향으로 진행해 가지 않는 것인가?
이라크 침공의 승리감에 들떠 있는 미국의 지도부는 4월 14일 잇달아 시리아에 대한 경고를 쏟아 놓았다. 대통령 부시는 "우리는 시리아에 화학무기가 있다고 믿는다... 상황에 따라 다른 대응이 필요하다"라고 말했고, 파웰 국무장관은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도피처를 시리아가 제공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상황이 진행됨에 따라 외교적, 경제적 또는 다른 성격의 가능한 조처들을 검토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술 더 떠서 강경 매파의 대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지난 12-15개월 동안 우리는 시리아에서 화학무기 실험이 있었음을 알고 있으며, 또 시리아인들과 다른 이들이 국경을 통과해 이라크로 들어가도록 시리아가 허용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이 가지고 있는 선전문에는 미국인과 연합군을 살해하면 포상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 우리는 시리아가 몇몇 이라크인들을 받아들이거나 머물도록 하거나 통과해서 다른 나라로 가도록 허용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
이라크 다음 미국의 목표는 어디일 것인가를 놓고 많은 예측이 있었는데, 이제 그 목표가 시리아로 좁혀지고 있는 것일까? 시리아에 대해 미국이 퍼붓는 비난은 이라크 전쟁을 개시할 당시 내세운 두 가지 명분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 하나는 테러리스트와의 연계이고, 두 번째는 대량살상무기다. 아랍권의 대표적 반미국가인 시리아는 이라크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했을 뿐 아니라, 시리아 국경을 봉쇄하지 않고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려는 아랍 자원병들이 이라크에 들어가도록 허용했으며 바그다드 함락시 도피한 이라크의 핵심 인물들이 국경 내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거대한 '테러조직'인 이라크와의 연계--더 이상 알카에다는 문제가 아니다--를 증명해 주는 '불량국가'이자 테러지원국의 징표 아닌가. 그리고 미국이 아직 이라크에서 찾아내지 못한 대량살상무기가 시리아에 있다는 정보가 있으니 어찌 이 위험한 불량국가를 눈앞에 두고 정의의 전쟁을 중단할 수 있겠는가.
미국의 눈엣가시인 이란도 문제겠지만, 시리아의 경우 이라크 전쟁을 쉽게 연장할 수 있는 구실을 찾을 수 있는 대상인 데다가 중동에서 영향력도 크고 군사적 역량도 이라크보다 훨씬 약하다는 계산이 선다면, 그리고 방향을 동쪽으로 돌리기보다 서쪽으로 돌리는 편이 팔레스타인,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리비아로 이어질 중동의 평정에 훨씬 유리한 전략이라고 판단한다면, 전선이 곧 시리아로 확대될 것으로 예측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현재 미국의 강경 세계질서 구상을 주도하는 핵심 브레인으로 알려진 대표적 매파 월포비츠 국방부 부장관은 이란혁명 직후인 1980년대부터 이란보다 이라크가 잠재적으로 미국에 훨씬 더 위험한 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이라크의 아랍권에 대한 파급력이 더 크다는 견해일 것이며, 이 때문에 이라크로부터 시작된 연계고리를 끊어나가는 방향도 동쪽보다는 서쪽으로 진행되는 것이 그의 구상에도 맞는 일일 것이다.
지금 미국이 벌이고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미국의 세계전략과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 것인가? 이라크 전쟁을 설명하기 위해 흔히 거론되는 논리 중 하나는 이라크 전쟁의 배경이 석유자원이라는 것이다. 50년 후로 예견되는 자국 내 매장 석유자원의 고갈에 대비해 미국이 중동의 석유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벌이는 전쟁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일견 타당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석유자원은 사태의 시작이 아니라 오히려 사태의 결론에 따라 얻어지는 부산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미국의 매파의 구상은 그보다 훨씬 더 심대하다.
