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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7-8.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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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서화'의 구성과 주제

김예니 | 편집부장
이기영은 프로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일가를 이루기는 했지만, 해방과 더불어 평양으로 가 1957년에는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으로 선출될 정도로 북한에서 이름을 날렸던 까닭에 남한에서는 거론할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1988년 정부 당국의 공식적인 해금 이후 이름은 되찾았다고는 하나, 마치 오랜 복역 생활 끝에 석방된 장기수의 피폐한 몰골처럼 이기영을 비롯한 월북작가들의 거취는 궁색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도 1990년대 이후 문화의 바람을 타고 새로운 관심을 받게 되면서 이들 작가들의 작품도 새로운 해석과 연구가 시작된다. 첫 번째 김동인을 제외하고 카프로 대표되는 경향문학(임화, 강경애)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이제 드디어 경향소설의 대표작인 ‘고향’을 썼고 북한 문학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는 ‘두만강’의 작가인 이기영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임화를 통해서 대중과 지식인의 관계, 계몽의 문제를 다루었다면, 강경애는 그 동안 잊혀졌던 작품 ‘인간문제’를 평가함으로써 사회주의자이면서 여성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여성작가를 소개하는데 의미를 두었다. 그리고 이제 이기영의 서화를 통해 한계에 봉착했던 카프문학이 어떻게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 했으며 어떻게 좌절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으로 카프문학을 살펴보는 과정을 많이 부족하지만 마무리하려 한다.

1927년 카프 내부에서는 박영희와 한설야 등에 의해 주도된 프로문학운동의 방향전환, 즉 자연발생적 단계에서 목적의식적 단계로의 전환을 둘러싸고 치열한 이론투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 목적의식기를 경과하면서 많은 작가들이 이념의 방향성과 창작의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현실은 이기영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후 목적의식기 이전에 창작되었던 ‘농부 정도룡’이나 ‘민촌’이 그 후의 작품들보다 형식적인 면에서 나았다는 그의 반성은 목적의식기에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창작의 어려움을 겪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그는 목적의식기를 경과하면서 목적의식기 이후의 자신의 작품이 가위에 눌려 있어 관념적 조작으로 현실을 재단하는 것에 불과했다는 분명한 자기 반성을 하고, 정치적 과제를 직접적으로 형상화하는 창작형태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그는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현실의 총체성을 반영하되 그것은 어디까지나 리얼리즘의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화’(1933)는 바로 목적의식기 이후 이기영의 창작활동에 대한 이런 변증법적 지양을 통해 발표된 작품인 것이다.
이기영을 ‘서화’를 통해 만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당시의 경직된 창작 활동을 자기비판하면서 어떤 예술적인 접근을 시도했던가 살펴보는 것이 바로 ‘서화’를 살펴보는 목적이라 할 것이다.

