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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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5.5.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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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진리?

심용석 |
종교가 지배하던 중세. 그 시대의 그림(위 그림)을 보라! 예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종교적 중요성을 지닌 인물들은 다른 이들에 비해 강조되어 그려지곤 했다. 전면에 배치되어 부각되거나 어쩔 수 없이 뒷면에 배치되더라도 그들은 다른 이들과 같은 크기이거나 때로는 더 크게 그려지면서 강조되곤 했다.(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크기를 보라!) 이러한 시대의 관점에서 사람들 사이의 위계는 당연한 것이었으며 사물들 또한 그렇게 생각되곤 했다. 이러한 관점이 무너지기 시작한 시기는 보통 14세기의 르네상스가 시작하던 시기와 맞물린다고 생각된다. 그림에서 원근법이 도입되고 성지만이 강조되던 지도의 제작법도 바뀌기 시작했으며 그러한 시기를 거치면서 갈릴레이나 뉴턴과 같은 과학자들도 세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 새로운 방식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출현할 수 있었으며 그 의미는 또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까? 여기에서 그나마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은 '그 새로운 방식'에 관한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원근법이나 변화된 지도 제작법에서도 어느 정도 생각해 볼 수 있듯이, 그것은 사물들, 사람들 사이에 항상 존재한다고 생각되었던 위계를 점차 무너뜨리고 대신 동등한 대상으로 볼 수 있게 도왔다. 따라서 이제 동등한 대상들 사이를 연결짓는 질서가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이 질서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가령, 스탬스라는 정치학자는 그녀의 저서 『무비판적인 근대성(Unthinking Modernity)』에서 이러한 시각이 잘 드러나는 이로 홉스를 제시하고 있다. 먼저, 홉스는 갈릴레오의 물리학 이론을 사회이론과 심리학에 적용하여 세계를 물리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으로 구분하였다. 즉, 사회적인 것은 끝이 없는 균일한 공간의 확장일 뿐이며 물리적인 것은 이러한 공간 내부에 담겨있는 객체들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홉스는 이러한 객체들을 다시 한번 분리해내는데 첫 번째는 일차적이고 객관적인 것이며 두 번째는 이차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전자는 질량, 모양, 위치, 속도의 네가지로 구성되며 따라서 가시적이고 촉감적이며 측정가능한 것이다. 반면, 후자는 색깔, 냄새, 맛 등과 같은 요소들로 구성되어 일차적 집합들에 속한 것들이 지각장치를 거쳐 되튀는 방식으로 야기된 것이며 따라서 가시적이지도 측정가능하지도 않은 것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개인들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으므로 홉스는 이러한 것들을 부차적인 즉, 이차적인 것으로 격하시킨 다음 고려대상에서 배제하였다. 결국, 그는 전적으로 수로만 표현되고 인식되는 객체들로 가득 찬 세상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던 것이고 이러한 틀 속에서 모든 것들은 심지어 그러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주체들마저도 반복적이고 태엽장치와 같은 방식으로만 움직이는 부분들로 존재하게끔 만들었던 것이다.1)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 보자. 이러한 관점은 도대체 어떻게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일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이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이다. 그러한 많은 답들에 대한 어떤 경향성을 찾아내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어떤 이유로 그러한 일이 발생했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여러 사례들 특히, 과학기술적 사례들을 통해 그 경향성을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자. 가령, 12세기의 유리는 짙은 색을 지닌 것이었으며 주로 새 교회들의 창문으로 이용되곤 하였다. 이러한 유리는 빛을 허용하지만 그 빛깔을 변형하였고 따라서 어두운 밝음이라는 일견 모순적인 느낌을 주곤 하였다. 하지만, 14세기 초에 뮤라노에서 개발된 무색 유리는 이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는데 먼저, 아무런 방해 없이 주체가 대상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유리가 색을 잃고 그림으로도 여겨지지 않게 됨으로써 그것은 당시 유럽의 사상을 특징짓기 시작했던 자연주의2)와 추상화라는 이중 과정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더욱이, 이 과정에 박차를 가했다. 이 외에도 1385년이라 기록된 익명의 편지에 언급된 유리온실은 지역과 날씨와 무관하게 노동 시간을 늘리는 결과를 낳았고 이에 따라 삶 또한, 정규화된 일상으로 점차 변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중세의 상징주의가 점차 해체되면서 세상은 무색 유리를 통해 바라보는 순간 완전히 다른 장소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양피지와 종이라는 사례 또한, 중요한 비교 대상이 된다. 중세의 수도원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양피지의 기원은 사실 기원전 2세기의 페르가몬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그 지역의 왕이었던 에우메네스 2세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도서관의 영향력을 상쇄하고자 다양한 학문을 다루는 도서관을 설립하였다. 이에 당황한 이집트는 페르가몬으로의 파피루스 수출을 금지하였고 이에 에우메네스 2세는 많은 수의 노예들을 바탕으로 한 왕실의 공장을 설립하여 양피지 제조를 독점함으로써 양피지의 사용을 확산시켰다. 이 양피지는 파피루스에 비해 질겼으며 코덱스 형태에 적합하여 많은 양의 글을 담아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쉽게 참조할 수 있는 장점도 지니고 있었다 (파피루스는 주로 두루마리 형태로 사용되었다면 양피지는 오늘날의 책과 거의 유사한 코덱스 형태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양피지는 중세시대에 주로 수도원에서 난해한 라틴어 서적들의 필사본을 만드는데 사용되면서 소수 계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것으로 사용되었고 이러한 측면에서 당시 양피지는 성직자 계층의 권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8세기에 제조법이 서구에 소개되었던 종이는 양피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조법이 쉬웠다 (양피지는 소나 양의 피부를 벗겨낸 후 그것을 씻고 한참동안을 물에 담근 후 다듬질하여 한번 말린 후 다시 넓게 펴기 위해 압력을 가했으며 이후에 다시 씻어 말리는 등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더구나 양이나 소는 무한정 공급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모두를 양피지로 만드는데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목재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풍족한 자원이었다). 쉬운 제조법과 함께 양이나 소의 가죽을 이용해 제조하던 양피지와는 달리 목재를 이용해 좀더 싼 가격에 공급될 수 있었다. 