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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10.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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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교육비평-박영진.hwp

대학의 기업화는 청년 실업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박영진 | 진보교육연구소 대학교육 분과장
참을 수 없는 대학의 기형화

사회진보연대를 읽는 대부분의 진보적인 사회인들은 현재 대학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는 대학에 특정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맞춤학과’와 교육과정과 연계된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학교기업’, 산학협력사업을 총괄하는 독립법인인 ‘산학협력단’ 설립이 가능해진다. 즉 대학들은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들과 계약을 체결하여 이들이 요구하는 교육과정으로 편성한 맞춤학과인 계약학과나 학부를 설치, 운영할 수 있고 계약학과의 학생선발은 산업체에 필요한 인력을 선발하기 위한 다양한 일반전형과 특별전형 원칙이 적용되어 대학 입학정원의 3%안에서 정원외로 운영된다.
벌써부터 자동차정비공장, 제빵회사, 디자인용역회사와 같은 특정학과나 교육과정과 연계된 분야의 제품을 생산,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학교기업들이 내년 3월1일부터 설립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이유는 대학시장화로 개편하는 분위기를 타고 얼마 전 국회에서「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산교법법률안)」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산업교육진흥법의 개정안이라고 볼 수 있는 「산교법법률안」에 담긴 핵심내용은 기업연구소, 정부출연연구소를 대학 내에 설치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세제혜택과 행■재정적 지원방안을 강구하고 사립학교법상 할 수 없었던 교비회계(수업료, 납부금)을 쓸 수 있으며, 대학의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학 내 산학 협력단을 구성하여 대학교수 소유의 지적재산권을 수탁관리하고 대학 안에 설치■운영중인 실험실 공장이나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을 할 수 있다.
「산교법법률안」이 대학의 연구기능, 교육기능, 비판기능을 모두 무시하고 대학을 단지 이윤추구의 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문제점에도 그동안 대학사회 내에서는 「산교법법류안」에 대한 문제제기가 거의 없었다. 이는 그동안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하여 대부분 사립대학에 대한 국가지원이 대폭 축소되고, 국공립대학을 중심으로 선별적인 재정지원이 이루진 결과 사립대학들의 재정곤란을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정부는 「산교법법률안」을 제정하면서 “대학들은 산학협력단을 통해 학교기업이나 교수들의 연구활동을 통한 지적재산권 등 교내 모든 경제활동으로 발생하는 수익을 대학 별로 회계로 처리하고 대학의 교육과 연구 등 발전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사립대학들은 서로 산학협력단을 만들어 대학에서 이익사업을 하려한다. 그러나 효과는 사립대학에서 생각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산학렵력단을 만들어 신기술을 개발하여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대학은 몇몇으로 한정되어 있고, 신기술 연구개발비만 하더라도 기업체가 12조 3천억 원인 반면 대학은 1조 7천억 원 밖에 되지 않아 기업에서 신기술을 개발하려는 것과 상대도 되지 않은 조건이다. 때문에 산하협력단을 통해 사립대학의 재정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별로 효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교육을 위한 국가의 재정투자와 지원을 방기하는 것을 합리화하면서 대학이 기업의 논리에 따라 운영되어 대학과 교육의 본질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뿐이다.
「산교법법률안」이 별 저항 없이 통과된 또 다른 이유로는 대학생 실업이 증폭되면서 대학의 교육과정이 직업과 연계되기를 기대하는 심리 때문이기도 하다.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신규채용이 줄어들고 정리해고가 강화되어 실업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얼마 전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만 보더라도 졸업한 청년4명의 한 명 꼴로 취업을 아예 단념하여 ‘청년백수’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실에서 「산교법법률안」의 제정은 대학과정에서부터 미리 취업을 준비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대학기업화가 청년실업을 해결한다?

