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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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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우리는 무엇을 했던 것인가

2004년 '4대 개혁 법안'관련 투쟁을 비판하며

박준도 |
지난해 우리는 무엇을 했던 것인가
- 2004년 '4대 개혁 법안' 관련 투쟁을 비판하며


박 준 도 | 사무처장

17대 국회의 첫 정기국회에서 보인 지배분파들 사이의 다툼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국가보안법은 낡은 유물'이라는 노무현의 지적 이후 17대 국회는 이른바 '4대 개혁 법안'과 '한국형 뉴딜 3대 법안'을 둘러싸고 아예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2005년 예산안과 파병연장동의안을 볼모로 삼아 서로 윽박지르다가, 여야 4인 대표회담을 열어 타협의 여지를 모색하였다. 노무현은 '민주주의는 타협의 정치'라고 전제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고, 여야는 4인 대표회담에서 합의와 번복을 반복하였다. 이 진통을 겪고서야 17대 국회는 몇 가지 시급하다는 법안을 처리하며 2004년 정기국회를 마감하였다. 예산안과 파병연장동의안을 먼저 통과시켜 놓고는 2005년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 공무원노조특별법, 신문법, 민간투자법, 기금관리법을 처리한 것이다. 파병연장동의안은 전쟁범죄행위를 연장하겠다는 것이고, 경제자유구역법안은 초국적 자본의 국내 활동을 무제한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며, 공무원노조특별법은 공무원의 노동3권을 부정하는 법안이다. 언론관계법 중 하나인 신문법은 조·중·동을 견제하겠다는 애초 취지(?)조차 무색케 하는 것이다. 기금관리법은 투기자본에게 갱생의 기회를 주고자 연기금의 주식·부동산 투자의 길을 열어주려는 것이며, 민간투자법은 사회기반시설과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민간투자의 길을 열어 공공재에 대한 사유화를 확실히 보장하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시급한 민생법안이라 하니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다. 그렇게 다투다가도 민중을 수탈할 때만큼은 확실히 단결하는 17대 국회의 진면목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한편, 정기국회가 끝남과 동시에 여의도 국회 앞 농성텐트들도 철수했다. 수많은 요구사안을 내걸었던 10여 개의 농성텐트들은 전에 없던 풍경이었다. 이 많은 천막농성은 오늘 민중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어떤 것이 요구사안인지를 낱낱이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러한 방식의 투쟁을 무작정 지지할 수만은 없는데, 이런 방식의 운동이 민중운동에 고착화되고 지배적이게 되었을 때, 그것은 민중운동을 매우 우려할만한 상황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17대 국회의 정기국회 개원을 전후하여 시작된 이 농성은 그간 민중운동이 지키려고 했던 최소한의 원칙(자주성, 연대성, 전투성, 변혁성)들을 상당부분 훼손했다. 우리는 국회 앞 천막 농성 투쟁을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은 오늘날 전선의 성격은 무엇이고, 우리가 운동하는 목적이 무엇이며, 왜 운동하는 가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질문이다.

