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10.39호

가족은 여성에게 필수적인가?

송강현주 |
추석의 풍경

올해 추석은 집에서 지내던 할머니의 부모님 제사가 절로 옮겨 간 까닭에 조용하기만 했다. 하루종일 집안엔 할 일 없는 나만 덩그러니 TV를 보고 있다. 조용한 명절, 무언가 너무 허전한 느낌이다. 생각해보니 내 머릿속에도 가족은 함께 모여 화기애애 정다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관념이 있었나보다. 그런 생각을 지워버리고, 제사 음식 만드느라 기름냄새에 쩔어 있을 필요도, 모여드는 친척들 음식 챙겨주느라 바쁠 일도 없어진 엄마에게 축하를. 왕노릇 할 기회가 급격히 축소된 아빠에게도 축하를. 무언가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을 나의 모든 가족에게도.

내 또래의 남녀가 명절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결혼은 언제할 거니?”란 질문 때문이다. 나도 어느새 그런 질문을 받기 시작하는 소위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앞으로 계속될 고통을 미리 피하기 위해 이번에는 질문에 과감히 답했다. ‘나 결혼 안 할 건데... 혼자서도 잘살면 되잖아’ 엄마는 그나마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는 분위기지만(우선 선자리 알아보는 일을 그만 두셨다), 아빠는 그딴 소리할거면 당장 나가라신다. 언니는 혼자 살면 외롭지 않겠냐며 애 안 낳겠다는 남자를 찾아보라고 했다.

이쯤에서 질문하나!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하려고 할까? 그리고 남(자신이 아닌 사람)들 또한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결혼을 하는 이유는 압축적으로 말하자면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그 행복은 부모의 구속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안정된 생활의 욕구와 성적 욕구의 해소이기도 하다. 성인으로서 인정받는 것이기도 하고, 때론 누구나 한번은 결혼을 하니까 안 하면 불행해질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그러나 결혼이 실제로 그런 행복을 보장하는지 아닌지를 떠나서, 이런 생각은 모두 결혼은 사적인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어린 시절의 꿈들을 떠올려본다. 선생님, 간호사, 대통령.... 그리고 현모양처.

전통적으로 남한에서는 가족이 구성원의 복지를 전적으로 담당한다. 남성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버는 가장이고, 여성은 무임금 가사노동으로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들을 잘 공부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사회는 현모양처라는 이름으로 그런 여성을 이상화시켰다(예전엔 미스코리아 후보들의 절반은 장래희망이 현모양처라고 했다). 그러나 나에게도, 사회 스스로도 현모양처의 꿈은 오래 유지될 수 없었다. 신자유주의 재편으로 인한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 속에서 가장의 수입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족은 소수에 불과하다. 사실 가족임금이란 남한사회에서 극히 일부의 상위 계급에게만 실현되어 온 것이다. 많은 (기혼)여성들이 계약직, 파트타임과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있다. 이제 여성은 가족의 생계에도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여전히 가사와 육아, 타인(물론 이 타인은 가족이다)을 보살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여성이 가족과 일이라는 이러한 이중의 부담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출산율 1.3’은 생존적 본능을 보여주는 대표적 현상일 것이다. 아이러닉하게도 출산율의 하락과 이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 현상은 여성들이 수행하는 출산-양육을 비롯한 가족 구성원을 보살피는 역할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한다

가족의 위기, 가족의 해체는 익숙한 말이 되었다.

그러나 이혼율 증가, 동거형태의 증가. 이런 것들은 다만 전통적 가족형태와 다른 가족이 많아졌음을 의미할 뿐이다. 전통적인 가족 개념은 해체되어 가고 있다. 남한 사회의 가족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전통적인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급격한 변화를 경험했다. 이는 가구원수-자녀수와 노부모와 동거하는 가족의 수-가 감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전형적 의미의 핵가족뿐만 아니라 1세대 가구와 단독 가구도 증가하는 등 이미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
점점 많은 사람에게 결혼은 매력적인 것이 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결혼 적령기에 있는 많은 여성이 결혼을 포기하거나 늦추고 있다. 가족을 구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현실적 조건은 점점 강화되고 있지만 가족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개별 여성이 결혼을 선택하는 문제를 통해서는 여성이 가족의 억압과 착취에서 해방될 수 없다. 결혼과 가족은 결코 개인적인 무엇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에게 가족이 덜 필요해지기 위해

부재한 사회안전망과 강력한 가족주의로 인해, 우리나라의 가족은 가족 구성원의 응집력이 강하고 하나의 생존단위로 인식된다. 배타적 남녀관계와 배타적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유지되는 한 가족 외부의 타인에 대한 가족의 배타성은 극복되기 힘들 것이다. 입양이란 것이 아직도 쉽게 이뤄지지 못하는 현실도 혈연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을 거부하기 어렵다는 반증이다.
여성이 가족으로부터 자율성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경제적 능력뿐만 아니라 정신적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가 필요하다. 남성들의 경우 공/사를 구분한 영역을 구축하고 여성에 비해 사적공간 형성이 어렵지 않다. 여성들이 가족 외에 사회적 유대를 형성할 수 있는 다른 공간을 형성하기란 쉽지 않다. 30대 후반의 독신의 삶을 사는 여성이 친구들은 모두 결혼을 해 아줌마가 되어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현실적인 조건 상 그녀의 삶이 너무나 외로울 것이란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이제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의 실험들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호주제 폐지 등 가부장-이데올로기의 제도적 영향력이 점차 줄어드는 시점에서 기존의 가부장적 가족관계가 아닌 새롭게 재편되는 가족관계를 그려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생물학적 토대를 차치하고서라도 가족 내부의 친화력은 여자에 의해 유지된다. 여성이 중심이 되어 친밀감을 교류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그려보자. 여성은 자신의 일과 취미를 즐기며, 다른 가족구성원에게 자기희생이 아닌, 친밀감과 신뢰감을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

진짜 어떻게 살아야 ‘내‘가, ‘여성’이 행복해질 것인가?

그것은 독신일 수도 결혼일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고정된 형태의 대안적 가족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덜 필수적인 사회를 원한다. 그를 위해서는 가족에게 편중되어 있는 역할들이 분산되어야 한다. 육아와 가사노동이 사회화되는 것, 그리고 여성의 책임 하에 가족단위로 부과되었던 제반 역할들이 사회화된 상태. 그리고 이러한 조건에서의 적적한 관계와 삶의 방식이 개발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질문!
당신에게 당신의 가족은 무엇입니까?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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