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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9.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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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을 상대로 한 희대의 사기극, 국민연금 개편안

정지영 | 정책부장
국민연금 개편안은 민중의 소득을 도둑질한다

국민연금 개편이 눈앞에 다가왔다. 정부는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은 덜 받는 것으로 개편안을 잠정 확정하고, 10월 중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2004년 소득대체율을 55%로 인하, 2008년부터는 50%로 인하, 보험료율은 2010년 10.38%로 인상, 2030년 15.90%까지 인상). 그런데 이런 정부의 개편안은 두 가지 측면에서 국민을 상대로 한 사기극이라 할만하다.
첫째, 무조건 2배의 기금을 적립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논리에 따르면 현재의 국민연금은 2047년이면 기금이 소진될 수 있는 불안정한 재정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해소하기 위해 2070년까지 연금 수급자들에게 지급할 금액의 두 배를 적립해두어야 한다. 그 액수를 보면 두 배 적립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70년에 지급해야하는 돈은 대략 1,200조원으로 추정된다. 이 돈의 두 배를 쌓아두겠다는 것은 2,400조원의 돈을 만들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역사가 2070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국민연금 측은 2071년, 2072년에도 계속해서 두 배의 적립기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2070년에 우리나라 노인들이 한꺼번에 사라지지 않는 이상 해마다 1,200조에 가까운 돈이 지출된다는 말이고, 이것의 두 배를 계속해서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이 돈은 또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올해는 2070년을 목표로 계산을 했으니, 5년 후에는 2075년을 목표로 계산해서 보험료 또 올리고, 받는 돈 더 깎으면 될 것이다. 한 마디로 계속해서 보험료율은 올리고 받는 돈은 줄인다는 말이다.
둘째는, 그래서 제대로 노후소득이 보장되느냐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그 출발부터 국민들의 노후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라는 것이었고, 그 기본취지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정부는 말하고 있다. 이 취지가 제대로 실현된 적이 있었느냐는 질문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번 개편안은 분명 스스로 이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지급하는 액수가 퇴직 직전 소득의 60%인데, 이것이 너무 높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60%라는 숫자가 은폐하고 있는 것은 국민연금에 가입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코 이 60%라는 액수를 받아본 적도, 받을 수도 없다는 점이다. 40년 동안 쉬지 않고 연금보험료를 납부했을 때 받을 수 있는 돈이 퇴직 직전 소득의 60%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실직, 휴직 등으로 40년을 가입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는 평균적으로 퇴직 직전 소득의 30%를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2070년이 되어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정부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현재의 지급액이 충분하니 받는 돈을 깎을 수 있고, 모자라는 부분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적인 연금에 가입해서 채울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하면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국민연금 개편안이 국민을 상대로 한 희대의 사기극임이 분명하다. 노후소득을 제대로 보장해줄 수도 없으면서, 마치 재정을 늘리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무조건 돈을 쌓아두고 보자는 것이 사기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 임시직 노동에 종사하고, 정규직 일자리를 가지고 있다한들 절대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내는 돈이 1%만 올라가도, 받는 돈 5%만 깎여도 것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는 안중에도 없고, 무조건 2,400조원은 모아야겠다는 발상 자체가 기가 막힐 따름이다.
게다가 그렇게 모인 돈이 어디에 쓰일 것인지는 뻔하다. 현재 국민연금에 모여있는 돈만 해도 100조, 앞으로 70년 동안 쌓일 돈이 2,400조. 우리나라의 어떤 기업체도, 어떤 기금도 이 정도의 규모를 가질 수는 없다. 이 거대한 돈이 갈 곳이라곤 주식시장을 비롯한 자본시장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주식시장 안정화 대책으로 거론되는 것이 국민연금 기금을 주식시장에 투입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경제자유구역 개발 사업에도 국민연금의 기금을 끌어다 쓴다는 발표가 나기도 했다. 이런 식이라면 자본시장에는 거대한 원천이 될 수 있겠지만, 가입자들에게는 더 많은 돈을 내고, 더 조금 받아가야 한다는 강요만이 남는다. 이쯤에서 우리는 살기 어려운 민중들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어마어마한 적립금을 만들겠다는 시도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연금 재정의 '위기'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렇다면 정부가 이런 사기극을 성사시키기 위해 근거로 들고 있는 것들을 살펴보자. 