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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7-8.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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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비정규직 투쟁, 비정규직 투쟁의 반전의 계기로 만들자

정준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회원
얼마 전 여수LG화학에 파견된 건설노조 조합원이 작업 중 사망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금호타이어 곡성공장에서 하청노동자가 사망하였다. 현대삼호중공업에서는 올해 들어와 벌써 3명의 하청노동자가 사고와 과로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사망사고가 있은 후에도 노동조합들의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금호타이어는 사고 직후에도 라인이 정상 가동되었고, 이후 조사를 위한 현장보존도 되지 않았다. 삼호는 연이은 사망사고가 나자 노동조합 차원에서 문제의 하청업주 및 책임자 구속을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하였지만, 투쟁이 지속되지는 못했다. 계속되는 장례행렬 앞에서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 여전히 참담할 따름이다. 아직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은 정규직 노동자로 하여금 기계를 멈출만한 사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년 여간 정권과 자본의 총체적인 탄압으로, 때로는 정규직 노동조합의 배신과 외면으로 패배를 거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중단되지 않고 있다. 식칼테러를 계기로 노동조합을 결성한 현대차 아산공장 노동자들에 이어 현대차 울산공장을 중심으로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가 드디어 출범한 것은 현재 비정규직 투쟁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이 향후 또 한번의 노-자간 '대리전'의 양상으로 드러날 것은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99년 한라중공업사내하청 노조를 시작으로 2000년 한통계약직의 517일 투쟁을 거쳐 2001년 캐리어사내하청에 이르기까지 전체 비정규직 투쟁을 관통하는 '대리전'적 투쟁에서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계속 패배해 왔으며, 그 핵심에는 정규직-비정규직간의 단결과 연대의 실패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들의 평가 뒤에는 몇 가지 왜곡된, 혹은 격앙된 감정에서 비롯된 편향된 사고들이 양산되기도 했다. 첫째는 정규직과 무관하게 혹은 정규직과의 공동투쟁을 전술에서 거의 고려하지 않는 '분리주의'적 사고이고, 둘째는 정규직 노조에 대한 과잉의존으로 인해 비정규직 노조 투쟁이 독자성을 상실하는 경우였다. 우리는 양자 모두 "계급적 단결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서 명확히 평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셈이다. 따라서 기간의 사내하청노동자 조직화, 정규직화 투쟁에서 원칙과 전술적 방향을 재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우리는 왜 비정규직 투쟁의 핵심이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이루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는가?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가 '노동의 불안정화'와 동전의 양면에 다름 아니며, 이는 현실에서 불안정노동층(비정규직-실업-여성-이주-장애)을 정규직-남성-대공장 노동자들과 분할․차별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지적해왔다.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에 돌입했을 때, "계급적 단결"이라는 원칙은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결정적 조건이다. 이러한 "계급적 단결"의 원칙은 다음과 같은 전술적 판단과 관련된다.

