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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9.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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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출산장려정책의 허구성을 비판한다

김정은 | 편집부장
지난 8월 11일 '출산안정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이 법안에 따르면 호적법 제 49조의 규정에 의한 출생 신고 시 세 번째 자녀부터는 양육에 필요한 비용을 해당자녀가 만 18세가 될 때까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출산 비용에 대해서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조세를 감면해주고 아동수당도 지급한다. "최근의 출산율 급감세가 계속된다면 전체 인구는 2024년부터 감소하면서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 등 각종 부작용이 심각해질" 전망이라 이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함이 이 법안의 취지라고 한다. '건전한 결혼문화 정착과 출산안정에 관한 정책'을 심의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아래 출산안정정책심의회도 두기로 했다.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쯤 되면 우리나라 여성들이 아기를 낳을 만 할 것인가' 우리는 회의적인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급격한 출생률 하락에 정부는 급기야 셋째 자녀 양육비 지원이라는 처방까지 내놓은 마당이지만 아이 한 명을 양육시키는데 한 달 평균 40-50만원이 소요되는데, 이에 훨씬 미치지도 못할 정부의 양육비를 받겠다고! 누가 100만원 이상의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두 명 이상의 아이를 낳으려 할 것인가. 그다지 실효성 없는 출산 장려 정책을 내놓고서 오히려 정부가 노리는 것은 출산율 저하에 대한 책임을 여성들이 이기적으로 편의만을 생각하며 아이를 낳지 않는 것으로 돌리면서 다시금 가족과 그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출산안정법안' 이 진정 출산율 저하에 대한 대응책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정책이 자체로 실효성이 없다는 것에 있다기보다는 출산율 저하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출산파업'이라고까지 불리는 우리나라의 세계적으로 낮은 출산율 저하의 원인을 폭로하면서 정부의 대책의 한계에 대해 비판할 것이다.


출산 장려 정책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정부의 급박한 사정

현재 우리나라는 출산율의 지속적인 감소와 평균수명 연장으로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7월 10일 세계 인구의 날(11일)을 맞아 발표한 '세계 및 한국의 인구현황’에 따르면 여성 1명이 가임기간 동안 갖게 되는 평균 출생아 비율인 합계출산율이 1970년 4.53명이었던 것이 2000년 1.47명, 2002년 1.17명으로 급격하게 떨어져 현재 세계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반면 의학 발달로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19년 14.4%, 2026년 20.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어 이러한 추세라면 2019년이면 '고령사회', 2026년엔 '초고령사회' 에 진입할 전망이다.
고령화와 아울러 출산율 저하는 생산가능연령인구(15~64세) 부족으로 이어져 노동인구 부족, 노인부양 부담 증가, 연금기금의 고갈 등의 측면에서 사회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에 대한 대응을 마련하는 것은 자본과 정부측의 사활적인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노동력 부족이라는 추세에 정부는 이주노동자 고용을 허가하는 것, 여성인력 활용방안을 제기하는 것 등으로 지속적으로 대응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국민연금 개정 방안에서 안정적인 노후 소득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애초 연금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고령화와 기금 부족의 이유를 들어 노동자 민중에게 부담을 지우는 정부의 대응에서도 볼 수 있듯이, 노동력 부족에 대한 여성인력 활용방안에 있어서의 자본과 정부의 대응은 자본의 위기와 재생산의 위기를 지연시키기 위한 여성노동력 착취 방안에 다름 아니었다.
출산율 하락과 노령화가 자본과 정부의 사회재생산의 위기라는 것은 명확하다. 그러나 여성이 출산을 기피하는 것이 여성 자신에게도 그 자체로 위기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성이 자녀를 적게 낳는 것보다는 여성이 왜 출산을 줄여야하는 궁여지책을 쓸 수밖에 없는지 그 속내를 살펴보는 것이 지금의 여성들에게 필요한 대책이 무엇인지를 밝혀줄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야기한 여성의 이중노동 증가가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다

실상 출산율 저하는 남한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목격되는 세계적인 경향이기는 하다.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에의 욕구와 가치관의 변화 등과 맞물려 여성들의 초혼 연령이 갈수록 높아지거나 -20대 미혼율은 90년 50.8%에서 2000년 63.2%로 급증했다- 독신여성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고 결혼한 여성이 상대적으로 출산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적 추세를 감안하더라도 남한이 세계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가질 수밖에 없는 특수한 상황에 주목해야한다. 여성들의 삶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가정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부담' 과 '육아와 자녀교육' 이라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IMF 외환위기 이후 추진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동반하는 노동의 불안정화, 공적 서비스의 축소라는 파괴적인 양상에 남한의 여성들은 적나라하게 노출되어있다. 적은 비용으로도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는 여성노동력에 대한 자본의 수요와 노동인구의 감소에 따른 여성인력 활용 방안 필요성이 높아지고, 경제위기 때문에 가계의 생존을 책임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따라 여성의 노동시장으로의 유입은 상당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경제활동은 늘어나고 있는 반면, 재생산의 부담은 줄어들기는커녕 의료, 교육 서비스와 복지의 축소로 더욱더 여성의 이중부담은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양육 문제도 양육의 사회화가 아니라 좋은 서비스의 사립 시설을 육성하는 '상품화'를 통해 사적 부담만을 증가시키고 있다. 그나마 사적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위 '친정/시어머니' 의 도움을 받는 것인데, 이마저 연로한 나이에서까지 여성은 무급노동을 착취당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에 놓여있다는 점에서 매우 씁쓸한 현실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여성들은 자녀수를 줄여서 교육비, 의료비 등의 부담을 줄여야만 생존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이는 세계 최저 출산율 1.17이라는 지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여성 관련 정책 비판

