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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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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총선과 미국의 점령정책

이소형 |
이라크 총선과 미국의 점령정책


이 소 형 | 반전팀

지난 1월 30일, 이라크 제헌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이 실시되었다. 미군 15만 명과 이라크 임시행정부 방위군의 삼엄한 경비 속에서 이라크 전국 5천 200여개의 투표소에서 진행되었고 총 투표율은 약 60%를 기록하고 있다. 선거결과를 보자면, 시아파 정당연합인 통일 이라크 연맹(United Iraq Alliance, UIA)이 48%를 득표하면서 총 275석의 제헌의회에서 145석을 차지하였다. 2위는 양대 쿠르드 정당인 쿠르드 애국동맹(Patriotic Union of Kurdista, PUK)과 쿠르드 민주당(Kurdistan Democratic Party, KDP)이 연합한 쿠르드 연맹(KAL)이 26%의 득표로 75석 확보하였다. 3위는 현재 임시정부 총리 알라위가 이끌고 있고 이라크 리스트(IL)가 14%를 득표하여 40석을 차지할 예정이다. 현재 정확한 의석산출방식이 밝혀지지 않아 의석수는 변경될 여지가 많다. 한편 수니파는 선거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는데 주요 수니파 거점지역인 팔루자, 라마디, 사마라 등에서는 2%에도 미달하는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이번 선거로 구성된 제헌의회에서 당선자 중 1명의 대통령과 2명의 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대통령과 부통령은 의회 의석 수 2/3 이상의 찬성으로 확정되는데, 시아파 통일 이라크 연맹(UIA)이 겨우 과반의석을 차지한 상황이기 때문에 타당들과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대통령과 부통령이 임명되면 이들이 2주 내에 총리와 장관후보들을 지명하고, 의회의 과반수 찬성으로 선임하게 된다.1) 제헌의회는 올해 8월 15일까지 영구헌법 초안을 작성하고 이를 투표에 부쳐야 한다. 헌법제정을 위한 국민투표는 현재 10월 15일로 예정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과반수 찬성으로 헌법이 제정되면 12월 15일 정부수립을 위한 선거가 시행된다.2) 일정이 차질없이 진행되면 2005년 12월 31일 새로운 이라크 정부가 출범하게 될 것이다.