첫째,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조직화 방식(노조 형태)"에 있어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로 부대끼고, 노동자의식을 획득함으로써 자본이 인위적으로 갈라놓은 분열과 차별의 벽을 깨부수는 방향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가장 좋은 경우는 정규직 노조가 규약을 바꾸어 하청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산별노조가 있다면 지부로 조직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투쟁사례를 보건대, 하청 "업체 노조"나 일반노조로 조직하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주)아림노조(볼보건설기계코리아 하청업체)나 남성노조(LG화학 하청노조)처럼 하청 "업체" 노조로 건설하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하청노동자들은 우리회사 직원이 아니라 협력업체 사람일 뿐"이라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사고와 이를 부추기는 사측의 논리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되기 쉽상이다. 뿐만 아니라 업체 철수 시 대응이나 원청업체에 대해 교섭권을 획득하는 데 더욱더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일반노조로 조직하는 경우도 '업체 노조'로 조직하는 경우와 비슷한 문제가 생기는데, 이 경우 일반노조의 운동적 장점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해당 사업장에서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관계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최근 금호타이어 사내하청인 (주)세진 노동자들이 광주지역일반노조로 조직되었는데, 조합원이 사측에 전원 드러난 데다가, 계약 만료시점에서 "고용승계" 투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투쟁계획을 일반노조가 못 내오다 결국 금호타이어노조가 책임 있는 연대를 하겠다는 전제 하에 '금호타이어 하청노조'로 규약을 변경하기로 한 바 있다. 하지만 노조 형식은 말 그대로 투쟁의 형식적 조건일 뿐이며, 설사 정규직 노조로 가입한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요구안과 의사결정권에 있어 하청노동자들의 상대적 독자성 유지와 ▶정규직노조의 투쟁 의지일 것이다. 또한 기아하청 투쟁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상급단체가 투쟁 과정에서 양 집단의 갈등과 이견 조율을 위해 정확한 자기위치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정규직-비정규직간 갈등은 어떠한 조직형태를 갖더라도 얼마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정규직화를 몇 명 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투쟁에서 얼마만큼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결의식, 노동자 계급의식을 획득하였는가에 있다.
비정규직 투쟁은 과정이 결과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투쟁 없이,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간 부대낌 없이 단순히 교섭력에 근거해서 획득한 정규직화는 노동자 의식, 계급의식을 고양하는 데 한계적이며, 표피적인 문제해결에 불과하다. 여전히 정규직-비정규직간 갈등은 잠복해 있고, 단지 노동조합만 자기만족적인 성과를 선전하는 데 그칠 뿐이다. 캐리어 사내하청 투쟁에서 투쟁을 통해 정규직이 된 극소수의 노동자를 제외하고, 무임승차해 정규직이 된 많은 노동자들은 여전히 하청노동자들의 문제에 둔감할뿐더러, 3년 간 밖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하청노조 동지들에게조차 냉담하다. "패배한 연대 속에 정규직화"란 "노조의 투쟁"을 통해서 쟁취한 것이 아니라, 회사의 "시혜"로 이해될 뿐이다. 또한 아무리 많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한다 하더라도 정규직 조합원들의 노동자 의식, 계급의식이 진전되지 않는다면, 회사 상황이 안 좋아지고, 물량감소로 인한 고용불안이 엄습할 때, 또 다시 비정규직 양산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기아자동차노조 광주지부는 원․하청 노동자간 공동투쟁이 실패한 이후 노조지부의 협상력에 의존하여 하청노조 문제를 풀어간 결과 총 220명 정규직화, 420명 계약직 직접고용을 쟁취한 사례다. 그러나 정규직 조합원들의 의식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자동차 시장의 불황으로 재고가 쌓이고, 물량이 줄어들어 드는 상황에서 사측이 약속했던 증산 계획을 축소하려 하자, 정규직들 내 고용불안 심리가 또 다시 커지고 있다. 노조가 잘못 대응하면 정규직 조합원들은 여전히 비정규직 문제를 고용방패로 사고할 것이다.

셌재, 파업 전술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달리 "파업은 노동자 계급의 학교"라고 이야기했을까? AC닐슨, 롯데호텔, 이랜드 노조 투쟁에서 우리는 어떻게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동파업을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단결할 수 있었는가를 배워왔다. 하지만, 공동파업이 가능하기 위해서도 지속적인 선전과 교육사업이 필요하다. 공동파업의 위력은 자본가들이 더 잘 알고 있다. 01년 캐리어 노조와 캐리어하청노조가 같은 시기에 파업에 돌입했 때 사측은 캐리어노조의 요구안을 100% 이상 들어주고 파업을 조기 종료시켰다. 정규직 파업을 하루 빨리 중단시켜 정규직, 비정규직간 공동투쟁의 파고가 높아지는 것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측의 전술은 성공했다.