소위 '4대 개혁 법안'의 허구성

노무현 정권에게 (정치적) '개혁'은 언제나 다음 두 가지를 의미한다. (그것이 설사 '민주주의'의 외피를 두른다 한들) 신자유주의 정책에 우호적인 정치적 환경을 만드는 것과 동시에 자유주의 분파들의 세력규합을 시도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우호적인 정치적 환경이 곧 자유주의 분파의 안정적인 세력규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위기에 대한 지배세력의 여러 조치들 즉, 신자유주의 개혁은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행정부 모두 공유하는 프로그램이기에, 이것만 가지고는 자신의 정치세력을 규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프로그램들로 대중들의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노무현은 어떤 수단을 써서든 자신의 정치세력을 규합해야 하는 이율배반적인 처지에 빠지게 된다(물론 이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배세력 내 여러 분파들 사이의 정체성 논쟁이 쉽게 불붙기 마련이다. 세력규합에 이것 말고는 별다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6월 한나라당 박근혜가 당대표로서 재신임된 이후 정치권에서 불거진 청와대-열린우리당-한나라당 사이의 '국가정체성'-'유신청산' 논쟁을 상기해보자) 이를 위해서는 어떤 의제라도 '개혁'(반대로 '색깔시비')을 이유로 쟁점을 삼을 수 있는데, 세력규합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수도이전, 호주제, 성매매, 국가정체성, 과거사진상규명, 심지어는 국가보안법, 북핵 문제까지 모두 다 의제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노무현과 그의 추종자들(그리고 한나라당 역시 마찬가지로)은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접근하는 게 아니라, 대중을 동원하고 소모해버린다는 사실이다. 촛불시위가 되었건 반대편의 보수집단 시위가 되었건 간에 말이다. 이 때 내걸린 '개혁'과 '민주주의'는 빈곤, 실업 대중의 삶과 전혀 관계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그 '민주주의'에는 민중에 대한 어떤 양보 조치도 전제되어 있지 않으며, 그 배경에는 어떤 정치이념도 없다. 이런 짓을 지배세력들이, 특히 노무현과 그의 추종자들이 반복해 왔던 것이다.
이른바 '4대 개혁법안' 역시 그러한데, 정치적 반대 세력을 공격하고 그 쟁점으로 지지세력을 결속하고 심지어 운동진영도 흔들려는 의도가 노골적이었다. 염불보다는 잿밥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지난 10월 중순 경 열린우리당이 '4대 개혁법안'을 일괄처리 하겠다고 밝힌 후 여야 사이에서 본격적인 정국 주도권 다툼이 벌어졌는데, 이는 그 성격을 드러낸 것이다. 사실 '4대 개혁 법안'은 의회주의적인 정치테크닉으로 보았을 때, 사안 사안을 분리해도 의회차원에서 처리하기에는 녹녹치 않은 것들이다. 한나라당이 당의 존폐를 걸고 막겠다고 공언한 것인데 열린우리당이 이를 일괄적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은, 실제로 이를 처리하는 것보다는 정국 주도권 장악에 더 관심이 있음을 반증할 뿐이다. 열린우리당에게 '4대 개혁입법안'은 꽃놀이패였던 것이다.(그리고, 노무현이 이야기하는 민생법안이란 구조조정을 뜻하고, 일자리 창출은 노동유연화 확대에 불과했다는 점도 환기해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같은 허구적인 정치쟁점이 지배세력들의 반동적 공세를 은폐해 버렸기 때문이다. '4대 개혁법안'이 논란의 정점을 차지하고 2004년 하반기 내내 정치쟁점이 되면서, 노동법 개악, 쌀 수입 개방 확대, 미군기지 평택 이전, 파병연장동의안 등이 별다른 저항없이 진척되거나, 확정되어버린 것이다.

