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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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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는 여성은 없다.

가사노동 들여다보기

진재연 |
일하지 않는 여성은 없다
- 가사노동 들여다보기



진 재 연 | 편집부장


가사노동자들이 파업을 한다면

각 직장마다 지각, 조퇴사태가 속출하고 있어 업무가 마비되었다. 아이들은 울다 지쳐 고열, 몸살에 시달리고 있으며 인스턴트식품으로 며칠을 버티다 영양실조에 걸렸다. 파출부, 가정부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침마다 머리를 빗겨 달라는 딸의 성화에 화가 나고 요리책으로 요리가 되지 않는 사실에 남편들의 아내에 대한 분노가 더욱 커져간다. 모든 게 뒤죽박죽 엉망진창이다. 언론은 가족을 위해 사랑과 헌신으로 봉사해야 할 여성들의 도덕성을 개탄하고, 가정을 버린 비정한 어머니, 파렴치한 아내들을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다. 정부는 여성들이 빠른 시일 내에 가정으로 복귀하지 않는다면 전원 구속방침을 내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쌓여가는 집안일을 바라보며 아내와 며느리에 대한 분노만 키워갈 남편과 가족들은 용서할 수 없는 행위에 대한 처분을 정부에게 맡기지 않을 것이다. 여느 파업에서 볼 수 있는 가족대책위가 조직될 리 없지만 '엄마 힘 내세요'라는 피켓을 든 아이들과 가족들을 만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림자 노동

"정말 아침마다 전쟁이죠. 눈뜨기가 무섭게 밥 차리고 아이들 옷 입히고 준비물 챙기고 차례로 내보내고 나면 진이 다 빠져요. 돌아서서 방안을 보면 이불도 안 치운 채 가득하고 매미 허물 벗은 듯 잘도 빠져나가버렸네요. 10년을 하루같이 이불이라도 개고 살자고 외쳐대지만 사실 아침에 양말이라도 제짝 찾아 신고 나가면 다행이지요"

가사노동은 단일한 활동이 아니다. 다리미질, 요리, 설거지, 청소, 빨래, 장보기. 다양한 행동과 기술이 필요한 이질적인 작업의 집합체다.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하지 않으면 금방 표가 나고, 늘 자질구레한 일이 널려 있어서 잠시라도 다른 일에 신경을 집중할 수 가 없다. 매달 전기세, 수도세, 전화세, 도시 가스세 등 각종 공과금을 빠짐없이 챙기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장을 담그는 일처럼 엄청난 노동 강도와 숙련기술이 필요한 일도 있고, 손님을 접대하는 일처럼 정신적 긴장감까지 요구되는 일도 있다. 저녁마다 가족의 입맛에 맞는 저녁을 차려내는 것은 결코 오랜 경험으로 숙련된 노동의 결과이다. 산더미 같은 일속에서도 기침까지 콜록거리며 칭얼대는 애들 요구사항 들어주려면 정말 몸이 열이라도 모자라는데, 사실 애 키우는 일 하나 만으로도 몸과 정신을 다 집중해야 한다. 이유식 준비하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야하고 유치원에서 데리고 와야 하고, 학교 들어가면 방과 후 숙제도 봐주고 준비물도 챙겨줘야 한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엄마는 마땅히 학부모회의 참관, 급식 당번등을 해야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또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간병을 해야 하는 사람도 여성이다.
여성들은 그 많은 노동을 아무런 대가없이 수행하고 있지만, 그것은 노동으로서가 아니라 엄마, 아내, 며느리의 당연한 역할로 여겨진다. 여성의 노동은 유령처럼 눈에 보이지 않거나 가족에게 종속되어 뒤따르는 그림자일 뿐이다.

일하는 것이 아니라 보살피는 것이다?

"하루 종일 많은 일들에 치어 살면서도 나의 일을 당당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사람들이 요즘 뭐하고 지내냐고 물어보면 '아무것도 안해요', '그냥 놀아요'라고 말하고 말았는데, 학교 들어간 아이가 가져온 가정환경조사서의 어머니 직업란을 보니 참 많이 고민이 되더라구요. 처음엔 그냥 빈칸으로 나누거나 '무직'이라고 썼는데, 나중에는 주부라고 고쳐 썼어요. 하지만 사실 주부가 내 직업이라고 생각한 건 직업란을 채울 때 뿐이에요."

사적이고 부차적인 일로 평가절하되는 가사노동은 그 일을 하는 여성들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만들다. 가족들은 여성의 사랑과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며 가사노동이 조금만 소홀해도 불만을 터뜨리지만, 자신의 일상이 아내와 엄마의 노동위에 서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가사노동은 가족의 재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결코 '가족적'인 것이 아니다. 또, 가족에 의해 수행되지도 않는다. 오로지 가족을 위해서 여성이 수행하는 것이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분리하면서, 사적인 영역인 가정에 여성들을 가두고 여성의 노동은 보조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자본과 국가는 필요에 따라 여성들을 동원하거나 배제시켰다. 여성의 희생과 사랑으로 가족을 지키는 것이 숭고한 미덕인양 치켜세우면서도 정작 여성의 노동은 생산 활동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노동'에 미달한 것으로 여겼다.
또한 가사노동은 가족구성원을 위한 정서적, 인격적 배려를 기반으로 하며, 가족 한사람 한사람의 건강관리도 여성의 책임이다. 아이가 아프면 그 책임은 애 하나도 제대로 못 돌보는 여자 탓이다. 또한 밖에서 일하고 들어온 가족들에게 정서적 안전판이 되어주어야 한다. 희생,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은폐되는 감정노동은 가사노동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고 그로 인한 상처와 스트레스가 일상에서 쌓여간다. 가사노동의 사적이고 고립적인 성격으로 인해 그러한 정서적 긴장은 여성개인에게 고스란히 남고 소외감, 우울증, 허무감 등을 느끼게 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여자의 행복'을 과장하거나 반대로 현실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해소하면서 살아간다.

가사노동 분담, 그리고 사회화

"결혼전 남편과 저는 여성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특히 가사노동 분담에 관해서는 서로 완벽하게 합의했죠. 아니, 합의했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은 자신이 가사노동을 철저하게 분담해서 역할을 맡겠다고 거듭 확인했고, 여성에게 그 모든 것을 떠맡긴다는 것은 자신의 도덕성뿐만 아니라 정치적 견해와도 맡지 않는다고 했어요. 둘 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가사노동에 관련해서 저는 모든 걸 했고 남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남편이 집안에 들어와서 하는 일이란 이 닦고 세수하고 신문보는 것 뿐이었죠."

일상에서 여성의 노동을 분담하기 위한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그것만으로 불충분하겠지만 여성의 고된 일상을 나누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가사노동만을 따로 떼어놓지 않고 그 작업들이 어떤 관계속에서 이루어지는 살펴야 한다. 가사노동을 둘러싼 관계들을 민주적으로 바꾸어 내고 사회화시켜내는 일은 생산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일과 관련된 것이고, 지금의 가족형태를 뛰어넘는 공동체에 대한 고민도 요구된다.
가사노동을 눈에 보이게 하고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투쟁은 여성들 스스로가 자신의 노동을 새롭게 인식하고, 여성의 노동이 사회를 유지하고 움직여온 힘이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또한 여성들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노동을 해왔음을 보이고, 여성에게 부당하게 떠맡겨져온 일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은 나를 변화시킬 것이고, 가족을 전화시킬 것이고, 사회를 변혁할 것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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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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