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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3-4.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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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저작권 논란에 숨어있는 정치적 배경

양희진 |
인터넷 저작권 논란에 숨어있는 정치적 배경


양 희 진|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센스: 영리불허, 개작허용(http://freeuse.or.kr/license/by-nc/)'에 따라 자유롭게 복제, 배포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2005년 2월 25일 작성되었습니다.


최근 개정 저작권법이 발효된 것을 계기로 네티즌의 관심이 저작권에 쏠려있다. 실연자와 음반제작자에게 전송권이 부여되자 네티즌들은 음악파일(mp3)을 블로그나 까페의 배경음악으로 깔거나 개인홈페이지에 업로드하는 행위, p2p 서비스를 통해 음악파일을 공유하는 행위가 새롭게 금지된 것으로 인식하였다.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블로그나 까페에서 배경음악을 삭제하거나 업로드했던 음악파일을 대거 삭제하는 네티즌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불복종운동을 벌이며 오히려 대량으로 음악파일을 업로드를 하는 네티즌들도 생겼다. 뿐만 아니라 'No Music No Blog' '개정 저작권법 반대' '네티즌을 범죄인화하는 저작권법 반대'라는 슬로건의 까페가 만들어져 네티즌 스스로 조직적인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문화관광부는 당초 '이번 법개정으로 새롭게 불법이 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불법이었는데 다만 네티즌들이 몰랐을 뿐이며 앞으로 대대적인 단속을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가, 네티즌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한발 후퇴했다. 문광부 홈페이지에 2차 공지를 내어, 일정한 '계도기간을 거친 후에 영리적 사이트를 중심으로 한정하여 단속을 벌이겠다'고 네티즌을 다독이고 있는 상황이다.

인터넷에서 음악파일을 전송하는 행위가 애초부터 불법이었다는 문광부의 말은 맞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부터 불법이었는가가 아니라, '현재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네티즌이 '이제서야 불법을 인식했다'라는 것은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준법의식이 없다고 핀잔주고 '계도할'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네티즌이 비로소 지금 그 금지가 정당한가'라고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문광부가 해야 할 일은 그 정당성을 설명하든가 네티즌의 비판과 항의를 받아들여 정당하지 못한 법을 개정하는 것이지, 나중에 단속하겠다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다.

정보공유연대를 비롯한 31개 시민사회단체들은 문광부나 음반업계에 맞서 저작권법재개정 투쟁을 선포하고, 이를 위한 지지서명을 받는 등 여러 캠페인을 벌여나가고 있다 ({{{{http://www.ipleft.or.kr/antilaw
}}
}}). 지난주부터는 대통령에게 애국가선물하기, 애국가 배경음악채택하기 등의 저작권법 불복종운동을 벌였다. 동시에 국회 앞에서 1주간 1인 시위를 벌였다. 문광부 담당자나 국회문광위 소속 의원들도 네티즌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문제제기에 약간은 긴장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네티즌과 시민사회단체들의 핵심적 요구사항인 저작권법 재개정 요구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며, 오히려 저작권법을 개악하려고 준비중이어서 3월, 4월은 저작권법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이 계속될 전망이다.

시민사회단체들 주장의 핵심은 지금의 저작권법이 인터넷의 자유로운 정보소통구조를 전혀 배려하지 못하고 있어 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저작권법에 따르면 동호회게시판이나 카페에 시 한 편, 노래가사 하나만 업로드 해도 저작권침해이다. 블로그에 배경음악을 깔면 손해배상청구를 당할 지도 모른다. 신문기사를 퍼 나르는 것도 모두 불법이다. 블로그나 까페 등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는 다양한 소통과 새로운 창작의 과정이 저작권법에 의해 원천적으로 막혀있는 것이다. 이는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의 행위는 복제와 전송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음에도 저작권법이 복제권과 전송권을 저작권자에게 거의 무제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넷에서의 저작물 전송과 복제를 일정한 범위에서 허용하는 쪽으로 저작권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저작권법의 재개정이 궁극적인 대안이다.