문제의 핵심을 살펴보기 위해 이들 매파가 미국 내에서 왜 점점 지지를 얻어가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미국 내에서 이런 매파의 목소리는 늘 존재해 왔고 가끔씩 대통령 선거에도 등장하였지만 소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매파들이 부시를 후보로 만드는 기간에 상호결집하였고, 특히 9.11 이후에 본격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신문지상에 많이 등장하듯이 매파들은 서로 상이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보수적인 기독교 원리주의자들과 군산복합체를 배경으로 한 보수파들이라는 오래된 뿌리 외에, 최근 이념적 틀을 만들어 주고 있는 신보수파가 결합한 것이 이들 매파의 연합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월포비츠 등을 중심으로 하는 신보수파는 다른 보수파들에 날개를 달아 주는 역할을 했다. 9.11이 일어난 4일 뒤 국방부 부장관인 월포비츠는 테러와의 전쟁을 확실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라크와 전쟁을 개시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 주장이 곧바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1년 반의 준비와 명분쌓기를 거쳐 최초의 계획대로 전쟁이 수행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알카에다와의 연계도 대량살상 무기의 존재도 아니었고, '정권교체'를 목표로 한 중동의 새로운 질서짜기였다.
다시 앞에서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미국 내에서 이들 매파의 주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고, 심지어 한때 좌파라 자칭하던 자들 사이에서도 이들에 대한 지지가 늘어가고 있는가? 간단히 말해 다른 모든 미국의 정치세력--민주당이건 공화당 내 현실주의자들이건--이 현상유지에만 급급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미국의 힘이 쇠퇴하고 종이호랑이가 되어 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뿐인데 반해, 이들 매파는 비전을 가지고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가 미국을 두려워하고 미국을 거스를 수 없게 만드는 글로벌 전략이 오직 이들에게만 있는 것이다. 유엔안보리가 되었건, '불량국가'가 되었건 사방에서 미국이 모멸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다가 급기야 자본과 군사력을 표상하는 미국의 두 상징적 심장부가 테러공격을 받게 되도록 "너희는 무엇을 하였는가?" "매파의 논의에 완전히 동의는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럼 지금 이들 말고 누가 미국의 쇠퇴를 진정으로 걱정하는가," 그리고 자기도취에 빠진 미국인의 말투대로 "누가 세계의 혼란과 무질서를 걱정하고 새질서를 짜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이들 말고." 'TINA only but hawks'
이들 매파는 '틀을 완전히 새로 짠다'는 점에서 기존의 세력들과 다르다고 미국인들에게 수용되고 있다. 탈냉전의 국제질서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들은 오랜 기간 준비해 왔고 세력을 모아 왔다. 이들에게 군사력은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장식물이 아니다. 실제 사용하지 않는 군사력은 쓸모 없는 것이다. 군사력은 실제 사용될 때만 '충격과 공포'가 되는 것이다. 이들에게 세계는 잠재적인 적들이다. 제 1 전선은 미국에 대해 도발하고 있는 이른바 '불량국가'와 대량살상무기를 지닌 나라들. 제 2 전선은 겉으로는 미국에 협조하는 듯 하지만 그 배후에서 위험세력이 암약하는 나라들--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요르단, 파키스탄, 터키 등등, 제 3세력은 앞으로 미국에 위협이 될 강국들--러시아, 중국, 그리고 제 4세력은 미국을 모멸하고 무시하기 시작한 유럽 국가들, 이 모두가 잠재적 적들이다. 미국의 우군은 '의지연합', 거기에는 영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아마도 일본과 한국 정도가 포함될까. 새로운 질서짜기는 동시적으로 진행될 수는 없지만, 중단될 수 없는, 한꺼풀씩 벗겨나가는 포위공격이 될 것이다.

여기서 잠시 북한 문제를 살펴보자. 이들에게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특히 최근 유화적 제스추어를 보이는 것--은 전략적 변화가 아닌 전술적 변화일 뿐으로 보인다. 북한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을 뿐 대응의 기본 원칙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중동에서 문제를 우선적으로 처리할 동안 시간을 벌자. 그 다음은 원칙대로." 북한에 대한 이들의 태도에 근본적 변화는 없다. 왜 승리의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 이 시점에 태도를 바꾸어야 하겠는가? 승리자의 아량으로? 한국이 파병을 했기 때문에? 중국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대화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없었다. 다만 두 지역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전술적 고려가 상황을 일시 정전상태로 가져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중동의 상황이 바뀌면 동아시아 위기는 다시 급상승할 수 있다. 유엔이나 유엔안보리가 결국 이라크전으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없던 것처럼, 명분을 쌓는 별도의 과정만 충실히 밟아간다면 전쟁위기는 언제든 악화될 수 있다.
