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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1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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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오늘여성-갑자기.hwp

갑자기

호성희 | 편집실장
갑.자.기.

나는 정말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다.
선배언니가 예쁜 엽서 같은 난장2003 팜플렛을 건냈을 때, 나는 그냥 연극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날 저녁 파병반대 선전전이 있었기에 나는 연극 시작 30분전에야 출발했고, 공연 장소인 기독교백주년기념관은 운전 초행길이었다. 퇴근 시간이어서 길은 꽉 막혔고, 갑자기 비도 내렸다. “젠장, 종로는 또 언제 일방통행이 된거야?” 한번 잘못 들어선 길을 돌아가기 위해 나는 종로 주변을 한바퀴 돌아야 했고, 출발한 지 한시간이 넘어서야 씩씩거리며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지각까지 한 무례한 관객이었다. 다행히 연극이 늦게 시작해 내가 놓친 게 얼마 되지는 않지만...어찌되었건, 나는 내가 본 연극 한편, 아니 ‘그녀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장애여성, 집밖으로 뛰쳐나와 혼자 살기

객석은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출입구, 무대 뒤편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연극을 보기 시작했다.
“오빠, 저 나가서 독립해서 살고 싶어요.”
중증 장애여성(배우의 대부분은 실제 장애여성들이다.)인 예진이가 같이 살고 있는 오빠에게 조심스럽게, 느리지만 한 어절 한 어절씩 또박또박 말을 꺼낸다.
“아니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냐?!”
이미 35세인 예진은 오빠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고, 내가 놓친 부분이었지만 앞서 독립을 선언하고 한판 난리를 겪은 효리 언니와 함께 독립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아가씨, 제가 뭐 섭섭하게 한 게 있어요? 혹시 집이 답답해서 그러신다면, 조금만 참으세요. 곧 더 넓은 3층집으로 이사하게 될거예요”
그런 말이 아니다. 3층집으로 이사간다면 안 그래도 거동이 불편해 늘 집에만 있어야 했던 예진은 이제는 누구의 도움이 없이는 밖으로 나갈 수도 없게 된다. 예진은 자기 나이가 벌써 35살이고, 나도 이제 직업도 갖고, 독립해서 혼자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말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아가씨 혼자서 어떻게 나가 산다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 입장도 생각해 주셔야죠. 따로 살면 남들이 저희들을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더군다나 나가 사시면 생활비를 드려야 하는데...아가씨도 아시겠지만, 아이들 교육비다 집 마련하는 걸로도 벅차요...”
조카가 “애자 고모~”하고 달려온다. 아빠에게 꾸지람을 들은 조카는 “우리 동네아이들이 고모를 그렇게 부르는데?!” 그들은 예진이의 말은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그들은 또...그리고 당연히...예진이만 남겨두고 외식하러 나간다.
예진은 또 집 지키는 개가 된다.

집안의 반대가 어떻든 효리와 예진은 독립해서 살 집을 활동보조인과 함께 구하러 나섰다. 경쾌한 바이올린 소리와 함께 집을 찾아 나섰지만, 난관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집에서 얌전히 살지 뭐 하러 나와서 살려고 하냐는 부동산 중개인과 한판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집 보러 가는 길에 있는 높은 계단이 나를 넘을 수 있겠느냐고 으름장을 놓는다. 집 구할 돈이 있어도 집주인은 싫어하는 눈치고, 동네 사람들은 아이들 교육에 문제가 생긴다며 반대한다.

그녀들이 춤을 춘다. 그녀들이 몸짓을 한다. 휠체어에서 그녀가 바닥에 내려지고, 휠체어에서 그녀가 내려온다. 나는 무대 뒤편에 그것도 무대의 삼분의 일밖에 볼 수 없었지만 그녀들이 무대 뒤로 돌아설 때 표정을 볼 수가 있었다. ‘무대 앞에서 볼 수 있었다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그녀들의 몸짓을 정면에서 볼 수 없었던 게...그렇게 막이 내렸고 박수가 이어졌다.


장애여성, 발라당 홀라당 연애질하기

연극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회자 두 명이 나와서 앞서한 연극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들은 앞으로 토론연극을 진행하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나는 1막의 아쉬움도 있고 해서 그 사이 염치 불구하고 빈 객석을 찾았다. 내가 찾아낸 곳은 음향 스텝들이 잠시 비워놓은 자리였고, 비로소 무대를 볼 수가 있었다. 무대는 조금 높았고,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게 낮은 경사로 바닥과 이어져있었다. 무대는 휑했고 뒤쪽엔 퇴장한 배우들을 가리는 커튼이 내려져 있었다.