혹자는 저작물을 복제하고 전송하고 공연하는 등 저작물의 모든 처분 권한은 저작자에게 있으니 그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고, 그러니 그들의 권리주장은 정당하고 법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단지 이용자들의 무임승차 의식이 문제가 아니냐고 묻는다. 심지어 국회의원도, 문광부 공무원도 같은 질문을 한다. "우리 헌법은 사유재산권을 보장한다. 저작권법도 그 재산권의 하나이다. 그러니 저작권법도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이다"라고.

사유재산권을 운운하며 헌법을 들먹이지만, 실상 사유재산권은 제한할 수 없다는 논리야말로 위헌적 발상이다. 우리 헌법은 입법자가 법률로써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를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다. 따라서 본질적인 내용의 침해가 아니라면 재산권도 얼마든지 제한할 수 있다. 토지소유권은 그린벨트로 묶거나 거래허가제를 통해 제한하고 있다. 자기 땅에 건물을 세우더라도 건축법에 따른 허가를 받거나 신고를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일조권을 침해하지 않으려면 일정한 높이 이상으로 지을 수 없다. 저작권법도 마찬가지다. 제한할 수 없는 권리가 아니다.

저작권을 제한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리로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국어 책을 낭송하게 하면 아이와 선생은 공연권 침해가 될 것이다. 글을 쓰면서 남의 글을 인용하는 것도 복제권 침해가 될 것이며, 저작권이 만료되지 않은 건축물 앞에서나 조각, 그림이 장식된 실내에서는 시사보도를 위한 취재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소풍간 학생들은 같이 노래를 부를 수도 없고 학교 방송에서 음악을 틀지도 못할 것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들이 저작권법 위반으로 처벌될 것이다. 그러나 안심해도 된다. 이런 행위들은 타인의 저작물을 공연하거나 복제하는 행위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저작권법에서 허용하고 있다. 즉 저작권법은 공연권이나 복제권을 저작권으로서 보호하는 한편, 저작권을 제한하고 있다. 왜? 저작물을 일정한 범위에서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보장하지 않으면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매우 불편하고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저작권을 통해 달성하려고 하는 문화의 발전이라는 것도 어느 만큼은 저작물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했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작권법 제1조에서 보듯 저작권법의 역사는 저작권과 이용자의 권리간에 균형을 금과옥조처럼 유지하려는 과정이었다. 그 균형점이라는 것이 사회변화에 따라 좌우로 이동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인터넷 디지털 환경으로 변화되면서 변화된 환경을 법, 제도에 수용하는 방식은 권리자를 강력하게 보호하는 쪽으로만 기울어져 왔다. 우리가 지적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저작(인접)권자에게 전송권이 보장되고, 전송권에 대한 제한은 거의 두지 않으면서 저작권과 이용권 간의 균형이 깨어지고 있다. 또한 개인적인 목적의 비영리적인 사용을 위해서라면 저작물의 복제도 허용되었으나, 인터넷 환경에서는 실질적으로는 개인적, 비영리적 사용임에도 네트워크 환경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한정된 범위에서 사용됨에도 개인적 사용의 범위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비영리적 사용이면서 저작권자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 한 실질적으로 보아 개인적 사용이라면 인터넷 상에서도 보장되어야 한다. 이 만큼은 저작자의 권리가 제한되어야 한다.

우리가 저작권 문제를 주목하는 이유는 비단 '불편'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작권의 강화는 바로 '차별'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저작권법에 의하여 정보의 소통이 규제되고 인터넷이 하나의 시장으로만 전락할 때는 정보의 부익부빈익빈이 강화되고 이는 정보사회의 삶의 질의 격차로 이어질 것이다. 저작권의 강화는 실제로 미국 헐리우드 자본에 의한 요구가 미국 정부를 매개로 국제적으로 관철된 것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시장의 논리가 세계화과정에서 정보의 소통과 활용에 적용된 결과이다. 결국 저작권 문제에 대해 공유의 공간을 넓혀 가는 것은 빈곤과 차별의 원천인 자본의 세계화에 맞서는 길이기도 하다.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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