가장 강력한 근거는 아무래도 국민연금 재정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관념이다. 2047년이면 국민연금의 기금이 고갈된다는 연구 결과는 이런 관념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연금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것이 민중의 부담만 가중시키고, 결국은 국민연금의 위기도 해결하지도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정부는 국민연금이 심각한 재정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진단만을 고려사항으로 삼아 재정을 늘리는 방안을 중점적으로 고민했고, 그 결과가 현재의 개편안이다. 결국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 발생하는데, 국민연금이 민중들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의 문제는 사라지고, 어떻게든 제도 자체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재정을 모아야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제도 자체를 유지시키기 위해 돈을 더 내고, 덜 받아가라는 개편안이 나오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재정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그에 대한 방안이 제출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자본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신자유주의의 공세 하에서 민중의 노후소득까지도 금융의 팽창의 원천으로 삼겠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금융 기법과 방식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현재의 자본의 전략은 민중의 임금과 소득을 예외로 하지 않는다. 민중의 소득을 겨냥한 자본의 공세가 점차 자본에게 필수적인 전략이 되면서 보험, 증권, 은행 등의 금융 영역에서 개인의 생애주기에 맞춰 금융상품을 다양화하는 방식이 일반적이 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카드빚 대란이나 어린이 교육보험, 종신보험 등 점차 다양해지는 보험상품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자본의 공세가 거대한 자금이 집중되어있는 가능성을 가진 국민연금의 영역을 그대로 둘 리가 없다. 아니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더욱 거대한 자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현재 국민연금의 개편안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재정이 고갈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재정고갈을 막기 위해서 두 배의 적립기금을 형성해야한다고 말한다. 애초에 민중들의 노후소득 보장은 고려대상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국민연금이 노후소득 보장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낮아질수록 사람들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기업연금이나 개인연금과 같은 사적인 연금을 동시에 가입해야한다. 이는 자본에게 또 다른 원천을 만들어주는 것이니 전혀 막을 일이 아니고,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하는 일이 된다.
이제 정부가 주장하는 국민연금의 '위기'의 실체가 드러난다. 2047년에 기금이 소진된다는 말은 실제 민중의 노후소득이 날아간다는 의미에서 '위기'가 아니라, 자본시장의 원천이 되는 거대한 자금이 날아간다는 의미에서 '위기'이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위기를 해결하는 방식이라는 것이 다시 민중들의 노후소득을 볼모로 더욱 큰 기금을 형성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노령화 사회가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현재 국민연금의 재정 위기를 말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노령화 사회의 급속한 진전이다. 출산율이 계속해서 낮아지면서 인구구성비 중에서 65세 이상의 노인층 비율이 급속하게 늘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몇몇 연구결과에 따르면 현재의 출산율이 지속되면 2040년경에는 인구의 1/3정도가 65세 이상의 노인이라고 한다. 정부는 이 때문에 국민연금을 받게되는 사람들이 급속하게 늘어나서 재정이 더욱 악화된다고 말한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연금 수급자들에게 지급하는 돈이 당시에 노동하는 경제인구의 보험료에 일부 의존함으로써 세대간 재분배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령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면 그만큼 젊은 세대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노령화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많은 기금을 적립해두고 앞으로 젊은 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지금의 노동인구가 그만큼 더 많은 돈을 내야한다는 결론으로 귀착된다. 그리고 당연히 받아가는 돈도 줄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한 사회에서 노령인구가 인구의 1/3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면, 그 상황은 단순히 연금을 줄이는 방식으로 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노령인구를 부양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합의가 다시 만들어져야 하고, 여러 제도들이 그에 맞춰 정비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은퇴한 노인들에게 연금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문제를 노령인구가 국민연금의 재정을 위협하니 지금부터 더 많은 돈을 내고, 그 때가 되어서는 받는 돈은 줄이고, 부족한 부분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적연금으로 채우라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다. 즉, 노령화 사회를 대비하는 모색과 고민은 필요하되, 노인인구가 증가하기 때문에 국민연금을 축소하거나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소리다.