이 과정이 북미간의 2자적 틀로 가건 다자주의적 틀로 가건 상황에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다자주의는 미국에게 전쟁 정당화의 구실을 해 주는 한에서만 유의미했고, 미국이 전쟁개시를 결정한 순간 다자주의는 곧바로 폐기될 수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미국이 생각하는 다자주의란 다자의 이견들을 조정하고 다자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틀이 아니라, 다자가 북한에 압력을 가해 미국의 일방주의를 정당화하는 틀이다. 이런 점에서 이 틀은 다자주의라기보다는 다자적 일방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자주의적 틀 속에서 제기되는 조건과 압력을 북한이 수용하기 어렵다고 할 때, 다자주의 자체가 미국이 이 다자주의의 틀을 폐기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입장이 강경해지고 특히 2002년 9월 미국이 '예방전쟁'의 권한을 선언하자 북한의 선택지는 매우 좁아졌고, 이라크 전쟁으로 이는 더욱 좁아졌다. 4월 6일 북한은 "이라크가 보여 준 바에 따르면, 사찰을 통해 무장해제를 허용하는 것은 전쟁을 피하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전쟁을 촉발시킨다...... 이 때문에 미국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더라도 전쟁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현재 한반도 위기 상황은 1994년 제네바 협의 전의 상황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1994년 당시 북한에 대한 공격 구상은 아직 새로운 세계구도 속에서 정리되어 제출된 것은 아니었다. 반면 현재는 신보수파를 중심으로 글로벌 전략의 구도가 짜여가고 있고, 여기서 북한체제 전복은 필수 요소로 되고 있다. 더구나 이 글로벌 전략의 초반부가 이미 실행에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바꾸려는 힘이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한다 할 수 있다. 이라크 전쟁을 통해 어떤 양보도 미국의 결정된 노선을 전환시킬 수 없음이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현재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지가 매우 제약되어 있다는 점 또한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결코 상황을 제네바 협의 당시 수준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의 정세 및 관련국가들의 이해관계가 훨씬 복잡하며, 이 때문에 미국 지도부 내에도 북한 문제 처리방식을 둘러싼 이견들이 상존하기 때문에 아직도 여러 변수가 작용할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강경노선의 입지점이 전에 비해 훨씬 커진 것은 사실이고, 중동에서의 사태전개 방향에 따라 이 문제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현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현상유지 이상을 넘어서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서 중동에서 드러낸 군사적 '충격과 공포'의 효과와 다른 한편에서 남한이나 중국의 압력을 통해 핵개발을 중단시키는 선에서 현상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그 다음은 그 다음일 뿐이다.
다시 월포비츠로 돌아가 보자. 본래 민주당원이었다가 레이건 정부에 들어가 레이건 정부 하에서 국방부 아시아담당 차관보로 근무한 월포비츠는 미국의 필요가 있을 때 활용하던 마르코스를 1985년 전복하도록 레이건 정부를 독려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1986년에서 88년까지 인도네시아 대사로 근무한 경력도 있어, 아시아에서 하나의 국가를 어떤 시점에 전복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노하우를 상당히 축적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라크 전쟁을 수행한 이후 미국은 이라크와 북한이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가정을 키워갈 수 있다. 다시 말해 포탄을 쏟아 부으면 북한 또한 안에서부터 자멸할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을 수 있다. 전후 복구 문제도 북한의 경우에는 남한을 통한 대리정부 수립의 길이 훨씬 더 수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포스트-사담의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북한의 경우 포스트-전쟁 상황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고, 미국이 펴나가는 조치들은 북한 길들이기가 아니라 전쟁 후를 구상한 남한 길들이기라고 생각한다면 과도한 것이라 할 것인가?
미국이 북한과 일시적으로 대화를 개시하는 것은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본격적 공격에 들어가기 위한 명분쌓기의 과정에 들어갔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계획의 완전 포기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재래식 군사력의 완전무장해제도 요구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대량살상 무기에 대한 여러 첩보를 조금씩 흘릴 것이다. 이라크 전쟁개시를 위해 미국이 위성사진--나중에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을 수시로 들이밀며 화학무기 개발의 증거를 무수히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전쟁종료 후에도 대량살상무기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주한미군 2사단의 한강이남 이전을 얼마나 빠르게 추진하는가는 이와 관련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는 문제일 것이다.

