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5.5.54호

쉽지 않은, 농성

안성민 |

난 3월 중순부터 민주노총 서울본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전국학생연대회의, 중부지구 민중연대 실무자들과 함께 '비정규 개악안 저지, 권리보장 입법 쟁취,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농성실천단'을 준비해왔다. 다들 지난 노동법 개악저지 투쟁에 대한 평가 속에서, 대중들의 자발적 실천이 모아질 수 있는 거점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판단해오던 터였다. 국회 앞 천막농성장을 거점으로, 국회 안팎의 협상테이블들을 째려보며, 실천적면서 대중적인 활동들을 벌이는 것이 우리의 구상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4월 19일, 국회 앞 천막농성을 시작한다.

4월 19일 다른 집행위원들과 함께 농성 예정지(국민은행 앞)로 이동했다. 경찰들이 대오를 둘러싼 상태에서 침낭이나 천막으로 보이는 것들은 모두 압수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경찰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천막이 들어오지 못했음을 나중에 확인했고, 있을 예정이었던 민주노총 지도부의 연좌농성은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비가 내렸다. 천막농성의 시작을 지켜보려고 남은 30명 정도의 사람들과 파란 비닐우비를 나누어 입고 촛불집회를 진행했고, 여의도 문화마당에 천막도 설치했다. 모두 비에 흠뻑 젖었다. "첫날부터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면서 다같이 소주잔을 기울였다. 새벽 2시경에는 바람에 천막이 날아갈 뻔 했다.

4월 20일 여의도역에서 첫 출근선전전을 했다. 대견하게도 시간 맞춰 오겠다던 학생 3명이 제시간에 도착했다. 다들 밀물처럼 밀려드는 인파에 묻혀 유인물을 나누어주었다. 모두 시민들의 반응이 좋다면서 흡족해했다.

공원 안에 무단으로 천막을 설치했다며 화를 내는 관리직원의 어깨 뒤로, 녹색 유니폼을 맞춰입은 20명 남짓의 공익요원들이 줄을 맞춰 걸어왔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제지하는 우리들의 노력이 무색하게 조금씩 우리 천막을 뜯어냈다. 어느새 천막의 옆면이 사라졌다. 자포자기의 심정과 마지막 자존심으로 천막 지붕은 우리 손으로 직접 철거했다.

노숙을 하자고 했다. 노숙농성이 오래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러자고 했다.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티로폼 위에 침낭을 놓고 비닐을 덮으니 생각보다 따뜻했다. 아침에, 가로 8미터 세로 2미터 되는 비닐에 이슬이 맺혀 물이 한바가지는 모였다.

4월 21일 국회 앞에서 인권단체들이 '이목희-김대환 망언 규탄 기자회견 및 퍼포먼스'를 했다. 난 농성실천단 대표로 앞에 나가"비정규직이 완전 철폐되는 그날까지 농성실천단은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오면서 그 말 한 것을 잠시 후회했다.

3일차 촛불집회가 끝난 후, 민주노총 중집회의 결과를 총연맹의 한 관계자가 전해주었다. 양대노총 위원장들이 내일부터 이곳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간다고 했다. 천막도 친다고 했다. 쌍수 들어 환영할 일도 아니지만, 나쁜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어떡하지?

상황실 실무자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와 무관하게 자기 길을 가는 총연맹 앞에서 모두들 무기력함을 느낀 상태였다. 내일 일정도 불투명한 상태였고, 각 단위별로 조직화 정도도 체크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지쳐보였다.

농성장을 정리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국민은행 앞의 거리를 예전모습으로 돌려놓았다. 상황실 실무자들은 소주 한잔 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삼겹살집에 모여 앉은 우리는 몇 분간 말이 없었다. 그 자리는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그 후 3일 동안은 인사동에서 광장사업과 대성가스 비정규투쟁 결합 위주로 실천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그러던 중 숨가쁘던 4월 정세가 어느덧 단계적으로 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좌충우돌 국회 앞 농성 스토리는 생각보다 짧게 끝나버린 셈이다. 비정규 법안 처리가 유보로 가닥이 잡혀가면서, 내 호흡도 차츰 정상을 되찾는 기분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자리를 찾는 주위 모습을 보면서, 농성을 준비했던 지난 몇 주 동안의 행적이 한 때 호들갑처럼 느껴진다. 농성기간 내내 황사가 무척 심했다. 농성장에서 바라본 국회의사당은 매일같이 뿌연 안개 속에서 거대한 입체감만 뿜어냈다. 국회의사당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을 모양새로 황사 뒤에 꼭꼭 숨어있었다. 국회 안에 들어갔던 노동계 대표들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국회에서 협상을 진행했던 노동계 대표들에 대해서는 농성기간 내내 주변에 말만 무성했을 뿐이지, 투명하게 드러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지도부가 국회 앞 농성을 시작하면서 오히려 팽팽했던 긴장감이 한 풀 꺾여 버린 것 또한 기이한 현상이었다. 시행착오를 하지 않으려고 실천의 무게추를 서서히 더하는 그들의 이유 있는 조심스러움이 이해는 갔지만, 그 거대한 몸체 주위에서 호들갑 떨듯 맴돌았던 우리들에 대한 외면에 대해서는 조금 얄밉기도 했다.(우리가 천막을 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던 그 장소에 총연맹의 천막은 지금까지도 능청맞게 버티고 서 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들 주위를 맴돌다가 끝나버린 우리 자신의 궤적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듯하다. 아무튼 이번에도 결과적으로는, 승자도 패자도 있을 수 없는 이상한 4월 싸움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조금만 곱씹어보면 시간에 구획을 나누어 호흡을 조절하는 건 우리의 습관일 뿐, 본래 4월 싸움이란 것이 어디 있었겠나. 싸움의 주도권을 쥔 그들조차도 잠시 한타임 쉬고 가는 것일 뿐. 물론 4월 싸움일지라도 불씨는 아직 남아있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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