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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3-4.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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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중국현대사 편력

<중국의 붉은 별>과 <태평천국의 문> 사이에서...

김상목 |
나의 중국현대사 편력
-<중국의 붉은 별>과 <태평천국의 문> 사이에서…



김 상 목 | 민주노총 경산청도지부협 총무부장

중국이란 나라의 역사는 참 재미있다.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인구와 장구한 역사를 가진 국가의 역사가 어찌 재미가 없겠냐마는…
애초에 나는 역사 텍스트를 읽는 행위 자체를 즐기기는 편이지만, 중국이란 오랜 역사를 가진 거대한 국가의 존재는 비단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관심사일 것이다. 그만큼 재미있다. 어릴 적 처음으로 역사책을 손에 쥐었을 때부터 중국역사는 늘 우선순위에 속한 분야였다. 생각해보면 참 여러 가지 책을 보아왔다. 그리고 지금도 꾸준히 즐겨보는 편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대지>…

어릴 적 처음 읽었던 중국역사서는 지금도 수정증보판으로 나오는 청아출판사의 <이야기 중국사>(전 3권)였다. 이 책은 아직도 그때 보던 책 그대로 서재에 꽂혀 있다. 아주 평이한 책이고, 중국현대사는 1949년 중국공산당이 중국대륙을 장악하는 시점까지만 기록되어 있지만 그래도 청 말부터의 근대에 대해서는 무난하게 기록되어 있다. 중학교 시절, 심심하면 찾아가던 대형서점 역사서 코너에는 특이한 책이 한 권 있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지금은 돼지가 되어버렸지만 그 당시엔 무척 얇아서 가지고 다니며 읽기 좋은 책이었다. 그 책에서 ‘대장정’이란 부분을 퍽 즐겨 읽었다. 이 책 역시 서재에 꽂혀 있다. 대학에 가서 읽게 될 여러 무협지들의 맛보기로 그 부분을 즐겨 읽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읽었던 한 구절은 지금도 외우고 있을 정도다. “‘홍군’은 ‘억압자를 때리는 인민의 주먹’일 뿐이다”라는 그 한 마디. 대학시절 스스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강박을 갖기도 했지만 결과는… 그리 잘 체화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역시 중판을 거듭했지만 나는 처음에 나왔던 판본에 만족하고 있다. 아울러 어린 시절 읽었던 ‘고전’의 반열에 오르내리는 책들 중 관련지어 읽었던 책이 바로 펄벅의 <대지> 3부작 이다. 왕룽 일가의 3대가 중국 근현대사를 헤치며 살아온 이야기, <대지>…(이 책은 워낙 여러 판본이 나와 있으므로 가격대와 책 디자인 보고 취사선택하면 될 것이다.)
<대지>는 1권 <대지>, 2권 <아들들>, 3권 <분열된 일가>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은 왕룽의 일대기, 2권은 왕룽의 세 아들 왕일-왕이-왕호의 이야기, 3권은 왕호의 아들이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1권에서는 역사적 상황이 크게 나오지 않지만, 2권부터는 당대의 사회적-정치적 배경이 적절하게 첨가된다. <대지> 삼부작으로 중국 근현대사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다양한 모습을 겪어본 것 같다. 하지만 대학 이전까지 나의 취미는 고대왕조들의 역사였다.