주인공 춘향이는 중증 장애여성이다. 춘향이에겐 이몽룡이라는 비장애인 남자친구가 있다. 그는 그녀의 활동보조인이자 애인이다. 몽룡은 춘향이와 외출할 때 음료수 먹을 때 꼽는 빨대를 준비할 정도로 세심하고 친절한 사람이다. 한강 고수부지에 몽룡과 산책을 나온 춘향이는 왜 전동휠체어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는지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면 몽룡이가 휠체어를 밀지 않아도 되고, 다른 연인들처럼 그녀와 손을 잡고 거리를 거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몽룡은 그녀에게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고 싶다. ‘우리는 애인이다. 당신은 내 보조인이 아니라 연인이다.’라고 말하는 그녀의 불만은 그에겐 그녀가 이젠 피곤해진 것이라느니 의견으로 전달되고 이어 그는 서둘러 집에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 앞에서 춘향이가 심야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한다.
“저는 누구보다 춘향씨의 몸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춘향씨는 2시간 이상 앉아있으면 허리에 무리가 와서 안돼요.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심야영화는 다음에 낮에 보기로 해요.”
아무도 없는 골목길, 춘향이가 은근한 눈길을 보낸다. 이몽룡, 피곤해 보인다며 집으로 들어가자고 재촉한다. 춘향이의 한숨...

암전. 다음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부산히 움직이는 모습이 옅은 조명 아래에서 보인다.
춘향이가 침울하다. 이몽룡이 비장애여성과 섹스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춘향이 같은 장애여성 친구들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제각각 한마디씩 한다. 그리고 그녀들끼리 옥신각신.
“무슨 걱정이야. 너도 딴 남자랑 자버려!”
“어머머..제 말하는 것 봐. 장애여성에게 순결 빼면 뭐가 남아? 그냥 참아라.”
“비장애인 친구들이 나한테 소개팅이며 미팅한 얘기를 해주지만, 누구 하나 나한테 소개팅하자고 하는 사람 없더라. 우리 같은 장애여성이 언제 또 그런 착한 비장애남성을 만날 수 있겠어?”

이번에 몽룡은 쿠션까지 준비해왔다. 춘향이 왜 애인인 자신을 나두고, 다른 비장애여성과 섹스를 했는지 따져 묻는다. 잠시 미안한 듯 흠칫하던 몽룡은 자신이 그렇게 못된 남자는 아니란다. 자신은 욕구상 그럴 수 있는 거고. 그 비장애여성은 배출구였을 뿐이라 말한다.
“그걸 어떻게 춘향씨랑 해요...그게 얼마나 격렬한 건데...” 자신을 못된 사람으로 만들지 말란다.
“우리 헤어져요!” 춘향이가 결국 먼저 이별을 선언한다.
“그럴 수 없어요! 내가 없으면 춘향씨 이런 데 올 수 있어요? 내가 춘향씨한테 필요 없는 존재가 되면, 그때 제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할께요.”


토론 연극…못다한 이야기

연극은 장애여성이 처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막을 내렸다. 이후 해답은 연극을 본 사람들이 토론연극에 참여해 함께 고민하며 풀어야 할 것으로 남겨졌다. 나는 연극이 안겨준 물음표를 가득 들고 답답해했다. 주제가 독립과 성이라는 점에서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준)에서 고민하는 문제였기에 반가웠지만(?), 그녀들이 보여준 현실의 높은 벽은 내가 가진 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여기서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여성의 위치에서 연극을 볼 수 있었지만, 시종일관 장애여성의 입장과 처지에 있지 못했다. 어느 순간 효리의 엄마가 되기도 하고, ‘정말 그게 가능해?’하고 속으로 묻기도 했다. 나는 장애여성들의 생각이 너무나도 궁금해졌고, 그래서 배우들을 직접 만나고 싶어했다. 나는 결국 인맥(?)을 이용하여, 연극에서 청량제와도 같은 연기를 했던 춤추는 연극 프로젝트 팀장 박주희씨를 만났다.