민중운동의 NGO화

상당히 격렬한 논쟁이 있었지만 탄핵정국은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상당부분 유실시켰다. 시민운동 진영은 '민주주의'의 승리라며 노무현의 복권을 자축했고, 여러 개혁 사안에서 자신의 입지를 높였다고 자부했다. 그들은 파병반대운동을 하면서도 자국민을 죽음으로 내몬 노무현에 대해 끝끝내 애정과 미련을 버리지 않았고, 한나라당과 그 지지자들의 무지함과 반동성을 부각하는 것에만 골몰했다. 그들은 또한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을 했고, 운동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연대사업에서 민주노동당을 상대화하려고 했으며, 수도이전 공방에서는 서울시와 헌법재판소를 비난하며 노무현을 두둔했다. 노무현과 정치운명을 함께 할 것임을 공공연히 내비쳐 왔던 것이다.
민중운동진영은 2003년 열사투쟁 당시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민중운동진영은 이들과 거리를 두며 자신의 정치적 단결력을 고무시키려 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민중운동이 걸어왔던 길의 귀결일 것이다.
지배세력은 그동안 범세계적 변화에 조응하여 일관된 비전(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추진해왔다. 지배세력-특히 행정 관료들과 이른바 '개혁'세력은 10년이 넘도록 거의 모든 정치적 의제를 선점해왔다. 그들은 농민의 권리를 말하기도 전에 농업시장을 개방해왔고,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하기도 전에 구조조정을 추진했으며, 여성의 권리를 거론하기도 전에 삶의 기반을 해체하며 빈곤에 몰아넣었다.
그들은 구조조정을 부문별 산업별로 진행시켜왔다. 구조조정 대상을 국가권력과 모든 언론매체를 동원해서 다른 부문들로부터 고립시킨 뒤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리고 나서 다른 부문을 구조조정 할 때 앞서 진행된 부문의 구조조정 사례를 들먹였다. 차례로 구조조정을 진척시킨 것이다. 그들은 또한 이 구조조정의 대가가 소비자(시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노동자와 농민, 여성이 소비자(시민)가 누려야 할 권리를 가로막고 있었다는 듯이 꾸미면서 손쉽게 구조조정 했다. 이 과정은 다른 부문으로 이어졌고, 구조조정이 늦어진 부문일수록 특권계층(?)으로 몰리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민중운동은 부문별, 산업별로, 사업장별로 저항해왔다. 연대를 호소했지만 해당 사안의 문제로만 멈추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은 자신의 생존권 투쟁이 사회적으로 지탄받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민중운동은 소비자(시민)들이 자신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시민운동을 끌어들이려 했다. 소비자(시민)를 설득할 때, 민중운동 인사들은 해당 사안의 이해관계가 국민의 이해와 같다는 것을 호소하기 바빴고, 산업의 이해가 곧 자신의 이해인 것처럼 꾸미기 바빴다. 이렇게 해서 '사안별' (범국민) 대책위가 오늘날 민중운동의 연대 사업 모델이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민중운동의 광범위한 참여와 단결보다는 시민운동의 참여여부가 사안별 대책위 구성의 중요 잣대가 되었다.
사안 해결이 중요해질수록 민중운동의 활동은 국가기구와 협상을 하거나 압력 행사에 집중했다. NGO의 활동방식이 민중운동에게까지 일반화된 것이다. NGO들이 홀에서 서류를 들고 로비를 했다면, 민중운동은 행정부처나 청와대, 국회 앞에서 수많은 피켓을 들고 시위하며 압력을 행사했다. 청와대 앞에서 관련 사안이 계류 중이면 청와대로 달려갔고, 국회에서 진행 중이면 국회로 달려갔다. NGO들도 이렇게 동일하게 쫓아다녔다. 정치 1번지는 대중과 만나는 시위 현장이 아니라 청와대와 국회 앞이었다. NGO와 민중운동의 시위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찾아내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만 졌다. 압력의 수위를 높이기 위해 민중운동은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하고,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 시위와 달라진 것이었다. 이제 이 시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사람은 시민들이나 대중이 아니었다.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과 국회에 있는 의원들, 그리고 여의도에 있는 기자들이었다. 시민들을 향한 정치폭로도 국가를 상대로 하는 압박 수단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민중운동의 정치활동은 국가기구를 매개로 해서만 진행되었고, 그럴수록 민중운동은 지배세력과 대중 사이에 유리된 공간(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자신이 대신 메워주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런 모습은 NGO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리고 2004년 국회 앞 농성투쟁

