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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1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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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시선-서창호.hwp

건설현장은 싸우고 있다!

서창호 | 대구지역 건설노동조합 교육선전부장
갈 대 2
-겨울, 금강에서

얼음장같은 침묵 속에서, 꺾여
무릎 끓을수록
아아! 이뻐라
더 깊이 박혀 할딱이는
뿌리, 우리들의 숨.

윤중호 [금강에서]


건설현장을 둘러싼 또 다른 이름들
건설현장이 있다. 도시에서 크고 작은 행사 개최가 결정되면 괜히 눈살을 찌푸리며 도시미관을 헤친다며 도시적 감수성(?)을 들먹이면서 늘 찬밥신세가 되어 어떻게 하면 외국인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나 해당관청이 고심하는 곳, 그런 곳이 건설현장이다.
건설노동자들이 있다. 일명 ‘노가다’라며 수많은 직업 군을 들먹이다 결국 할 것이 없으면 ‘노가다라도 하지’라며 건설노동자조차도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인 냉소와 푸대접을 지극히 당연히 여기며, 주 5일제를 구가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주 5일은 고사하고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일요일 새벽녘에 일을 나온 현장에서 관리자들의 격앙된 목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이씨, 박씨’라는 호칭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대명사가 되어버린 건설노동자가 있다.
건설자본이 있다. 그룹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대기업이라면 어떻게 하던 건설업에 진출하고자 몸부림치며 갖은 떡값과 향응이 당연시되며 투자금액으로 수천-수백 억과 수백-수십 억의 이름 모를 검은 돈이 흘러들어가 대선과 총선이 되면 이중 장부를 손질하는 손길이 유난히 바빠지는 곳에 건설자본이 있다.
건설활동가(조직가)가 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높이 불렀던 노동운동진영에서 ‘빡센 현장, 투여한 만큼 조직화의 성과가 제대로 나지 않는 곳’이라는 낙인 아닌 낙인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활동을 결의하는 활동가도 부담이 되어 한참이나 고민하지만, 새벽길을 달려 건설노동자들의 썩어 문드러진 가슴을 온 몸으로 껴안으며 건설현장을 낮은 자세로 응시하는 건설활동가(조직가)가 있다.

건설현장, 근로기준법은 없다?
수많은 건설자재로 무질서하게 널브러져 있는, 기본적인 산업재해 예방시설도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 건설노동자들에게 산재의 위험으로 연간 700여명이 사망하는 곳, 건설중간착취의 구조인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도급으로 건설노동자들은 당장에 죽음의 그림자가 눈앞에 어른거려도 일을 멈출 수는 없는 실정이다. 하루 일당도 돌아가지는 않는 도급으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일을 해도 늘 상습적인 임금체불에 시달린다. 저가낙찰제와 덤핑수주 그리고 불법 다단계 하도급으로 터무니없는 공사금으로 인건비도 돌아가지 않는 자금으로 공사를 하다가 중간업자들은 임금을 가로채 도망을 가거나, 아니면 고의로 부도를 내고 잠적하는 것이 임금체불의 주된 원인이다. 임금체불이 되면 노동청 근로감독관들은 마치 앵무새처럼 도급(성과급)은 사업자로 본다고 하면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민사재판을 청구하거나, 소액심판을 청구하라고 떠들어댈 뿐이다. 하루 일당도 돌아가지 않는 도급에 목숨을 걸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해 온 건설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은 법은 없다.

노사간의 단체협상마저 건설현장은 협박갈취
지난 10월 2일 전후로 주요 중앙일간지들은 일제히 민주노총 산하 노조간부 ‘건설현장서 금품 갈취’류의 대동소이한 제목을 단 기사를 실었다. 기사의 주요 골자는 ‘민주노총 산하 건설산업노조 간부들이 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며 단체협약을 맺은 뒤 공사의 문제점 등을 들춰내 신고할 수도 있다며 노조 전임자 활동비 명목으로 공사 현장마다 돈을 뜯어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갈 갈취범이 백주 대낮에 활보하는 것을 차마 두 눈을 뜨고 보지 못하는 공안검찰에 의하여 지난 10월 2일 대전충청지역 건설노조 간부 6명과 그리고 8일에는 천안지역 건설노조 간부 2명이 구속되었다. 경찰 관계자는 “단체협약 대상도 아닌 공사현장에서 일반 사업장과 같은 노조를 결성하고 전임비를 챙기는 것은 명백한 갈취 행위”라고 밝혔다. 그들은 건설현장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 말하고 있다.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활동하는 것이 불법이라며 생떼를 쓰고 있는 것이다.