“장애여성을 무성적인 존재로 취급하면서..연극에서도...몽룡이도 춘향이를 무성적인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다. 춘향이가 헤어지자는 것은 나도 느낌이 있고, 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선언을 한 것이다. 장애여성을 여성도 아닌 것으로 취급하고 장애인일 뿐인 거예요.”
“이몽룡이 그러잖아요. ‘그걸 어떻게 춘향씨랑 해요...그게 얼마나 격렬한 건데...’ 너의 그런 약한 몸으로는 할 수가 없지 않느냐는 거거든요. 그런데 실제적으로 그런 경험이 있어요. 예전에 저도 결혼이야기가 있을 때, 비장애인 남편이었거든요. 그 남자 쪽 집에서 반대를 하는데,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제가 그 몸에 관계나 할 수 있겠느냐’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래서 저한테 직접 묻더라구요. ‘그게 정말 가능하냐?’고 물었었어요. 실제적으로 그런 상황이 존재하고,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어떻게 그런 것 자체를 물을 수 있냐?!...당연하다.’” 그녀가 쓰게 웃는다. 그녀는 초등학교 1학년인 예쁜 딸과 살고 있다.

장애여성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그저 장애인이라고 한다. 장애를 가진 여성의 성별, 혹은 성정체성에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도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장애여성은 무성적 존재로서 여겨진다. 그렇지만 우리사회는 장애여성에 대해 어떤 신화를 가지고 있다. 장애여성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성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고, 그 전에 이미 성적인 매력이 없기 때문에 ‘연애’라고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장애여성은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한다.(도대체 누구한테 ‘안전’하다는 말인가) 또한 장애여성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때묻지 않은 순수하고 착한, ‘천사’라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하고 순수한 천사는 어떤 것도 스스로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없다. 사람들은 그리하여 장애여성의 선택을 믿지 않으며, 언제나 지도와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만들어버리고 장애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가두어버린다. 이러한 잘못된 사회적 믿음들이 장애여성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 『공감』여섯번째 2003 중 특집-‘장애여성은 무성적 존재가 아니다’에서-

“그래서 질문이 장애여성이 독립을 하기 위해서는..개선되고 바꿔야 하는거요?”
질문을 반문하며 그녀가 웃고 만다. 내가 너무 무턱대고 질문을 했나보다.
“우선 가족들의 의식구조가 바꿔야 되요!” 그녀는 강한 어조로 시작했다. “그게 바뀌지 않으면...왜냐면 독립하겠다는 선언 자체가 가족들에게 일단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고, 물론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두 가지가 다 병행되어야 하는데, 사회적인 시스템도 갖춰져야 하고, 가족들의 의식적인 것도 바꿔야 하고.”
그녀는 장애여성이 있는 가정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평생 데리고 살아야한다고만 생각하는 가정에서 공감에서 그런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해도 과연 들으러 올지조차 회의적이라고 한다. 참 어려운 문제다.
”대개 보면은 장애여성으로서 독립해서 따로 나온 가정 같은 경우에는 엄청난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치지 않으면 안돼요, 하여간 장애여성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어느 집이나 무난하게 독립시켜주는 집이 절대(~!) 없죠.”
“근데, 장애남성은 틀려요. 장애남성이 독립한다고 하면 반응이 어떠냐하면, ‘그래도 저게 남자가 되서 몸이 저런데도 불구하고 따로 나가겠다고 그러는구나. 기특하다. 그래 밀어주마 따로 나가라.’ 실제로 있어요. 진짜 장애 심한 남성인데, 독립해서 나와 살아요. 집이 시골인데도 꼬박꼬박 집에서 몇 십 만원씩 붙여주고..근데 장애여성? 독립해서 나온다고 해서 집에서 몇 십만 원씩 부쳐주는 집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되게 속 터지는 이야기인데요. 장애남성에게 있어서는 허용적이라는 거죠. 아들이라는 것으로 집안의 기둥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 거예요. 집에서 도움을 준다는 거죠. 그런데 장애여성은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죽을 때까지 끝까지 데리고 살아야 될 애로 생각하는데 그렇게 따로 나가서 산다는 것 자체도 괘씸하고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긴다는 거죠. ‘그래 너 한번, 니가 세상물정 몰라서 그런데...얼마나 잘사나 두고 보자. 나갈라면 나가라.’ 처음엔 말리다가 그렇게 되는 거죠. 처음엔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 아니’ 항상 여기에 여자라는 게 들어가는 거죠. ‘니가 이 몸에 나가서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연극에서도 나왔잖아요. 밤늦게 들어왔다고 ‘어떤 놈이 덮치면 어떻게 하냐?’ 그 난리가 나고...그래도 장애여성이 난 더 이상 가정에서 이렇게 억압받으면서 살고 싶지 않다. 나도 내 할 일 하면서 나도 제발 나가 살고 싶다. 나가게 해달라 하고 계속 부모들하고 싸움을 하다가 부모들이 괘씸하게 생각하는 거죠. ‘그래 니가 알아서 살아봐라. 너 나가서 아무것도 못해주니까, 너 한번 니가 나가서 살아봐라.’ 그렇게 되죠. 그래서 장애여성이 따로 나와 가지고.. 물론 이런 수요가 많지 않아요. 그리고 이런 부모형제들이 붙들다 보면은, 계속 겁주면서 붙들다보면 거기에 주저앉고 주저앉고 하는 장애여성이 많죠.”
“그런데 그렇게 따로 나와서 제일 먼저 장애여성들이 하는 것은 수급자가 되는 길을 먼저 알아보죠. 수급자가 되면, 나라에서 수당이 나오잖아요. 생계보조 수당 나오고 그리고 장애인이니까 장애수당 나오고. 일단 그것으로 생활을 해나가는 거죠. 그것 참 어렵죠. 그러다가 서서히 나름대로 그렇게 하면서라도 자기활동을 하면서 생활하다 보면은 부모들이 ‘그래도 영 못살 줄 알았는데 나가서 또 나름대로 자기일 하면서 사네?‘ 장애여성과 남성이 뭐가 다르다면, 장애남성은 어려서부터 가족의 지원을 받아요. 나름대로 갖고 있는 그 능력을 인정을 받는데...장애여성은 어려서부터 아무런 지원이 없고, 능력을 인정받는 것도 없고 그러다가 비로소 독립해 나와서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면서부터 그때서야 인정을 받아요. 그게 굉장히 다른 거예요. 장애여성은 자기 스스로 일궈내야만 비로소 인정을 받고 남성들은 오히려 애초부터 인정받고 지원책을 탄탄히 받고 그런 게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장애여성과 남성은...“