헤게모니 쇠퇴와 세계질서 재편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한 세기 전으로 잠시 돌려보자. 역사의 비교는 현재를 새롭게 조명해 줄 수 있으니까. 19세기 영국이 세계의 헤게모니 국가로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바탕은 영토제국주의에 기반한 전지구적 상업네트워크의 형성이었다. 영국의 해군력을 통해 지탱된 이 상업네트워크에 기반해 영국은 식민지의 약탈과 식민지에서 저가의 원료공급을 통해 국가의 부를 증진시키는 동시에 세계의 공장으로서 영국의 제조업 성장을 지속시켰고, 이른바 산업혁명을 촉진시켰다. 그러나 1873년을 기점으로 영국은 생산의 팽창이 중단되고 급속한 금융화의 국면에 들어섰고, 영국을 잇는 후발 헤게모니 경합국들 사이에 영국의 영토제국주의와 산업혁명의 모델을 모방한 경쟁이 첨예화되었다. 쇠퇴하는 헤게모니 국가인 영국의 금융자본이 새로운 헤게모니 경합국들 사이의 무력경쟁의 자금줄이 되었고, 영토제국주의적 확장을 펴 나간 독일과 대륙적 국가로서 등장한 미국 사이의 경쟁은 두 차례 헤게모니 전쟁을 거쳐 결국 미국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 미국은 압도적인 생산력을 바탕으로 금-달러 본위제와 고도금융의 통제를 통해 국제금융체계를 복구하고 식민지 독립과 UN 체제 건립을 통해 영토제국주의의 토대를 무너뜨림으로써 경쟁자를 제거하고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할 수 있었으며, 미국을 '자유세계'의 일반적 모델로 제시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 1970년부터 시작된 미국헤게모니의 쇠퇴의 조짐은 한 세기 전의 헤게모니 경쟁의 구도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세 가지 차이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1980년대 이후 세계의 자본은 이전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으로 다시 집중되고 있고, 이것은 1990년대에도 지속되어 미국의 금융화를 더욱 촉진시키고 이른바 '신경제'의 환상을 촉발하였다. 물론 그 대가는 세계의 여타 지역의 오랜 경기침체로 나타났다. 이는 영국의 금융자본이 헤게모니 경합국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대립을 촉발하는 자금줄이 된 한 세기 전의 상황과 매우 다른 상황이다. 두 번째, 세계의 군사력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미국에 집중되어 있어, 이제 세계 모든 국가들의 국방비 지출을 합하여야 미국의 국방비 지출수준과 맞먹을 정도가 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생산의 측면에서 본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퇴하더라도 당분간은 한 세기 전과 같은 중심부 국가사이의 군사적 헤게모니 경합이 뚜렷하게 등장할 가능성은 상당히 적다. 세 번째, 영국 주도의 영토제국주의의 세계질서의 와해를 불러온 두 가지 축은 중심부 국가 간의 제국주의전쟁과 더불어 식민지해방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이었는데, 그에 대한 대응책이 미국 헤게모니 하에서는 식민지의 독립을 통해 영토제국주의적 힘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미국의 초국적기업 중심의 세계질서의 운영을 위한 새로운 틀이 가능한 민족국가 공동체의 형성과 발전주의 프로젝트를 통한 이 구도의 지원으로 나타난 바 있다. 그러나 20세기말 이런 민족국가 공동체의 틀은 상당히 그 기반이 와해되고 있다. 이는 특히 냉전의 해체와, 그에 따라 미국이 지원해 온 발전주의 프로젝트가 종료됨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다. 적지 않은 '제 3세계' 국가들 사이에 국가구조 자체의 붕괴가 나타나면서 더 이상 '국가이하' 형태로 나타나는 갈등을 민족국가를 통해 봉합할 수 없는 위기가 일반화하고 있다. 그에 따라 세계질서의 위기는 북-북 국가들 사이에서보다는 북-남 국가들 사이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북-남의 갈등은 한 세기 전의 식민지해방운동과 같은 형태의 대립구도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당시 제국주의 질서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었던 식민지해방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의 절합이라는 조건도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 가지 모두 미국의 절대우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클린턴의 달러-월스트리트 레짐은 미국으로 자본의 집중, 주식시장의 전례없는 팽창, '신경제'를 통해 미국헤게모니의 재부활의 장밋빛을 그려주었다. 그런데 이 시점에 매파들이 미국의 위기를 외치고 나온 것이다.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고 보는 그들은 무엇인가 여기에 결단을 내릴 시점이 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왜?