4·15 총선 이후 열린우리당은 원내다수가 되었지만 '아파트 분양가 공개' 약속조차 지키지 않았고 심지어는 '비리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에 앞장서기까지 했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대중의 실망은 늘어만 갔고, 평당원마저 대거 탈당하기까지 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국가정체성 논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매우 높였고,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은 국감에서도 수세에 몰렸다. 탄핵무효운동의 자장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한나라당의 의기양양한 목소리는 정치위기의 징후였다. '개혁' 사안을 둘러싸고 한나라당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시민운동세력은 물론이거니와 상당수 민중운동 세력도 함께 목소리를 외쳤다. '민주개혁전선 강화', '수구냉전보수세력 해체'.
열린우리당은 11월 국회에서 '4대 개혁법안'을 일괄 처리할 것을 공언했다. 대규모 군중동원에 실패한 사안별 대책위들은 모두 11월 국회를 겨냥했고, 어떻게든 자신의 사안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그렇게 하나 둘씩 국회 앞 농성에 돌입하였다. 장애인 이동권, 사립학교법 개정, 국가보안법 폐지, 언론관계법 개정, 과거사진상 규명, 노동법 개악 저지, 의료 시장 개방 반대, 파병연장동의안 반대, 평택 미군기지이전 반대, 쌀수입 개방 저지, 공무원 노동3권 보장. 이제는 역으로 이 수많은 농성텐트들 사이에 자신의 요구가 없는 것이 조바심 날 지경이었다. 경쟁적으로 들어온 만큼 또 자신의 사안이 묻히길 원치 않았던 만큼 이들 사이의 연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 약했다. 여기서 연대라곤 약간의 생활물품을 나누어 갖고, 시간을 쪼개어 서로의 집회시간을 조절하자는 예의수준에 불과했다. 공동의 적(최소한 17대 국회를 향해서라도)을 향한 규탄의 목소리를 모으려는 노력은 없었다. 이제 국회 앞 농성 텐트는 자신의 의제를 부각시키려는 거점으로서 특정 부문의 개별적인 요구를 해결하고 압박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농성과 시위도 달라졌다. 그리고 연대의 의미도 분명히 달라졌다.
2004년 늦가을과 초겨울 국회 앞 농성투쟁의 중심은 국보법 폐지 투쟁이었다. 국보법을 둘러싼 논란은 정치권에서도 '4대 개혁법안' 중 핵심이었다. 그런 만큼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수구보수 대 민주개혁 전선을 분명히 했다.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이하 국민연대)를 주도했던 시민운동과 민중운동 세력은 6월 항쟁과 탄핵무효 운동 그리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잇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이야기했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경기 침체로 대중들의 삶은 유린되고, 빈곤 실업 막대한 부채로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마저 위기에 빠지는 상황에서 (민주주의 '쟁취'가 아니라) 민주주의 '완성'을 주장한 것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과 그 추종자들이 쳐놓은 '민주주의'의 울타리를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한편에서는 국보법 폐지를 염원하는 시민의 힘이 보이지 않아서 열린우리당이 주저한다는 평가가 나왔고, 한편에서는 결연한 투쟁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국민연대는 11월 정기국회 내내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몇 사람의 무기한 단식에서 지도부 단식으로 그리고 천 여 명이 참여하는 집단 단식으로 투쟁의 수위를 높여나갔다. 농성은 점차 규모가 커졌다. 그만큼 '여의도'에서는 확실히 '부각'되고 있었고 이곳에서만큼은 다른 투쟁에 우위를 지켰다.
연내처리가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흘러나오면서부터 상황은 극단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열린우리당의 이중대'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연내'에 폐지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들은 국보법 폐지를 한사코 반대하는 수구보수세력 한나라당만을 보았을 뿐, '비정규직보호입법안', '용산기지이전비준동의안'은 물론이거니와 같은 날 처리될 운명이었던 '파병연장동의안', '공무원노조특별법', '민간투자법', '기금관리법' 등 지배세력들의 반동적 공세와 이를 주도하는 열린우리당의 작태는 보려하지 않았다. 공동의 의제를 내걸어 공동투쟁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에 가서 국민연대는 이 모든 사안이 한꺼번에 처리되는 날, 국보법을 어떻게든 '연내'에 폐지하자고 '직권상정'할 것을 주장했다. 지배세력의 반민중적 조치가 한꺼번에 처리되는 날, 그것도 열린우리당이 이 모든 조치가 달린 상황에서 민중운동은 들러리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한데도 '직권상정'을 외치며 국회의장과 열린우리당을 압박했던 것이다.
민중운동이 지키려했던 원칙이 실종되는 순간이었다. 열린우리당과 협력으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 했다는 점에서, 지배세력의 반민중적 조치를 보고도 열린우리당과 그 일당들에게 의존했다는 점에서, 자기 사안만이라도 해결하자고 다른 사안들은 등한시하고 공동투쟁의 정신마저도 소홀히 했다는 점에서 국보법폐지투쟁은 민중운동의 자주성과 연대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민족주의 진영의 실용적 주장에 따르면) 2004년 가장 유력한 정치투쟁이라는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이 가장 최악의 조합주의적 투쟁의 면모(자기중심적 실리주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이들은 열린우리당을 국회에서 국회 앞 광장으로 끌어낸 성과가 있었다며 2005년을 기약하자고 자평했지만, 사실은 민중운동이 (거리에서, 대중들 앞에서) 국회 앞으로, 국회의원 앞으로 끌려간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친 노무현 개혁세력에 의해서 말이다.