춤추는 허리

올해 장애여성 공감의 전체 주제는 ‘폭력’이다. 이 연극의 뿌리는 여기에 있다. 장애여성의 문제를 연극으로 의미를 전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배우를 하고 싶은 꿈을 가진 장애여성들도 있고 해서 시작되었다. 연극은 6개월 동안 배우를 하고자 하는 장애여성들이 직접 자신이 겪은 문제를 서로 쏟아내고 토론하면서 극본을 쓰고, 연습하면서 완성한 장애여성, 바로 그녀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박주희씨는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속상해했던 일화를 얘기해주셨다. 연극의 배우로 함께 하고 싶었던 한 장애여성이 한번 연습하러 나왔다가 집안의 반대로 더 이상 못나오게 된 일이 있었다. 다음날 데리러 활동보조인을 보낸 상태였는데, 그 장애여성 어머니가 박주희씨한테 전화를 했단다. “우리 애 이제 못나간다고...앞으로도 계속 못나가니 그런 줄 알고 있으라고” 그 장애여성이 ‘애’라고 불리기엔 마흔의 나이는 너무 많지 않은가?! 박주희씨는 이런 상황 자체가 장애여성에 대한 폭력이라 말한다.
“가정에서 어린애 취급하고, 뭔가를 하고자 했을 때, 그 집 역시 경제적으로 좋은 집인데도 그 딸에 대한 투자는 하나도 안 한 거예요. 그리고 뒤늦게라도 무언가를 하고자 했을 때에도 못하게 막는 거죠.”

요즘 많지는 않지만, 장애인 극단도 생기는 추세라고 한다. 하지만 박주희씨는 그런 극단들과 ‘춤추는 허리’가 다른 점은 그냥 장애인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여성이 안고 살아가는 문제를 알리고자 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근데 왜 ‘춤추는 허리’였을까?

