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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4.7-8.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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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기관지-연대기금.hwp

'연대기금' 어떻게 볼 것인가?

이상민 |
노동운동 위기에 대한 하나의 고육지책... 그러나

노동운동진영에서 제안된 연대기금 발상은 현재 노동운동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하나의 고육지책으로 나왔을 것이다. 이미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비정규직의 경제적 소외, 더불어 정규직과 비정규직노동자 사이의 심각한 임금·복지격차가 더 이상 치유되기 힘든 상태까지 와 있다는 것이 노조내부의 진단이기도 하다. 이렇듯 '연대기금'안은 노동운동이 언론의 도덕적 공격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에 무기력한 상황에서 노동운동의 대응력을 키우고, 더욱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도덕적 책무와 쓰러져 가는 민주노조운동의 정당성을 되살리기 위한 몸부림에서 나왔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민주노총의 연대기금 제안배경에는 '고용형태별 임금·복지 격차'와 '기업규모간 임금 및 복지격차가 확대'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더 이상 비정규직 투쟁을 연대한다고 진행해온 소모적인 논쟁보다 실천방안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 말하고 있다.

여기에 한가지 덧붙이자면 지난해 10월 일어났던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 노조 이용석 열사의 분신, 올해 2월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조 박일수 열사투쟁에서 정규직 노조의 태도이다. 정규직노조에서 보인 무관심과 정규직 노조의 비정규노조에 대한 탄압은 더 이상 민주노조운동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바라보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대부분 정규직노조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배타성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격렬하게 진행된 이후로 계속해서 쌓인 결과로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운동이 처한 조건이 자본과 언론의 무차별적인 도덕적·경제적 이데올로기 공격에 무기력하다는 것과 이를 대응하기에는 노조의 단결력과 대응 이데올로기가 너무나 취약하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노조에서는 도덕적 공격을 방어하고, 민주노조운동의 정당성을 복원하기 위한 처방으로 노동자들도 임금인상 자제할 테니, 그 댓가로 너희(자본)들도 앞장서서 비정규직 문제와 (정규직)고용문제(산업공동화)를 책임져라 하는 식의 인식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한 부채감과 노사상생(?)의 길을 향한 '연대기금'안

민주노총은 올해 임·단협에서 '사회적연대 기반 상실 저지'를 위해 '연대기금조성을 통한 연대 기금제를 추진할 것'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노동연대기금' 조성을 밝힌바 있다. '연대기금'이란 정규직 조합원 임금(인상분) 중 노사가 공동으로 일정액(또는 비율)을 적립하는 것으로, 민주노총은 이를 '비정규직 복지기금', '직업훈련', '조합원의 고용안정기금'등에 사용토록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조합원 기금을 산업별(또는 업종별)로 적립할 것과 기금은 노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5가지 연대기금 방침을 내놓았다. 그리고 연대기금은 '노사간의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고, '임금격차와 차별해소분위기가 확산'과 '산업(업종)별 대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 길만이 살길이고, 노사 상생의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민주노조운동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저지 투쟁의 힘겨운 길을 걸어왔다. 이 시기에 민주노조는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나누기와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통한 고용안정요구를 전면을 내 걸었다. 이후 노동시간단축투쟁은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주5일제 쟁취투쟁으로 변모하였다. 또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법이 법제화된 이후, 자본은 자유로이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더욱더 심화되었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점점 더 열악해져갔다. 그리고 주5일제 쟁취투쟁은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 쟁취투쟁과는 상관없이 철저히 정규직 중심의 투쟁으로 변질되고 결국 탄력적 노동시간 확대와 각종 휴가무급화를 골자로 하는 노동법이 통과되며, 상처뿐인 주 5일제를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와 권리는 철저히 소외된 것은 당연지사다. 올해 제출된 연대기금안은 비정규직을 위한다는 명분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정규직을 연대의 대상이나 운동의 주체로 보는 관점이 아니라 시혜적인 대상으로 '비정규직 복지증진'을 정규직노조가 해결한다는 식으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부책의식을 이런 식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곤란하다. 지금의 비정규직의 문제가 노동의 불안정화 시대에 나타나는 노동자내부의 위계화와 분절화의 한 현상이라면, 이것을 극복하는 것도 노동자내부의 위계화와 분절화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자본과 언론의 도덕적 정당의 이데올로기 공격에 대응하는 것에 급급하여 비정규직에 대한 연대에 대한 관점 없이 단지 '연대기금'조성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일정하게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너무나도 수세적이다.