또, 종이와 함께 소개된 아랍의 간편한 표기방식의 숫자는 무역을 촉진시켜 1275년경의 상업혁명과도 무관하지 않으며 이에 따라 난해한 라틴어가 아닌 그 지역에서 사용되던 토착어 또한 점차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위계가 전제된 관계가 점차 동등한 지위를 지닌 것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경향성은 도대체 무엇일까? 물론, 계속 언급했듯이 딱 꼬집어 이야기하기란 어렵다. 다만, 몇 세기에 걸쳐 강력한 지위를 점유하는 관점이라고 하더라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이면에 어두운 면을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즉, 중세의 강력했던 위계에 기반을 둔 관점은 그 관점에서 벗어나는 수많은 이탈들을 양산해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며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관점이 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의 지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새로운 관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동등한 지위를 지닌 사물들 사이의 질서를 파악하기 위해 그들이 지닌 풍부한 의미들을 고려하는 대신 물리적인 힘이나 화학적인 특성, 기계적인 속성 즉, 객관적 특징으로 알려진 것들로서 사물들을 파악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다시 말해, '과학=진실'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매우 유용한 관점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만 문제는 그것이 '진리'라고 여겨지면서 획득하게 된 '권력'에 있다. 푸코가 그의 저작들을 통해 이미 환기시켜준 바 있듯이 진리와 권력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인데 이는 이 글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글에서 역시 나타나고 있다. 가령, 아이들이 그린 그림에는 주로 사물의 특정 부분을 포착하여 거기에서 무한한 즐거움을 찾는 특징이 나타난다면, '기-승-전-결'식이나 연역 내지는 두괄식 등의 논리적 일관성3)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에서는 '원인-결과'라는 과학이 전제하는 선형적인 인식틀에 기반을 둔 관점 즉, 아이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관점이 나타난다. 문제는 오늘날의 대부분의 글들이 후자의 관점을 바탕으로 쓰여짐으로써 그러한 관점의 권력을 재생산하며 스스로 체화(體化)해낸다는 데에 있다. 즉, 익숙해진 관점에서 벗어나기가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더욱 더 큰 문제는 스스로 체화하여 끊임없이 재생산해내는 그 관점 자체를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여기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아도르노나 벤야민 혹은 이니스나 맥루한 등과 같은 이들은 그들의 저작들을 통해 인과적인 관계 속에서 파악되는 고정된 의미보다는 유연한 의미들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앞서 언급되었던 스탬스는 이들의 글쓰기 방식을 "개념적 성좌(conceptual constellation)"에 기초한 것이라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지구라는 고정점이 전제되지 않는 방식의 글쓰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북극성 등등으로 파악될 수 있는 성좌는 사실 지구위에서 바라본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면, 개념적 성좌에 기초한 글쓰기는 어떤 고정된 위치를 전제하지 않고 대신, 별들 자체들이 어떻게 모여있는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배치함으로써 다양한 의미를 산출하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 가령, 아도르노와 벤야민 모두 강조했던 미메시스(mimesis)는 굳이 번역한다면 '모사' 혹은 '모방'이지만 이는 'imitation(모방)'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미메시스가 주체와 객체 사이의 끊임없는 변증법 즉, 부정 변증법을 의미한다면 모방(imitation)은 단순한 객체의 복제다. 따라서 전자에서는 주체와 객체 사이의 해소될 수 없는 긴장상태가 지속되는 반면, 후자에서는 객체의 특징들만 파악되면 얼마든지 주체가 모방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차이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글쓰기 방식이 논리적 일관성에 기초를 둬야 할 이유는 결코 없다. 아니 오히려 이는 더 위험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것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까? 적어도 필자에게 이러한 측면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떠오르는 것은 바로 영화 '매트릭스'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은 실제로는 '매트릭스'와 다를 바 없지 않는가? 우리가 실재(reality)라고 인식하는 것은 다른 식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매트릭스 1편에서 트리니티의 대사에서처럼, '질문을 던지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끊임없이 파란 약을 선택하며(그것도 무의식적으로)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주어진 틀을 다르게 인식하기 위해 질문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니체가 이야기했던 모든 가치들을 의심해본다는 것이며 벤야민이 어린 시절의 경험과 기억을 강조한 이유였다. 물론, 이러한 의심은 데카르트식의 회의와는 결단코 다르다. 그 역시, 모든 가치들을 의심하지만 이는 현재 의미가 있는 가치들의 자명함을 주장하기 위함이지 결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회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데카르트의 회의의 귀결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객체와 무관한 주체의 우월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잘 나타난다. 따라서 관건은 익숙해진 관점에 의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며 이는 현재의 자명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명해 보이는 것의 타자성 내지는 변두리(marginality)를 포착하기 위함이다. 여기에서의 타자성 내지는 변두리는 중앙에서 완벽하게 배제되어 따라서 완전한 단절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즉, 그들은 익숙해진 관점이라는 중앙에서 간과되고 무시되면서도 이미 그 관점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가령, 과거에 특히 강력했던 백인-중심적 사회에서 흑인은 일견, 간과되고 무시되었지만 동시에 노예로서의 그들의 존재 없이 백인-중심적 사회는 유지될 수 없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남성-중심적 사회 또한, 여성에 대한 배제와 동시에 그들에게 어떤 수준의 역할-부여는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타자성과 변두리는 완벽한 단절이 아닌 겹쳐지고 굴곡이 많은 주름이며 바로 이 곳 그리고 그 곳에서의 시간이 새로운 가치가 등장하고 새로운 가능성들이 제시되는 장소4)
이다. 사실 남성-중심적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페미니즘의 출현 및 성장으로만 이야기할 수만은 없지만 그것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으며 이는 서구-중심적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과학=진리'라는 관점에 대한 바로 그 '타자성과 변두리'는 어디인 것일까? 그곳에서의 시간은 어떠한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제시될 수 없다.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답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PSSP