미국은 어디로?

위에서 살펴본 미국에 유리한 세 가지 요소들은 사실상 매우 불안정한 것이다. 생산의 팽창이 아닌 금융팽창에 기반한 '신경제'의 위기 조짐은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주식시장의 과열과 특히 IT 거품, 기업과 가계의 부채 증가, 신규투자의 정체상태, 외국자본이 보유한 미국 자산 비중의 급속한 증가 등 미국 경제는 1950-60년대 전성기의 그것과는 매우 다른 취약성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군사력 면에서 절대 우위에 있기는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전혀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데, 미국은 더 이상 2차대전후 그런 것처럼 미국을 정점에 둔 다자주의적 틀을 통해 세계를 이끌어가지 못하고 모든 곳에서 다른 나라들과 충돌하면서 일방주의를 펴지 않을 수 없는데, 이는 늘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부담을 낳게 된다. 다음으로, 과거 사회주의운동이나 민족해방운동 같은 조직적 저항이 없고 중심부 내의 조직적 저항의 기반도 상당히 와해되었지만, 제어되지 않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새로운 혼란의 요소들은 늘어났고, 이는 미국적 자유주의에 의해서도 민족국가의 틀을 통해서도 통제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지도력에 대한 거부는 늘어가고 미국은 이제 더 이상 '헤게모니적'으로 세계를 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미국의 상황으로 돌아와 보자. 이제 매파들은 스스로를 '제국' 또는 '제국주의'라고 부르기를 서슴지 않는다. 다만 좋은 제국주의와 나쁜 제국주의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여기서 미스테리 중 하나는 이들이 그리는 경제적 대차대조표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아다시피 레이건은 통화주의와 공급경제학을 수용해 대대적인 긴축정책을 펴겠다고 했지만 '별들의 전쟁'을 벌이면서 국방비 지출을 엄청나게 늘려 재정적자를 천문학적 수준으로 늘려놓았다. 미국이 더 이상 2차대전 후 베트남 전쟁 시기까지 지속된 군사적 케인즈주의 방식을 지속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아버지 부시가 걸프전에서 이기고도 재선에 실패한 것은 이런 경제적 부담을 헤어나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클린턴이 당선된 직후부터 미국경제가 좋아진 것은 또 반대로 레이건 하에서 지속된 미국경제의 구조조정과 금융화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어쨌건 클린턴은 공화당보다 더 공화당적이라는 경제정책을 추진한 결과 국방비를 줄이지는 않았지만 사회보장비를 대대적으로 삭감하여 재정적자를 재정수지 균형으로 돌려놓아 1998년부터 연이어 4년간 재정균형이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였다. 이것이 미국의 금융화가 지속될 수 있고, 달러강세가 지속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했다.
그러나 9.11 이후 전쟁준비가 가속화하면서 지난 해 미국은 다시 1천5백억 달러의 재정적자가 발생하였고, 이 추세는 앞으로 2007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방비는 계속 늘어날 것이고, 반대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그나마 대폭 삭감된 사회보장비용을 더욱 삭감하는 정책이 추진될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제국'을 지향하는 미국은 그 팽창의 비용을 무엇을 통해 벌충할 것인가? 제국의 팽창은 새로운 부를 그 제국에 귀속시킴으로써 계속 팽창할 수 있었다. 로마제국은 영토의 확장을 약탈의 확장을 통해 벌충하였고, 약탈과 수탈이 로마의 부를 지탱해 주었다. 물론 그 유지비용의 증대와 주변으로부터의 반란의 증가는 결국 로마제국을 무너뜨렸긴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네덜란드를 잇는 헤게모니 계승 전쟁이 벌어진 18세기 말-19세기초의 경합은 해상무역권의 독점과 금융중심지의 장악, 그리고 약탈가능한 대규모 식민지의 확보라는 경제적 이권을 둘러싼 투쟁으로 전개되었고, 여기서 승리한 영국은 대서양에서 인도양에 이르는 해상무역권을 장악하고 특히 인도의 무굴제국의 대대적인 약탈을 통해 그동안의 부채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0세기 미국의 헤게모니는 초국적기업을 통한 세계시장의 장악과 이를 통한 세계적 부의 미국으로의 집중을 통해 지탱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미국의 제국적 확장은 어떤 부의 확장을 동반할 것인가? 그리고 그 새로운 부의 이전 메커니즘이 미국을 다시 헤게모니로 부상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결국 미국은 늘어나는 군사적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로 나아갈 것인가?