자본축적과 재생산의 위기를 지연시키기 위해 정부는 여성의 고용조건과 양육에 대한 정책적 지원들을 제시해왔다. 김대중 정권은 99년 성희롱과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 제정, 2001년 모성보호법 개정 등을 통해 '가정과 직장의 양립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위한 법 제도적 틀을 갖추었고, 이러한 흐름은 노무현 정권 하에서도 일관되게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1998년 IMF 경제위기 당시 1.47이었던 합계출산율은 김대중 정권의 정책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1999년 1.42, 2000년 1.47, 2001년 1.30, 2002년 1.17로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더 이상 이러한 정책들로는 여성의 과중한 부담을 덜어낼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본의 위기 비용 전가를 흡수하는 완충제 역할을 해온 여성의 역할을 인식하고 활용하려는 자본과 정권의 전략이 여성운동계의 요구 투쟁의 성과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가정과 직장의 양립' 이 매우 어려운 현실의 상황에서 그나마 한계적인 지원일지라도 나은 것 아니냐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령 정부 정책의 성과로 출산율이 일정선까지 오른다면 정부에서는 출산장려정책이라는 혜택을 언제고 다시금 철수할 수 있다는 점을 예상해본다면 이러한 정책이 결코 여성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명확히 견지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러한 대응책의 한계는 여성의 직장생활과 가사노동이라는 이중부담을 전제하고서 그 하에서 '여성이 두 가지 역할 모두를 펑크 내지 않고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로만 논의가 한정된다는 데 있다. 가사노동이 가족 내에서 여성의 역할로만 부담 지워지는 지금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대안이 아니고서는 여성들의 상황은 전혀 변화될 수 없다. 첫 번째 자녀부터 양육비를 지원해주는 것마저도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양육의 사회화가 아닌 질 좋은 사립 시설로 대체되는 상품화 또한 그에 따르는 비용부담이 온전히 가족과 여성에게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한계적인 것이다. 출산의 부담을 줄일 수밖에 없는, 자본의 위기 대응 비용을 더 이상은 감내할 수 없는 극한적인 상황에까지 여성들이 내몰리고 있다는 지금의 현실에 '가정을 지켜라', '가사노동을 더 잘 수행해라' 라는 이데올로기적 공격으로나 사탕발림과도 같은 정책들로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이다.


여성노동권을 쟁취하고, 재생산 노동을 사회화해야 한다

경제위기나 구조조정이 강제한 노동의 불안정화는 소득 감소와 실업률의 증가를 초래했고,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들이 여성들로 하여금 결혼이나 출산을 기피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성들이 가계의 생존을 책임지기 위해서 노동시장에 진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가정에서의 직장생활과 가사노동에 대한 병행이 주는 이중부담의 과중, 공적 서비스 축소로 인한 재생산비용 부담, 고용 및 임금에서의 성차별 등으로 여성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고통스러운 상황을 더 이상은 감내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여성들만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위기와 직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출산율에 대해 정부측에서 정책들을 내놓는 것과 이것이 사회적으로 거론되는 것만 보더라도-과거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 오늘날의 '셋째 아이까지 낳아 양육비 받자' 등등-출산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재생산 역할을 수행하는 성질의 것임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여성이 그러한 중요한 사회적 재생산 노동을 담당하는 주체라는 것 또한 명확하다. 그러나 이러한 출산과 양육의 사회적인 성격에도 다시금 여성이 각각이 속한 가족이라는 단위에서 알아서 수행해야하는 개인적인 더구나 여성의 일로만 취급되고 있다. 여성은 노동과 출산과 양육에 대해 어떠한 권리도 향유하지 못한 채 의무만을 수행하기를 강요받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재생산의 위기를 저임금, 장시간 여성노동 착취와 재생산 노동의 상품화로 지연시키려는 자본의 전략에 맞서 여성 노동권 쟁취,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라는 진정 여성이 자유롭게 노동할 수 있고, 출산과 양육에 대한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근본적인 요구가 제기되어야 한다.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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