기금조성방식과 운영주체의 문제점으로 본 '연대기금'안

기금 조성방식과 운영주체는 산업(업종)별로 천차만별이다. 금속산업연맹 산하 현대·기아·대우·쌍용자동차 등 완성차 4개 노조도 완성차 업체부터 세전 순이익의 5%를 기금으로 적립하고 노사가 공동기구를 통해 운영하는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을 조성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노동연대기금의 추진하고 있는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올해 산별교섭의 실질적인 원년으로서 산별교섭의 취지에 걸맞는 요구를 산별5대 요구로 확정하고, 그중 의미 있는 요구'가 '노동연대기금'조성 요구라고 밝힌바 있다. 구체적으로 노사는 2004년 임금 인상분 총액의 1%를 각각 각출하여 '보건의료산업 노동연대기금'으로 적립하고, 정부도 같은 금액을 지원하도록 요청한다'는 복안이다. 이에 반해 민주노총의 경우 '2004년 정규직 조합원 임금(일정분) 중 일정액(비율)을 적립하고, 조합원이 조성한 기금에 대당하는 금액을 기업에게 요구하는 방식으로 노사 공동으로 출연하여 노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식'을 권고하고 있다. 이에 반해 자동차4사노조는 기금출연을 사측에서 전면부담하고, 운영주체로 노사공동기구에서 관리할 것을 요구하고, 보건의료노조는 '노·사·정'이 공동으로 기금을 출연하여 노사 공동으로 운영하자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기금조성주체와 운영주체가 산업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혼란스러움의 배경에는 산업별 조합원들 이익과 교섭대상을 고려한 이유이다. '연대기금'안이 비정규직과 연대를 강화하고, 운동의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이라면 기금의 출연이 어떠하던 간에 기금운영의 주체가 분명히 노동자들과 노조가 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노사공동으로, 아니면 노사정공동으로 되어 있는 것은 산업별 합의주의 정신에 입각한 안이기 떄문이다. 또한 기금출연의 불안정성이 문제가 될 것이다. 미시적인 문제이기는 하지만 기금이이라면 최소한의 안정성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제안된 안은 기금 출연 주체가 제 각각이거나 불분명해 장기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불안정한 기금안이다.

자동차 4사 노조의 변명과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연대의 기만성

또한 금속연맹은 기금조성방식에 대하여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대신 그 중의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하는 '연대기금' 안이 구조조정 시기에 고통분담론 나타났던 것으로 왜곡될 것이라며, 노사간에 일정비율을 같이 분담하자는 제안에 대한 조합원들의 부담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노동운동진영에서 이 부담감이 지속되면 될수록 노동자내부의 격차는 커질 것이다. 노동운동진영은 노동자내부의 격차가 너무 벌어져 집회장소에서 외치는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구호가 공허하고 낮 설기조차 한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 이미 노동자들의 임금·복지·위계화 등에 따른 내부격차가 벌어질 대로 벌어져, 원상태로 되돌리기 힘든 상황까지 온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조합원들에 대한 부담감이 존재하니까 기금조성을 공동으로 하자는 안이 힘들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앞으로 조합원의 이익과 관계없거나 관계없어 보이는 사업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거나 안 하겠다는 것 다름 아니다.