넷째, 계급적 단결을 위해서라도 하청노동자들은 투쟁과 요구에 있어 독자성을 지녀야 한다.
하청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판단하여 요구안을 수립하고, 이에 대한 일관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한 요소다. 비정규직 투쟁에서도 "요구안은 투쟁의 원천"이다. 현실적인 연대투쟁의 제약 때문에 하청의 지도부가 조합원들과 분리되어 정규직 노조에 끌려가거나, 중요한 판단을 내맡겨서는 안 된다. 이럴 경우 투쟁은 하청노동자가 하고 교섭은 정규직 노조의 판단이 좌우하는 분리현상이 나타남으로써, 협상 결과를 놓고 하청의 지도부는 정규직노조와 하청조합원 사이에서 진퇴양란에 빠지고 만다. 결국 하청 투쟁동력도 잃게 되고, 정규직과의 연대의 신뢰도 깨질 수밖에 없다. 올해 보건의료노조 전대병원 원내하청지부는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 지침에 따라 전대병원지부와 공동투쟁, 공동교섭을 진행했었다. 얼마 전 전대병원지부의 합의안이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됨으로써 지부장이 사퇴하게 되었는데, 하청노조는 이에 당황하지 않고 사측과 독자교섭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계약기간이 만료된 시점에서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는 중요한 이번 투쟁에서 하청노조 지도부가 정규직노조에 의존하는 형태로 공동 임․단협을 진행했다면, 정규직노조가 사퇴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좌충우돌했을 것이다. 결국 '계급적 단결'이라 함은 노동자 대 노동자로, 노조 대 노조로 대등하게 만나는 것이지 정규직 노조에게 그것을 구걸함으로써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철폐투쟁은 왜 통일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는가?
일반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통의 이해와 요구에 기반해 공동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하는데,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양자 사이에 공통 이해는 거의 없어 보이며, 때로 대립하기도 한다. 여전히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은 고용의 방패막이다. 따라서 "계급적 단결", "노동자의 원칙"을 들이대는 것만으로는 십수년 동안 기업별 노조의식에 찌들어 있는 정규직 조합원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 결국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문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양자를 연동시켜서 투쟁을 조직하는 것만이 정규직을 설득하고, 승리를 안아올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캐리어 사내하청은 6월에 들어 최초로 하청문제 해결을 위한 사측과의 교섭에 들어갔다. 그런데 작년부터 캐리어자본은 "판매"를 생산에서 분리시켜 독립법인화 시킨다는 이야기를 현장에 유포하고 있다. 이는 본사인 UTC가 타국 공장에서 저임금으로 생산한 물량을 한국에서 판매할 수도 있다는 얘긴데, 이렇게 되면 한국 공장의 존폐문제가 걸리게 되고, 정규직 고용불안 심리 자극과 하청문제 해결 불투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기아차노조 광주지부는 01년 12월 31자로 450여명의 하청노동자 해고를 막지 못하고, 1월이 되어서부터 정규직화를 쟁취했는데, 1차 정리해고를 막지 못한 것은 그만큼 사측의 구조조정에 대해서 대응이 부했던한 탓이다. 또 02년 4월 고용안정소위를 통해 300여명의 하청노동자들을 계약직으로 직접고용하고, 04년 5월 광주공장이 30만대 증산할 때 신규충원이 발생하면, 계약직을 우선적으로 정규직화 한다는 합의를 한 적 있었다. 하지만 현재 자동차 업종의 불황으로 사측이 증산계획을 축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04년 5월에 신규충원이 발생할지는 불투명하다. 증산이 대폭적으로 진행되고 신차 설비의 모듈화 과정에서 외주화를 막아내더라도 사내모듈화 하에서 자동화와 노동강도 강화로 신규충원 발생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300여 계약직의 고용은 어떻게 되겠는가? 여전히 구조조정에 대한 총체적인 대응은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핵심일 수밖에 없다.


