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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구적 구조조정' 출구가 없다 -제조업 공동화의 현황과 노동운동의 대응

이승철 | 회원, 민주노총 편집차장
제조업 '해외러시' 위협받는 노동

세계화의 유탄인가, 발전의 부작용인가. 한국 노동운동이 생산비용 절감을 빌미로 한 공장 해외이전 '러시' 앞에 사실상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 터키, 베트남, 동유럽, 인도네시아, 멕시코 등 바다를 건너는 국내자본의 행선지도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자본의 해외유출은 국내공장의 폐쇄나 축소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해당기업의 노동자는 자연스레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고통에 빠져들게 된다. 또 원청기업이 해외로 이전하는 경우, 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하청업체가 덩달아 보따리를 싸고, 유통 등 관련업종들마저 문을 닫거나 해외러시에 동참하는 등 뒤따르는 파급효과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은 미흡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부분이 '기약 없는 약속'을 받아내거나, 보다 많은 퇴직보상을 요구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노조의 대응이 개별사업장 수준에서 이뤄지다 보니, 자본의 입장에서도 국내공장 유지가 불가피한 대기업의 경우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본이동이 국내공장의 존폐를 가름하는 중소·영세사업장은 사정이 또 다르다.

'비용절감' 빌미로 중국이전 붐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의 경우, 50여곳 사업장이 이미 해외로 진출했거나, 진출계획을 갖고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이 아직까지는 국내공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한국씨티즌이나 하이텍알시디코리아, 아남인스트루먼트 등과 같이 아예 국내공장을 폐쇄하거나 생산을 중단한 사례도 없지 않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대부분 '자본의 엘도라도'로 급부상한 중국이다. 산업자원부가 발표한 <해외제조업 투자실상 및 실태조사 결과분석>에 따르면 1999년부터 본격화된 제조업 해외투자는 지난해 들어 크게 증가됐으며, 특히 중국투자는 2002년에 비해 69.8%나 증가했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2002년까지만 해도 주로 대기업의 투자비율이 높았던 반면, 2003년의 경우에는 중소기업의 투자비율이 57.6%로 처음으로 대기업을 앞질렀다는 점이다. 중소기업 해외투자 상승기류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표1>제조업 해외투자 비교(단위 억불, % ; 실행기준)

* 자료 : 해외 제조업 투자실상 및 실태조사 결과분석(산업자원부 산업정책과 2003.11.26)

중국을 선호하고 있는 경향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이들의 노림수는 '비용절감'이다. 실제 산업자원부의 위 분석에서 해외진출의 가장 큰 사유는 '인건비 등 비용절감'으로 전체의 48.5%나 차지하고 있다. 현지시장 개척(28%)과 협력업체 이전(10.1%), 인력난(3.5%) 등 차순위 비율과 비교할 때 엄청난 수치다. 중국시장의 경우 합작투자보다는 단독투자가 90% 가까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사실도 현지시장 개척보다는 인건비 절감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중국진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경우 합작대상을 찾기가 만만치 않은 점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자본의 해외이동이 급증하며 그 형태와 부작용도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청주에 있는 월드텔레콤의 경우 한국공장의 기계를 하룻밤 사이에 기습적으로 중국으로 빼내 말썽이 일었다. 경주에 있는 발레오만도와 (주)만도, 아산 경남제약 등에선 주주들이 감자(주식소각)를 통해 자본을 빼돌리는 방식이 횡행하고 있다. 토지와 건물만 매각한 뒤, 인원축소 등 구조조정을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 "회사를 매각하면 담보로 잡을 자산이 없어서 퇴직금을 지급하기 어려우니, 차라리 명예퇴직 등의 방법을 택하라"는 식이다. 아산 센추리, 경주의 아폴로와 한국펠저, 안산 대화브레이크 등이 대표적이다.