이라크 전쟁의 승리를 통해 독점할 석유자원이 미국의 군사적 팽창주의에 주요한 자금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라크에 매장된 원유는 지표층 가까이 매장되어 있기 때문에 배럴당 5달러 수준으로 채굴비용이 매우 저렴하여, 막대한 이윤을 보장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라크의 석유는 사실상 미국정부가 아닌 미국인 자본가들에게 사유화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 막대한 부를 소수 미국인 자본가들의 수중으로 집중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소수 미국인 자본가들의 부가 증대한다고 이것이 미국 재정수입의 증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금융세계화 하에서 세계의 자본이 미국에 집중되고 금융자본으로 부의 재분배가 급속하게 진행된다고 해서 미국의 재정적 기반은 튼튼해지기보다는 오히려 더 취약해지고 있는 것처럼, 이 경우에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세계자본주의의 금융적 팽창 국면에서 나타나는 미국자본주의의 초국경적 금융적 성격과 미국헤게모니의 영토주의적 성격 사이의 모순은 중동 석유에 대한 이권 독점과 관련해서도 그 모순을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물론 미국의 군사적 팽창은 정치적 방식을 통한 달러의 힘과 미국으로의 자본 집중을 당분간 유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역사 속의 '제국'적 틀 하에서 잠재적 경합지역을 영토적 정치적 종속 하에 둘 수 있었던 것과 달리, 현재의 군사적 팽창은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에서의 생산의 비용을 더욱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되고, 이는 중기적으로 다른 생산의 중심지들이 정치적으로도 미국 중심의 구도와 갈등을 맺게 되는 요소로서 작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이 말이 미국이 경제적 문제에 부딪혀 단기간 내에 현재의 추동력을 상실하고 군사적 팽창을 중단하게 될 것을 함의하는 낙관적인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아니다. 서두에 살펴본 시리아의 문제는 이후 미국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번의 이라크 침공을 추진하면서 미국은 이 전쟁이 1991년 걸프전의 미해결 문제를 해결하는 연장선임을 애써 강조해왔다. 걸프전의 유엔합의를 계속 재론하고, 걸프전 이후의 무기사찰에 대한 국제적 동의를 계속 강조한 것, 그리고 어쨌건 유엔 안보리의 결의안을 유도하려 요구한 것 등이 모두 이런 배경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시리아를 침공할 경우는 틀이 완전히 변함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제 유엔이나 유엔안보리의 논의는 배제되며, 국제적인 명시적 위협이 없더라도 미국의 자체적 판단에 따라 어느 곳이든 전쟁을 개시할 수 있다는 것, 2차대전 후 국가간 체계의 핵심인 유엔의 틀과 국제법의 형식상의 존중 등의 조건은 모두 사라지는 것이며, 구식민제국의 힘을 약화하고 전지구적인 미국 헤게모니를 수립하기 위해 미국이 설립한 전후 국가간체계의 근본 구도를 미국이 직접적으로 파괴하고 그 영향력을 전지구적으로 확대할 것임을 천명하게 되는 것이다. 고삐풀린 완전한 일방주의를 중단할 근거는 이제 사라지는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의 전후 복구의 비정치적 영역에 유엔의 참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면서 이를 시리아에 대한 공격명분 쌓기에 활용하여, 점차 전쟁의 조건을 만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사실 미국은 걸프전 이후 전후 국가간체계의 틀을 허물고 미국 일방주의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토대를 다져왔고, 탈냉전시기에 걸맞는 전지구적 개입정당화의 담론으로서 냉전시기의 '공산주의의 위협' 대신 '인권'이나 '대량살상무기' '테러' 등의 담론을 적극 개발해 오고 있다. 이라크 침공 직전인 3월 17일 미국 PBS 방송은 클린턴 시절의 국무장관 올브라이트와 닉슨-포드 시절 국방부 장관이던 슐레진저의 대담을 방송하였는데, 여기서 나온 언급은 주목을 끈다. 