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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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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_여성총회.hwp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한다

부시/블레어/노무현 전범민중재판운동 여성총회 토론제안문

정지영 |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한다!"
-부시/블레어/노무현 전범민중재판운동 여성총회 토론제안문


1.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의 의미
- 전쟁에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폭력 그리고 그 결과 여성이 처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폭력과 불평등의 문제

전쟁은 그 자체로 잔혹하고 끔직한 파괴 행위다. 물론 전쟁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더욱 잔혹하고 끔찍한데, 이것은 여성이 힘없는 약한 존재로서 피해자가 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전쟁에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은 매우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폭력이다. 이것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전쟁에서 활용되고,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폭력은 20세기 후반 들어서 벌어진 전쟁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냉전이 해체된 이후, 미국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군사적 개입의 층위를 구분하고, 이에 따라 세계적인 분쟁 및 전쟁 지역에 개입해왔다. 이 층위는 북한, 이라크, 이란과 같이 미국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국가에 대한 개입을 위해 고안된 중강도 전쟁이 한 축이고, 다른 한 축은 제3세계 지역의 민족해방투쟁, 게릴라 투쟁을 진압하기 위한 저강도 전쟁,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로부터 배제된 아프리카, 동유럽과 같은 지역의 분쟁에 대한 의도적 방기로 나눠질 수 있다.
제3세계, 그리고 특히 배제된 지역에서는 미래를 위한 전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이에 따라 "무질서"는 증대한다. (같은 나라 안에서 가난한 지역을 저버리고 독립을 원하는 분리주의 움직임, 국가가 제 기능을 못하는 곳에서 발생하는 사적 집단의 무장화, 한정된 자원을 놓고 벌어지는 약탈전쟁에서 자행되는 민중학살, 남반구에서 빈곤의 심화와 불법이민 등으로 인한 빈곤의 역수입이 야기하는 문제들 등) 이에 따라 분쟁 혹은 전쟁이 일상화되는데, 이 때 전쟁의 목적은 '동일성의 정치'와 관련된다. 이는 어떤 특정한 인종적, 종족적, 종교적, 문화적 동일성을 최우선의 원칙으로 정치공동체를 형성하려는 기획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의 동일성을 추구하려는 기획은 종종 다른 동일성에 대한 배척으로 드러나고 이는 쉽게 폭력으로 전화된다는 점이다. 이런 동일성의 정치는 종종 여성에 대한 폭력, 억압과 결부되어 나타난다. 남성적 동일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있는 남성지배적인 사회에서 여성적 동일성은 억압, 은폐되어왔고 여성은 남성, 그리고 그 민족, 종족 공동체의 소유물로 인식된다. 다른 동일성을 배척하고 제거하는데 있어서 남성과 공동체의 소유물인 여성을 파괴하는 것은 손쉽게 채택되는 전략이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위기와 이를 지연시키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진행에 따라 증대하는 "세계적 무질서"라는 상황은 여성에 대한 구조적, 체계적 폭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1> 전시강간, 강제임신, 강간, 성폭력 등과 같은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폭력