실업양산·경기침체 불보듯
문제는 이같은 해외진출이 국내에 몰고 오는 영향이다. 비용절감을 이유로 한 공장이전은 필연적으로 국내공장의 폐업과 축소로 이어진다. 산업자원부는 이와 관련해 '해외 진출 후에도 국내공장을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분석하면서 '해외 진출에 따른 국내공장 폐쇄비율은 12.3%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업종에 따라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국내에서의 대규모 해고와 실업으로 이어질 위험도 배제할 순 없다.

<표2> 해외진출 후 국내공장 유지 여부

* 자료 : 해외 제조업 투자실상 및 실태조사 결과분석(산업자원부 산업정책과 2003.11.26)

제조업 해외진출에 따른 실업문제는 중소기업 스스로도 인정하는 문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2003년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제조업공동화가 국내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국내경기 장기침체(36.5%)에 이어 실업문제(24.3%)가 두 번째를 나타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의 경우 공동화를 극복할 수 있는 대체산업이 불분명하다는 점도 실업양산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금속산업연맹이 "지식서비스산업의 발전이 아직 미흡한 상황에서 급격한 제조업공동화의 진전은 제조업뿐만이 아니라 서비스산업의 동반부진으로 연결돼 장기침체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동운동의 대응 : 국가정책 개입과 단사별 협약?

제조업공동화 현상에 맞서 가장 활발한 실천을 펼치고 있는 곳은 금속산업연맹(금속노조)이다. 이들의 대응양상은 '대정부 요구'와 '사업장별 대응' 등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즉 국가차원에서 무분별한 해외이전을 제한해 공동화 발생을 최소화하고, 외자유치 만능정책을 제조업 육성책으로 전환하며,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동시에 중소기업 지원책을 마련토록 정부에 요구한다는 것이다. 또 한 축으론 임단협 때 이 문제를 교섭의제로 들고나와 회사로부터 적절한 수준의 안전판을 마련하거나, 일종의 '경영참가'를 통해 최소한의 사전·사후대응을 가능토록 한다는 게 핵심이다. 완성차 노조들이 산업발전기금을 마련키로 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금속노조는 이밖에도 중앙-지부-지회 차원의 대응전략을 구축해 사회적 전선 구축과 정책대안 마련(중앙) 구조조정 전담자 배치 및 해당사업장 교육·훈련(지부) 사업장별 경영분석(지회) 등을 각각의 역할로 규정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민주노총에 대해서도 "제조업공동화를 금속과 화섬 등 일부 제조업연맹의 사안으로 파악하지 말 것"을 주문하면서 정부를 상대로 안이한 정부대책 질타 노조의 정책대안 수용 올바른 산업정책 마련 등을 요구토록 주문하고 있다.
대정부 요구와 투쟁의 경우 그 성격상 아직까지 이렇다할 성과가 나타나진 않고 있다. 그러나 단위사업장 별로는 눈여겨 볼만한 합의가 속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노조의 경우 지난해 단체협상에서 국내 생산물량 2003년 수준 유지 국내공장에서 생산하는 완성차 및 부품(엔진, 변속기)의 해외공장 수입 금지 적극적인 연구개발 공장폐쇄가 불가피할 경우 해외공장 우선 폐쇄 고용에 영항을 미치는 경영계획 수립 시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심의·의결 등의 내용에 합의했다.
금속노조의 중앙교섭도 관련 내용을 담고 있다. 금속노조는 지난 7월6일 산업공동화 관련 노사공동 연구팀 구성 연구개발비 확충 및 국내투자 확대 노사 공동으로 정부에 국내자본 투자확대 환경조성 건의 별도법인 신설계획 수립 시 조합에 통보 협의 조합원의 고용안정·노동조건에 관한 사항은 60일 전에 조합과 합의 별도법인 신설시 정규직 채용 등에 합의했다.

