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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1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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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시선-청구성심병원.hwp

노동권과 건강권을 향한 힘겨운 싸움

최용준 | 민주의료연합
1997년 말부터 시작된 청구성심병원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 대한 병원 측의 탄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난 6년 동안 반복되어 온 불법행위의 도화선이 된 임금체불과 불법해고는 말할 것도 없고, 용역깡패 동원과 식칼테러 같은 전근대적인 린치 행위에서부터 병원 직원들에게 교묘하게 사주한 집단 따돌림에 이르기까지 병원 측의 작태는 부당노동행위의 만화경(萬華鏡)을 펼쳐보인 듯한 것이었다. 그 결과는 “정신질환에 대한 집단산재 인정”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 대한 병원 측의 부당노동행위가 우울증 및 적응장애 같은 정신질환 발생의 원인이 되었음을 정식으로 인정한 것이다.

청구성심병원 사례는 요즘 같은 대명천지(大明天地)에 도저히 일어날 법하지 않은 벌거숭이 폭력 그 자체지만, 시대의 변화를 비웃기라도 하듯 야만적 노사관계가 여전한 것이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야만의 본질이 결코 유별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최근 이어진 노동자들의 죽음은 이러한 야만적 상황이 특수한 사업장에서, 유별난 노사관계 아래서만 있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끝 모르는 탐욕처럼 경쟁의 압력에 직면하여 고스란히 이윤을 거둬가려는 자본가와 경영자들은 비용을 절감하려하고 손쉬운 상대로 지목되는 것은 언제나 노동자들이다. 청구성심병원 노동자들은 이것을 1997년부터 만성적, 반복적으로 경험했고, 근로감독당국의 대응은 언제나처럼 지지부진하고 내키지 않아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노동권의 침해, 생존권의 위협, 이제 건강권의 기각으로까지 나타난 셈이다.

이것이 그저 “노(勞)와 사(使)”의 문제일 따름인가? 우리 사회의 노동 현장 어느 곳이든 이러한 야만이 지배하는 곳곳에서 노동자와 민중의 한숨이 새어나온다. 당국자와 관변 학자들이 경제의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진정으로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은 하루하루 살림살이를 힘겨워하는, 야만적 노사관계에 놓인 그 노동자들이다. 건강과 의료에서 생활인으로서 겪는 노동자들의 고통은 훨씬 직접적이다. 수익을 얻기 위해 병원은 아픈 사람들의 필요와 무관한 의료 서비스 제공에 유혹되기 십상이다. 즉,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만 수익이 큰 치료 중심의 고가의료 서비스, 비보험 의료서비스가 통제되지 않은 채 환자에게 판매되는 것이다. 결과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이 매우 많은 우리나라에서 이에 따른 비용부담은 전적으로 환자 개인, 그러니까 생활인으로서 노동자들이 짊어지게 된다. 이는 명백히 건강권의 위협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부담을 들씌우는 것이 보건의료의 세계화, 의료시장 개방 문제다. 정부가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공식화하면서 의료시장 개방은 1-2년 전에 했던 예상보다 한층 빨리 닥쳐왔다. 경제자유구역 실시와 함께 외국계 병원 유치가 논란이 되면서, 벌써 최근 몇 주 사이에 외국계 병원의 내국인 진료 허용, 민간의료보험 도입 문제가 빠른 속도로 의제화되기 시작했다. 별다른 변화가 없다면 그 속도감만큼 영리법인 병원 허용,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 폐지, 건강보험 강제가입의무 완화 같은 문제들이 다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또 하나의 부담이자 결정타일 수 있는 것은, 이것이 기존 병원노사관계와 국민의료에 미치는 영향이 문자 그대로 “혁명적”이기 때문이다.

영리법인 병원의 허용은 기존 병원노사관계의 질적 변화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아마추어 자본가들로서 의사들이 “사(使)”의 지위를 차지했다면, 이제 그 자리에 등장하는 것은 프로 자본가들과 경영진들이다. 병원 노동자의 다양성과 병원 노동조직의 복잡성, 힘겨운 병원노동조합의 현실은 변화에 대한 효과적 대응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서비스 생산의 상당 부분이 민간 병․의원에서 생산되는 보건의료 분야의 물적 기초를 생각할 때, 보건의료는 세계화 공세에 파괴되기 쉬운 “약한 고리”인 셈이다.

그래서 청구성심병원 투쟁이 놓인 맥락은 이 싸움의 도화선이 불붙기 시작하던 6년 전과 크게 달라졌다. 어쩌면 상황적 요인에 따라 싸움의 성패가 달라질 수 있었던 예전에 비해서, 시장 개방 시대의 청구성심병원 투쟁은 그것이 놓인 맥락 속에 이미 구조적 불리함이 새겨진 상태인 것이다. 올해 들어 청구성심병원 노동조합과 지역운동은 공청회와 선전활동으로 이 문제가 지역주민의 건강권과 명백한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주었고, 사상 초유의 정신질환 집단요양인정 투쟁을 통해 무시할 수 없는 투쟁의 이정표를 세웠다. 또 병원 측의 부당노동행위와 불법행위에 대한 사법적 심판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지금도 끈질긴 노력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감히 기대하건대, 많은 지원이 없는 가운데 벌어지고 있는 이 투쟁은 어렵지만, 틀림없이 또 하나의 작은 승리를 거둘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처럼 힘겨운 투쟁, 건강권과 노동권을 향한 쉽지 않은 투쟁의 양산과 만성화를 초래하게될 이 구조적 변화를 어찌할 것인가? 청구성심병원 노동조합의 투쟁은 힘겨웠지만, 그들은 “또박또박 하지만 악랄하게” 앞을 보고 걸어왔다. 조합원이 불과 수십 명에 불과한 이 작은 노동조합이 보여주고 있는 투쟁의 진정성. 그래서 구조적 변화에 맞설 수 있는 우리 노동자 정치의 역량 부재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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