전쟁에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폭력은 가장 직접적이고 보편적인 형태의 폭력이다. 이 중에서도 전시강간과 같은 형태의 폭력은 고대시대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전시강간은 남성의 소유물에 대한 침해이고, 적의 공동체를 파괴·절멸시키는 효과적인 방식이다. 더불어 남성 병사들의 응집력을 강화시키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동일성을 위한 폭력이 더욱 심화되면서 전시강간, 집단강간과 같은 폭력은 더욱 체계적으로 활용된다. 다른 인종의 절멸을 추구하는 전쟁에서 인종청소를 위한 수단으로 집단강간이 활용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있었던 강간캠프를 들 수 있다. 당시 보스니아 정부 추산 5만여 명에 이르는 무슬림 여성들이 세르비아 군에 의해 집단강간을 당했다. 이슬람교는 혼전 성관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무슬림 여성에게 강간은 상징적인 죽음의 의미를 갖는 폭력이다. 이런 방식의 공격이 의도하는 바는 그 여성들의 동일성과 그 사회의 동일성을 조직하는 방식을 해체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는 무슬림 남성의 소유물을 탈취하는 의미도 갖는다. 인종청소를 위한 집단강간은 강제임신을 목표로 하기도 하는데, 강간에 의해 임신하게 된 여성은 낙태를 할 수 없다. 여성들로 하여금 원치 않는 '세르비아' 아이를 출산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적의 동일성을 파괴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여성에 대한 물리적, 육체적 폭력은 1990년대 이후 널리 확산되고 있다. 강간은 가장 직접적이고, 상징적인 폭력으로 활용된다. 민간인에게 공포와 모욕을 안겨주는 전술로서 성적인 공격이 조직적으로 사용된다. 르완다의 인종학살, 아이티에서 저항세력에 대한 군부의 억압 등에서도 강간은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1999년 코소보 내전에서도, 보스니아 내전의 경우보다 덜 체계적이긴 했지만, 세르비아군의 인종청소는 강간을 무기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모잠비크, 라이베리아, 시에라 레온, 브루나이, 우간다, 알제리, 인도네시아, 카슈미르, 미얀마 등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이 나타난다.
이라크 전쟁에서 벌어진 여성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은 아직까지 잘 알려지고 있지 않다. 여성이 당한 성적인 폭력을 외부로 알리기 꺼려하는 문화적인 특성이 많은 사례를 은폐하게 만들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을 뿐이다. 가장 알려진 것은 아부 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 자행된 성폭력일 것이다. AFP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미 시사주간지인 <타임>은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있는 이라크 포로들의 말을 인용해 "이들 포로들은 상습적으로 구타와 성고문, 강간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중 한 명은 "한 미군 병사는 이라크 여성 포로를 내 감방 건너편 바닥에서 주기적으로 강간하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많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러한 증언은 이라크 전쟁에서도 여성에 대한 물리적, 육체적 폭력이 점령군에 의해 자행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아부 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사건이 미군 상부가 알고 있었고, 명령했던 체계적인 군사작전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미군 상부는 결국 인정하지 않았지만, 청문회를 열고,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일련의 미국 정부의 사태 봉합을 위한 노력을 감안한다면, 군사전략으로 인정하던 그렇지 않던 이 사건이 가진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즉, 이라크 여성에 대한 강간은 미군에 대한 이라크 인들의 공포를 조장하여 점령을 유지하는 하나의 방식이며, 이라크 민중과 그들의 저항을 억압하고 무력화시키는 기제로 충분히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2> 적에 대한 상징적 지배로서 적의 여성화