대학시절, 와 여러 무협지들…

대학에 들어갔다. 원래 역사를 좋아했지만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보다 덜 심각하고 재미난 고대사를 좋아했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현대사를 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읽을 책은 그리 마땅치 않았다.
편하게 읽을 책을 찾았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이란 곳에 발을 디디게 되었고, 관련된 책을 찾으려 했었다. 그렇게 해서 읽게 된 책들은 <중국의 붉은 별>(에드가 스노우 씀 / 두레 출판), <위대한 길 - 한 알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르다>(아그네스 스메들리 씀 / 두레 출판), <중국에 바친 나의 청춘>(님 웨일즈 씀 / 지리산 출판), <시작을 위한 여행>(에드가 스노우 씀 / 지리산 출판) 등이다. 당시 <뇌봉>(실천문학사 출판)을 읽던 친구들이 주변에 꽤나 있었지만, 그 책은 구해두고도 아직 목차밖에 읽지를 않았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서부터 시작된 나의 마오 주석과 홍군에 대한 신앙심은 대학 초년에 읽었던 책들로 인해 더더욱 강해졌었다.
학생운동이란 소우주 안에서 품성이나 민중에 대한 한없는 신뢰, 순간순간의 신화적인 사건들과 감동… 책 속의 내용들에 취하면서 마치 무협지 읽듯이 그 책들을 읽었다. 그러면서도 늘 머리를 괴롭히던 것은 ‘그러한 과정을 걸쳐 건국된 중국에서 왜 유년시절 TV에서 보게 된 천안문 광장의 유혈진압이 일어나게 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주변에서 그에 대한 답을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위의 책들은 다 비슷한 내용들이며 굳이 지금 시점에서 다 읽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굳이 지금도 읽기를 권한다면, <중국의 붉은 별>과 <위대한 길> 정도가 되겠다. 영웅담보다는 여러 가지 사례들을 통해 당시의 풍경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무협지류의 영웅담에 눈이 팔린다면 과거에 머무를 뿐이다.

2003년 전인대, 그리고 화국봉…

2003년, 어느 오후에 뉴스에서 중국 전국인민대표자대회를 보았다. 인터내셔널가가 울려 퍼지고 붉은 기가 아로새겨진 거대한 대회장, 그러나 그 자리에서 논의된 안건은 이른바 ‘홍색’자본가를 공산당원으로 가입시키는 것이었다. ‘홍색’자본가들은 중국 공산주의와 인민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므로 당원자격이 있다는 것이 그날 논의의 요지였다. 그리고 화국봉이 그날 중국공산당에서 탈당했다. 화국봉… 어느새 잊혀진 이름이다. 사실 그 가십성 기사를 읽기 전까지 나는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택동 사후, 4인방을 숙청하고 등소평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과도기의 격동에서 주석을 맡았던 그가 공산당을 탈당했다. 자신의 전 재산을 오지에서 교육과 복지를 위해 헌신하는 당원들을 위해 쓰라는 전언과 함께 헌납하면서… 그는 과연 어떤 심경일까?
<정운영의 중국경제산책>(정운영 씀 / 생각의 나무 출판)은 군대 시절에 틈틈이 읽었던 책이다. 정운영 교수의 냉정한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근래는 너무 시사만평류의 글을 써서 그런지 밀도가 떨어지는데 이 책 역시 그런 비슷한 평을 들었다. 하지만 정운영 교수 특유의, 적당히 냉소적인 중국 현대에 대한 비평은 맛을 잃지 않았다. 아직도 모주석의 흉상이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으며 공산당 간부들에 의해 산업화된 인민공사의 모습, 하지만 엄격한 위계질서와 정치적 독재가 이뤄지는 실상… 상징적으로 읽혀질 부분들이 많다.

저 낮은 중국…

2004년 6월말에 제대를 했다. 그 이후에 중국에 관련된 서적을 두 권 샀다.
<저 낮은 중국>(라오웨이 씀 / 퍼슨웹 옮김 / 이가서 출판)과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1, 2>(모리스 마이스너 씀 / 이산 출판).
<저 낮은 중국>, 원래 책은 <중국 저층 방담록>이라는 아주 두꺼운 인터뷰 정리다.
중국에 대해서, 현재의 중국이 여전히 사회주의적 성격을 일부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데 대해서는 무어라 말하기 어렵지만, 우리가 상상으로 생각하는 사회주의의 현대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믿는 입장이라면, 이 책은 아주 좋은 근거다.
중국의 하위계층, ‘底層’에 속하는 개인 50명을 반체제작가 라오웨이가 인터뷰한 것을 정리한 이 책은 현대중국의 성격에 대해서 명쾌하게 설명해준다(다만 국내에 번역된 책에는 17명의 인터뷰만 수록되어 있다).
‘이런 사회가 과연 발전된 사회인가’에 대한 답은 읽는 이들 나름이겠지만…
현학적인 논쟁이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는 사실들을 <저 낮은 중국>의 인터뷰들은 웅변해준다. 문화대혁명 당시의 홍위병으로 청춘을 바쳤던 이들의 현재 삶이나 중국의 경제개발 붐으로 생겨난 ‘신인류’들의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이 인터뷰들은 중국의 현재를 평가하는데 무엇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의 한 전범으로 신뢰하는 편이다.

