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10.39호

統營(통영), 백석

김예니 | 편집부장
옛날엔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千姬(천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千姬(천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줏집의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六月(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박경리는 ‘김약국의 딸들’에서 통영을 일컬어 한국의 나폴리라 하였던가. 남해의 바닷가, 한려수도가 이어진 푸르디푸른 미항, 과거의 흔적들이 낱낱이 드러나는 낡은 항구가 있고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억센 억양을 생각해보자. 경상도 사투리로 ‘처녀’를 ‘처니’라고 발음하는 그곳에 유독 ‘천희’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들이 많고 그 수많은 ‘천희’들 중 한 여인을, 오래된 객줏집을 운영하는 어머니와 그의 어여쁜 딸을 떠올려보자. 남자는 그녀를 사랑한다. 남자는 서울에서 늘 통영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가끔 험하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통영까지 온다. 옛 여인들의 사랑은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고 투박하고 무뚝뚝하다. 벅찬 마음에 그 먼길을 단걸음에 찾아온 그이지만 막상 만난 그녀는 말없고 수줍고 무뚝뚝하다. 그 또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길이 없다. 다만 그녀의 오랜 객줏집,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방에 앉아 6월의 바닷가에 비마저 내리는 축축한 공기 속에서 모든 것이 불그레한 이미지로 보일 따름이다. 축축한 감촉과 불그레한 색감과 김냄새- 말없이 앉아있는 연인과 먼길을 달려온 무뚝뚝한 사내가 오랜 객줏집 마루방에서 만난 사건이 이 감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의 절망스런 설레임이 잘 드러나는 시다.
백석의 시는 짧고 어여쁜 말들로 가득하다. 백석은 우리 민족의 풍속이 고스란히 담긴 시어들을 중심으로 민족적인 색채를 내려 노력한 시인이다. 그는 북방 구석구석을 유랑하면서 시를 창작했고 그의 풍속 제시와 방언 사용은 보편적 질서에 대한 희구가 결여되었다는 당대 비평가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높이 평가받는 대목이다. 하지만 백석의 북방지향성, 북쪽 유랑의 근간에는 앞서 살펴본 ‘통영’이라는 시가 전제되어 있다. 실제 백석은 통영여인과의 연애가 좌절되면서 북쪽 유랑을 시작한다. 이는 남쪽에 대한 그리움의 또 다른 표현으로 드러난 것은 아닌가 생각될 만큼 통영과 북방유랑은 긴밀한 길항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는 북방을 유랑하면서 많은 시를 남겼다. 그의 시 중 아이의 시각에서 쓴 작품들은 모더니즘의 기법에 충실한 시로 ‘기억’을 매개로 고향과 가족을 환기한다. 그의 고향의 풍속제시는 의도적인 결과로 보아야 할 터인데, 그것은 단순한 감정절제나 이미지즘의 차원을 넘어서, 근대와 전근대, 고향과 현실을 날카롭게 대비시키거나 현실의 속악함 사이에 고향의 유족함을 의도적으로 병치시켜 몽타쥬하겠다는 의도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시에서 어른 화자가 현재 시점으로 고향 아닌 곳의 성격을 문제삼고 있는 시들을 잘 살펴보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왜냐면 그 안에는 현실이나 화자의 현재상태가 직■간접적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쓸쓸한 길

거적장사 하나 山뒷옆 비탈을 오른다
아-따르는 사람도 없이 쓸쓸한 쓸쓸한 길이다
山가마귀만 울며 날고
도적갠가 개 하나 어정어정 따라간다
이스라치전이 드나 머루전이 드나
수리취 땅버들의 하이얀 복이 서러웁다
뜨물같이 흐린 날 東風(동풍)이 설렌다