기업별노조의식을 극복하자고 한 민주노조에서 오히려 반대로 단사별(기업별), 산업별 합의주의를 강화하고 있는 아이러니의 현장이다. 기금을 공동으로 출연하기 힘든 이유가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개선과 차별해소를 목적으로 쓰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악몽을 되살릴 수 있는 고통분담론에 따른 이데올로기라면 자동차노조들은 1998년 현재에서 한치도 전진도 없을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왜곡된 관점은 오히려 노동자내부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을 노동조합에서 재생산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올해 현재자동차노조의 임·단협에서 추진한 '정규직 임금대비 비정규직 임금을 8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결의가 '정규직임금 인상분의 80%인상'으로 대체되는 과정이 있었다. 대표적인 민주노조라고 뽑히는 현대자동차의 이러한 단면을 보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기만이 오늘 한국의 민주노조의 현 주소라면 너무 가혹한 것일까? 결국에는 조합원을 이유로 노동운동의 위기가 도래했다고 핑계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조 내부에서 논의되는 '연대임금' 추진안도 문제지만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위한답시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을 기만하는 작태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 노동자내부의 위계화와 분할이 자본의 공격에 의한 결과라고 어쩔 수 없었다 라고 말할 수 없듯이, 조합원을 핑계로 어쩔 수 없었다 라는 변명에 앞서, 노동운동내부의 성찰이 먼저 필요할 시점일 것이다.

결국에는 산업별 합의주의가 강화될 것

기금조성주체와 운영주체가 산업(업종)별로 다르고, 민주노총의 권고방침과 전혀 다른 안(자동차4사 노조)이 나오는 이유는 '연대기금'조성 목적이 서로 상이하기 때문이다. 연대기금조성 목적에 대하여 자동차 4사 노조의 경우, '자동차산업발전을 위한 노사공동연구기금을 통한 산업발전', '비정규직을 위한 기금, 직업훈련기금, 고용안전망을 위한 기금', '복지센터 설립비와 빈민층자녀를 위한 교육기금 등 사회공헌'등을 위한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을 말하고 있다. 덧 붙여 조성된 기금은 노동자의 삶의 질과 노동의 질을 높여 자동차산업을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발전시켜내는 한편, 보호받지 못하는 자동차산업의 수많은 노동자(비정규직)들의 고용과 숙련향상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고 하였다. 금속연맹은 제기의 배경으로 첫째, 노사간의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자는 취지, 둘째 산업정책에 기여를 함으로서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고, 셋째는 심각하게 왜곡되는 노동시장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의 하나라는 것, 넷째 내수시장 침체에 대한 일정한 대비책이 될 수 있고,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운동의 전략적 발전을 위한 사도로서 의미가 있음을 밝힌바 있다. 또한 보건의료노조의 경우는 '보건의료 전체노동자들의 고용안정, 비정규직 복지, 교육훈련, 모성보호, 보건의료복지회관 걸립 등의 용도'로 사용된다고 밝힌바 있다. 화학섬유연맹 광주전남지부(준) 여수공투본은 여수공투본 2004년 주요 3대요구중에 하나인 '지역사회발전기금조성'의 내용은 '회사는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지역사회 발전과 기업이익을 사회환원을 실현하기 위해 총 매출액의 0.01%를 지역사회발전기금으로 출연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밝힌 기금제 도입의 가장 큰 이유는 '민주노조 운동의 도덕적 정당성 확보'다. 다시 말해 "더 이상 머뭇거리게 되면 계급적·사회적 연대의 기반을 상실할 것이고, 노동자 계급 내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고립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다. 또 최근 경총 등이 지난해부터 정부가 유포한 '노동자 귀족론(?)'에 편승해 '대기업 임금인상 자제'를 강력히 제기하고 나온 상황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배경도 있을 것이다. '민주노조 운동의 도덕적 정당성 확보'의 측면과 금속연맹에서 말하는 '노동조합운동의 전략적발전시도로의 의미'에서 본 '연대기금'안은 함량미달이고, 위기에 대한 근본처방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서구 사민주의 모델에서 차용했다면 그것은 계급타협적 내용이 기본 축 일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 조건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허구적 합의주의가 양산될 점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차용하지 않았더라고 현재 '연대기금'안의 목적과 사용방안으로는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힘들뿐더러 '계급주체'형성을 향한 노조운동의 전략으로서도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운동이 자본에게 산업발전기금을 요구하여, 산업발전을 위해 공동으로 연구하자는 안도 아이러니이다. 앞서 말한 기금출연목적과 연구로 산업공동화에 대한 대응책이 나올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백 번 양보해서 설사 그렇다 하더라고 초민조적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경제구조 하에서 이전과 같은 성장전략의 산업정책을 실행하기에 무척 제약된 조건이 현재라면 산업정책에 기대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이미 산업정책이 실종되어가고 있는 조건에서 산업적 차원에서 노사 공동으로 산업정책을 발전시키겠다는 발상은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조건하에서는 오히려 (허구적) 합의주의가 득세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또한 이 합의주의는 산업별 이기주의가 강화되는 합의주의로 변형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자본의 입맛만 당기는 안이다.
기금을 모으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전제하고있는 모델이 문제이다. 노조가 산업정책에 개입하고, 노동시장을 통제하고, 숙련을 훈련을 시키겠다는 것은 서구 산별노조 모델에서 나온 것이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기금 조성의 목적과 관점', 그에 따른 '기금 조성 방안과 운영주체', '실행의지'가 될 것이다.