“경기불황을 극복하고 실업을 줄이기 위해서는 교육과 노동시장의 연계가 필요하다. 국가 간의 경제전쟁에서 살아나기 위해서 교육이 복무해야한다”라는 경제적 가치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학개혁이 과연 우리의 미래, 인류의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인가.
실업의 증가는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신규채용이 줄어들고 기업의 구조조정이 단행된 결과이다. 즉 고용창출에 실패한 경제정책의 문제이며 특히 청년실업은 전체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가운데 청년층 일자리가 더 크게 감소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기업들은 인력양성을 위해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신규인력 채용을 줄이는 대신에 즉시 활용 가능한 경력직 인력을 수시로 선발하기 때문에 청년층 채용비중이 점차 감소되면서 청년실업률이 증가하게 된다. 그 결과 1997년 채용자 구성비는 신규가 63.1%, 경력자가 29.2%였으나, 2001년에는 각각 22.1%와 62.3%로 역전된다.(300인 이상 사업장) 이렇듯 실업문제는 산업구조를 시장원리에만 맡기고 국가에서 고용창출에 실패한 결과이지 대학교육이 기업이 요구한 바를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은 아니다.
고용창출 없이 대학교육이 노동시장에 진출하는데 용이하도록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기업과 적극적으로 연계하는 방향으로 교육개혁이 이루어진다면 실업문제해결과는 무관하게 학교가 자본과 시장에 종속되어 기업의 이윤 창출을 위한 하위파트너로 전락할 것이다.
청년 실업의 문제는 일자리 창출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경쟁적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하게 만드는 사회구조의 문제이다. 많은 수의 학생들은 전공을 포기한 채 취업에 도움이 되는 기능훈련 학원에 다니거나, 기업체 입사 대신 고시라는 버거운 꼬리표가 붙은 공무원, 교사, 언론사 시험준비로 취업을 위한 격전을 치르고 있다. 채용정보업체 잡코리아는 최근 4년제 대학에 재학중인 2~4학년 학생 4,343명을 대상으로 대학생 취업 사교육 현황 조사를 벌여 26일 그 결과를 발표했는데, 조사결과 전체 응답자의 53%가 “취업을 위해 사교육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노동력의 수요는 공급에 미치지 못하며, 노동시장의 임금격차와 사회적 차별은 청년층이 노동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사교육비를 들여서라도 사교육기관이나 직업교육기관을 들어가게 한다. 절반 이상의 대학생들이 대학에서 학과 공부를 팽개치고 고시를 준비하거나, 사교육을 통해 취업준비를 하게되니, 대학교육은 파행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취업을 준비하더라도 졸업 후 취업하는 비율은 고작 55.4%이며, 이들 중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훨씬 적다. 생산기술직, 사무보조원, 환경미화원 등에도 대졸자 지원이 증가하고 있듯이 취업자의 절반 이상은 전공과 관계없는 직종에서 일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이제까지 안정된 전문직으로 인식되던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2000년을 전후하여 사법고시와 공인회계사 합격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섰지만, 이들 마저도 취업이 어려워 난감해 하고 있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근본적인 정책 없이는 대학교육은 왜곡되고 사회적 비용은 낭비되는 것이다.
또한 일부의 직종에 대해서는 대학교육을 반드시 거쳐야 진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혹은 기업적으로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산업현장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를 해결해야 한다. 이때 기업에서 필요한 노동과정에 필요한 노동인력을 훈련시키는 일은 기업가들이 해야할 일이지 국민의 세금으로 후원을 받는 교육 기관에서 해야할 일이 아니다. 현재처럼 기업에서 신규노동자를 위한 교육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모두 대학교육으로 떠넘긴다면,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간의 차별을 재생산하게 되며, 대학교육의 질은 계속 하락하게 될 것이다.