이라크 민주주의 압살, 미국의 장기적 점령의 조건

선거결과를 두고 부시행정부와 미국의 언론매체들은 일제히 성공했다는 자축의 발언들을 늘어놓았다.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치뤄지지 못한 자유 직접선거가 “공정하고 민주적으로” 실시되었고 총 유권자 1천 420만 명 가운데 800만 명 가량이 참여한 60%의 투표율은 이라크의 일반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선거가 시행되기 직전까지 이라크의 거의 모든 지역 이라크인들은 출마한 후보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어떻게 투표를 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였다. 7,000명 이상 출마리스트에 오른 후보들은 저항세력의 공격이 두려워 투표일 이전에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했고 선거인 명부는 지난 50년 간 한번도 점검되지 않은 채 선거가 진행되었다. 전쟁으로 인해 변화한 인구조사 역시 극히 일부분에서만 시행되었다. 또한 1월 30일 투표 당일에만 적어도 29명의 민간인이 투표소와 투표자에 대한 저항세력의 공격으로 살해되었고 바그다드와 모술 등에서 자살폭탄과 박격포 공격을 가해 민간인 등 최소한 44명이 숨졌다.3) 그러나 한편으로 이라크 인들은 강제적으로 투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유권자 등록의 절차도, 선거인 명부도 없는 상황에서 식량배급명단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는 투표소가 많았는데 투표를 하지 않으면 식량배급이 중단된다는 공포감이 조성되었던 것이다.4) 이라크를 구성하는 주요정파인 수니파는 선거 보이콧 선언 하에 참여하지 않았고 라마디, 팔루자 ,사마라 등 의 지역에서는 하루 종일 거의 아무도 투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행정부가 말하는 총선의 ‘성공’은 이라크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의 회복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미국은 이번 총선을 통해 보다 안정적으로 장기적인 점령의 기반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이슬람 종교적 색채가 짙은 친 이란계 시아파(통일이라크 연맹, UIA)는 48% 지지율에 겨우 과반을 넘기는 어정쩡한 제 1당이 되었다. 시아파의 불안정한 승리로 향후 헌법제정과 정부수립을 위한 선거과정에서 쿠르드 연맹과 수니파 그리고 다양한 소수 정치, 종교 분파들과의 권력분배와 적절한 타협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미국의 침공 이후, 이라크의 새로운 국가권력을 둘러싼 다양한 종족, 종교간의 대립은 가시화되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특정한 분파(현재로서는 시아파)가 압도적인 득표율로 집권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자칫 통제불가능한 분쟁과 내전을 야기할 위험이 컸다. 총선을 예비하면서 미국정부가 원했던 것 역시 정치세력들간의 ‘적절한 안배’였다.5) 미국은 불안정한 집권정당을 통해 이라크 내 다양한 정치세력들을 정치협상테이블로 적절히 통제하거나 규합할 수 있는 공간을 열 수 있게 되었고, 쿠르드족의 오랜 요구였던 헌법상 연방제 도입 및 자치 허용, 키르쿠크 지역 소유 등 미국에게 곤란했던 문제들을 이라크 내부 정치세력들간의 갈등의 문제로 넘겨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집트 주간지 알아흐람 위클리는 선거결과에 대해 “이제 미국이 석유와 군사전략 거점 확보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되었다”면서 14곳에 달하는 군사거점과 이라크 전역의 유전이 최소 25년 이상 미국에 의해 장악될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물론 이라크 정치지형에서 미국의 입지를 고립시키게 될 요인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선거결과 제 2당으로서 ‘권력 중재자’, ‘캐스팅 보드’로서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게 된 쿠르드 연합이 키르쿠크 지역에서의 종족간의 갈등6)을 극대화시킬 위험은 증대되고 있다. 또한 정치협상의 실패로 수니파의 제헌의회와 헌법제정과정에서의 지속적인 불참 및 내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적어도 이라크 내 정치의 불안정성, 그 자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처럼 보인다. 2003년 5월 종전선언 이후부터 2004년 6월까지의 연합군임시행정처(CPA)의 지배기간, 6월 28일 과도통치위원회로의 주권이양의 과정, 또한 9월의 임시의회의 개원에서부터 1월 30일 제헌의회 총선까지의 일련의 직·간접적인 점령과정에서 미국은 이라크의 내부정치지형과 경제문제들에 대해 근본적인 개입을 꾀하여왔다.