생색내기용에도 못 미친 임·단협 이후 '연대기금'안의 현실

지금은 각 노조들의 임·단협이 후반기로 들어서면서, 올해 민주노총에서 비정규직차별철폐를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연대임금'교섭 결과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연대기금'조성에 가장 의욕을 보였던 금속연맹소속 자동차분과노조들과 보건의료노조는 각각 △ 자동차공업협회와 금속연맹 자동차분과의 협의 결과를 준수하도록 하고, 사회적 책무를 위한 별도 재원을 회사에서 출연하며, 복지회관 내 비정규직 센터 설치한다는 3가지 조항과 △'보건연대기금' 조성을 위한 노사공동 위원회 구성하여 '전체 보건의료산업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비정규직 복지, 모성보호, 의료산업 발전' 등의 용도로 보건연대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노사 동수 각 3인이 참여하는 '보건연대기금 노·사 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기금 조성방법, 운영방안 등 세부사항을 논의하여 노·사 합의 후 시행하고 동 위원회는 위원회 설립 취지를 살리기 위해 정부의 위원회 참여와 기금 지원등을 요청한다' 는 내용을 담은 잠정 합의문을 내놓았다. 잠정합의안을 보면 애초에 제시했던 노조들의 안에 비하여 대폭 후퇴하였거나, '노동연대기금'이 '보건연대기금'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이제 연대기금조성에 관한 첫발을 떼었으니 좀더 기다려 보자'라는 식으로 변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대폭 후퇴한 안의 원인은 주요하게 추진했던 산별(업종)노조에서 조차도 '연대임금'안을 주요요구 안으로 상정하였지만, 중요한 의제로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연대임금 개념에 대해서조차 전달되지 않은 조합원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점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또한 연대임금 안은 몇몇 산별(업종)노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산별연맹(노조)들은 썰렁한 반응을 보였다. 공공연맹은 지난 3월 24일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연대기금 방침은 현 단계 연맹 조건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04년에는 년 임금인상분 1개월 치의 1%를 비정규직기금으로 적립한다'는 기존의 결정을 실천하는 것으로 결정한바 있다. 금속연맹 자동자분과 노조들과 보건의료노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산별조직들은 논의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반증한다. '연대기금'안을 추진한 산별(업종)노조들의 결과가 무척 초라하기 그지없는 상황을 보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서구 사민주의 모델의 개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의 '연대임금' 제안은 스웨덴식 임노동자 기금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보인다. 실제로 민주노총은 연대기금정책 마련 직전인 2004년 2월12일 성공회대 유철규 교수(경제학과)를 초청해 '사회기금'을 주제로 내부 정책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또한 금속연맹은 유럽의 복지국가모델을 근거로 스웨던의 연대임금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스웨덴식 모델의 개념은 무엇인지 우선 살펴보자.

+ 스웨덴 임노동자 기금(Wage Earners' Funds)이란?