왜 '처우개선' 투쟁은 정규직 노조의 중요한 투쟁임에도 불구하고 때로 위험할 수밖에 없는가?
처우개선 투쟁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왜곡된 차별의식을 바꿔감으로써 비정규직 철폐투쟁의 조건을 만들어 가는 투쟁이다. 임금차별이든, 작업복․작업화 문제든, 사내 시설 이용에서의 차별이든 이러한 처우개선책은 반드시 하청노동자 조직화 사업과 동시에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청노동자들에게 시혜만 주어지고 그들이 투쟁의 주체에 설 수 있도록 조직하지 않는다면, 처우개선투쟁은 오히려 "처우개선을 통해 조금씩 풀어야 한다"는 논리와 함께 노조 설립을 통한 "정규직화" 투쟁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며, 정규직 노조에게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면죄부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규직 노조가 처우개선 투쟁을 할 때는 하청노동자들의 조직화와 병행하면서 요구안을 수렴해 투쟁의 주체로 세워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특히 처우개선책의 하나로 단사 차원에서 정규직-비정규직간 임금격차를 줄이는 투쟁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 현대차와 기아차에서는 하청노동자들의 시급 인상, 정규직과 성과급 동일지급을 쟁취하였지만 이는 1차 하청노동자들에 국한된 것일 뿐, 2차, 3차 하청노동자는 해당되지 않았다.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이 모듈화, 통합-별도 법인 설립 등을 통한 외주화의 확대에 있기 때문에 1차 하청노동자들과의 임금격차를 줄이는 문제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대공장 임금투쟁이 이제는 "상박하후(上薄下厚)" 원칙 하에서 대공장과 비정규직․영세업체 노동자간 임금격차를 줄이는 투쟁으로 전환해야 함을 의미한다.


왜 모든 구조조정 저지투쟁에서 "노동자연합"이 필요한가?
비정규직 철폐투쟁, 근골격계 및 노동강도 완화투쟁에 대해서 정권과 자본의 입장과 대응은 매우 단호하다. 이러한 투쟁이 자신들의 구조조정을 정면에서 역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급적 단결"이라는 원칙이 아니더라도, 조직과 사상을 뛰어 넘어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자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것만이 구조조정 저지투쟁과 현장통제권을 쟁취하는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이다. 사측은 양보하기 힘든 이러한 투쟁들에 대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현장 제 조직의 분열지점을 정확히 파고든다. 캐리어하청, 기아하청투쟁에서도 정규직 조합원의 고용위기의식을 조장하고, 이에 편승하여 노동조합을 공략하려는 조직들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분열을 조장한다. 결국 연합의 파기와 공동투쟁의 결렬은 현장의 주도권을 사측에 넘겨준다.
현장에서 조합원들에게 아무런 설득력도 주지 못하며, 조합원들의 입장에서 분별도 되지 않는 '좌-우파'의 선험적인 분리는 무익할뿐더러 오히려 해악적기조차 하다. 때때로 근거 없는 '좌파단결' 논리는 노조 선거에서 집행부 장악과 자리 재분배를 위한 논리로 작용하기도 한다. 구조조정 저지 투쟁을 비롯한 공동투쟁의 필요성 때문에 단결의 논리가 등장한다 하더라도 "현장에서 단호한 분파들의 결집"이면 모를까 "좌파 결집"은 아니다. 좌파 외의 계급적인 분파가 이러한 단결에서 제외되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을 둘러싼 조건과 쟁점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투쟁을 둘러싼 주․객관적인 조건이 결코 녹록치만은 않다.
첫째, 현재 자동차 시장은 불황국면으로 접어들었다. 6월 현재 자동차 판매는 02년 대비 20.7% 감소했다. 05년부터나 경기가 하강세로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으나 예상이 빗나갔다. 기아차도 현대차도 물류센터에 재고가 넘쳐나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 재고 차량은 경기 불황으로 이미 5만7 천여 대에 달하고 있다. 야적장이 최대 1만 8천여대 수용 가능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심각한 수준이다. 결정적인 요인은 내수부진인데, 특소세 인하도 한계적일 것으로 보이며, 최소 자동차 시장의 이러한 상황은 1~2년 이상 계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불황국면에서 정규직이 느끼는 고용불안과 수입감소는 비정규직투쟁을 부담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정규직 노조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둘째, 노사정위에 전술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실용주의가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다. 현대차 투쟁이 '대리전'적 양상을 띄는 것이라 할 때, 최악의 경우 98년 현대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처럼, 적절한 선에서 (정규직화) 숫자싸움만 하고 "계급적 단결의식 고취"라는 측면에서 철저히 패배하는 판이 그려질 수도 있다. 현장에서는 열심히 싸우는데, 노사정위에서 그르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이러한 악조건에서 몇 가지 전술적 쟁점을 정리해보자.

