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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6.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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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이와의 만남, 그리고 길들이기

고석태 |
똘이와의 만남, 그리고 길들이기

고석태 | 조직교육부장

똘이와의 만남

일요일 오후, 여느 때처럼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우리 집 주차장에 강아지 한 마리가 계단에 걸터앉아 있었다. 귀엽게 생긴 강아지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지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나를 따라다녔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어린 강아지 같은데 다리를 다쳐서 누가 버렸나보네.. 이궁 불쌍한 것..'

어떻게 할까 한참을 망설였지만 그렇다고 강아지를 집으로 데리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일단 그냥 집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던 그 강아지의 모습이 한참이나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결국 난 다시 밖으로 나가 그 강아지를 찾아보았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였지만 그 강아지는 다리가 불편해서 인지 그리 멀리 가지 못했다.
그렇게 다시 만난 강아지는 우리 집 현관 앞까지 나를 졸졸졸 따라왔다. 우선 먹을 것이라도 좀 줄 요량으로 덜컥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강아지가 먹을 만한 것이 없어서 과자 몇 조각을 줬는데 잘 먹지를 않았다. 그런데 밖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더니 정말 도저히 참기 힘든 악취가 났다. 그래서 얼른 화장실로 데려가서 급한 대로 샴푸로 목욕을 시켰다. 녀석, 처음 보는 사람이 목욕을 시켜주는데도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참 귀여웠다~^^
목욕 후에도 냄새는 여전했지만 이미 내 코가 그 냄새에 적응이 됐는지 그런 대로 참을 만 했다. 옷장 깊숙이 넣어둔 농활 티셔츠 몇 장을 꺼내어 이불을 만들어 주었다. 피곤했는지 녀석은 금방 잠들어 버렸다. 귀여운 우리 똘이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똘이의 병원기

똘이는 왼쪽 뒷다리를 다쳐서 걸어 다니기는커녕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바로 병원에 데려 갈까 생각해보았지만, 일요일이라 동물 병원이 문을 닫았을 것 같아 일단 그냥 하룻밤을 같이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똘이와 하룻밤을 보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너무 어려서 그런지 소변을 제대로 못 가렸고, 다리까지 불편해서 일을 보려면 내가 직접 똘이를 일으켜 세워 줘야만 했다. 똥개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똑똑한지 오줌이 마려우면 일으켜달라고 낑낑거리며 신호를 보냈다. 조그마한 게 먹은 것도 없는데 어찌나 그렇게 자주 일을 보던지... 난 새벽 내내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 난 바로 똘이를 데리고 서울대학교 동물병원을 찾아 갔다. 그런데 똘이를 치료하는데 드는 비용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비쌌다. 다리가 어떻게 이상이 있는지 X-ray를 찍어보고 여기 저기 살펴보는 검사를 받는데 만 15-20만원이 들고, 만약 수술을 받게 되면 50만원 정도가 들지도 모른다고 했다. 게다가 서울대 동물병원이 최종진료기관(2-3차 진료기관)이라서 예약을 하지 않고 진료를 받으면 응급진료로 간주해 50% 할증요금을 내야 된다.

"집 앞에서 강아지를 주었는데 다리를 다친 거 같아서 데리고 왔어요~"

사정을 설명했더니, 그런 경우 내가 보호자가 되어 진료비를 부담하고 치료를 받던가 아니면 유기견 센터로 보내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유기견 센터로 보내더라도 이렇게 많이 다친 강아지는 분양을 받지 못해 안락사 될 확률이 높다고 했다. 똘이를 그냥 유기견 센터로 보내려니 너무 불쌍하고, 또 하룻밤 사이에 벌써 정이 들었는지 일단 나는 진료비를 부담할 테니 우선 어떻게 아픈 건지 검사라도 받게 해달라고 말했다.
이것저것 검사를 받느라고 한 2-3시간을 기다린 후 드디어 결과를 듣기 위해 진료실로 갔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 수술비는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정말 뜻밖의 말을 들었다.
담당 교수님께 똘이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내가 똘이를 잘 키우기만 한다면 병원에서 무료로 수술을 해주기로 하셨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기뻤지만 한편으론 과연 내가 똘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일이 잘 풀린 것도 인연이라는 생각에 우리 똘이를 한번 잘 키워봐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결국 난 다행히도 X-ray 촬영비 6만원만 지불하고 병원을 나올 수가 있었다. 똘이는 병원에서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3일간의 입원치료를 받은 후에 퇴원할 수 있었다.

똘이 길들이기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관계를 맺는다고?” “물론이지. 넌 아직 내게 세상에 흔한 여러 아이들과 다를 게 없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나도 세상에 흔한 여러 여우들과 다를 게 없는 한 여우에 지나지 않는 거야. 그러나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돼...그리고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선 영원히 책임을 져야 해...”

강아지 한 마리를 기른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선 똥오줌을 못 가리는 강아지를 집안에서 키운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못 알아듣겠다는 듯이 쳐다보는 똘이, 게다가 다리도 아픈 녀석을 무턱대고 나무날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다리가 다 나을 때까지는 이 문제만큼은 ‘보류’하기로 했다.
똘이와 함께 지내면서 또 한 가지 힘든 것은 바로 밤에 편안히 잠을 잘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새벽 4시만 되면 어김없이 똘이는 나를 깨운다. 처음엔 애가 왜이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자신을 안아달다고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10분을 안아주고 다시 잠들면 또 깨우기를 반복, 결국 난 거의 매일 밤 편안하게 자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은 똘이에 대한 ‘사랑’과 ‘애정’만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어린 나이에 그렇게 큰 사고를 당하고 주인에게 버림받기까지 한 불쌍한 똘이, 사실 똘이가 얼마나 사람의 사랑이 그리웠을까를 생각하면 똘이를 길들이는데 이 정도의 불편함들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똘이를 길들이는데 사랑과 애정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돈'이다. 똘이의 아픈 다리는 다행히도 착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무사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똘이가 또 아프기라도 한다면 아마 내 한달 수입으로는 감당하기 힘들만한 비용이 들 것이다. 또 똘이를 집안에서 키우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기본적으로 강아지용 사료와 강아지 샴푸, 그리고 구강청청제와 탈취제, 그리고 똘이처럼 똥오줌 못 가리는 녀석을 위한 강아지 화장실(그러나 우리 똘이는 구입한 이후 아직까지 한번도 이용한 적이 없다--;) 등등.
애견 인구 증가로 인해 발생하는 국내 애견 관련 산업 규모가 연간 7000억 원에 달한다고 하니 강아지를 키우는데 정말 돈이 많이 들긴 드는 모양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랑스럽게 키워왔던 자신의 강아지를 버리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버려진 동물이 동물구조협회로부터 구조되는 건수가 월평균 700여 마리에 달해 전국적으로 최소 1만여 마리, 연 10만 마리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눈만 돌리면 버려진 동물들과 마주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처럼 ‘돈’ 때문에 버려지는 것이 어디 강아지뿐이겠는가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 어쨌든 서로를 길들이고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사랑’과 ‘노력’만으로 부족한, 그래서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이지만 ‘돈’ 때문에 관계의 끈을 놓아 버릴 수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은 우리가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안타깝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ps
우리 똘이가 건강하게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무료로 수술을 해주신 임지혜 선생님과 서울대 동물병원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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