전쟁에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은 단지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폭력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전쟁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적을 여성으로 상징화하는 것이다. 이는 남성지배적인 사회에서 형성되고 구조화되어 온 남성성-여성성에 대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상징과 연관되어 있다. 남성성은 승자, 우월한 자, 지배자와 연결되고, 여성성은 패자, 열등한 자, 피지배자와 연결된다. 전쟁을 진행하면서 적을 여성으로 상징화한다는 것은 이러한 고착화된 상징과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 속에서 '여성의 상징'은 한 사회를 파괴하는 목표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남성의 공격성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전장에서 군인들의 전쟁충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강간의 상징, 성적인 상징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실제 전쟁에서 드러났던 구체적인 사례로는 남성 포로들은 처형하고, 여성과 아이들을 전리품으로 갖는 젠더화된 학살, 정복한 적을 거세하는 방식(이는 현대에서 미사일이 은유하는 팔루스 상징에 대한 경쟁으로 드러난다), 항문성교와 같은 방식의 동성 강간 등이 있다. 동성 강간에서 정복자는 지배적/능동적 위치를 차지하고, 피정복자는 종속적/수동적 위치를 차지하여, 섹스에서 전통적인 남성-여성간의 구분 이데올로기를 투영한다.
최근의 전쟁을 비롯하여 이라크 전쟁에서도 이러한 사례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걸프전 당시 미군이 사용한 폭탄에는 "Bend Over, Saddam(무릎을 굽히고 엉덩이를 들어올려라, 사담)"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아부 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는 이라크 남성 포로를 나체로 고문하거나, 성적으로 고문하는 사례들이 보도되었다. LA Times에서 보도한 "미군 교도소 성적 학대에 대한 보고서 발췌문"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행위들이 포함되어있다.
- 강제적으로 포로들에게 다양한 성행위의 자세를 취하게 하고 사진을 찍음
- 동시에 여러 포로들의 옷을 벗겨 강제로 며칠 동안 옷을 벗은 상태로 있게 함.
- 옷을 벗긴 남성 포로에게 강제로 여성의 속옷을 입게 함.
- 여러 명의 남성 포로들에게 사진이나 비디오를 찍으며 강제로 자위를 하도록 함.
- 머리에 모래주머니를 이게 하고, 손가락과 발가락, 성기에 전선을 감은 채 상자(식량상자)에 벌거벗은 포로를 올라서게 하고, 전기고문을 하는 것처럼 위협함.
- 한 포로에게 15살의 동료 포로를 강제로 강간하게 한 뒤 그 포로의 다리 위에 "나는 강간범입니다"라고 글을 씀.
- 남성 포로를 강간하겠다고 위협함.
- 포로의 항문에 전구와 빗자루 손잡이를 쑤셔 넣음.
이러한 행위들은 여성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이기도 하고 더불어 남성 포로를 여성화함으로써 적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문제는 이러한 '적의 여성화'가 계속해서 여성에 대한 지배구조와 억압을 공고히 한다는 점이다.

3> 구조적으로 더욱 강화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

전쟁 자체는 이미 여성을 비롯한 민중을 삶의 극단으로 몰아넣는다. 이 속에서 더욱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 이는 여성이다. 우선 여성들은 자신의 직업, 요구, 생존보다 공동체의 생존을 책임지기 위해 언제든 사회로의 동원과 가정으로의 후퇴를 반복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지고, 궁핍한 공동체와 가정의 생계를 꾸려야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전쟁이 파괴한 사회에서 여성에게 부여되는 부담은 더욱 커진다. 실제 이라크 상황을 보면, 걸프전 이후 10년간의 경제 제재 조치가 이라크 여성들에게 가져다 준 억압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걸프전 이전에 석유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 성장에 따라 교육받고, 직업으로 진출했던 여성들은 경제가 어려워짐에 따라 모두 가정으로 철수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경제 봉쇄 상황 속에서 심화되는 빈곤은 여성의 책임을 늘렸다. 여성들은 가정에서 직접 모든 것을 만들어야 했으며, 단전·단수가 빈번하게 발생했기 때문에 그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성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면서 여성에게 억압적인 관습들이 부활했는데, 그 이전까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히잡(베일)이 다시 등장했다. 이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서 '종교'가 부활한 것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성매매가 증가했는데, 이는 빈곤을 책임져야 하는 여성들에 대한 이중의 폭력이지만, 이것은 또 다시 여성에 대한 반격의 구실이 되기도 했다. 가정폭력의 증가도 눈에 띄는 현상이라고 한다.{{) 참고자료: '경제 제재가 이라크에서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 The Impact of Economic Sanctions on Women in Iraq, Nadje Al-Ali, 2001. 출처: www.acttogether.org
}}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의 상황이 이러하다면, 전쟁 발발 이후 지금까지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이 처하게 되는 현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파괴된 사회와 공동체에서 여성이 자식과 가족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짐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이런 사례는 거의 모든 전쟁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의 경험을 상기해보기만 해도 그렇다. 뿐만 아니라 지난 4월 이후부터 미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 여성을 흔히 볼 수 있다는 여러 목격자의 말이 보여주듯이, 생존의 끝에 몰린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또 다시 자신을 폭력으로 내모는 성매매다.
그러나 여성이 대면하게 되는 구조적 폭력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실제 전쟁에서 자행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성을 공동체의 소유물로 인식하고, 그에 따라 여성에 대한 억압과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구조를 낳는다. 단적인 예로 이라크 저항세력 중 이슬람 근본주의를 천명하는 그룹들은 이라크 여성들에게 수차례 경고했다.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 화장을 한 여성, 남성들과 함께 다니는 여성, 청바지를 입은 여성, 미용실에 가는 여성 등 이슬람 문화와 다른 문화적 행위를 하는 여성에 대해서는 무차별적인 공격과 살해를 자행할 것이라는 경고들이다. 심지어 지난 10월 20일에 팔루자에서 열린 무자헤딘의 회의에서는 무자헤딘 전사들이 열 살 정도의 소녀들을 미군이 강간하기 전에 먼저 강간하라는 율령이 발표되기도 했다. '명예 살인"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에서 폭력의 희생자가 된 여성을 다시 억압하는 악습에 대한 보도도 찾아볼 수 있다. 전쟁을 통해 강화되는 여성 억압적 사회구조, 여성에 대한 폭력은 (미군의 입장에서 보면)탈취해야하고, 적을 무력화시키는데 활용해야 할 적의 소유물로서 여성이라는 인식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라크 저항세력의 입장에서도 지켜야할 아(我)의 소유물로서 여성에 대한 통제와 폭력, 억압이 정당화되어 여성은 끝없는 폭력의 악순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은 점차 구조화되고 공고해져 사회의 구성원리가 될 것이다. 구조화되는 폭력과 억압 속에서 여성의 정치적인 권리와 자신의 삶에 대한 통치권이 박탈되고 있음은 두 말할 나위 없다.