이라크 정치의 배후

미국 정부에 의해 자금을 받는 기관들은 이라크 내에 정치정당의 설립에서부터 1월 30일 선거에 대한 모니터, 투표의 공정성을 증명하는데 사용될 수 있는 출구조사에 대한 관리까지 이라크 이행의 전과정에 깊숙이 개입하여왔다.7) 그 대표적 조직으로는 국제문제민주주의연구소(National Democratic Institute for International Affairs, 이하 NDI)와 국제공화주의연구소(International Republican Institute, 이하 IRI)가 있다.8)
지난 2004년 6월 주권이양이 진행될 무렵, 미국의 IRI는 이라크의 다양한 정당지도자들을 성공적인 선거운동 기술을 배우는 “훈련회의”에 참여시켰고 이를 통해 1월 30일 총선을 체계적으로 준비했다. 이 훈련에는 이라크의 수십 개의 중소규모 주요 정당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IRI의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는 이전의 임시행정처부터 얼마 전 해체된 과도정부에 이르기까지 이라크의 임시정부설립을 위한 ‘특별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있다. 그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미국이 후원하기로 결정한, 그리고 이미 일정한 권력을 잡고 있는 정당들에게만 제공되었다. 반면 NDI는 이라크에서 수니파를 포함한 소수 정당들과의 연계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두 조직은 현재 이라크에서 자금을 대는 미국정부의 공식기관인 미국국제개발처(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ement, 이하 USAID)와 긴밀한 연관 속에 있다. USAID에 따르면 이라크에서 그 조직들의 임무는 각각 다르지만 공통의 과제는 “이라크의 민주적 과정에 대한 교육, 선거 모니터와 선거갈등 대처를 위해 이라크 정치 조직들을 훈련하는 것, 정당운영을 위한 조언과 훈련을 제공하는 것 등이다. 미국제개발처(USAID)는 그 스스로 표현하고 있듯 ”개발도상국에서 시민의 삶을 개선시키는데 있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이라는 미국 외교정책의 이해관계를 촉진하기 위해“ 이러한 목적을 지지하는 민간조직과 계약을 맺고 보조금을 지급한다.
1월 30일 총선을 앞두고 이라크 정치판에 대한 IRI와 NDI의 활발한 개입은 USAID의 자체적인 프로젝트였으며 그 두 조직은 대리하여 수행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목표지역에서 1>국가를 자본주의적으로 개방화하고 2>국가수준 목표물을 기회로 이용하는 것이고 이러한 계획을 가능하게 하는 “전략적 출입구”를 찾는 것이 우선이 된다. 이라크의 경우 그 “전략적 출입구”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이었고 국가의 자본주의적 개방의 대상은 전쟁 후 남겨진 붕괴된 국가이다.
NDI의 중동지역 책임자 레스 킴벨에 따르면 NDI와 IRI는 2003년 3월 20일 침략 직후 이라크 정치정당 형성과 시민사회활동에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그 다음해 겨울이 될 때까지 미국이 운영한 임시행정처(CPA)의 관리들은 국무부와 국가안전보장회의 관리들과 더불어 관심을 표하기 시작했고 2004년 초 미국정부는 그 관계를 확산시키위해 2천 5백만 달러는 NED에 할당하였다. 또한 2005년 1월 30일 총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USAID는 8천만 달러 이상을 NDI와 IRI 등 다른 기관들에게 주었다.