신자유주의에 맞선 공동행동을

그러나 단위사업장(혹은 산별노조)별로 이뤄지는 '서면합의'가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부정적이다. 제조업공동화 자체가 개별자본의 의지에 의해 판가름되는 현상이기보다는, 세계화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자본의 '전지구적 구조조정'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저임금 지역에 노동집약적 산업을 유치하는 것은 자본의 입장에서 수익극대화를 위한 필요 불가결한 조치다. 더군다나 대규모 원청 기업이 해외로 이전할 경우, 이에 납품하는 하청업체의 경우 좋든 싫든 함께 따라 이동하는 수 이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을 수도 있다.
일이 이렇게 될 경우, 단위사업장 차원의 합의는 휴지조각이 되기 일쑤다. 금속노조 월드텔레콤지회의 경우 해외이전을 추진하는 회사에 맞서 지난해 6월 상시고용인원 400명 유지 및 생산설비·계획 마련 유휴인력 발생 시 노동시간 단축으로 고용보장 협약 유효기간 3년 등에 합의했지만, 이 약속은 반년밖에 지켜지지 않았다. 회사는 지난 2004년 1월 새벽을 틈타 단 두 시간만에 핵심설비를 공장 밖으로 빼돌렸다. 경영진이 공장을 버리고 도망가는 마당에 '고용안정 협약'은 들이밀 곳조차 없었다. 지회는 임금과 퇴직금, 퇴직위로금 지급을 요구하며 160여일 동안 싸움을 펼쳤고, 결국 지난 6월 퇴직위로금 9억 지급 투쟁기간 평균임금 지급 임금채권 보장 재산경매시 위로금 확보 등에 합의하며 만족해야 했다. 충남의 젝셀발레오도 고용유지를 위한 특별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이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다. 비단 산업공동화뿐만이 아니라도, 공장폐쇄에 맞선 노동조합의 대응이 얼마나 제한적인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상식'이다.
국내 생산인력 잔류가 불가피한 일부 대기업의 경우 노조의 강력한 투쟁력을 근거로 실효를 가져올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공장폐쇄 시 해외공장부터 폐쇄한다'는 현대자동차 노사의 합의처럼-현존하는 조합원의 권리와 고용을 위해(물론 이것도 중요하지만) 해외 법인에 고용된 이름·얼굴 모를 이들의 희생을 '약속'했다는 점에서 그다지 '연대의 정신'에 합당한 것은 아니다.
또 사용자들을 상대로 기술혁신과 기술집약적 산업발전을 요구하고, 국회에 입성한 민주노동당과 함께 공동화 방지를 위한 정부차원의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것은 당장 코앞에 닥친 인력감축과 구조조정 움직임에 대해 사실상 무기력하다.
완성차 노조들이 제기하고 관철시킨 '산업발전기금'도 조금은 살펴 볼만하다. 백날 싸워도 길이 보이지 않으니,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 정부와 자본을 설득하겠다는 의도로 이해된다. 물론 '자동차 산업 발전'도 그들에겐 중요한 문제이겠지만, 오늘날 '산업공동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곳은 중소규모 제조업체들이다. 게다가 그들이 말하는 '산업발전'의 실체가 고전적인 '이윤증대'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와 다른 심오한 무엇인지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다. '기금'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의견들이 노동운동 내부에 횡행하고 있지만, 백 보를 양보해서 그것이 '좋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특정 산업·업종 내부에 '노사 공동관리'의 형태로 존재하게 될 경우 '산업별 합의주의'를 부추기는 것 이외에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국내 생산시설은 유지토록 한 채, 해외 추가투자로 발길을 돌리는 것은 노사합의(또는 협의)절차를 거쳐 실행토록 하는 게 노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응일까. 당장 공장이 사라질 위기에 처할 경우, '재교육기금'이나 '퇴직위로금' 등을 두둑하게 받아내는 것 이외에 다른 해법이 없는 것일까.
'산업공동화'에 맞선 노동운동의 대응이 이제 걸음마 단계를 시작한 수준이기 때문에 뭐라 단정하기엔 이르지만, 무엇보다 '공동의 인식'이 부족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의 해외진출이 이렇게 '산업공동화'로까지 문제가 되는 현상의 이면에 있는 보다 중요한 원인은 한국경제에서 활발한 투자와 축적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 것이지 않을까? 한국경제에서 활발한 투자와 축적이 진행된다면 노동자들은 '마찰적 실업'으로 인한 고통이야 약간 따르겠지만 다른 데서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고, 이런 중소자본의 해외진출은 한계산업 또는 기업의 사소한 생존전략 정도로 치부되고 전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경제의 불황기로의 진입(자본과 노동력의 완전고용 아래에서 이룩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이 4% 대로 하락했고 이 또한 안정적이지 않다든가, 이론적으로는 지수적 성장경로에서 로지스틱 성장경로로 이행했다는 등의 이야기)이 문제인 것이다.
