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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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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정세초점- 정지영.hwp

더 이상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지 마라!

정지영 | 정책부장
비정규직 노동자의 피맺힌 절규
지난 일요일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에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의 이용석 동지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분신하셨다. 현재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위독한 상황이다. 근로복지공단은 노동부 산하 기관으로 직원의 30% 이상인 천 여명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며, 이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극심한 노동착취,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러한 현실에 맞서 노동자로서, 인간으로서 살기 위해 투쟁을 결의했고, 노조를 결성했다. 지난 4월 노조를 설립한 이후 총 11차례의 교섭을 진행했지만, 공단은 교섭의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교섭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결국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는 10월 27일 파업에 돌입할 것을 결의했다.
이미 이 땅 노동자들의 절반이 넘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그야말로 참혹하다. 계약직, 임시직, 일용직, 특수고용직 등 다양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3권은커녕 기본적인 생존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혹사당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도 다를 바가 없었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건강을 버리며 단 하루도 쉬지 못한 채 잔업과 특근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 그렇게 해도 받을 수 있는 돈은 96만원밖에 안 되는 현실. 매 년 다시 맺어야 하는 고용 계약이 족쇄가 되어 강도 높은 착취와 부당한 사측의 행태에 굴복해야 하는 현실. 그럼에도 언제 짤릴지 몰라 고통받는 현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노동자들 스스로 일어나 노조를 설립했지만 기본적인 노조활동조차 보장되지 않고 오히려 온갖 회유와 협박 속에 탄압받아야 했던 현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은 비단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상황은 아니다.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의 오늘이고, 이용석 동지의 피맺힌 절규가 말하고자 했던 바이다.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하라!”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현실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벌써 다섯 명의 노동자가 자신의 목숨을 던지며 자신의 비참한 현실에 저항하고 있다. 올해 초 두산중공업의 배달호 열사가 가혹한 손해배상가압류에 맞서 분신했으며, 지난 17일에는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김주익 동지가 손해배상가압류에 저항하며 35미터의 고공크레인에서 129일간 농성하다 자살했다. 세원테크의 이현중 열사는 노조를 탄압하는 구사대의 폭력에 목숨을 잃었고, 세원테크 사측은 이 죽음의 책임을 묻고자 투쟁하던 노조에 대한 지속적인 탄압과 집단해고 협박으로 이해남 동지의 분신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을 몰고 왔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며 항거하고자 했던 지금의 상황은 그 동안 진행되었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의 결과다. 김대중 정권 5년 동안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왔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노동자, 민중에게 비용과 고통을 전가하는 형태로 자본의 살 길을 찾는 과정이었다. 이미 명예퇴직, 조기퇴직, 정리해고 등 비자발적 사유로 실업자가 되는 사람들이 월평균 21만 8천여 명에 달하고, 법이 정한 최저임금 56만원 수준도 안 되는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수는 전체 노동자의 60%에 육박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해고와 노동강도 강화, 비정규직 채용을 통한 비용절감과 주가상승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행태로 인해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궁지로 몰리고 있다. 김주익 열사의 죽음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손해배상가압류 규모는 10월 20일 현재 45개 사업장 1천336억 원이다. 연이은 노동자들의 자살과 분신은 더 이상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는, 더 이상 내어줄 것도 없는 노동자들의 고되고 힘든 삶을 지속시키지 말라는 절박한 외침이다.

