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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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4.12.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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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책과나_조계원.hwp

따로와 끼리 - 남성 지배문화 벗기기

정유성 지음, 책세상

조계원 |
따로와 끼리 - 남성 지배문화 벗기기

조계원(인천지부 회원)

나름대로는 좋은 회사라고 자부하며 입사한 이 회사가 이젠 다시는 쳐다보지 않을 증오의 봉건적 기업집단이자 천민자본주의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었다는 분노섞인 회한의 대상이 되어버려, 임원진들과의 마지막 술자리로 꽤나 고성이 오갈 수 밖에 없었던 어제의 질퍽한 환송자리가 몸도 많이 망쳐놓은 듯 하다. 뻐근한 목을 슬슬 풀어주며 다시 실업자의 나락으로 떨어진 처지를 위안하듯 그래도 좋은 날은 얼마나 있었는지 회상해보면 그 중심에는 항상 몇몇의 주동적 멤버들이 있다. 이주노동자 운동을 조직하려 반(半) 의도적으로 취업한 인천의 모회사에서는 반동적 객체들이 살인적 노동조건의 제조자로서 선명히 대치의 선을 그리고 있었다면, 이번에 그만둔 회사에서는 운동의 의도도 그렇게 없었고, 말 그대로 내 밥벌이나 하자고 덤벼든 직장이었다. 이 땅의 모든 중산층의 자녀가 대부분 거쳐가게 되어있는 사무직 화이트칼라 노동자로서의 평범함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리 전 직장보다는 모든 관계가 래디컬하게 구조화되어 있진 않은 형태였다. 그러나 이런 유연한 분위기 속에서 관리자 즉, 자본가의 협조적 중간관리자를 배양하고 기업의 핵심적 경영 기획자로서 단계적으로 요구되는 그들만의 덕목은 참으로 여러 가지였다.
기록적인 폭염을 기록했던 8월 여름,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소위 문명화된 동남아가 아닌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로 출장을 갔던 그 때를 회상해보면 나는 아직도 한국의 자본주의가 조건 지우고 재생산하려는 이데올로기가 과연 그들의 마지막 출구인 신자유주의적 덕목(?)에 부합할지나 의문을 품게 한다. 하루 숙박비가 200달러나 했던 Five Star Hotel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능글맞은 캄보디아인 매니저의 눈 속에는 벌써 매춘제안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제안에 미리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 교도소를 돌며 성공한 기업가로서 절제와 노력의 발전주의적 덕목을 가르치고 돌아다니는 출장파트너 모 사장은 하노이 발 비행기가 떠서, (미리 나에게 동의를 구하듯) 동남아의 매춘 관광에 대한 집요한 몰입을 늘어놓았었다. 묵묵부답으로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제안에 응했지만, 모 사장이 프놈펜에 도착하자마자 착수했던 일들은 현지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Joint Venture사업 계획의 프레젠테이션도 아니었고, 계약 협상도 아니었다. 그가 묶고 있던 바로 옆방은 연산군 시절 기생이 전국에서 선발되어 자태를 뽐내느라 꽤 분주했던 사뭇 비슷한 분위기를 저녁내 연출해내고 있었다. 결국 한 명도 아닌 세 명의 깔끔한 캄보디아 여성이 사장의 올나이트를 책임지게 되었고, 이내 내방으로도 한 명의 여대생으로 보이는 듯한 캄보디아 여성이 어줍은 발걸음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비열하게도 I'm gay, I can't be involved in sex with women(저는 동성애자라서 여성과 섹스를 할 수가 없습니다) 란 말로 그녀와의 매춘을 피해갔지만 I oppose to the harlotry (저는 매춘에 반대합니다.)라고 왜 한 마디도 못했을 까 하는 후회감에 그 여대생과 다시 대화를 청했다. 그녀는 영어도 매우 유창했고, 전형적인 지식인의 외피를 두르고 있었다. 나는 폴포트 정권 시절의 학정을 주제 삼아 그들의 뿌리깊은 반(反)베트남 정서에 대해서도 많은 화두를 던져가며 꽤 긴 대화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옆 방은 그룹섹스에 질퍽대느라 새벽을 보냈지만 우리는 나름대로의 일(?)을 하느라 아침을 맞으며 대화를 접어가고 있었다.