2. 전쟁을 반대하는 운동에서 여성이 주체가 된다는 것의 의미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한다."는 의미를 위와 같이 분석했을 때, 여성이 반전운동의 적극적인 주체가 되어야 함은 너무도 자명하다. 전쟁이 강화하는 여성에 대한 극단적 폭력은 단순히 전쟁 지역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여성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문화와 구조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전쟁이 자행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반대한다는 것은 폭력의 구조적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는 곧 전쟁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말과 연결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더욱 심화되고 있는 무질서는 미국의 세계 패권 하에서 진행되는 세계 질서 재편의 과정과 맞물린다. 배제되고 주변화된 지역에서 발생하는 분쟁과 전쟁은 점차 중심부 국가 내부로도 침투하고 있다. 이 과정이 동일성을 기반으로 한 폭력을 증대시킬 것이라는 점은 손쉽게 예상할 수 있다. 자신과 다른 이질적인 동일성을 제거하기 위한 전쟁은 성적 차이에 입각한 지배/복종의 관계와 상징을 더욱 공고히 하고, 이는 여성을 끊임없는 폭력으로 몰아넣는다. 이러한 폭력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투쟁에 여성이 스스로 나서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전쟁을 중단시키는 과정이 여성에 대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폭력을 제거하는 과정을 동반하지 않았을 때, 그것이 과연 전쟁을 끝내는 과정일 수 있는가 혹은 전쟁이 중단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전쟁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전략적이고 조직적으로 활용된다면, 전쟁을 반대하는 운동이 이 폭력을 중단시키기 위해 싸우는 것은 매우 유의미하고, 유효한 것일 수 있다. 즉, 여성에 대한 폭력의 원인을 제거하는 투쟁이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투쟁을 더욱 활성화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 반전 운동은 여성의 목소리를 더욱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전쟁을 중단시키는 과정은 곧 전쟁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염두에 두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여진 전쟁 이후 새로운 사회를 재건하는 과정은 종종 여성이 당한 폭력과 상처를 억압하고, 은폐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재건 과정에서 여성은 민족의 어머니와 적에게 순결을 빼앗긴 창녀라는 이분법으로 구분되었다. 이는 전쟁이 강화한 여성에 대한 착취와 억압, 폭력의 구조를 오히려 새로운 사회의 구성 원리로 채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전쟁에 반대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에 고의적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전쟁이 가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를 가부장적, 남성지배적 인식 속에서 받아들인 맹목의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맹목은 여성이 반전운동에서 주체화되는 것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계속해서 여성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구조를 재생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계속되는 악순환의 과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여성들이 제기하는 '전쟁의 남성적 상징에 의해 강화되는 여성의 폭력과 빈곤의 증대'라는 목소리를 통해 반전운동의 인식을 전환하고, 새로운 사회 재건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시도, 여성을 하나의 당당한 주체, 시민으로 인정하려는 시도가 지속되어야 한다. PSSP
부시 · 블레어 · 노무현 전범민중재판운동 여성총회 선언문

