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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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4.12.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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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연가

김예니 |

싸늘한 바람에 몸이 오소소 떨려온다. 겨울 바람에 허옇게 내놓은 목덜미가 썰렁해 보인다. 늦은 오후, 겨울 햇살에 눈을 찌푸리는 그녀의 표정에 무심함이 묻어난다. 아니, 오히려 그녀는 텅 비어 보였다. 눈은 초점이 흐릿했고, 일자로 다문 입술은 서로 들러붙어 버린 듯 고요했다. 그녀는 사실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어찌해야할 바를 모를 때, 그녀는 무심함을 가장했다. 능력의 부족으로, 사람의 부족으로, 내용으로 부족으로 공연이 몇 차례 무산되었다. 누군가를 탓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누구를 탓하랴. 길이 없던 곳에 길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이미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예상했고 결심을 다졌건만 때때로 찾아드는 좌절을 그녀는 피할 재간이 없었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그녀는 나지막이 중얼거려 본다. '하고 싶다'는 이유로 사무실에 사퇴서까지 제출한 그녀였다. 본격적으로 연극의 길을 걷고자 결심한 그녀였다. 하지만 몇 번의 공연기획이 무산되었다는 것으로 이렇게 상심하게 될 줄은 그녀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 그녀는 뭔가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짓눌려 보였다. 그녀의 마음 속에 일렁이는 격정은 경직되어 버린 상상력으로 언어를 만나지 못한 채, 머리 속을 부유하다 사라졌다. 그녀에게는 여유가 필요했다. 텅 빈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버스를 탔다. 집까지 가려면 1시간은 족히 걸리는 노선이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멍청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에는 일상에 쫓기는 사람들이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잔뜩 웅크린 그들의 머리카락을 일제히 흐트러트리는 바람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바람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 듯, 무심히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자신의 생을 살고 있다는 것은 가끔 새삼스레 놀라운 일이다. 자신의 눈에는 그저 타인인 그들 역시 그녀 자신을 타인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가방을 꼭 끌어안고 유리창에 머리를 기댔다. 차가운 기운이 그녀의 뺨에 확 끼쳤다. 정신이 번쩍 트이는 듯한 놀라움! 여러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한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은 그녀의 마음을 편하게 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르는 데로 살아진다는 사실에 그녀는 마음이 놓였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끝장이 나는 것은 아니니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녀는 예전의 기억이 하나 둘 떠올랐다.
'그런 적도 있었네. 그 때 정말 어쩔 줄 몰랐는데. 모두가 어쩔 줄 몰라 했는데.'
그녀의 가슴 속 빈틈으로 가장 추웠던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녀는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다 저 밑에 숨겨둔 상처를 건드려버렸다.