- 스웨덴에서 80년대 초 이후 7년간 유지된 임노동자 기금은 1950∼1980년 동안 유지돼오던 '연대임금제'의 대안으로 제기된 것이다.
- 스웨덴의 '연대임금제'란 간단히 말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원칙화 한 것으로, 기업의 규모와 수익, 산업 등에 상관없이 동일임금을 보장하는 일종의 '임금 가이드라인'이다. 이는 어떤 면에선 사양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는데, 이 경우 발생하는 사양산업·중소기업의 실업자를 대상으로 정부 운영의 복지제도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재교육)이 뒷받침 됐다. 이 정책은 1960년대 이후 전반적인 임금균등화에 적잖은 역할을 했다.
- 하지만 연대임금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몇가지 부작용을 낳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임금유동(Wage Drift) 현상이다. 즉 기업수준에서 최종적으로 확정된 임금상승률이 중앙단체교섭이나 산업별 단체교섭에서 정한 상승률을 상회하는 것이다. 이는 수익성이 높은 대기업 노동자들의 불만을 누적시켰고, 고수익 업종의 고용흡수력이 약해짐에 따라 공공부문의 비대화도 나타나게 됐다. 결국 산업간·민간-공공부문간 누적적 임금상승 경쟁과 임금격차의 확대, 중앙교섭 해체, 물가상승 등으로 연대임금제의 기반이 와해되기 시작했다.
- 그 대안으로 추진된 것이 '임노동자기금'제다. 스웨덴노총(LO)가 1975년에 제출, 1983년 사민당 정부에 의해 입법화된 이 정책은 Wage Dirft(평균임금률을 웃도는 개별기업 등의 임금상승경향)에 해당하는 만큼의 금액을 임금보조가 아닌 신규주식으로 기금 출연토록 하는 것이었다. 애초부터 이 제도는 임금인상 억제책의 성격이 짙었던 셈이다. 이 주식들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해당 기업 안에 임노동자기금의 소유지분으로 동결된다. 기금은 개별기업이 아닌 상위수준에서 운영토록 했다. 운영 주체로는 정부가 기금 이사회를 구성·선임했다. 그러나 기업경영권 확보가 위협받으며 주식출연이 이후 현금 출연으로 바뀌면서 결국 기관투자가의 하나 역할을 하게 됐고, 91년 부르주아 연립정부가 등장하며 사민당이 실권하자 해체되며 결말을 빚었다.
- 임노동자기금안이 구상한 미래는 시장사회주의의 일종인 '기금사회주의(Fund Socialism)다. 시장경제의 존속을 통해 경제적 효율이 확보되고, 복지국가의 유지를 통해 시장경제의 문제점들이 완화되며, 임노동자기금을 통해 노동자들이 민간대기업을 소유함으로서 직접생산자에 대한 생산수단의 소유라는 사회주의의 고전적인 이상이 실현될 수 있다는 논리다. 또 임노동자기금이 지배주주가 되기까지는 수십년이 소요될 것이므로, 기금을 관리할 노동조합은 그 사이에 기업운영의 기법을 습득할 수 있다. 기업소유의 사회화가 합법적이고 평화적일 뿐만 아니라 점진적이기 때문에, 이행기에 큰 경제적 혼란이없으며 반대세력에 대한 정치적 억압도 필요없다는 설명이다.

스웨덴의 '임노동자기금(또는 연대임금정책)'과 별 상관없는 한국의 '연대기금'안

스웨덴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노동조합조직인 LO가 현실적 집권세력인 사민당과 공조하며 '임노동자 기금'이란 제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 서구 대부분의 나라들 역시 2차 세계대전 이후 노조의 영향력이 극대화되는 시점 이후에 가능했다. 특히 LO 안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정치적 영향력이 강한 노조인 '금속노련(Metall)은 치열한 국제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금속기계공업의 객관적 조건 때문에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등 계급협조적인 양상을 보여왔다. 한국의 경우 노동조합 조직률도 형편없이 낮은 데다가, 제대로 된 '시민권' 조차 아직 미숙아 단계인 지금의 노동운동 진영으로선 다급한 접근인 셈이다.