2004년 12월 2일


부시·블레어·노무현 전범민중재판운동 여성총회에 참가했던 우리는 전쟁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 구조적이고 체계적이며, 따라서 전쟁이 여성에 대한 억압을 강화·재생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쟁은 여성에게 물리적이고 신체적인 폭력을 가할 뿐만 아니라, 적을 상징적으로 여성화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사회구조를 재생산한다.

우리는 이라크 전쟁에서도 여성에 대한 폭력이 활용되고 강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부 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 주기적으로 행해진 여성 포로에 대한 강간은 전쟁에서 볼 수 있는 여성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의 대표적인 사례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강간은 이라크 사회 전반에 공포를 심어주며, 이는 미군이 이라크 민중을 통제하고, 점령을 유지하는데 효과적인 방식으로 활용된다.

게다가 남성은 우월한 존재이고, 여성은 약하고 열등한 존재라는 뿌리 깊은 성차별 이데올로기와 상징에 의존하여 자행되는 적의 여성화 방식도 드러난다. 적의 남성을 여성과 동일시하고, 이들에 대한 강간 및 성적 고문의 상징을 활용하는 방식이 아부 그라이브 포로수용소뿐만 아니라, 이라크 전쟁에서 사용되는 미사일 등의 무기체계에서도 드러난다.

이러한 폭력은 모두 여성을 한 사회의 구성원, 권리를 가진 주체로 인정하기보다는 남성과 민족, 공동체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여성에 대한 폭력의 악순환을 만든다. 이라크 저항세력 중 이슬람 근본주의를 원리로 삼는 세력들은 이라크 여성들을 지켜야할 자신들의 소유물로 인식하며, 여성을 통제하고 나아가 폭력을 행사한다. 이라크 소녀들이 미군에 의해 강간당하기 전에 무자헤딘 전사들이 먼저 강간해야한다는 율령이 발표되었고, 남성들과 함께 다니거나 베일을 쓰지 않고 밖을 다니는 여성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이 가해지고 있다.

우리는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군사패권 하에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유지하기 위한 민중 학살임을 알고 있다. 자신들의 통치성을 위해 민중의 삶을 무참히 빼앗는 전쟁은 당장에 중단되어야 한다. 더불어 이렇게 민중을 짓밟는 전쟁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활용되고, 강화된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하기에 우리는 이러한 전쟁범죄를 자행한 부시·블레어·노무현을 전범으로 기소한다.

더불어 이라크에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당장 중단되어야 함을 주장하는 바이다.
미군을 비롯한 점령군에 의해서 자행되는 폭력과 저항세력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은 모두 이라크 여성의 정치적 권리와 삶에 대한 통제권을 박탈하는 행위이다. 이라크 여성 또한 전쟁을 반대하고, 그 이후 새롭게 건설될 이라크 사회에서 자신의 파괴된 권리를 회복할 수 있는 주체로 인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전쟁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전쟁으로 인해 체계적으로 활용되고 강화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끝내는 일은 전쟁을 끝내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을 끝낸다는 것은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이 가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전쟁을 끝내고 새로운 사회를 재건하는 출발점이다.

우리는 미군의 이라크 점령을 종식시키기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우리는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할 것이다. 우리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강화하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행동할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라크 전쟁에서 드러나지 않고 은폐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전세계에 드러내고, 이를 통해 우리의 반전운동이 가져나가야 할 새로운 인식의 지점을 밝혀낼 것이다.
주제어
여성 평화
태그
아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