민중의 정치적 단결력을 높이면서 반미반전·반신자유주의 전선의 복원을!

사안별 투쟁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국회 앞 투쟁 자체가 문제인 것도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운동을 했는지가 문제다. 작년 우리가 국회 앞에서 벌인 투쟁들이 운동의 원칙들을 손상시켰기 때문이다. 우리의 운동이 계속 이런 식-그러니까 '오로지' 국회만 바라보며 '오로지' 자기사안만을 해결하겠다고 애쓰는 식으로 진행된다면, 그리고 이런 운동이 확산되고 장려된다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중단시키기는커녕 도리어 (시민운동세력들과 똑같이)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할 것이다. 대중의 불만을 (대변한다는 명목으로) 적절히 관리하고 조절하는 신세가 된다는 뜻이다.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정치적 주체를 형성하려는 노력보다 '오로지' 사안 해결에만 골몰하여 대중운동에 참여한 주체들의 정치적 열망을 소비시킨다면, 그것은 사안을 해결할 수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더 지체시킬 뿐이다. 정치적 주체 없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말 그대로 환상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사태가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대부분 봉합되거나 결국에는 정치적 주체의 부재로 얼마 안 있어 상황이 역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10여 년의 역사가 이를 온전히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노무현 집권 2년이 증명하지 않았던가? 그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개혁'을 내세우며 국민을 동원하고 국민의 정치적 열망을 소모시키고는 도리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 조치를 더욱 강화하면서 민중을 우롱해온 것을 우리는 보지 않았는가?
민중운동은 자신의 독자성부터 확립해야 한다. 자유주의자들과 시민운동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정치적 주체를 형성할 수 있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오늘 (한국)자본주의의 위기가 지배세력들을 어떻게 움직이게 하는지, 지배세력들이 민중을 어떻게 착취하려 드는지, 그것이 필연적으로 어떤 파괴적 결과를 야기하는지를 분명히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신자유주의 정책개혁,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과 실업의 구조화, 배제의 원리와 공동체의 위기-민족국가/학교/가족의 위기, 그리고 폭력의 증대-군사적 긴장의 고조). 그리하여 오늘 지배세력과 민중의 핵심적인 대립지점이 무엇이며(반미·반전, 반신자유주의), 이 같은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민중의 정치적 단결력(의식화와 조직화)을 높여나갈 것인지 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민중의 정치적 단결력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 농민, 여성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 토론하면서 구조적 모순을 타파할 해법을 공동으로 모색하며 대안을 스스로 수립하는 것(의식화), 전체 민중의 보편적인 이해를 대변하는 운동을 전개하면서 이 과정에서 자기 스스로를 조직하며 수평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운동의 질서를 찾아내고 개인의 자발성이 전체를 한 걸음 나가게 하는 조직을 건설하는 것(조직화). 바로 반미·반전,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정치적 주체를 형성하고자 우리는 운동하는 것이 아닌가? 2004년 국회 앞 투쟁을 반성하면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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