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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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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의 지적재산권 강화는 의약품 접근권을 훼손한다!

FTA/TRIPsPlus경향을 반대한다!

조영민 | 민중의료연합 공공의약센터
의약품 접근권, 곧 의약품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논할 때 가장 먼저 맞부딪치게 되는 문제는 바로 의약품이라는 '상품'을 사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더군다나 국가 차원의 의료 보장성이 취약한 아프리카와 같은 남반구 국가라면, 에이즈(HIV/AIDS)가 창궐하고 있는 '저개발' 국가라면 치료를 위해 의약품을 사먹을 수 있는 ‘가격’의 문제는 생과 사를 가르는 문제이다. 불행히도 의약품 가격의 문제는 의약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느냐에 있지 않다. 의약품 가격결정의 기준은 오로지 제약자본의 이윤의 크기일 뿐이다. 이것을 보장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바로 지적재산권(Intelluctual Property)의 일종인 의약품 특허권이다. 그리고 의약품 특허의 배후에는 지식에 부여되는 독점적 권한을 이용하여 과잉 이윤을 창출하려는 초국적 제약자본과 이를 지지 보족하는 체계인 세계무역기구 산하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 Agreement, 이하 트립스 협정)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2001년 카타르 도하에서의 선언, 미완의 시나리오

트립스 협정은 한 국가 내에 국한되었던 지적재산권 제도를 국제적 수준으로 확장해 이를 위반 시 분쟁해결절차에 따라 무역제제가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가히 초국적 제약자본의 권리장전이라 불릴 만하다. 뿐만 아니라 트립스 협정은 선진국/개발도상국과 최빈국의 경제적 여건, 보건 상태 차이를 무시하고 특허의 존속기간을 최소 20년 이상으로 연장하였다. 초국적 제약자본이 소유하는 의약품 특허로 형성된 독점적 가격은 대다수 제3세계 민중의 의약품 접근권을 사실상 엄격히 제한한다.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은 WTO 각료회의로 하여금 ‘트립스 협정과 공중보건에 관한 특별 선언문’을 채택하게 만들었다. 주요 내용은 ‘트립스 협정 중 그 어떠한 것도 세계무역기구 회원국들이 각국의 공중 보건과 관련된 조치들을 채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회원국들은 강제실시를 부여할 권리와 부여조건을 결정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도하회의에서 이러한 ‘선언’을 끌어낸 아프리카 국가들의 노력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선언’ 그 자체는 미국과 WTO가 아프리카 국가들의 요구를 우회적으로 수용한 것이며, 몇가지 과제를 남겨두었다. 첫째, 도하선언 6항과 관련된 문제다. 즉, 강제실시는 ‘국내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트립스 협정의 규정에서 의약품 생산능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는 어떻게 강제실시를 시행할 수 있는가이다. 다시 말해서 타국에서 강제실시 된 일반약(카피약)을 수입하게 될 때(수입을 위한 강제실시) ‘강제실시의 국내적 사용’이라는 트립스 협정 조항에 어긋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둘째, 이렇듯 ‘수입을 위한’ 강제실시를 적용할 수 있는 대상 국가의 선정과 질병의 범위 문제다. 원래 2002년까지 합의를 도출하기로 하였으나 미국이 질병범위를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 등 몇가지의 질병으로 제한해야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아서 기한 내 합의하는데 실패하였다. 