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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시에 나타난 공간, 그리고 이미지

김예니 | 편집부장
현대시의 아버지는 뭐니뭐니 해도 정지용이다. 우리나라 시사(詩史) 상, 1930년대 한국 현대시에 시적 완벽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1920-30년대 카프의 목적의식론적인 문학에 대항하여 예술의 독자적인 자리를 부여하기 위해 어떤 세력과도 타협하지 않았다. 물론 그의 행적에서 그 이유를 예측하기 어려운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문학’지의 동인으로 참여했다는 사실과 월북처리 된 배경이 그것이다.(구인회에 참여한 사실도 있으나 구인회가 어떤 조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많아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사건으로는 그의 정치적인 입장을 재단할 순 없는데, ‘시문학’지가 지속적인 활동을 하지도 못한 상황이며, 그 당시 정지용의 입지는 대(大)선배였기에 시단의 신인이었던 박용철, 김영랑과 함께 어떤 문학적 활동을 했다기보다는 이름을 함께 걸고 조언을 해준 정도로 봐야할 것이다. 또한 6.25사변으로 정치보위부에 구금되었다가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월북처리 되었던 것은 정지용뿐만이 아니라 당시 많은 작가들이 월북을 했음에도 그 이유를 짐작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실 이 문제를 다시 다룬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데 그 동안의 정치상황이나 사회적 조건이 이미 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이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음을 쉽사리 예측할 수 있다.
그의 언어적 감각과 이미지 구사의 현대성을 들어 그를 극찬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의 이미지 구사(기교)가 결국 사상과 내용의 포기라는 의미에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정지용은 한국 현대시에서 절대적인 위치, 그 원류에 해당한다.
그의 시를 대표작인 ‘향수’와 ‘바다2’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우선, ‘향수’는 정지용 초기작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정지용의 초기작에서 공통적으로 엿볼 수 있는 것은 고향상실에 대한 것이다. 동시를 비롯한 초기시의 경우 유년을 보낸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그려지고 지금은 없는 고향에 대한 기억을 생생히 떠올리면서 고향 상실의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 기억은 지용을 위로하기도 하고 새로운 공간으로 도피하게도 한다. 예를 들어 ‘카․페․프란스’의 3연에서처럼 이국적인 이름의 ‘카․페․프란스에 가쟈’거나 9연처럼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라는 고백을 하는 대목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시대적 상황에서 오는 고향상실의 이미지가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정지용이 그토록 돌아오고 싶어하던, 혹은 잃었다고 생각하던 고향은 현재에는 없는 고향이기에 끊임없는 상실로 이어진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느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고향 전문-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향수 전문-

고향상실의 시적 이미지들은 차마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잃음이다.
고향을 생각하는 그 향수는 밖에서 안으로 향한 역방향성을 나타내지만 바로 그 고향은 안에서 밖을 나가려는 꿈의 공간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곧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동경과 직결된다.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향수는 곧 고향에서 밖으로 떠나고자 하는 동경의 반대 감정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지용은 고향을 떠나있을 때는 향수를 느끼지만 고향에 돌아와서는 '머언' 타향에 대해 동경을 한다. ‘향수’에서 나타난 고향은 실개천, 질화로, 넓은 벌, 따가운 햇살, 흙 등 이러한 요소들의 원초적인 이미지가 고향이라는 공간을 구성한다. 결국 현재는 다시 이전처럼 구성될 수 없는 것에 대한 향수와 이 공백을 체감함으로써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고향을 만들기 위한 여정에 올라야 하는 것이 시인으로서 그의 사명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공간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항구를 배회하는 형태로 시를 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시공성은 공간의 무차별적인 확장으로 나아가 바다로 이어지다가 이후에는 종교적인 시로, 그리고 자연(산)을 대상으로 하는 시로 나아간다.
어쨌든 그가 고향 상실을 인식한 이후 찾은 공간은 바다다. 바다와 시각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좀 더 순수한 세계를 구현하고자 했던 지용이 찾은 바다는 열린 세계를 의미하는 공간이다. 이 바닷물은 시인의 영혼을 밖으로 노출시켜 시인의 가슴속에 간직된 고유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나게 한다.

바다는 뿔뿔이
달아나려고 했다

푸른 도마뱀떼 같이
재재발렀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흰 발톱에 찢긴
산호(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가까스로 몰아다 부치고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시쳤다.

이 앨쓴 해도(海圖)에
손을 씻고 떼었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구르도록

회동그란히 받쳐 들었다!
지구(地球)는 연(蓮)잎인 양 오므라들고...펴고...

-바다2 전문-

이 시의 이미지 주체는 바다다. 바다를 시적 체험으로 나타낸 시이다. 이 시는 생동감이 넘치는 바다의 순간적인 인상을 시각적 이미지로 묘사하고 있으며 '푸른 도마뱀' '흰 발톱' '붉고 슬픈 생채기'등 색채어의 등장은 바다의 시각적 이미지를 더욱 선명히 해주고 있으며 특히 푸른 파도의 빠른 움직임을 '푸른 도마뱀 떼'에 비유하여 파도의 인상을 부각시키고 있다.
'바다'라는 정지용의 인식의 공간은 바다를 체험함으로 감각의 재생을 가져와 바다의 이미지를 '도마뱀' '힌 발톱' '연닙'의 간접 이미지와 '산호', '해도'의 직접 이미지로 표현하여 시적 상상력을 열어주는 물의 이미지에 관념을 제시하기보다는 시적 체험으로 인한 시각적 이미지 그대로 바다를 노래했다. 직접 이미지보다 간접 이미지가 바다의 생동감을 실감 있게 표현했다. 즉 바다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바다와 떨어진 소재를 선택했을 때 오히려 바다의 이미지를 선명히 해주는 역동성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표현과 이미지 구사의 현대성이라는 업적과는 달리 그의 시 세계는 당시 유학생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고향과 근대의 충돌이 빚는 갈등을 내재화하거나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음에도, 거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이향과 귀향의 체험을 사적 비전으로 제한해버렸다. ‘바다2’에서 이 시를 쓴 화자의 위치는 어디일까 생각해보자. 아마 인공위성쯤 되지 않을까. 그래서 바다와 관련한 모든 감각은 훌륭하게 살아나고 있지만 남는 것은 그 재주일 뿐, 거기에는 어떤 역사 의식이 자리할 틈이 없다. 화자가 현실에 서 있지 못한 채 신처럼 아래를 굽어보면서 시인의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만큼 공간을 압축하고 있지만 이 공간압축은 고향을 버리고 근대를 향해 나아가는 화자의 낭만적 자신감이 외화 된 형식이라 할 것이다. 고향 없음과 근대지향이 등가 되는 것을 볼 때, 당시 근대화가 내뿜었던 광휘의 정도를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근대화를 향하는 고향 없는 자들의 고뇌는 흔적조차 사라진 채, 다만 낭만적 감성이 이를 대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지용 시의 아쉬움이 있다 할 것이다.

다음은 시인 백석을 만나보자.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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