중요한 것은 민중의 노후소득 보장이다!

만약 우리가 자본이 아닌 민중의 입장에서 국민연금의 문제를 말한다면, 중요한 것은 은퇴한 후 민중들의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제가 달라야한다. 현재의 체계 안에서 논의의 틀을 유지했을 때 나올 수 있는 결론은 뻔하다. 두 배 적립을 고집하면서 받는 돈을 줄이지 않으려면 보험료를 올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얼마를 올릴 것이냐를 둘러싸고 논쟁의 여지는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민중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털어 적립금을 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왜 우리가 우리에게 제대로 노후소득을 보장해주지도 못할 돈을 쌓아두어야 하는가? 결국 현재 국민연금 개편안을 둘러싼 싸움은 그 원칙을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첫째, 국민연금의 과도한 적립을 반대해야 한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거대한 적립기금을 형성하려는 것은 민중의 이해가 아니라 자본의 이해에 따른 것이다. 이것은 국민연금의 적립기금을 금융시장에서 활용하는 것과 더불어 사적연금의 팽창과도 연관이 되는 것이다. 결국 민중의 임금과 소득을 금융의 팽창을 위한 원천으로 삼으려는 시도에 대한 반대가 필요하다. 국민연금의 적립률을 2배로 고수하려는 것은 국민연금의 재정을 안정화시키지도 못할뿐더러 민중의 노후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것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따라서 둘째, 현재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의는 민중의 안정적이고 완전한 노후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런 방향에서 우선적인 것은 돌아오지도 않을 돈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현재 국민연금 제도 자체에서 배제되고 있는 비정규직․임시직․일용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농민과 빈민과 같은 지역가입자들의 과중한 부담을 해결하는 것이다.
셋째, 이를 위해 국민연금의 재원조달 경로를 다양하게 확보해야 한다. 만약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을 명확히 한다면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재정위기를 빌미로 민중의 주머니를 터는 것은 명확히 거부되어야 한다. 오히려 직접세를 통해 국고지원을 확대하는 것, 현재 국민연금 제도 하에서 360만원으로 규정되어 있는 최상위 소득기준을 없애는 것과 같은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국민연금 개편안에 맞선 투쟁은 신자유주의적 금융화 공세에 맞서는 투쟁이다

다시 한번 분명히 하자. 민중들이 국민연금을 유지해야 한다면, 그것은 국민연금이 제대로 노후소득을 보장해줄 수 있을 때 그러하다. 국민연금이 제대로 된 노후소득을 보장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민중들의 호주머니를 털기만 한다면 국민연금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현재 국민연금 개편안을 둘러싼 투쟁은 민중이 안정적인 노후소득을 보장받기 위한 싸움의 방향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국민연금 개편안이 민중의 노후의 위기를 전혀 해결해주지 못하는 사기극이라는 것이 뻔한데, 그런 정부의 논의와 전제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싸움을 벌일 수는 없다. 만약에 우리가 정부가 말하는 재정의 위기를 그대로 인정한다면, 보험료를 올려서 적립금을 안정시키는 것에 동의해야 하고, 따라서 이후에 받는 돈을 줄여야한다는 주장에도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다. 이미 전경련, 경총과 같은 단체들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40%까지 내려야한다고 말하고 있는 실정이고, 정부도 장기적으로 그렇게 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렇게 눈앞에 그려진 경로를 보고도 정부의 논의를 인정하면서 최대한 피해를 막아보자는 싸움을 할 것인가?
우리는 실제로 대다수 민중들의 노후소득은 보장도 못하면서 그렇게 많은 돈을 쌓아두고 어디에 쓰려는 것이냐고 물어야 한다. 따라서 더 많은 돈을 내라는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따라서 받는 돈도 줄일 수 없다고 하는 것이어야 한다. 결국 현재 국민연금을 둘러싼 투쟁은 연금을 활용하여 금융적인 팽창의 원천으로 삼으려는 신자유주의 공세와의 싸움이다. 민중들의 안정적이고 완전한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대안의 원칙은 민중의 삶을 위기로 몰아넣는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맞선 치열한 투쟁의 지난한 과정을 통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그렇다면 현재 국민연금 개편안을 둘러싼 싸움 또한 이 방향성 하에서 시작해야 한다. 보험료를 올리고 받는 돈을 줄임으로써 발생할 민중들의 삶의 위기는 은폐한 채, 재정만 채우고 보자는 현재의 개편안에 대한 반대, 연금기금을 금융시장의 원천으로 삼으려는 일체의 시도에 대한 반대를 출발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현재의 국민연금의 개편안은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연금 개편안을 저지하는 투쟁은 기업연금의 도입을 저지하는 투쟁과 더불어 사적연금을 확대하고 연금을 금융화 전략에 활용하려는 일체의 시도를 반대하고 막아내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PSSP
주제어
빈민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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