올해 칸쿤 각료회의 전까지 제56차 세계보건기구총회를 거치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최빈국간의 의견대립으로 긴장이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봉합된 문제, 8․30결정 그리고 칸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8월 3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른바 ‘도하 선언 6항’에 대한 논쟁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는 결정이 내려졌다. 핵심적으로 두 가지 사항을 짚어볼 수 있는데, 1) 질병의 범위에 제한을 두지는 않으나 2) 인도적 차원에서 자체 의약품 생산시설을 갖추지 못한 최빈국들에 한해 이를 저가에 공급하는 것, 이 두 가지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질병범위의 제한을 철회함으로써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8월 30일 결정이 많은 제한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합의해버린 것이다.
합의문에 의하면 '수입을 위한 강제실시는 인도적 차원에서 공중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일 것이며, 산업․상업적 목적으로는 쓰일 수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적 차원이란 표현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인도적 차원의 노력은 국제적 원조단체와 각종 기금, 그리고 각국의 원조 차원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약품 생산능력이 없는 국가의 의약품 공급문제는 인도적 차원의 해결을 넘어 '건강권' 보장을 위한 해법으로써 필요한 의약품을 스스로 결정하고, 수입하여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욱 큰 함정은 산업․상업적 목적으로 쓰일 수 없다는 단서다. '산업․상업적 목적'이 아닌 공공의 방법으로 일반약(카피약)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생산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강제실시가 적용될 수 있는 일반약을 만들 수 있는 일반약 회사가 국영(내지 공공)제약회사인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이다. 최근 글리벡(Gleevec;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치료제인 항암제)의 복제약인 비낫을 생산한 인도의 낫코사도 민간제약회사였다. 즉, '산업․상업적 목적으로 쓰일 수 없다'는 단서를 만족시키는 공공제약회사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이 조항은 일반약을 생산하는 민간제약회사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합의문에 따르면, 저렴한 복제약을 원하는 국가가 수입을 위한 강제실시를 원활하게 시행할 수 있을 가능성은 몹시 희박해졌다.
9월 10일 열린 제 5차 칸쿤 각료회의에서 골칫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트립스와 공중보건’의 문제는 8․30결정으로 인해 별다른 논의 없이 끝을 맺었다. 5차 각료회의가 무산되었기 때문에 당장 8․30결정이 강제적 효력을 갖진 않지만, 문제는 ‘수입을 위한 강제실시’에 대한 논쟁이 생명력을 잃었다는 데에 있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강제실시에 대한 논쟁은 트립스 협정이 공중보건과 건강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고, 공중보건에 관한 자국의 권한을 강조함으로써 트립스 협정에 대항하는 데에 중요한 기반이 되어왔다. 8․30결정에 대한 저항과 논쟁이 다시 조직되지 않으면 미국은 자국의 제약자본을 비호하는데 성공하게 될 것이다. 또한 미국은 트립스 협정에서의 주도권을 잡은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에서 트립스-플러스(TRIPs-Plus)경향을 강요하고 실행하고 있다. 트립스 플러스 경향은 트립스 협정보다 지적재산권이 강화되는 것, 즉 의약품 접근권을 제한하고 궁극적으로 철저히 제약산업의 이해가 대변되는 상황을 지칭하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FTA)에서의 트립스 플러스(TRIPs-Plus) 경향에 반대한다!