내 얼굴이 매우 수척한 것을 알아보고 다음날 아침 사장은 매우 흡족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장은 자신의 섹스관광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프놈펜 시내로 들어가는 차안에서 내내 어젯밤 유흥에 관한 설명에 정신이 없었다. 특히 요즘 한국 여자들은 봉사하고 복종하는 맛이 없는데 베트남, 캄보디아 여성은 복종하는 맛이 죽인다는 극찬을 해대며 자신이 연출한 어젯밤의 변태섹스중 일부가 가학적이고 복종적인 섹스였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조 대리는 어땠냐는 질문에 나는 그저 어제 프놈펜 여대생과 나누었던 진지하기만 했던 대화내용을 모두 설명해 주었을 뿐이었다. 이 때 모 사장이 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연출해냈던 표정은 지금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대단히 실망한 표정은 마치 내가 군 입대했을 때 훈련소에 면회 온 부모님에게 거수경례로 인사하지 않았을 때 흘러갔던 부모님 표정과 흡사한 것이었고 수초간의 그런 표정 후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어댔다. 그리고 그 이후의 출장일정에서는 사담다운 사담은 거의 오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귀국할 때 오랜만에 사장이 입을 열었다. 자네 여자친구는 많았나? 나는 별로 없었으며, 그다지 결혼 할 생각이 많은 것도 아니라고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안 그래도 일전에 조대리는 여성적 성격을 가졌고, (그들만의) 남성적 패거리 문화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사보고를 접수한 터라, 아마 이번 출장에서 확인사살을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런 탐탁치 않은 출장과 더불어 회사생활에서 점점 나의 근원성과 대립하는 많은 일들이 첨예하게 지나갔다. 사장이 바뀌고 난 후 대기업이지도 않은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파벌형성의 정치적(?) 움직임은 꾸준히 진행되었고, 30대 초반의 우리 나이대의 사원 대리급 직원들은 사실 그날 그날 업무적인 애로점 때문에 고민한 것이 아니라, 오늘 저녁은 누구의 장단에 놀아주어야 하냐의 그런 심리적 부담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인사이동이 발표되기 한 달 전부터는 아예 노골적으로 특정그룹의 충실한 후배부대의 일원이 되어주길 압력 받았고, 그 수혜의 결과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금융적, 인사적 부정도 맞물려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소위 남자들의 짝짓기놀이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고, 사회생활을 참으로 못하는 원조로 낙인이 박혀있었다. 언제인가 흘러가는 얘기처럼 가족에게 이 사연을 들려주었는데, 오히려 어머니의 반응은 놀라웠다. 고분고분하지 않는 여직원까지 내쳤다는 (여성의 동질성에 기반한 문제의식이라도 유발시키려고) 비극적인 사건까지 들어가며, 소위 우리나라의 일반직장에서 구조화되어 있는 이런 남성위주의 파벌형성 문화에 대한 우회적인 비난을 늘어놓았을 때, 어머니는 남자가 그런 능력도 없으면 아예 죽던지, 골방에 쳐 박혀 있던지 해야한다는 얘기를 하며, 그렇게 살지 못하는 당신 아들에 대한 무능력을 질타하셨다. 어머니의 그런 질타는 꽤나 경험적인 사료에 근거하고 있었다.
