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5.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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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주의 -노무현의 조삼모사-

송강현주 | 노동차장

대화와 타협의 시대!?

권기홍 신임 노동부장관과 박길상 노동부차관이 지난 3월4일, 3월26일 각각 민주노총을 방문했다. 이 두 방문을 통해 민주노총과 노동부는 민주노총 위원장과 각 산별 연맹 위원장, 노동부 장관이 직접 참석하는 '분기별 정례간담회'와 민주노총 사무총장과 노동부차관이 주관하는 '월례 노동정책협의회' 등의 정례협의틀을 갖기로 합의했다. 이어서 3월 31일에는 김금수 신임 노사정위원장이 4월1일에는 신홍 신임 중앙노동위원장이 민주노총을 방문해 대화와 협조를 요청했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지 얼마지 않아 노동부 장·차관 뿐만 아니라 (최초로)신임 노동관련 기관장들이 줄줄이 민주노총을 몸소 방문하고 있다. 이것은 노(사)정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겠다는 다시 말해, 노사정위에 민주노총을 참가시키겠다는 공세적이고 공격적인 의지의 표명이다. 노무현 정권은 '사회통합 추진을 위한 노사화합'을 정책 방향으로 밝히며, 초기부터 노사정위원회의 강화를 위해 노동운동에 대한 공세적 포섭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미 노사정위원회의 기능과 위상을 조정하여 실질적인 사회적 합의기구로 이끌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중앙노사정위 외에 16개 시·도별 지역조직을 구성하고, 금융·철강·운수·공공부문 등 업종별 노사정위를 두어 운영하기로 했다. 노동운동 내 노무현 지지세력인 '개혁과 통합을 위한 노동연대'의 핵심인물들도 정권인수위 사회문화분과 인수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과거의 친자본적 정부가 아니라 중간 중재의 위치로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적극적 노사관계에 개입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배달호 동지의 분신으로 시작된 두산중공업 투쟁에 대한 노동부 장관의 중재, 공무원 노조 인정과 산업연수생 제도 폐지-고용허가제 도입 입장 표명. 2개월 넘게 무단협 상태가 지속된 상태에서 노조가 총파업을 결의하고 있어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본질을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던 철도노사의 정기 단협. 그 결과는 '1인 승무제 철회 및 부족인력·신규사업소요인력충원', '해고자 45명 7월말까지 신규채용', '개인-조합 손배가압류 취하', '기존 민영화 방침 철회와 철도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추진'이라는 전향적인 합의안의 도출이었다. 전후사정을 떠나 일련의 사건들은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노동계의 기대를 높이고 있음이 분명하다.