매캐한 담배연기가 자욱한 회의실에서 사람들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깜빡이는 형광등뿐이었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저마다 자신의 생각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얼굴, 회의실 안의 시간은 한없이 늘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정신이 아득해옴을 느꼈다. 눈은 꽹 하니 커져 가는데, 가슴은 무엇인가 표현할 수 없는 격정으로 소용돌이치는데, 정신은 멀리 어딘 가로 멀어져 가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입을 열었다.
"돌아가면서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해봅시다."
잠시 난처해하는 기색이 떠오르더니 이내 사람들은 돌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간다. 이미 주어진 조건이 있었다. 그 조건 하에서 최선을 위한 판단이 필요했다. 문제는 곤혹스런 판단이 아니라,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조건이었다. 모든 질문은 근원적인 것을 향해갔고 급기야 사람들은 서로 무엇을 합의하고 함께 운동했던가 반문하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지난 일을 떠올려봤다. 수원역 광장에서 출근하는 노동자들에게 대선 공동투쟁을 호소하는 유인물을 나눠주었다. 한 명의 정치인에게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을 뛰어넘어 우리의 정치적 목소리를 모아 보자는 내용이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투쟁하는 노동자를 만나고 지역에 거점을 두고 운동을 조직하는 활동가들을 만났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조직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그들의 건강함을 통해 더욱 대중적이고 이전과는 다르게 운동이 조직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각 조직을 대표하는 활동가들의 회의에서 대선 공동투쟁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무산되었다.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아직 '때'가 아닌 것인가. 서로를 가로막는 불신의 장벽 앞에서 스스로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 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가고 그들과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사람들의 마음은 열정으로 가득 찼었다. 그녀는 깊은 한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는 통증을 느낀다. 자꾸 눈물이 났다. 그녀는 억울했다. 그리고 무엇인가 호소하고 싶었다. 이렇게 공동투쟁을 포기할 수 없다고 절규라고 하고 싶었다. 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이토록 요동치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함께 했던 동지들과 그녀가 만났던 대중들이 익명의 다수가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떠오르면서 무척 소중한 약속을 자신 스스로 파기하고 약속 자체를 지킬 힘과 능력이 없다는 고백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자꾸 눈물이 났다.
그때는 무엇이 그렇게도 서글펐을까. 말로는 나쁜 상황 자체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으면서, 낙관하지도 비관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말했으면서 왜 그렇게 울었을까. 사실 되돌아보면 그녀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어쩌면 그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억압되어 있던 것이 신경증으로, 혹은 거부하고 싶은 것이 정신병적으로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비슷한 경험을 그녀는 예전에도 했다. 어쩔 줄 몰라하며 스스로의 무능력에 비관했던 그 때. 그녀는 지금처럼 무심함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응어리진 절규 같은 것이 다 풀리지 않은 채 가슴에 얹혀 있는 것처럼 그렇게 아파하고 잠을 이루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햇살마저 꽁꽁 얼어붙을 것 같은 어느 날. 금시 '쨍'하고 깨져 투명한 빛의 파편들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아침. 그녀의 온몸을 파고드는 것은 겨울 햇살조각인지, 추위인지 알 수 없었다. 그 해 겨울은 아프도록 추웠다. 버스 창가에 기대 이른 아침 학교로 향하는 걸음이 무거웠다. 이대로 정류장을 지나치고 싶었다. 버스에 내려 학교로 올라가는 길이 유독 길어 보였다. 누군가 그녀를 알아 볼까봐 당장 어딘 가로 숨고 싶었다. 얼마 전 4개월의 총장실점거가 끝난 후, 투쟁을 접은 총학생회에 항의하여 30여명의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한 사건이 있었다. 부랴부랴 그 자리를 찾아간 그녀에게 누군가가 말했다.
"도대체 니가 뭐 길래, 우리 투쟁을 팔아 먹냐. 총장이랑 한 편 아니냐."
그때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상대방의 놀라는 기색에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정교수님의 제자들이었던 그들 사이에서 말이 심했음을 인정하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자신의 점거투쟁을 총학생회가 이어주길 바랬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인 그녀는 자존심이 상했다. 당장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눈물을 훔치고 그 자리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꼿꼿하게 섰다. 그리고 총학생회가 총장실점거농성을 정리한 이유를 설명했다. 마음 속으로 다른 활동가들의 도움을 외쳤지만, 아무도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자리는 철저히 그녀가 감당해야하는 자리였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지나는 것 같았다. 단대 별로 입장이 달랐던 총장사태 한 복판에서 총학생회는 '총장·이사장 퇴진, 대학운영위원회 건설, 사립학교법 반대'를 외치며 고군분투했었다. 수많은 학생들이 민주대학을 요구하며 함께 투쟁하던 과정이 있었다. 잠시나마 우리가 원하는 것을 곧 이룰 수 있다는 어리석은 기대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이 언제나 일치 단결된 입장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상황은 아주 순간적으로 불안정하게 존재할 뿐이었다. 폭력적인 방식이더라도 총장에 대한 실질적인 타격을 통해 빠른 시일 안에 투쟁의 종결을 원했던 몇몇 학생들은 총학생회의 입장에 강한 불만을 피력했었다. 그 전에도 그녀는 갑자기 몰려든 200여명의 성난 학우들에게 둘러싸여 2시간이 넘도록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녀를 아프게 했던 것은 그 대중들이 아니라 저 멀리 이 광경을 쳐다보고 있던 활동가들의 얼굴이었다. 그 누구도 선뜻 논쟁 안으로 끼어 들어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지 못했다. 그래서 추웠던 것 같다. 지독하게 추웠던 것 같다.

그 때 기억이 떠오르자 또 한 번 무력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모두 코끝이 시리도록 추웠던 기억들이다. 그녀는 생각해본다. 왜 이 기억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난 것일까. 그 때 느꼈던 무력감과 무능력 때문인가. 아니면 사람들한테 실망하고 지쳤던 때였기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새로운 전망을 모색했던 순간 맛보았던 좌절과 자책감 때문인가.
하지만 '어쨌든' 세상에는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살아온' 그녀 자신이 있었다. 당장 죽을 듯이 아파도 세월은 흐르고 있고, 세월이 흘러 준 덕에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좀 더 다르게 할 수 있었을 것 같은' 안타까움도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과거를 지양하는 과정은 흐르는 시간 속에, 그리고 다가올 시간 속에 존재했던 것 같다.
그녀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지독하게 추워했으면서 당장에 죽을 듯이 엄살을 피웠으면서,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녀는 춥다고 투덜거리고 있는 자신을 본 것 같았다. 그녀는 덤덤히 중얼거려본다.
"단지 상황이 나쁜 거다."
나쁜 상황을 좋게 생각하려 애쓰지 말고, 절망적으로 여기지도 않기! 언제나 자신에게 주문을 걸 듯 읊조리는 이야기지 않던가.
피해의식과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쁜 상황을 나쁜 상황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부터 필요했다. 받아들이는 시늉을 하면서 무심함을 가장하지 않고, 어쩔 줄 몰라하며 허둥대지 않아야 했다. 알면서도 그녀는 아직 과거로부터 한 발을 더 못 걸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운동으로 연극을 하겠다는 결의를 밝힌 상황에서도 그녀는 과거를 떠올린 것이다. 작은 어려움에도 많이 우울해하면서 자신의 선택에 조바심을 내면서...
버스는 이미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녀는 코끝이 시린 추위를 가르며 집으로 성큼 성큼 걸어간다. 작은 일에 상심하고 많이 우울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사실도 받아들이자. 또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지만 벗어나고 싶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받아들이자. 그리고 여전히 뚜렷한 길이 보이지도 않고, 암담한 것은 사실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자. 그럼 이제는? 그녀는 배짱이 두둑해짐을 느낀다. 모든 것을 논리 정연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것도, 잃을 것도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 발만 더 앞으로 가면 무섭지 않다. 난 이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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