세계무역기구와 자유무역협정이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이윤획득을 추구하는 핵심고리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계무역기구가 모든 회원국에게 최혜국대우를 보장해 주는 다자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반면, 자유무역협정은 양자 혹은 지역주의적 특혜무역체제다. 이러한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데 최선두에 서 있는 국가는 바로 미국이다. 이미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나프타)을 통해 지역블럭의 경제논리를 거침없이 실현(?)한 바 있다. 미국은 진작에 세계무역기구라는 다자주의를 통한 자국의 이윤 극대화가 어렵다는 점을 간파하고, 양자 혹은 지역주의적 자유무역협정을 통한 실질적 통상 압력의 길을 모색했던 것이다.
냉전 시대의 군수산업보다도, 금융자본 시대의 금융업보다도 높은 이윤을 내고 있었던 제약 산업의 공공연한 이윤의 비밀은 바로 특허라는 특수한 담보가 있었던 것이고, 이 특허는 트립스협정에 의해 세계무역기구 회원국에게 미국 수준의 (높은) 특허 보호를 강요하였다. 다자무역체제의 출범이 거듭 난항을 겪으면서 자유무역협정에서 트립스 플러스 경향은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였다.

올해 2월경 미무역대표부가 2005년 1월 출범 예정인 미주자유무역지대(FTAA;Free Trade Area of the Americas)에 대한 논평에서 2가지 요구안을 냈다. 이에 대해 '필수불가결한 행동'(Essential Action), '국경없는 의사회(MSF)', ‘건강의 전지구적 행동 프로젝트(Health GAP)’, 등은 일제히 논평과 성명서를 통해 미주자유무역지대를 통해 미무역대표부가 미주지역에서 의약품 접근권을 방해할 강화된 특허 기준을 맞출 것을 요구하는 압력을 그만둘 것을 역설했다. 그 중 문제가 되는 조항은 대략 이러하다;

1. 공공 영역과 비상사태에만 강제실시를 제한하는 문제(5.1조 (a)와 (b))
2. 강제실시된 상품의 수출 금지(5.1조(c))
3. 특허가 승인된 이후 4년간 강제실시 사용 제재(5.3조)
4. 국가가 적절하게 강제실시를 실시하려고 할 때 중대한 장벽을 강요하면서 매매 승인 데이터(marketing approval data)에 대해 5년간 배타적인 보호 승인을 요구(1.2조 및 1. 4조)
5. 규제적인 지연을 상쇄하기 위해 특허 기간을 확장(8.2조)

이러한 조항은 트립스 협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강제실시보다 더 엄격한 제제, 그리고 이미 트립스 협정에서 보장하고 있는 20년 동안의 특허보호 기간을 더 연장하도록 하는 특허보호조항 신설 강요 등 자유무역협정을 통한 양자간, 지역간 협정은 트립스 협정보다 특허보호를 강화(트립스 플러스)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에이즈로 인해 심각한 보건위기를 넘어 국가적 위기를 겪고 있는 브라질의 경우, 미주자유무역지대 협상에서 지적재산권이 강화될 경우 브라질에서 이행되었던 에이즈 관련 정책이 위험에 빠질 위기에 놓였다. 90년대 중반 이후 브라질 정부는 에이즈 약물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기 위해 공공제약회사를 통해 특허 하에 있는 약물들을 일반약으로 생산하여 무상으로 공급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해 97년 이후 에이즈에 의한 사망률과 새로운 에이즈 감염률을 50%까지 낮추는 놀라운 성과를 거둬왔다. 그러나 미주자유무역지대의 논리대로 된다면, 미국은 브라질의 일반약 공급에 상당한 차질을 빚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트립스 플러스로 인해 특허약의 복제약을 ‘강제실시’란 방법으로 만들어 가능한 한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이미 남미 최초로 미-칠레 자유무역협정, 아시아 지역 최초로 미-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과 중동지역 최초로 미-요르단 자유무역협정 등을 통해 트립스 플러스를 강요하였다. 미국은 요르단, 칠레, 싱가폴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데 이어 중미5개국, 남아프리카관세동맹, 모로코, 호주, 미주 33개국, 뉴질랜드, 중동, 아시아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약간의 관세인하나 기술지원을 해주는 대신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트립스 협정보다 훨씬 강력한 트립스 플러스를 강요함으로써 의약품의 접근을 가로막고, 제약자본의 특허권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미-요르단 자유무역협정이 미-칠레 자유무역협정의 모델이 되었듯이, 미-싱가폴 자유무역협정은 아세안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의 모델로 사용될 것이며, 미국이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국가가 광범위한 만큼 트립스 플러스는 더욱 확장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트립스 플러스는 향후 도하개발협상에서 미국의 주장을 더욱 견고하게 뒷받침하게 될 것이다.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의약품이지만 이는 더 이상 필요에 의해 공급되고 있지 않다. 더 많은 이윤 추구를 위한 초국적 제약자본의 무기인 ‘특허’, 그리고 특허로 인해 의약품에 매겨질 수 있는 높은 가격, 이를 뒷받침하는 세계무역기구의 트립스 협정과 자유무역협정에서 트립스 플러스 경향의 유기적 결합. 특허 앞에 의약품 접근권이 훼손당하고, 이윤 앞에 생명이 농락당하는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서 이제 반세계화/반WTO, 반FTA/반TRIPs plus 투쟁을 동시에 조직해야 한다.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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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보건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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