난 어렸을 때부터 가장 싫어했던 부류들은 바로 삼촌, 작은 아버지류의 남성적 어른들이었다. 이모나 사촌누나 같은 여성의 친족들이 방문하게 되면 여자들이라서 소리만 요란했지 그들이 유발하는 동원적 효과는 아예 없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남성적 친족들이 방문하게 되면 (특히 부모님보다 윗 연배분들) 우리는 거의 강연회에 동원되는 것처럼 의무적으로 말 같지도 않은 훈계를 고스란히 듣고 있어야 했고, 어렸을 때부터 억지로 주입시키려 했었던 남자들만의 이데올로기는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이래야 돼'하며 끌고 다니는 곳 중에는 매우 납득하기 어려운 단지 물리학적으로 남자들만 위치되어 있는 당구장이나 야구장, 낚시터 등이었다. 앞으로의 성인의 삶에 대비한 자아형성에 있어서 이런 것 따위들이 왜 이렇게 우선시되고 중요시되고 일방적으로 주입되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히려 친척 누나들과 대화를 오래하고, 피아노를 치고, 책을 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커먼 얼굴을 하고 매일 밖에서 먼지와 흙을 한 주먹씩 옷에 묻히고 들어왔던 사촌형보다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으로 평가받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부정적 평가를 수년씩 당신의 남편, 남동생, 시동생으로부터 간접적으로 들었던 우리 어머니가 당신 아들에 대해 한국적 사회생활에 무척이나 취약할 것이라고 선험적으로 여기시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소위 선배문화, 조직문화로 외피가 규정되는 남성들의 패거리 문화 이것들이 한국적 자본주의가 재생산하려 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장치의 기능 중 하나라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은 없다. 남성이 가지고 있는 본연적인 종족 번식 욕구와 정복 욕구 이러한 것들을 유감없이 이데올로기의 수준과 접합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경험과 사례를 제공하는 부권적 가정에서부터, 사실 별 것도 아닌 사람들을 선배로서, 자신의 라인으로 각인하게 하고, 일부 부차적인 성공사례들을 절대화시키고, 그것들을 위한 능력은 오로지 그 선배라인에서 복종하고 순종함으로서 자동학습된다는 거대한 기능적 구조를 가르치는 직장의 이데올로기적 결과이다. 그것은 그러한 라인에 있을 필요가 없는 단순노동자, 산업노동자, 여성노동자, 그리고 나 같은 문화적 낙오자(?)등을 다스리고 배제해나가는 관리의 역할을 극대화시키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꽤나 리버럴한 문화적 경향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남성 동성애자들도 사실 이런 문제들을 호소하면서, 결국 그 남성적 라인에서 배제되는 반복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보고되기도 한다. 결국 지배를 위한 남성성의 구축에 반대한다면, 혹은 그러한 남성성에 기초한 권위 창조에 부정적이라면, 그리고 그 권위에 충성하길 거부한다면 일단 그들이 재생산하려는 A급 관리자에서는 배제되는 것은 명확하고, 그것이 억압하고 관리하려는 것은 바로 인권적 노동, 다원적 성, 중앙적 의사권력에 반하는 분권적 의사권력일 것이다.
누군가 나의 생각을 듣고 있노라면, 남성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혹은 커밍아웃을 안 했을 뿐 동성애자가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남성적 지배문화가 파편적인 개인적 문화를 넘어서 직장을 포함한 어떠한 사회적 제 구조에서도 일상화되어 있는 문제라면, 그리고 이것의 근원에는 차별을 용인하는 수세적 인식이 깔려있다면, 조금 유별난 남성으로 보이는 내게 남성페미니스트니 동성애자니 하는 질문이 그리도 중요하고 시급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내가 그만둔 회사에 입사한 첫날이 생각난다. 첫 출근한 날 여직원이 커피를 타서 내 책상에 올려두고 갔을 때, 앞으로 제 책상엔 커피를 가져다놓지 말라고 했는데 그 날 여직원 휴게실을 통해 흘러나오는 얘기는 이런 것이었다.
새로온 대리 참 재수 없네. 꽤나 배운 척 하는 것 같지 않어? 정작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가 지가 난리야? 그냥 타다 주면 맛있게 마실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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