서화의 배경은 3.1운동 직전의 조선의 어느 농촌이다. 전반적으로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기 때문에 그 배경이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 안에서 분명 농촌의 피폐한 현실과 풍속의 쇠퇴, 그리고 식민지 치하 활력을 잃은 생활을 보면서 시대와 장소의 특수함을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바로 이것은 이 소설에서 주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일제 치하 농촌의 모습은 바로 인물들이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갖게 되는 독특한 성격과 행동에 동기와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 소설은 크게 세 가지 사건으로 이루어지는데 첫 번째는 쥐불놀이와 놀음이고 두 번째는 정월 대보름 놀이 널뛰기와 이쁜이와의 외도이고 세 번째는 원준의 음모와 동회(동네사람들이 모여 동네의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 반상회 정도)로 마무리할 수 있다.
우선,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빚만 늘어나는 농민들의 생활을 통해, 열심히 일해도 굶주려야 할 바에 굶주리지 않기 위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을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 상황의 극빈함과 부조리함을 볼 수 있다. 또한 빈한함 앞에서 이웃간의 정이라든지, 풍속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자리할 수 있는 여유란 없었다. 이미 농촌은 피폐해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은 바로 쥐불놀이와 정월보름의 풍속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한 때 쥐불놀이는 마을사람들에게 있어 자신의 활력을 쏟아내는 장이었다. 일종의 카니발이었고 가상의 전쟁이었다. 사람들은 풀지 못한 많은 억압을 쥐불놀이를 통해 해소하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쥐불놀이는 고작 어린아이들의 장난에 불과할 뿐이었다. 농민들은 들판에서 불과 함께 뒹굴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런 활력이 마을에서 사라진지 오래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주인공이 놀음을 하는 정당성을 찾고 있다. 다소 무례해 보이기는 하지만 주인공 돌쇠는 무척 정열적인 사내다. 자신의 넘쳐나는 건강한 활력을 풀어낼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놀음을 하게 된다. 그리고 놀음은 또한 어차피 일해도 빚만 늘어가는 모순된 농민의 생활을 할 바엔 ‘한 건’으로 입에 풀칠이나마 하겠다던 당시의 빈곤을 정당화하고 있다. 특히 아버지의 노름은 심심함을 풀어주는 놀이의 기능이었던 것에 반해, 돌쇠의 노름은 농사로는 제대로 먹고 살 수가 없어 생계수단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적개심을 띤 채 진행되어 인간관계를 해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아버지의 경우와 돌쇠의 경우를 비교해보면 일제 침탈 이후 민족적인 세시풍속이 없어지는 것은 봉건사회로부터 식민지 자본주의 사회로 변하는 과정에서 빈농에게 부과한 삶의 질 하락이 보다 큰 원인이었음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정월 대보름과 관련해서도 예전만 하지 못한 풍속을 통해 당시의 암울했던 현실을 조명하지만 그 전후로 밝혀지는 이뿐이와의 외도는 당시 조혼 풍속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작가는 식민지 자본주의가 사회를 변화시켜 가고 있었던 과정에도 봉건적인 잔재가 강하게 남겨져 있었던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는 돌쇠와 응삼이처 이뿐이 사이에 벌어지는 ‘자유연애’(당대 조혼과 대응하는 의미로서 자유연애)에서 잘 드러난다. 대부분의 농촌 젊은이들은 봉건적 관습인 조혼으로 인하여 부부 사이에 아무런 애정도 없이 살아가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돌쇠는 마음에 맞는 응삼이의 처 이뿐이와 정을 통하게 된다. 이뿐이 역시 부모의 강요로 인해 결혼했기 때문에 남편에게 정을 느끼지 못하고 돌쇠에게 마음을 두게 된다. 이러한 사정은 이 두 남녀뿐만 아니라 당시의 거의 모든 젊은 세대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고통이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원준이의 음흉한 음모는 이들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드러내주는 매개의 역할을 하는데, 원준의 유혹에 대한 이뿐이의 단호한 모습은 이뿐이의 외도가 단지 성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철이 난 이후 어떤 이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진지한 무엇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문제는 정주사의 아들로서 민족개량주의자의 전형인 정광조에게도 드러나고 있다. 동회에서 돌쇠의 노름과 간통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정광조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결과적으로 돌쇠를 변호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정광조가 돌쇠의 노름에 대한 변론보다는 간통문제와 관련하여 변호했다는 것인데 이는 당시의 사회적인 문제를 접하는데 있어 다양한 시각이 존재했다는 것과 다양한 시각에도 불구하고 조혼의 문제 같은 경우, 시각의 차이를 뛰어넘어 심각성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어떤 사건의 해결이라는 것이 농촌 내부에서가 아닌 외부, 그것도 지식인인 동경 유학생 정광조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리고 정광조의 느닷없는 등장으로 작가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드러난 부분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당시 동경 유학을 갔다가 돌아온 지식인이 아니고선, 외부의 어떤 개입이 아니고선, 농촌 내부에서의 변화나 사건의 해결이라는 것은 봉건적인 해결 외의 다른 해결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제한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그 개입이나 등장이 충분히 정당화 될 수 있는 내적 동기가 존재해야 했는데 이 점이 안타까운 대목이라 할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서화’는 봉건사회로부터 식민지 자본주의로의 전변과정을 반영한 작품으로 반봉건성의 문제도 빠뜨리지 않고 있어 이전의 이기영 작품이 가지고 있었던 단순한 계급적 현실인식에서 빚어진 도식성을 극복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런 도식성을 벗어나면서도 자유연애나 당시의 빈곤한 농촌문제의 원인을 파헤치는데 작품의 내적인 긴장이 유지되는 이유는 인물의 생생한 성격 묘사와 당시 농촌의 현실, 배경이 현실감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탄탄한 구성이 바로 ‘서화’의 주제를 뒷받침하고 있어서 작가의 목소리가 결론부분에서 다소 직접적으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전체를 보았을 때 균형감과 리얼리티를 잃지 않고 있다. 이처럼 ‘서화’는 이기영의 창작과정에서 일보 전진한 것이면서 동시에 도식성에 신음하고 있는 당대 프로소설의 질곡을 돌파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PSSP

* 다음에는 현대시의 아버지, 정지용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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