“춤추는 허리는..이 말을 딱 들으면, 느껴지는 게 보통 비장애여성의 그런 아주 날씬한 허리, 아주 곧게 뻗은 날씬한 허리를 상상하기 쉽잖아요. 그러나 우리들은 장애여성, 비장애여성이 함께 차별 없이 어울러졌잖아요. 우리들은 다양한 허리를 가지고 있거든요. 장애여성들의 허리는..장애별로 뻣뻣한 허리도 있고, 저도 보기에는 그렇지만, 허리가 많이 휘었거든요.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여성들은 허리가 굉장히 많이 휘었거든요. 휜 허리, 뻣뻣한 허리, 뚱뚱한 허리도 있겠고, 그런 다양한 허리...다양한 여성의 그런 것을 표현하다 보니까...허리라는..춤추는 허리라는..그러면서 그리고 무대에서 연극을 하잖아요. 다양한 허리들이 무대에서...움직이는 느낌. 그래서 춤추는 허리라고 한 거예요.”

앞으로 ‘춤추는 허리’를 어떻게든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박주희씨의 생각이다. 올해는 2주에 한번씩 연습 모임을 하면서 재공연 요청이 있으면 응할 생각이고, 이미 12월에 예약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또 그냥 접기가 아쉬운 게 뭐냐하면 저는 팀장의 입장으로서 우리 배우하는 분들 하나하나를 보면, 너무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끼와 열정이 엄청난데, 효리 연기를 하신 그분의 열정도 진짜 엄청난데, 그 분 역시 가정에서만 지내면서 자기가 펼쳐보지 못했던, 나름대로 펼쳐보고자 하는 의지도 엄청난 거 같고. 다른 분들도 그렇고. 우리 (연극) 끝나고 나서 다들 울었어요. 배우들이 다 울었어요. 그 눈물의 의미는 그동안 함께 하면서 힘들었던 과정도 있지만,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뒷 배경은 내가 가슴에만 두고만 있었던 것을 처음으로 사람에게 펼쳐 보인 것이거든요. 억압받고, 차별 받고, 가정에서 폭력 아닌 폭력에 시달리던, 장애여성 나 개개인의 문제를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서 여러 사람들한테 그것을 토해냈다고 할까요. 그런거 거든요. 거기서 온 감정이 굉장했던 것 같아요.”

그녀들이 연극이 끝나고 말했듯이, 앞으로도 그녀들의 ‘커다란 몸짓’이 계속되길 바란다.
내가 늦어서 놓친 부분을 아쉬워하자 박주희씨는 재공연할 때 꼭 초대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그땐 다른 이들과 함께 가볼 생각이다. 그땐 나도 토론연극에 나갈 수 있을까?


에필로그

이건 에필로그가 될 수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장애여성에게 가해지는 이러한 극단적 폭력들을 연극을 소개하면서 담을 방법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연극을 보고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던 주말에 나는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10월 19일 방영)를 보게 되었다.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다룬 것이었다. 그중 장애여성 공감의 박영희 대표의 인터뷰가 가슴에 남는다.
“장애여성은 사회적으로 무성적인 존재로 취급받지만, 여성으로 인정받는 것은 성폭력을 당하는 순간이다.”

방송에서는 정신지체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주요하게 다루어졌다. 성폭력이 신고되면, 진술의 일관성을 문제삼고, 왜 그 아저씨를 따라 갔는지 추궁 당한다. 경찰의 늦장 대응이나 무성의도 문제다. 더군다나 가해자들이 하나같이 죄의식조차 없다. ‘그래도 되는 장애인’인 것이다. 특히 정신지체 장애여성들은 경증이라고 해도 9세 정도의 지능이라고 한다. 그래서 소아정신과 의사는 정신지체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어린이 성폭력과 똑같이 다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박주희씨의 말도, 정신지체 장애여성들의 경우 100이면 100, 다 피해자일 정도로 심각하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설에서는 정신지체 장애여성들에게 행해지는 강제 불임시술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부모들도 강제 불임시술을 별 죄의식 없이 시키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한다. 박주희씨는 강제 불임수술은 그것 자체로 굉장한 인권유린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강제 불임수술은 인권유린이고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부모들은 “그럼, 허구헌 날 당하고 뻑 하면 임신하고 그러는데, 어떻게 안 시키냐?”고 묻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성폭력 가해자들은 거시기를 잘라버리는 형벌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이런 방법이 성폭력을 막는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으며, 강제불임수술의 대쌍일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 방송을 보고 시청자 게시판에 ‘좋은 성폭력 거리를 알려줘서 고맙습니다.’라고 버젓이 쓰는 남자들(!)도 있는 현실에서, 남성들의 의식개혁과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는 너무도 더디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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