동북아 중심국가를 향한 글로벌 스탠더드

지금 정부의 행보는 남한사회의 발전전망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친노동적이란 수식어로 포장된 정책들은 그간 OECD 등에서 권고했던 이른바 '노동에서의 글로벌 스탠더드'와 일맥상통한다.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의 주요 정책을 계승하는 신자유주의 정권이다. 노무현이 들고 나온 '동북아 중심지'{{) 사회진보연대 1,2월호 '노무현 정권의 출범과 정책 개혁 전망'. 3월호 '동북아 중심국가 플랜의 본질과 한계'
}}는 초민족기업의 세계경영전략에 대한 고려를 반영하는 남한의 적응책이다. 김대중 정권의 경제개혁 정책은 남한을 자본유치형 국가로 변모시켜 놓았다. 이제 금융화된 초민족적 법인기업과 금융자본의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는 것만이 살길이 되었다. 그것은 투자협정을 체결하고 무역자유화를 주도하고 경제자유구역을 설치하는 식으로 오직 DJ가 닦아놓은 길로 가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경제발전 목표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buy korea)'와 일치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제 남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본유치와 위기관리뿐이다. 따라서 노무현정권의 기본 과제는 4대부문 구조조정을 보완하여 (외국인투자자의 감시감독 수단을 제공하기 위한)기업지배구조 개혁의 진척, 초민족기업의 활동범위를 확대시켜주기 위한 무역자유화와 투자협정 체결, 남한의 금융시스템의 불안을 완화하기 위한 금융사들의 대형화-겸업화 유도, 협조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노사정합의기구 구성 등이 된다.
여기서 Global Standard로의 접근이 중요해진다. 노무현 정권의 대응 방향은 법과 제도를 한국의 현실을 감안하여 가능한 국제기준에 부합하도록 끌어올리되 대표성의 시비를 사전에 잠재울 수 있도록 노사주체의 확립에 정부가 적극 개입(산별교섭 주체 구성 유도)하여 사회적 합의기구를 중층적으로 만든 뒤(지역, 업종, 산별 노사정위/기업별교섭, 산별 교섭, 노사정위), 향후 노사문제는 법과제도의 원칙 하에 합의기구에서의 대화와 타협으로 처리한다는 것이다. 이미 남한정부는 ILO로부터 93년부터 결사의 자유원칙 위반으로 11차례에 걸쳐 권고를 받아왔으며 특히 일부 법제도(공무원 단결권, 필수공익사업 범위)가 국제기준에 못 미치는 것에 대해 문제 제기받아왔다. OECD의 경우에도 남한이 회원국으로서 노사관계 법제가 국제기준에 미흡하다고 평가하면서 여타 회원국 수준으로 법제도를 개선할 것을 촉구해왔다. 노무현의 '사회통합 추진을 위한 노사화합'의 주요 배경중의 하나는 현재 남한경제의 사활이 되는 외자유치에 있어서 결정적 걸림돌로 지목되는 것이 '강한 노동운동'이라는 점이다. 주한미상의, 주한EU상의 등은 노조의 불법행위, 잦은 노사분규를 가장 큰 경영 애로사항으로 들고 있으며, 외투기업 경영자들은 새정부의 최우선 노동정책과제로 국제수준에 접근한 노사관계 제도의 개선(68%)을 지적(국제노동재단 2003년 1월 설문조사 결과)했다.