죽은 아이를 거적에 말아 장사지내기 위해 비탈길을 오르는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화자의 시선은 쌀뜨물같이 흐리다. 아무도 죽음을 애도하지 않고 있다. 다만 도적개가 뒤따를 뿐이다. 아마 아이는 배고파 죽었나보다. 이스라치, 머루, 수리취, 땅버들의 복(열매를 싸고 있는 솜털) 등은 전부 먹거리다. 가장 먼저 먹을 수 있는 땅버들마저 아직 복에 싸여 있기 때문에 아직 그 먹거리들은 먹을 수 없다. 따라서 이 시는 초봄의 곤궁으로 인한 아이의 죽음을 노래하고 있는 시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 연 쌀뜨물의 이미지는 바로 이런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처럼 현실의 결핍을 주로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 아이의 시선으로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시와는 대조적이다. 심지어 백석은 출산이라는 소재를 취급하면서도 사건자체보다는 이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화자의 적요함을 이끌어 내고 있다. 이것은 현실에 대한 어른화자의 고독감이 얼마나 앞서있는가 화자의 상태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寂境(적경)

신살구를 잘도 먹드니 눈오는 아츰
나어린 안해는 첫아들을 낳었다

人家(인가) 멀은 山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즞는다

컴컴한 부엌에서는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간호를 하고 있는 사람이 시아버지라는 사실에 출산의 쓸쓸함이 묻어난다. 이 시는 이미지의 나열이며 이 이미지는 쓸쓸한 풍경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인데 문제는 바로 이 쓸쓸함의 성격이다. 시는 출산이라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외딴 곳을 전전하는 화자의 쓸쓸한 내면을 환기하는데 바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의 유형들은 비록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의지적 기억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불쑥 되살아나는 회상, 즉 추억의 시적 방법으로 채용된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이 추억이야말로 ‘현재 세계에 대한 실망과 우수’가 만들어내는 과거에 대한 성찰인 것이다. 기억에 의한 이지적 과거상기가 그 과거의 뼈대만을 앙상하게, 그야말로 기억하게 한다면, 그 과거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대상에 의해 환기된 추억은 즉각적으로 우리를 그 과거 속으로 몰입해 가게하며 그 순간의 분위기(아우라)에 휩싸이게 한다. 따라서 그렇게 환기된 과거를 되짚음으로써 현재에 도달하기까지의 주체의 본모습을 진정으로 성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령 ‘흰 밤’이라는 시를 보자

흰 밤

옛 城(성)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어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1-3행까지는 배경이고 4행에서 달밤의 배경이 불러일으킨 회상이 드러난다. 달밤의 분위기가 겹쳐지면서 화자는 자연히 과거의 어느 달밤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시의 추억은 아이의 시선으로 쓴 시가 추억을 통해 유족했던 과거를 떠올리는 것과 무척 다르다. 오히려 묵은 전통의 무게에 짓눌려 하나의 삶이 압사당하는 광경을 목격한 체험을 백석이 갖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진실일 것이다. 하지만 백석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시인이 그의 과거를 문제삼는 이유를, 사적 체험으로부터 해방되려는 의지라고 본 벤야민의 생각은 이 성찰의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하게 해준다. 벤야민은 발레리의 말을 빌어, 시인이 과거를 문제삼는 거은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비로소 하나의 개성적 시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즉 하나의 주체가 늘 불수의적 과거를 환시키시는 자신의 체험을 성찰하여 그것을 시로 옮기는 작업을 할 때 비로소 그는 그 체험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의 시인이라는 역사적 존재로 규정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 사적 체험이 공적인 것으로 바뀌어 역사성을 획득하게 됨은 물론이다. 하지만 백석은 불모성으로서의 현재 근대 앞에 절망했다면 과거 회상을 통한 성찰로 나아가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백석은 의도적으로 나쁜 새것보다는 좋았던 옛것에 대한 집착에 머물러 버렸다. 바로, 작고 사소한 옛것 속에서 깊고 그윽하고 크고 높은 것을 발견하려 했던 것이다. 유년의 고향을 일반화함으로써 시작된 그의 이 퇴행이 그러나 거기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파탄이라는 점을 깨닫게 한 그의 최초이자 마지막인 성찰(시-흰 바람벽이 있어)이 그에게 높이 초월이라는 동경의 형식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민족의 시원을 찾겠다는 그의 시도는 결국 허무에 도달하고 말았지만 그의 시가 갖고 있는 독특한 미학은 아름다운 비관론이라 할만하다.PSSP

다음에는 박태원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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