올브라이트는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이 "미국이 직접적 위협을 받지 않았음에도 다른 국가를 상대로 벌이는 최초의 전쟁"이라는 점에서 국제질서의 기본 틀을 흔드는 매우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하였는데, 이에 대해 슐레진저는 이를 반박하며 미국은 이미 그레나다, 파나마, 코소보에서도 미국이 직접적 위협을 받지 않았음에도 군사력을 파견하여 다른 영토에 진입한 적이 있다고 강조하고, 이번의 이라크 전쟁도 그런 연장선 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라틴아메리카 국가에 대한 미국의 침공은 1823년 선언된 먼로 독트린--미국의 유럽개입을 포기하는 대신 유럽의 라틴아메리카 개입을 허용하지 않으며, 따라서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배타적 영향력을 인정한 것--의 틀 속에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코소보 이후의 상황은 이와도 다른 것이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유엔의 틀 속에서 전쟁을 수행한 미국은 코소보 전쟁의 경우 유엔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NATO와의 연합을 동원하여 유엔 틀을 벗어나 최초로 비아메리카 지역에 대한 군사개입을 전격적으로 벌였다. 그 다음 단계인 아프카니스탄 전쟁에서는 미국의 독자적 군사력으로 작전을 전개하였으며 이라크 전쟁에서는 사실상의 동맹세력 없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상군을 통한 도시진격이라는 사실상의 침공전쟁을 개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라크를 넘어선 확전은 이런 미국의 일방주의적 틀의 확장이 이라크라는 예외적 상황에 따른 일시적 조정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일반화하는 틀로 정착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근본적 변화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지금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시리아 침공이 현실화 될 경우 매파들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세계질서의 새로운 틀짜기 구상은 계속 진행될 것이고, 그 여파는 조만간 동아시아에까지 미칠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관건은 내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이다. 보통 이라크전쟁의 여파로 미국 경기가 침체하고 미국 국내외의 반전여론이 비등하면서 매파의 약진은 중단되고 아들 부시 또한 아버지 부시와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을 낙관할 수만은 없는데, 다시 말해 앞의 두 예측이 맞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반대로 부시를 재선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매파는 계속 싸움터를 확대해갈 것인데, 종결되지 않은 전쟁들이 널려있는 상황에서 미국인들이 과연 무엇을 선택하게 될 것인가? 매파가 아닌 누가 '새로운' 비전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미국의 전쟁은 대외적으로만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국내로도 확장될 것이다. 이미 '애국입법'에서 나타났듯이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초헌법적 탄압을 확장하는 시도들은 더욱 확대될 것이고, 잠재적 적들의 색출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은 더욱 반동화되는 이런 정권의 지지자들이 될는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해 비관적인 전망을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이라크 침공이 시작된 직후인 3월 미국인을 대상으로 타임-CNN 공동의 여론조사를 실행한 적이 있다. 이 조사에서 특히 '충격과 공포'를 가져다 주는 부분은 '만일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사용한다면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42%가 찬성의 답변을 했다는 사실이다. 오만한 일방주의와 자기도취적 우월감, 그리고 고립된 위기감이 결합되어 미국인의 정서는 반전과는 반대방향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 전세계적으로 많은 나라들이 그렇겠지만 미국은 더더욱이 자신의 역사를 반성해 본 경험이 없는 나라이다. '신대륙'과 '처녀지'라는 허구적 이미지로 뒤덮어진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디언의 학살과 절멸의 역사도 그렇고, 노예제도에서 흑백차별로 이어지는 인종주의의 역사도 그렇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자폭탄을 투하한 역사도 그렇고, 수많은 나라에서 CIA를 통해 벌인 '더러운 전쟁'의 역사도 그렇다. 모든 것은 미국의 이상, 미국의 자유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이다.