건설자본과 공안세력이 건설현장을 침탈하기 시작하다!
3년 전 건설노동운동사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 있었다. 건설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노동기본법, 노동조합, 단체협약이라는 단어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혹은 펜대나 굴리는 사무직 노동자에게나 해당되는 소리라고 들었을 뿐, 건설현장은 여전히 노동조합의 무풍지대였다. 그러던 건설현장에서 2000년 10월 지난한 투쟁 끝에 경기도 일대에서 최초로 건설 노사간의 단체협약이 체결된 것이다. 건설노동자도 자신의 근로조건 개선 사안을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요구하고 쟁취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이를 모범사례로 하여 3년이 지난 현재는 대부분의 대규모 건설현장에서는 건설노동조합과 현장과의 단체협약이 체결된 상태이다. 단체협약 내용은 노동조합이라면 가장 기본적인 요구사항이라 할 수 있는 근로기준법 등 노동기본권 준수, 노동조합 활동보장 그리고 복지후생이다. 이러한 활동의 성과로 건설노동조합은 건설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확보하고 건설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공안검찰들은 법에 명시된 노동자에 대한 기본적인 권리를 인정하고 준수하라는 요구와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고발하겠다는 우리 노동자들의 경고를 공갈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건설현장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노동조합 활동을 인정치 않는 것과 한편으로 공갈․갈취라는 이름으로 건설노조를 비롯한 민주노조운동진영에 심대한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것은 건설노동자운동과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위상을 추락시키겠다는 것으로 공안검찰과 건설자본에게는 꽤 매력적인(?)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릴 수 있는 계산된 행동이요 탄압이다.
노무현정권 출범 후 대통령후보시절 내걸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보호입법을 제정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애초 약속은 헌신짝이 되어 버린 지 오래되었으며 노동부의 비정규노동관련 법안은 파견업종 확대/ 기간제 임시직 2년 허용/ 특수고용노동자성 인정 유보 등 노무현정권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확대하고 자본의 야만적인 시장의 논리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 게다가 공공연하게 대공장의 고임금으로 인하여 비정규직을 비롯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시달린다, 노동시장이 아직 너무 경직되어 있어서 자본의 세계화를 위해서 갖기에 노동조합의 반대가 심한 것이 문제라는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적당히 이용하면서 정규직 노동조합과 민주노조운동진영을 공격하고 있다. 즉, 노무현정권의 전체노동자에 대한 강경 대응이 공안․건설자본에게 호기로 작용하면서 정규직 노동조합을 공격하는 만큼 비정규 건설노동자들에 대한 노무현정권의 정국운영과 상관없이 건설자본과 공안세력은 건설노조를 과감하게 전면적인 탄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건설현장이다!
아직도 건설현장은 건설노동조합의 이름으로 건설현장을 바꾸어내기 위하여 열심히 조직하고 투쟁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건설현장은 70년대․80년대에 볼 수 있는 근로기준법, 법정 공휴일도 지켜지지 않는 채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권리조차도 누리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제야 건설노동조합은 하나 하나씩 이를 쟁취해나가고자 싸우고 있다. 800백만 비정규직 노동자 중에서 200만을 헤아리는 건설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이제 첫 걸음을 내딛으며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 건설노동자운동이다.
관리자에게 안전화 지급을 요구하는 것조차 너무도 부담스러웠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지금은 최소한 안전화를 지급하라는 요구는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참집에서 주면 주는 대로 먹을 수밖에 없었던 ‘개밥수준의 짬밥’에서 건설노동자들이 다른 참집을 비교하며 참집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작지만 중요한 변화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 건설현장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제 건설현장에서 건설노동조합의 역할과 과제는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건설자본은 건설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의 구심으로선 건설노동자의 조직, 노동조합 활동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건설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의 대표조직으로 건설노동자들의 요구와 투쟁을 예비하는 건설노동조합을 건설자본은 날카로운 계급적 본능으로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단순히 노동조합 간부 8명의 구속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설자본이 건설현장의 주도권과 건설자본의 배불리기에 눈에 가시 같은 건설노동조합을 탄압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 단지 구속자 몇 몇을 석방하기 위한 투쟁으로 또는 우리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으로 대응해서는 안된다. 이 사건을 3-4년 동안 내재되어 있었던 기업별 노사관행에 준거한 노동관계법의 공백이 일시에 폭발한 사건사고로 보는 시각은 더욱더 편협한 것이다. 분명 현재의 일련의 흐름은 공안을 외피로 하는 건설자본이 3-4년 동안의 건설지역노조의 성과를 일거에 무너뜨리면서 건설자본이 건설현장에서 그 동안 지역노조에 조금씩 양보하였던 현장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몸부림과 같은 것이다.
‘얼음장같은 침묵 속에서 꺾이던’ 건설노동자들이 ‘더 깊이 박혀 할딱거릴지라도’ 새롭게 움트기 시작하는 건설현장의 건설노동자들의 권리와 인간다운 삶에 대한 요구는 이제 더 이상 과거로 되돌릴 수 없다. 이제 건설노동자들은 낮은 목소리지만 부단히 싸우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낮게 엎드려있던 건설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쟁과 무소불위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건설자본의 길고 긴 싸움의 대장정이 시작되는 때이다. 문제는 이제 건설현장이다! PSSP
주제어
노동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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