이라크와 IMF

이라크의 경제의 큰 난관 중 하나는 사담 후세인 시절부터 누적되어온 엄청난 액수의 국가부채다. 주 채권국들은 아랍국가들인데 대표적으로 쿠웨이트는 1990-91년 침공과 점령에 따른 배상으로 300억 달러와 160억 달러를, 이란도 1980-88년 이란-이라크 전쟁기간 야기된 피해보상으로 970억 달러를 요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당시 이란과의 전쟁에서 이라크를 도울 의도로 이라크에 건네진 각종 국가의 군비를 포함하여 약 1200억불의 국가채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정당지도자들과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은 과거 독재정권의 전쟁비용을 갚을 의무에 반발하고 있다.
2004년 11월 21일, 파리클럽9)은 이라크의 국가채무의 80%를 탕감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여기에는 단서조건들이 명시되는데 대략 116억불에 달하는 첫번째 30%는 조건없는 삭감, 두 번째 30%의 삭감은 “표준 IMF 프로그램이 공인되자마자” 승인 될 것, 최종 20%의 삭감은 “표준 IMF 프로그램의 이행 3년에 마지막 IMF의 보고서가 종결되자마자”승인된다는 것이다. 이라크 채무의 30%는 IMF와 이라크 당국이 경제 “개혁”에 대한 동의가 있어야 면제될 수 있고, 20%는 그러한 개혁이 IMF를 통해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삭감된다는 것이다.
파리클럽의 결정내용이 공표되자마자, 당시의 이라크 임시의회는 “채무는 가증스러운 것이며 사담 압제체제에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이 자행하는 새로운 범죄다”라며 즉각 반발성명을 내었다. 그러나 이라크의 새로운 정부가 IMF의 이행 프로그램을 거부할 의사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2003년 5월부터 2004년 6월까지 이라크를 지배한 CPA는 제39조의 법령을 만들었다. 이 법령은 “이라크에서 외국인 투자가는 국내 투자가들의 조건보다 더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투자할 권리가 있다.”, “외국투자는 이라크의 모든 경제부문에서 가능하고 천연자원 부문에 대한 외국의 직간접적 소유는 예외로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바그다드 임시정부가 39조를 뒤집지 않는다면, 석유와 천연자원을 통제하는 기업을 제외하고는 이라크의 어떤 기업이라도 외국인 소유가 100% 보장되고 외국인 투자에 대한 금지는 철폐될 것이다. 미-영 점령당국에게 있어 이라크가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이행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한 미국의 정책과 이해는 이라크 임시정부에게 광범위하게 반영되고 있다.10) 여하튼 가장 큰 문제는 현재 국가채무에 대한 이라크의 해법이 매우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파리클럽에 속하지 않은 아랍의 채권국가들은 부채탕감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상태이다. 또한 이라크는 파리클럽 선진국들과 부채 탕감에 대해 협상할 수 있는 어떠한 카드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IMF가 이끄는 이라크의 미래는 무엇을 기약하고 있는가?
1997년 동남아시아와 2002년 아르헨티나. 이 두 사례는 채무국의 부담을 다루는 IMF의 시각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보여준다. 수많은 동남아의 정부들과 아르헨티나는 IMF가 융자조건으로 제시한 경제 “개혁”프로그램을 수행하였지만 그 결과, 더 많은 국가부채가 자국민의 빚으로 전가된 채 결코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2004년 7월 IMF 독립 평가부서(Indpendent Evaluation Office)의 보고서에는 “개혁”에 임하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정책선택의 취약성을 지적하고 있다. 경제위기 기간 동안 IMF는 “개혁”프로그램을 더 많이 고수하기 위해 채무국이 선택해야했을 정책들이 무엇이었는가를 평가한다. 국가가 IMF ‘표준 프로그램’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완전고용을 포기하고 공공재를 팔아치우고, 모든 산업에 외국인 소유권을 100%로 확대하는 동안 국내 기업파산과 실업률 증가, 조세율 하락으로 국가예산은 더욱 빈곤해졌다. 이로 인해 부채상환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지게 되면, 더 많은 융자조건을 제시하고 더 많은 기금을 지원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IMF의 관점이다. 80%의 부채탕감의 조건으로 제시한 파리클럽의 ‘개혁’프로그램은 결국 이라크에게 현재보다 더 많은 부채만을 약속할 것이다.
2005년 3월 20일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2주년이 되는 해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규탄하며 국제반전운동은 철군과 점령 중단을 주장하며 끊임없이 민중의 저항을 일구어왔다. 1월 30일 이라크 총선을 거치면서 미국의 이라크 점령계획은 보다 근본적으로 이라크의 정치. 경제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반전운동은 총선 이후 이라크의 불안한 정치지형으로부터 미국이 파괴한 이라크 민중의 정치적 권리의 압살과 민주주의의 파괴의 문제를 보다 정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 문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의 경제통합이라는 미국의 이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이다. 2005년 미국의 이라크 점령은 보다 장기적인 플랜 하에 안정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가시적인 전쟁의 폭력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 미국이 그리고 있는 이라크의 미래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길, 이라크의 진정한 민주주의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밝혀내는 일. 이것이 2005년 반전운동이 숙고해야 할 과제이다. PSSP