최근 한국경제는 설비투자율이 지속적으로 마이너스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중반까지 진행된 엄청난 과잉축적과 이로 인한 이윤율 저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구조조정으로 인하여 초민족적 금융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거대기업들, 수출기업들에서 이윤율이 급격히 회복하고 있음에도, 영업을 통해 엄청난 현금을 쌓아두고서도 투자를 활발히 진행시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초민족적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기업들에서 소수지분을 가진 재벌경영자들은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사주 매입 등에 돈을 쓰고, 주가를 관리하느라 중장기적으로 위험이 동반되는 투자에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다. 단기적인 이윤증대에 급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초민족적 금융자본에 고율배당을 하느라, 비상장 기업의 경우 아예 대대적인 유상감자를 통해 돈이 빠져 나간다. 투자할 여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예 한국기업들을 충분히 가동해서 단물만 뽑아내 먹고 폐기처분해 버린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한편 한국에 투자한 미국 등 중심부 출신 초민족적 금융자본이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반면(초민족적 금융자본은 한국에서 매년 엄청난 배당과 이자를 챙겨가고 있고, 98년부터 2003년에 증권거래소 상장기업에서만 약 90조의 평가이익을 얻었으며 비상장 직접투자에서도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있다), 이렇게 해외로 나간 한국자본이 원본도 건지지 못한 채 손해만 보고 있다는 사실은 별로 잘 알려져 있지 못하다.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국제투자대조표에 의하면 해외에 투자한 한국자본은 계속해서 원본을 건지지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자본이 불법적인 자본도피라고 주장하는 이들마저 있는 것이다. 중국 베이징에 투자했던 한국 기업 40개 가운데 5개사만이 살아남았다고 하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도 있다(한겨레신문 7월 13일).
민주노총이 최근 들어 산업공동화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를 구성하고, 해당 노조를 모아 대중집회 개최 등 대응에 나서기로 한 것은 일단 그 자체를 두고 보면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보다 핵심적인 것은 '대응의 내용'이다. 지금까진 그저 7월21일 총력투쟁에 '숟가락 하나 더 놓는 식'으로 산업공동화문제를 제기하는 수준이어서 안타깝다.
현재의 산업공동화가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중반에 걸쳐 한국자본주의에서 과잉축적이 이루어지면서 이윤율저하가 초래되었고 이런 구조적 위기를 겪으면서 초민족적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금융세계화에 보다 확실히 편입해 들어간 것이 그 원인이라면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투쟁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합주의적 국가주의적 대안을 관철시키기도 쉽지 않겠지만 관철시킨다 하더라도 곧 무너질 수밖에 없는 대안이다. 어떤 안정적인 타협, 유일하게 가능한 것이라면 자본의 이윤증대를 위한 생산성을 위한 타협밖에 가능하지 않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가 아니던가!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중심-반주변-주변으로 위계화된 세계경제 구조, 금융세계화와 무장한 세계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 없이 투자와 성장 부진, 산업공동화는 근본적인 치유가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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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탄압 포항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