1) 물론, 홉스가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도 아니며 여기에서 제시되듯이 그의 이론은 사실 르네상스 시대의 관점과도 차이가 나타난다. 르네상스 시대가 대상들 사이의 위계가 점차 무너져 가는 시기였다면 그의 주장은 이러한 입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사회이론으로까지 확장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홉스의 주장이 르네상스 시대에 형성되기 시작한 관점과 맞닿아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며 여기에서는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스탬스의 주장을 참고한 것이다. 본문으로

2) 소위 초자연적이라고 이야기되는 것들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만을 연구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한데 여기에서 역설적인 것은 우리가 '초자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과학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과학적인 시각에서 파악되지 않는 것들이 '초자연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며 따라서 그러한 시야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사실 '초자연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주의'라는 용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시대적 산물인 셈이다. 본문으로

3) 이러한 방식의 글쓰기와 과학 사이의 관계는 자명하다: 둘 모두, '원인-결과'라는 선형적인 인식틀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본문으로

4) 여기에서의 장소는 시간이 내포된 공간으로서의 의미다. 특히, 중국 출신의 지리학자인 투안(Yi-Fu Tuan)은 그의 저서 『공간과 장소(Space and Place)』를 통해서 공간들은 그 자체만으로는 장소로 여겨질 수 없으며 이를 위해서는 그러한 공간 속에서의 경험 즉, 시간의 흐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본문으로
주제어
이론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