첫째, 더 이상 '물량확보투쟁'은 안 된다. 근골격계 투쟁에 근거해 노동강도를 줄이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구조조정에 대한 과학적인 대응도 아니고, 물량확보를 통해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일시적으로 잠재우는 방식은 지난 몇 년간 투쟁에서 한계를 보였다. 오히려 사측은 공장간, 현대차․기아차 노조간 물량경쟁을 부추겨 상호 대립과 분열을 통해 현장을 관리하는 수법을 써 왔는데, 노동조합들은 이에 무기력했다. 신차종 확보든, 단종 차종 확보든 일단 각 공장이 물량유치 경쟁에 나서면 노동자들의 분열 양상은 겉잡을 수 없다. 전술을 약간 비틀어 '물량확보' 문제를 부차화할 필요가 있다. 재고가 넘쳐나는데, 물량확보를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비정규직 투쟁을 잘 하자는 데 난데없이 근골격계 문제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근골격계 투쟁의 핵심은 '노동강도 요인'인 "물량과 인원"을 노동자가 통제할 수 있도록 그 근거를 마련하자는 데 있다. 이런 맥락에서 차량 1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맨아워(man hour ; 인시)를 늘리고, 작업속도를 줄이는 것을 적극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둘째, 어느 때보다도 기아차와 현대차의 공동투쟁이 풍부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현대자본은 내수부진에도 불구하고 해외공장의 생산량은 늘리고 있다. 건설중인 서산 경차 공장(SA 프로젝트)도 현대차․기아차 노조간의 뜨거운 감자다. 현대자본 측이 애초에 제출했던 "비정규직 전용 공장" 운영안을 박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양사 공동 출자 통합-별도법인, 생산규모도 재고가 넘쳐나는 지금 시기에 중요한 변수다. 양 노조의 공동투쟁을 통해서 현대-기아차를 아우르는 현대자본의 총체적인 구조조정을 대응하지 못한 채 '단사 이기주의'적 대응에 매몰한다면 결말은 비참할 것이다.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이 사회적 파급력을 만들어가고, 자동차 업종 내의 2차, 3차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 방침 수립을 위해서도 공동투쟁은 필수 불가결하다.

셋째, 정규직 노조 가입만이 능사가 아니다. 공동파업을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 가야 한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는 설립보고 대회에서 내년 정규직 노조 규약 변경을 통해 현대차 노조에 가입할 때까지 한시적인 조직임을 선언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요구와 발언권에 있어 하청노조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규직 노조에 가입하더라도 분회 형태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 내에서 공식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지 못하면 정규직 노조에 시종일관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정규직 노조 가입이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봉쇄하고, 정규직 노조에 의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왜곡되는 사례는 수 차례 보아왔다.
"정규직 노조 가입"이 정규직-비정규직간 단결을 이룰 수 있는 조건을 만들자는 것에 핵심이 있다면, 오히려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파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조직된 전주공장 하청노동자들의 조직화와 더불어 아산공장 하청노조와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들간 전국적 단일대오 형성과 공통의 요구안, 투쟁방침을 확정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며, 조합원 조직화 사업도 급선무다. 정규직 노조와 현장 제 조직도 공동파업을 위해 현장투쟁을 착실히 밟아가야 한다.

넷째,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을 단사투쟁을 넘어, 사회적인 투쟁으로 만들어 가자.
완성차 공장뿐만이 아니라, 2차, 3차 부품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소위 서해안 벨트(인천-소하리-화성-평택-서산-아산-천안-군산-전주-광주)일대를 중심으로 자동차 업종전체로 투쟁을 확대해 갈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하고, 파견법 철폐와 중간착취 근절을 위해 대약진 하는 투쟁으로 현대차 투쟁을 만들어 가자.

이제까지 대부분의 대공장에서는 단순히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임금인상 위주의 차별철폐 투쟁에 집중하거나 비정규직 확대를 저지하는 데 방점을 찍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 정규직화를 위한 공세적인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의 결과가 어찌 되었던 간에 현대차 이후 기아차와 GM대우 등 자동차업종을 중심으로 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약간의 시차를 두고 계속적으로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밀어붙일 수 있을 때 확실히 밀어붙이자.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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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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