사용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스웨덴의 경우 대기업은 연대임금제에 쉽게 동의했는데, 이는 대기업의 임금지불능력이 상대적으로 높음에도 불구하고 임금 가이드라인은 이보다 낮게 책정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임노동자 기금'과 관련해선 경기침체 국면에서 사민당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반면, SAF(재계), 자유당, 중앙당(전 농민당), 보수당 등은 모두 반대 혹은 절대 반대 입장을 냈으며, 공산주의자 좌익당은 '기권'에 표를 던졌다.

스웨덴에서 복지국가가 확장되던 시기는 무엇보다도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복지국가 모델에서 경제성장은 필수적이었다. 이에 비해 현재 세계자본주의는 구조적 불황에 직면해 있고, 한국의 경우 경기침체와 저성장을 유지하고 있는 조건에서 스웨덴식 모델은 더욱더 힘들 것이다. 계급 타협적이며, 경제주의적 노동조직모델, 개량주의적으로 조직된 노동운동을 갖고 있는 스웨덴식 모델과도 거리가 먼 것이 현재 한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연대기금'안이다.

스웨덴의 '연대임금제'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정책-제도화 한 것이고, 임노동자기금의 애초 구상은 장기적으로 기업을 노동자가 소유하는 점진적 사회화 안이었던 것에 반해, 현재 민주노조운동에서 추진되는 '연대기금'은 이도 저도 아닌, 비정규직 복지증진과 직업훈련, 산업발전과 사회공헌기금이라는 점에서 애초 취지와 목적이 다르고 기금운영목적과 운영주체에서 모두 다르다.

급하다고 우회할 수는 없다.

올해가 첫해이기에 아직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만을 놓고 보면 '연대기금'안 조차 제대로 추진하기 어려운 이유로 현재 한국의 노조형태가 기업별 형태이고, 산별노조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조건이라는 분석은 결과론 적이다. 노조에서 비정규직 처우(복지)개선의 '연대기금'안 조차 제대로 추진되기 힘든 이유로는 금속연맹에서 지적했듯이 조합원들의 부담감도 깔려있었을 것이고, 자본의 강한 거부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조가 이를 빌미로 조합원을 탓하고, 현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지 못한 원인도 존재한다. 이러한 사태의 근본원인은 현재 노동자내부의 위계화와 경쟁, 노동자들의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고용의 불안정)에서 나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공공연맹 중앙위에서 보여지듯이, 현재 추진중인 비정규직 기금적립도 쉽지 않은 판에 비정규직을 위하여 다른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모험일수 있다. 공언(空言)만 남발하는 조직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럴 바에는 기존에 추진한 비정규직 기금적립을 통해 하나하나 밟아 가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이며,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연대기금'안은 지금의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유효한 시도라고 보기 어렵다. 현재의 노동운동의 위기가 이데올로기적·정당성의 위기라고 한다면 그에 걸 맞는 안을 내놓아야 한다. 단순히 지금까지 방식으로 지속하던 임·단협을 강화하자라는 방식으로 곤란하다는 것이다. 임·단협을 하더라도 노조운동의 상박하후의 원칙에 따라 노동자 내부의 격차를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공동투쟁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자본의 공세는 입체적이다. 혹은 전방위적이다. 이미 상시적 구조조정 시스템이 완비된 이 땅에서 비정규직 사용제한에 있어 제한을 거의 받지 않는 자본은 한국을 무노조, 관리노조, 무권리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의 천국의 땅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이제 시작일 뿐인 예이다. 노조는 일상적인 정치투쟁을 강화하기 위하여 교육적 기능을 강화하고, 투쟁을 배치해야 한다. 자본의 공격도 문제지만, 현재 노동자내부의 의식과 행동이 바뀌지 않은 한 한국 노동운동의 미래는 없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분할과 노동운동의 위기가 한 순간에 드러난 문제가 아니듯, 처방전 또한 좀더 장기적이고 근본적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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