노무현의 조삼모사 관리정책

과연 대화와 타협을 통해 민중의 노동권과 생활권이 지켜지는 시대가 도래할 것인가?
물론 아니다. '사회통합'을 위한 노무현 정권의 구상은 기본적으로 재정지출을 최소화하면서 갈등의 폭발을 지연하거나 조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형식적인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구사될 정책은 민중들의 삶의 조건을 '하향평준화'하고 상위층에게는 안전과 소비의 '자유'를 부여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내·외신 기자들과의 회견 등을 통해 "국내 노동인력 중 비정규직 비율이 56%가 넘는 점은 시정해야 하지만 강력한 노동조합이 버티고 있어 정리해고가 어려운 대규모 사업장은 타협을 통해 노동유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는 이미 알려져있다.
노무현정권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조건 구축에 중점을 실고 사회통합을 추구가게 될 것이다. 물론 전제는 금융화, 개방화, 구조조정에 위협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관계법뿐 아니라 노동유연화, 민영화, 개방화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계속 추진된다{{) 사회진보연대 1,2월호 글로벌 스탠더드, 사회적 합의주의, 외자유치에 종속된 노동권
}}. 민영화의 기조는 변하지 않는 방향에서 방법과 속도- 예컨대 결정과정의 투명성이나 민영화 이후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 확보 등을 추가하는 방식으로-를 조정하며 민영화와 이에 따르는 광범위한 구조조정은 그대로 추진된다는 것이다. 이번 철도투쟁{{) 사회진보연대 본호, '물러설 수 없는 철도투쟁, 사유화 투쟁의 전진을 위하여' 참고
}}의 경우 정권이 '기존'의 민영화 방침을 철회한다는 합의안을 내왔지만, 협상과정에서 보여준 정권의 태도는 철도구조개혁에 기반한 철도사유화 정책에 대한 의지가 거의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동시에 확인시켜주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합의안 작성 이틀 후인 22일 "철도공사화는 오랫동안 토론을 거쳐 합의된 사항"이라며 "철도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공사로 하자는 것은 협상 대상이 아닌 정부 방침"이라고 말함으로써 철도사유화 정책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정책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남동발전소 매각과 전력 배전분할 매각 역시 제반 조건에 따라 유보된 상황일 뿐이다. 파견 업종을 무제한으로 하고 연·월차, 생리휴가를 무급화하는 등 노동권을 무력화하는 안을 담고 있는 경제자유구역은 이미 11월 5일 국회를 통과 하고 7월 발효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노사정위는 지난 3월 22일 상무간사회의를 통해 오랜 기간 논의해온 비정규직 보호방안, 퇴직(기업)연금제 논의를 노사정위에서 합의하지 못하더라도 빠른 시일 내 마무리짓기로 했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 정책의 본질은 비정규직 확대, 제도화를 통한 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를 위한 외피에 불과하다. 정규직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는 대신 비정규직의 경우 보호란 미명하에 합법적·제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노동유연화 전략인 것이다.
자본은 노동의 요구로 인한 갈등과 투쟁을 '비용손실'로 밖에 보지 않는다. 노무현 정권의 노사정위 역시 이러한 비용손실을 줄이고, 노동에 무언가를 양보하도록 촉구하고, 노동운동을 개입 가능한 틀 안에 묶어두는 기조 하에 움직이고 있다. 결국 지금 당장에는 민영화가 유보되고 비정규직의 권리가 찾아지는 듯해 보이지만 이것은 봉합된 위기일 뿐이며 저녁이 되면 민영화와 노동유연화 노동권 말살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운동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지금 노무현 정권은 생산과 고용의 파괴라는 극단적 양상을 회피하고 고용확대-빈곤감축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이전 정권과 '다르다'는 인식을 만들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태도는 현시기 노조 운동에 만연한 실리주의(노사정위를 통해 실리를 얻자)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4월 2일 총파업 불발, 11월 5일 3대악법 저지 총파업을 통해 실리주의가 활동가 수준이 아니라 현장에서도 이미 대중적으로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확인했다.{{)사회진보연대 12월(31호) 38일간의 발전노조파업과 '4월2일'이 우리에게 남긴 것
}}
민주노총은 '노정교섭, 노자교섭, 노사정 교섭을 포함하는 총체적 교섭제도를 마련한다'는 안을 지난 2월11일 대의원대회에서 제출했으나 유보되었다. 굳이 지난 노사정위 5년의 역사를 되돌아보지 않아도 우리는 노사정위가 노사화합의 이데올로기만을 유포한 체 오히려 노동을 통제하는 역할을 해 온 것을 알고 있다. 노사정위, 정례 교섭창구를 통해 정권은 대중과 지도부를 분리·분열시키고 대중의 투쟁을 교란시킬 것이다. 이는 결국 노동(조합)운동을 무력화시키게 될 것이다. 노사합의주의는 전투적인 지도부를 세워내는 것으로 넘어설 수는 없는 만만치 않은 과제이다. 노동운동의 위기가 산별로 이행하면 해결되는 조직형식적 문제가 아닌 것처럼 노사정위 참가를 둘러싼 이데올로기 지형이 현장의 급진적 투쟁만을 강조함으로서 '돌파'되지는 않을 것이다. 현시기 중요한 것은 노사정위 참가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라 노사정위에 대한 공세적 참여 요구가 가지는 함의에 대한 면밀하고 대중적인 비판과 대응방향을 마련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을 맞이하며 노동의 불안정화는 이미 장기적인 궤도에 진입했다.
메이데이를 앞두고 근로자의 날에 빼앗긴 노동절의 이름을 되찾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간의 논란이 있었다. 노동절이 진정한 의미는 이름을 되찾아 오는 것을 넘어, 계급 내부의 분열을 극복함과 동시에 노동운동이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전사회적인 쟁점을 공세적이고 적극적으로 영유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그야말로 노동운동은 사회운동의 성격을 강화하고 전선형성에 기여하도록 거듭나야 하는 시기에 처해있다. 개방과 구조조정, 노동유연화 정책의 구체적인 양상을 지적하고 전사회적 전계급적으로 제기함을 통해서만 노무현식 사회합의주의에 휘둘리지 않고 신자유주의 반대 연대 전선을 구축할수 있을 것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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