1) 현재 총리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들로는 통일 이라크 연맹IA)은 알자파리를 총리후보로 추대하였다. 한편 임시정부 총리였던 이야드 알라위 이라크 임시정부 총리 역시 총리직에 도전할 의사를 밝혔고, 제2당이 된 쿠르드 연맹리스트(KAL)은 사이파 연합세력과의 협상을 통해 총리직을 양보하고 대통령직을 보장받기로 한 상태이다. 대통령 후보로는 쿠르드 애국동맹의 잘랄 탈랄바니가 유력시되고 있다.
2) 그러나 이라크의 18개 주 가운데 3개 이상의 지역에서 2/3이상의 반대가 나오면 , 헌법제정은 무산되고 제헌의회는 해체된다. 그렇게 되면 12월 15일, 새로운 제헌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가 개최될 것이고 이 새로운 제헌의회는 1년 내에 새로운 헌법을 작성해 국민투표에 부쳐야 할 의무가 있다.
3) 바그다드 시내에서는 하루 종일 투표소에 대한 박격포 공격이 있었다. 32살의 아흐메드 모하메드는 “어제 자전거 폭탄이 이웃의 누군가를 죽였다. 이 부당한 선거에 절대 투표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투표하려 했더라도 이런 조건에서는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영어교사인 라일라 압둘 라흐만은 “바그다드는 선거가 아니라 전쟁을 치르는 것 같다. 거리는 탱크와 병사들로 가득하고 다리는 폐쇄되었다. 이 끔찍한 치안상태에서 선거는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선거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4) 투표 바로 며칠 전 바그다드 중심가에서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는 52세의 아민 하자르는 “식량배급이 중단되는 것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투표할 것이다...만약 배급이 중단되면 나와 우리 가족은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5) 임시정부의 알라위 총리가 속해있는 이라크 리스트(IL)는 공공연하게 미군부의 지원을 받고 있었는데 14%득표율에 40석을 차지하여 3당이 되었다. 미국은 선거 강행을 주장하면서 쿠르드 족의 자치정부 수립의 요구를 계속 수용하여 제헌의회에 참여시킬 것을 독려하는 한편, 시아파 내부의 분열을 만들고 수니파와의 접촉을 꾀하였다.
6) 세계 원유매장량의 6.7%를 차지하는 이라크 북부 유전지대 키르쿠크는 서로가 다수라고 주장하는 아랍계, 투르크멘족, 쿠르드족의 갈등이 노골화되고 있다.<참고, 월간사회진보연대 2004년 3월호 특집 “이라크는 지금”-정영섭>
7) 작년 10월, 로이터 통신은 미국이 지원하는 이라크 정치정당들은 미국이 “민주적이거나 온건한” 것으로 간주하는 정당들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과 미 국무부가 “이라크인들로부터 최대한의 지지를 받는 후보와 정당”을 만들어내기 위한 여론조사에 1백만 달러를 썼다는 내용을 담은 미 국무부의 문서를 입수하였다. 이에 따르면 이슬람 다와당(Islam Dawa Party)과 이슬람 혁명최고평의회(Supereme Council for the Islamic Revolution, SCIRI)를 포함하여 미국이 후원하는 그룹들은 지난 2004년 9월 개원한 100명의 임시의회(National Council)를 지배하고 있다.
8) NDI는 전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주도하고 있고, IRI는 공화당 상원의원 존 맥캐인이 의장이다. 양 조직은 공개적으로는 초당적이라 주장하지만 같은 이름의 미 정당들과 극히 친밀한 관계 에 있고 수많은 세계 주권국가들의 정치에 상당히 개입하고 있다. 두 조직은 전국민주주의재단(National Edowment for Democracy, NED)의 4개 핵심조직 가운데 두 개인데 NED는 “비영리, 비정부, 초당적 조직”이라 스스로를 표현하고 “전 세계에 민주적 제도를 강화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1977년 지미카터가 CIA에 의한 국제적 개입을 금지함에 따라 약화된 해외 정치적 영향력을 재강화하기 위해 로널드 레이건 1기 재임기간에 만들어진 전국민주주의재단(NED)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후원하는 후보인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승리를 반대하는 대중시위, 베네수엘라 차베스를 제거한 무장 쿠데타, 아이티 대통령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에 대항한 폭력정당 후원 등 다양한 주권국가 내정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뉴스탠다드 2004.12.13 리사 애쉬케나즈 크로키&브라이언 도미닉>
9) 파리클럽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심으로 결성된 선진 채권국 비공식 협의체이다. 채무 불이행 국가를 상대로 채무지불 방식과 일정을 조정한다. 채무국이 파리클럽과 일정 사안에 대해 합의하려면 국제통화기금(IMF)과 협력해 경제 개혁을 실시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10) 2004년 9월 24일 3명의 이라크 임시정부 장관들은 IMF 총제에게 의향서를 보냈다. 일반적으로 IMF관리들로부터 직접 작성된 이 의향서에는 “이라크의 외채 지속 가능성 복구”, “세금개혁, 금융개혁, 국유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언급이 많이 드러나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1990년대 아르헨티나와 동남아시아에 대한 IMF의 처방과 거의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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