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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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10.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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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 병원에서

박준도 | 사무처장
1. 정신을 차렸을 때, 한 귀퉁이에 주저앉아 있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니 구토를 참을 수 없었던 시간이 스쳐갔다. 쏟아져 나온 오물로 몸은 이미 만신창이었다. 몸을 가눌 수가 없었고, 정신은 혼미했다. 또 정신을 잃을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도 없었고, 밖은 잠겨 있었다. 팔을 뻗어 문을 밀고,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잡아당기며 몸을 끌어 당겼다.
복도를 지나 빛이 비추는 계단에 다다르자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움을 요청했지만, ‘젊은 놈이 대낮부터 술 처먹고…’ 혀를 찰 뿐이었다. 누군가 엉금엉금 바닥을 기는 오물의 젖은 손을 잡아 준 것은 한참 후였다. 어딘가에 전화를 거는 듯 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몇 사람이 내 몸을 들었다. 무언가 내 몸을 묶었고, 이내 시선은 초점을 놓쳤다.

덜컹이는 움직임에 잠을 깼다. 누군가 오물에 젖은 옷을 벗기고, 내 몸을 담요로 감싸고 있었다. 또 구토가 일었다. 눈을 위아래로 젖히며 점심때 먹은 게 뭐냐고 물었다. 순댓국. 의사는 빠르게 조치를 취했다. 보호자를 찾았지만, 소리는 점점 멀어졌고 난 자취방 전화번호만을 겨우 전했다.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함께 자취하는 친구였다. 병원 관계자들은 보호자냐며 그를 채근했고 어머니에게 연락했다고 대답했다. 시선을 고정시킬 수 없었던 건지, 기억을 못하는지 모를 시간이 지났다. 어머니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렸고, 의사는 식중독인 듯하다며 검사결과를 기다리자고 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그 의사는 주저하는 목소리로 결과가 이상하다며 큰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유했다. 백혈구 숫자가 줄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19 구급차는 무료지만 병원 구급차는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를 실은 응급침대가 급하게 밀리기 시작했다. 옮겨졌는지도 몰랐는데, 다른 곳이었다. 한 의사가 내게 다가와 내 눈을 치켜 올리고는 "C.T! C.T!" 다급하게 외쳤다. 역겨운 고무냄새가 풍기는 호스가 코끝에 놓여졌다. 산소니 코로 호흡하라고 했다. 아무것도 내보낼 것이 없는데도 구토는 멈추지 않았다. 몇 사람의 얼굴들.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눈앞에는 녹색 가운에 비닐로 덮은 벙거지 모자의 어머니 얼굴이 보였다. 모든 이들의 복장이 그랬다. 어머니 말고는 아는 얼굴이 없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여러 호스와 감지선이 환자의 생명을 지탱하는 병실이었다. 본적도 없는 병실이었지만, 두려워할 새도 없이 덜컹이는 움직임과 함께 다시 기억을 잃었다.


2. 머리가 짜개질 듯 아팠다. 고통스런 표정에 놀란 간호사가 황급히 주사를 세웠다. 곧 표현하기 어려운 만족감이 밀려왔다. 허공을 나르는 나른함. 세상을 나르고 있었다. 이러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러다 잠이 들면 깊은 수렁이었다. 머리가 붕대로 감싸여 있음을 안 것은 한참 후였다.


밤인지 낮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눈을 뜰 때마다 사람의 손길이 느껴졌다. 누군가 늘 내 손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손은 마치, 깊이 잠든 나를 깨우는 손이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연민으로 잡는 손이었다. 보호자의 출입마저 통제하는 병실에서 두려움을 털도록 꼬옥 부여잡은 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상에서 나를 움켜쥐는 손들이었다.

정신을 되찾을 때마다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밖의 동료들이 전해 준 것이라며 간호사 분이 헤드폰을 꽂아준 기억이 났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친구들이 많다며 뭐하는 사람이냐고 했다. ‘학생.’ 단발마로 한두 마디 대답할 기력은 있었다.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표정을 짓다가 무슨 음악이냐며 내 귀에 걸쳐진 헤드폰 하나를 빼어 듣는다.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에 집중하다 몇 마디 가사를 알아들은 듯 했다. 그리고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겠다는 눈인사를 보내며 헤드폰을 돌려주었다.
침묵을 밀어내는 소리였다. 아주 멀리서 들렸지만, 이내 아주 가까이 들리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동무들이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심연의 어둠에서 나를 깨우는 소리였다. 같은 음악이 반복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한곡만 기억하는 것일까. 더듬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또 들려왔다. 4박자의 단조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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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의사들은 나를 기계음 가득한 병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고, 좀 더 많은 며칠 후 나는 병원의 현관문 언저리를 거닐었다. 그리고 더 많은 며칠 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대와 함께 있기에 내 삶은 더욱 의미가 있고,
그대와 함께 걷기에 우리 갈 길이 뚜렷해지네.
사무치는 그리움 따라 밤새도록 비바람 불더니
창밖의 키 작은 목련 꽃이 하얗게 봄을 피웠네

꽃다지 1집, ⌈창살 아래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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