사회공공영역 일자리 창출로 대학개혁 유도를

심각한 일자리 부족으로 대학에서 배우는 내용과 관계없이 노동시장에 진출해야하는 현실에서는 대학개혁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순수예술과 같은 기초분야의 경우 전공에 기반을 두며 사회에 진출하는 기회가 전무하기 때문에 기초학문에 대한 외면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대학을 졸업한 뒤 갈 곳이 일반 기업체뿐인데, 철학, 문학, 역사학 등 기초학문 전공자들이 전공과목에 관심을 가질 리가 있겠는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기초학문과 순수예술을 전공한 학생들의 비-시장사회 진출 기회를 확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대학에서 전공하는 학문과 예술을 통해 갖게 되는 지식과 기술과 능력을 사회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지식생산의 연계망을 형성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조직을 마련하는 유일한 길은 사회적 공공성을 강화함으로써 우리사회의 공공영역을 본격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공공영역은 이때 초등학교, 중고등 학교, 대학교, 연구소 등 교육과 학문을 위한 사회적 기관들, 각종 학교도서관, 대학도서관, 공공 또는 전문 도서관과 같은 도서관, 그리고 박물관, 미술관, 미디어센터, 영상아카이브, 문화의 집, 문예회관과 같은 공공문화기반시설이다. 이런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내실 있는 운영을 할 경우 문학, 철학, 역사학, 인류학, 예술 등을 전공한 사람들이 진출할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예컨대 전국의 1만1천 학교에 있는 도서관에 두 명 이상의 사서를 배치할 경우 적어도 2만여 일자리가 생기며, 전국에 있는 6,000여 공공문화기반시설에 학예직이나 연구관 등 전문직을 5명 이상 배치하더라도 3만여 일자리가 생긴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사회에는 이들 시설이 태부족일 뿐만 아니라 개별 시설을 운영하는 실태도 말할 수 없이 열악하다. 그러나 GDP가 세계 12위인 지금 우리의 사회적 공공성을 현재 상태로 방치할 수만은 없다. 외국의 경우 지역공동체마다 도서관을 두고서 지역문화의 산실로 만들고 있는데 우리도 시■군■구, 그리고 면 단위까지 규모는 작더라도 도서관을 운영하고 적절한 수의 사서를 배치한다면 당장 수만 명의 사서요원이 필요해진다. 이런 식으로 문화의 집, 문예회관, 영상아카이브, 미디어센터, 각종 미술관, 각종 박물관의 수를 늘이고 또 운영을 내실 있게 할 경우 수십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엄청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공공성을 구축하는 요구투쟁을 벌이면 기초학문을 전공한 학생들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고, 이것이 기반이 되어 대학도 시장에서만 통용되는 지식과 기술을 생산하라는 압박에서 벗어나서 공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지식을 생산할 채비를 차릴 수 있을 것이다.

대학기업화의 흐름을 저지하고 대학교육을 정상화시키자.

대학기업화를 유도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마련한「산교법법률안」은 삶의 조건자체가 경쟁체제에 놓여있는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대를 걸게 만들지만 대학개혁도, 실업문제도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산교법법률안」은 대학교육의 모순을 은폐시키며, ‘몇몇 대학의 이윤추구’, ‘기업의 이윤추구’에 보탬이 될 뿐 설립부터 지금까지 공공성이 결여된 채 운영돼 온 실태를 해결할 수 없다.
현재 대학은 사교육비 부담이 크고 사립대학의 부정부패로 인해 대학 구성원의 교육권이 심하게 유린되고 있다. 또한 대학 서열화라는 고질적인 병폐로 인해 중등교육이 대학교육에 종속되어 전면적인 인간발달을 위한 교육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만든다. 대학이 학문의 공동체, 교수■학생의 공동체라는 말은 이제 생소한 느낌마저 든다. 오히려 우리에게 익숙한 대학의 모습은 취업을 준비하는 기관이고, 대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학과공부 보다는 취업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대학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일부분의 손질로만 가능하지 않다. 현재 대학교육은 고등교육의 역할과 임무조차도 방기한 상태이다. 대학이 제대로 된 인력을 양성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교육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경제적 가치만이 중시되고 기업가들의 입김에 의해 대학교육이 좌지우지된다면, 그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대학교육을 받는 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대학을 개혁한다는 것은 사회발전에도 중요한 일이며, 한국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중대한 일이다.
대학을 교육적 가치, 학문적 가치, 사회비판적 가치를 생산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학기업화를 유도하는 악법인「산교법법률안」을 당장 철폐하고, 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대학공공성은 추상적인 언명이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실현할 방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국공립대학이 현저하게 적은 한국의 특수한 현실 속에서 부실 사립대학을 국공립대학으로 전환해야하며, 사립대학도 고등학교처럼 공교육체제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한다. 과외, 학원등 사교육비를 포함하면, 국민들이 교육에 지출하는 교육비규모가 OECD국가 중 최대이다. 물론 교육비중 민간부담률이 높기 때문이긴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교육에 많은 비용이 투자되고 있는 셈이다. 이미 많이 투자되고 있는 비용에 비해 교육을 통해 생산되는 가치들은 상당히 미약하다. 대학의 공공성을 위하여 진행되는 대학기업화의 흐름을 제어하고 낭비적이고 파행적인 교육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투쟁이 필요하다.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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