폭주를 멈추지 않는 노무현 정권의 반노동자성
이러한 상황에서도 정부는 사태의 엄중함을 알지 못한 채 또 다시 노동자들의 투쟁을 생명을 무기로 정부를 굴복시키려는 극단적인 행위로 몰아붙이고 있다.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항거에 대해 발표된 정부 담화문은 지금의 이러한 사태를 불러온 원인이 어디 있는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합리적이고 선진화된 노사관계’를 빠르게 정착시켜야 한다며, ‘노동계가 정부의 제도개선 노력과 성실한 대화노력에도 불구하고 불법파업 등 집단행동을 감행한다면 정부로서는 불가피하게 엄정 대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혀두고 있다. 이번 정부의 담화문은 현재 노동자들의 극한 상황과 투쟁에 대한 최소의 관심도 없이 착취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정부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외침에는 아랑곳없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더욱 쥐어짤 방안을 몰아붙이는 것이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이고, 노동자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현재 노동자들의 죽음은 사건이 발생한 몇몇 기업의 사주들이 특별히 더 악독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들도 체감하는 경제위기의 상황에서 기업이 살아남는 방법은 노동자들을 더욱더 강도 높게 착취하는 것밖에 없다는 자본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말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노동의 저항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자본에게 무한한 이윤추구의 자유를 부여하는 나라다. 이미 우리가 경제자유구역에서 본 것처럼, 초민족적 자본들의 이윤추구를 위한 모든 조건들을 갖춰주지만 노동자들에겐 최소한의 노동권조차 보장하지 않는 조건이 기업하기 좋은 조건이다. 이것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서 파이를 키워봤자 노동자들에게 돌아올 것은 없다는 말이며, 오히려 노동자들의 삶은 점점 벼랑 끝에 내몰린다는 말이다. 결국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이 땅 노동자들의 삶과 그에 죽음으로 항거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노무현 정권이 그리는 향후 이 나라의 미래를 보여주는 단면일 뿐이다.
더구나 노무현 정권은 현재 남한 사회의 경제위기 극복과 외자유치의 유일한 걸림돌은 집단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강성노조라고 몰아붙이며 공세를 펴고 있다. ‘합리적이고 선진화된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이라는 것을 마련해놓고,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노조와 노동운동을 모두 집단 이기주의, 노동귀족이라고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합리화’와 ‘선진화’라는 그럴 듯한 말속에 숨어있는 것은 노동자들의 노동3권 박탈이고, 비정규직 확대이며, 노동착취 강화이다.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장치를 보장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겠다는 발상 속에서 파견근로 대상업무를 대폭 확대하는 비정규직 보호법안을 통과시키는 상황은 말 그대로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박탈하고, 더욱 강도 높은 노동으로 노동자들을 몰아넣겠다는 말이다. 게다가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정착시키고, 불법파업에 대한 손배가압류 청구권을 보장하고, 직장폐쇄요건과 대체근로조건을 완화하며, 노조전임자의 임금지급을 규제하는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으로 죽음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단결권, 집단행동권까지 파괴하려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할하고, 노동귀족이라는 호들갑으로 노동자 내부의 갈등을 조장하며, 비정규직의 문제가 정규직 때문이라고 몰아가면서 문제의 원인을 왜곡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과 기업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유연화된 노동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정규직을 확대해야 한다. 따라서 애초에 노무현 정권이 약속한 ‘비정규직 차별 시정’은 비정규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양산되는 비정규직을 적절히 관리하고, 비정규직을 더욱 늘리며 노동자들의 삶 자체를 하향 평준화하는 방식으로 차별을 시정하겠다는 말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
노무현 정권의 반노동자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 싸워야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피맺힌 절규와 손배가압류에 탄압받던 노동자의 죽음은 어떤 특별한 노동자들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주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손배가압류는 점점 더 그 범위를 확대해가고 있다. 노조뿐만 아니라 조합원, 일반 직원, 그 가족, 친척까지 가압류를 적용하는 악랄한 방법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통해 노동자들이 사용자의 횡포와 억압에 맞서 자신의 인간다운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최소한으로 가져야 할 단결권, 집단행동권과 같은 노동기본권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이다. 비정규직의 문제 또한 다르지 않다. 이제 이 땅 노동자들의 다른 이름은 곧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은 이 땅 모든 노동자의 불안하고 고단한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이미 모든 노동자들의 삶은 불안정한 조건 속에 놓여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과 자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대립시키며, 둘 사이의 바닥을 향한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현재 정권이 제시하고 있는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는 방안은 모든 노동자들의 삶을 비정규직의 삶으로 만들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정권의 정책과 방향을 단호히 거부하고, 우리의 투쟁으로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것만이 모든 노동자들의 승리이다.
더 이상 노동자들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버려 항거하는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정권의 반노동자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끝장내는 투쟁을 벌여내야 한다. 우리 모두의 연대와 단결로 노무현 정권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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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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