중국에서 노동조합은 건설될 수 있을까?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1, 2>는 중국 관련 고급학술서적들을 가끔 출간하는 이산출판사에서 오랜만에 새로 나온 중국현대사 관련서이다.
서구에서 나온 책들은 대개 중국에 대해 일방적으로 폄하하거나 혹은 무비판적 찬사로 일관하여 공정한 시각을 가지는 경우가 오히려 드문 편인데, 이 책은 나름대로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 책은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데, 중국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중국공산당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노동조합의 형성이 가장 주요한 관건이라 주장하고 있다.
과거 80년대 폴란드에서 바웬사가 이끌던 ‘독립노조’ 형태의 노동자 자주조직이 힘을 얻지 않고서는 중국의 공산당과 자본가의 기묘한 동거는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주장이다.
중국의 자본가들은 그들의 이윤추구를 극대화하기 위해 지금처럼 중국공산당이 정치적-사회적 욕구분출을 억눌러줄 수 있는 권위주의 체제가 계속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공산당 역시 자본가 계급과 융화되어 가고 있으며, 현재 중국에서는 새로운 지배계급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다. 현재의 당 간부들은 ‘중화민족주의’라는 새로운 선전문구로 자신들의 치부를 은폐하면서 자본가로 변모하는 중이다. 중국의 민주화는 결코 경제발전의 부산물로 얻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이 이 책이 주장하는 바이고, 그 지점에 대해서 동감하는 바가 많다.

‘맥도날드’와 ‘인력거’ 혹은 ‘소황제’와 ‘쿠리’들…

지금 중국은 맥도날드의 패스트푸드를 즐기며, 어려움 모르고 부모의 과잉배려 속에 크고 있는 신흥 자산계층의 ‘소황제’와 관광수입을 위해 그들을 태우고 다니는 인력거꾼, ‘쿠리’로 나누어지고 있다. 얼마 전 우연히 인터넷에서 보았던 한 장의 사진… 그 사진은 내게 중국의 현실에 대해 두꺼운 논문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진실의 일면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현대 중국에서 모택동은 중국의 전통 지복신앙의 숭배대상으로 가가호호 그의 초상이 걸려 있는, 마치 삼국지의 관우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등소평은 오늘날 중국의 부를 이룬 현실의 지도자이며 모택동은 감성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배치시킨 중국공산당의 오랜 작업이 맺은 결실이다. 신적 존재가 되어버린 모택동…
그 모택동은 일찍이 농민과 노동자들이 부자들의 무덤을 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그의 말이 부메랑이 되어 그의 후예를 자처하는 중국공산당을 향해 돌아갈 것인가…
그 점에 대해서 나는 열외자이다. 나는 그 부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며 단지 몇몇 이차 문헌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알고 싶을 뿐이다.

청명절엔 천안문에서 만나자… 동지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영화 주간지가 나오는 나라 대한민국,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연륜을 자랑하며, 혹자는 ‘문화권력’이라 칭하는 씨네 21에는 어울리지 않는 칼럼이 하나 있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한겨레가 만드는 매체 중에서 가장 선동적이고 급진적인 주장들이 적당히 나오는 칼럼이다. 얼마 전 본 칼럼에서는 과거 천안문의 기억을 떠올리며 2005년 청명절을 둘러싼 중국사회 내부의 동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다는 한 ‘격문’의 내용이다. ‘청명절엔 천안문에서 만나자… 동지들…’ 그들이 과연 천안문에서 모일 것인가? 그리고 그 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사진이 한 장 있다.

부활절 봉기

생존한 좌파 역사학자들 중 가장 탁월한 이로 꼽히는 에릭 홉스봄은 ‘부활절 봉기’라는 표현을 가끔 쓴다. 아일랜드 민족해방운동에서 인용된 개념인데, 당대에 처참하게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미래의 전범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다른 길이 없기에 일으키는 대중봉기를 그는 ‘부활절 봉기’라 칭했다. 이 사례에 속하는 것으로 흔히 80년 광주와 파리 코뮌을 예로 든다. 중국의 반체제 세력은 과연 2005년 천안문을 ‘부활절 봉기’로 물들일 것인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나는 4월 5일 천안문을 기다릴 것이다. 중국이란 거대한 이웃나라의 격동에 비록 바쁘지만 관심을 가질만한 이유는 충분하니깐…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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