반전과 반미는 문제의 끝인가?

이제 반전과 반미는 세계적으로 모든 이의 일상어가 되었다. 초등학교에서조차도 반전과 반미를 주장하지 않으면 따돌림을 받는다는 역설은 바뀐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직후 TV 토론에 나온 보수 언론의 원로기자조차 이 전쟁은 명분이 없고, 미국의 이기주의 때문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만 '국익'을 위해 파병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수세적인 주장을 펼 정도로 반전과 반미를 둘러싼 지형은 바뀌었다. 미국 주도의 전쟁을 비난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베트남전과 이른바 '68'년 이후 이처럼 단일 이슈를 가지고 한목소리로 반대 운동이 일어난 적도 없다. 위기에 대한 미국 매파의 대응만큼이나 위기에 대한 세계 사회운동의 우려와 절박함도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면 우리가 적지 않은 혼돈 속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반전과 반미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가? 이 반전과 반미 그 다음의 구호는 무엇으로 집약되는가? 어떤 집약점이 있는가? 전쟁에 대한 이런 세계적인 반대는 어떤 구호와 조직으로 집약되고 있는가?
세계의 반전운동은 아직 무정형적이다. 그것은 연대의 가능성도 담고 있지만, 어떤 집단에 의해선가 다른 어떤 방식으로 전유될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1차세계 대전 이후의 상황이 던져주는 함의를 생각해 볼 필요도 있겠다. 1차 대전 후의 유럽의 반전의 분위기는 상당히 고양되었다.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에 대한 갈망은 한편에서 러시아혁명을 촉발시킨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 같은 조건이 다른 곳에서는 파시즘을 낳았다. 1차대전이 끝난 이후 1930년대까지 누구도 파시즘이 유럽의 대세로 등장하리라고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20년대에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잇달아 현실적 대안세력으로서 실패한 것으로 밀려나면서 기존의 우파와 완전히 다른 '혁신된 우파'인 파시즘 세력이 급속하게 부상하였다. 이들은 기존의 틀 속에서 현상유지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판 자체를 근본적으로 다시 짜고자 하였고, 국내의 틀 뿐 아니라 전지구적 구도 자체도 전환시키려 하였다. 다시 말해 '무엇인가를 시도한' 세력이었다.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와 국가간체계 질서의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 속에서 나타난 반전의 심성은 파시즘이라는 가장 반동적 자본주의의 혁신에 의해 전유된 것이었다.
현재의 반전적 심성 또한 초기단계에 있다. 현재 사회운동세력의 딜레마는 이 반전운동이 지금까지 진행시켜온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의 구상이나 기획과 전혀 별도로 떨어져 나와 진행되고 있는 무정형적 성격의 것이라는 점이다. 개입하지 않을 수 없지만 개입을 해도 주도할 수 없다는 딜레마. 결국 금융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표상된 자본주의 위기와 미국의 제국주의적 세계전쟁의 수행이라는 형태로 표상되는 국가간체계의 위기--그것은 극단적으로는 인류절멸의 위기를 함축한다--가 하나의 전선에서 만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 그 고리를 찾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다. 반신자유주의는 반전이 아닐 수 없으며, 반전은 반신자유주의가 아닐 수 없는 긴밀한 결합의 선을 찾는 것과, 그 조직적 틀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대중으로서의 계급을 발견하는 문제가 될 것이며, 또한 신자유주의 반대 속에서 국제주의가 살아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나타나는 변화는 한국사회에서 냉전의 이데올로기 구조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 이상 냉전적 방식의 지배이데올로기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으며, 그것은 현재의 반전의 분위기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세력 중 여기에 가장 기민한 대응을 보인 것은 자유주의 세력일텐데, 이들은 냉전적 자유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내용을 채우려는 변신을 보이고 있다. 반전을 반신자유주의로부터 분리시키려는 노력이 이들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보수주의 또한 변화를 강제받고 있는데, 아직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혁신하여 현재 분출되는 저항의 동력을 반동적으로 전유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럼 진보세력은 스스로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세계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과잉결정되는 한반도 민중의 절멸의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 것인가? PSSP
주제어
평화 국제 민중생존권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