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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6.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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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네오콘'을 통해 본 남한 '뉴라이트 운동'의 전망

정희찬 |
미국의 '네오콘'을 통해 본 남한 '뉴라이트 운동'의 전망

정 희 찬 | 정책편집부장

1. 뉴라이트운동의 등장
: "우리의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이 위기에 빠져있다."1)

이른바 '뉴라이트(new right) 운동'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지난해 동아일보가 <뉴라이트, 침묵에서 행동으로>라는 연재기사를 기획하면서 자유주의연대와 뉴라이트를 표방한 여러 단체들이 세력화하면서 사회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자유주의연대(2004년 11월 2일), 교과서포럼(2005년 1월 25일), 뉴라이트싱크넷(3월 24일), 시사웹진 뉴라이트(4월 1일)는 출범 즉시 각종 언론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과거 '주사파' 출신 인사나 김진홍 목사 등 보수적 기독교단체를 이끌고 있는 종교계 인사가 주축이 된 이들은 스스로를 '업그레이드 386'이라 부른다 (여기서 '486'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다.). 그리고 '올드 레프트'나 '올드 라이트'와 차별적인 자신들이 혼란과 절망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칭 '건강한 보수'를 주장하고 있는 이들 '신보수'의 주장은 자유주의연대이나 뉴라이트싱크넷의 창립선언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2)

①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역사: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통해 냉전과 공산화의 위험, 빈곤을 극복하여 세계 10위권의 산업국가로 발전했을 뿐 아니라 1987년 이후 민주주의 정착에도 성공했다.

② 현 집권세력의 위험한 '자학사관': 현 집권세력은 건국과 산업화를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이해하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절차적 수준이 아니라 과거 반체제세력이 주장하는 민중민주주의와 유사한 참여민주주의로 대체하려고 한다. 이들은 또한 민족공조와 노조를 앞세워 각각 한미동맹과 기업을 대체하려고 한다.

③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기에 대한 책임은 反시장주의적이고 대중선동형 포퓰리즘에 사로잡힌 現집권세력에게 전적으로 있다: 외국자본과 거대노조가 득세하고 분배와 균형의 추구는 성장둔화와 빈곤의 증가를 초래했다. 민족공조는 최악의 인권유린국가로서 핵무장을 시도하는 북한의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안보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의회권력과 행정권력 뿐 아니라 예술과 문화마저 이들이 장악하여 서로 권력투쟁을 일삼는 가운데 대한민국은 이념, 세대, 지역 간 갈등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④뉴라이트운동은 기득권에 안주하며 부패한 낡은 보수와 단절하고, 민주화세력의 위험한 민족주의적 민중주의가 아닌,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로 무장하고 세계화, 정보화, 자유화의 대세에 발맞추어 선진한국으로의 질적 도약을 위한 미래의 청사진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상이 이른바 뉴라이트 운동의 주장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지난해 여름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한나라당 부설기관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인 박세일 의원이 발제한 <나라의 선진화와 당의 진로>라는 제목의 문서에 기반하고 있다.3) 이 문서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현정부의 주축을 이루는 민주화 세력을 겨냥하여) 1980년대 "친북 반체제적인 반독재투쟁의 잔재인 '반시장, 반자유' 세력과의 대결을 통해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전통을 회복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주도한 김대중 정권과 이를 철저하게 계승하고 있는 노무현정권의 공헌(?)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반시장적이고 반자유주의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이들의 주장이 어떤 이론체계에 근거하여 출현했다기보다는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현 집권세력에게 전가함으로써 반사이익을 노리고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1997년 외환위기와 구조조정은 지난 30년 동안 남한 지배계급의 지주였던 '반공-발전주의'를 해체하고 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통해 지배계급의 헤게모니 분파를 보수야당-자유주의 세력으로 대체하였다. 게다가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연거푸 패한 결과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기존 지배계급 분파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현된 것이었으리라.
1997년 대선을 통해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수평적 정권교체'의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등장한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IMF 서울 지부장'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철저하게 월스트리트의 관점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금융시장을 부양하려는 그의 경제정책은 2000년 절정에 달한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불가피하게 측근들과 여당 정치인들의 비리와 부정부패로 귀결되었다. 재임 중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라는 명예는 빛이 바랬고 남한 자본주의의 동요는 정권에 대한 불안정한 지지율로 직결되었다. 김대중 정권의 충실한 후계자인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지난 신자유주의 구조정의 결과 등장한 빈곤과 청년실업, 불안정노동이라는 쟁점을 '참여 복지'라는 허울좋은 수식어로 은폐하고 있다. 참여정부는 오히려 조직된 노동자운동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강화하면서 한국경제의 구원자로서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신화를 유포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개혁의 장미빛 환상이 잿빛 현실로 드러난 현실에서 현 집권세력에 대한 지배계급 내 보수적 분파들의 선전·선동은 나날이 공격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뉴라이트'는 바로 이러한 지배계급 내에서의 동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1970년대 '뉴라이트'에 비견할 수 있는 신보수주의자들의 출현과 함께 반동적이고 공격적인 보수주의가 출현했다. 비록 양자 사이의 시차는 존재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상황은 한국과 여러모로 유사한 점이 있고 나아가 '뉴라이트' 운동의 향후 전망을 조망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다.

2. 미국의 네오콘(Neo-con)
: 미국의 쇠퇴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급진주의에 대한 반동

(1) 1970년대 급진주의 도전에 대항한 공격적 보수주의의 반동

'뉴라이트운동'의 원조 격인 이른바 네오콘이 등장한 미국 역시 1970년대 경제불황과 베트남전 패배, 급진주의 페미니즘, 흑인민권운동 등 진보주의 운동의 성장에 대한 보수주의 반동이라는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19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는 미국 내에서는 베트남전쟁 반대투쟁과 흑인민권운동이 성장하며 기존 사회의 가치관과 질서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또한 유럽의 급진학생운동(68운동), 혁명과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시도했던 중남미의 좌파(쿠바와 칠레, 니카라과), 수에즈운하를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되찾은 이집트의 나세르가 제창한 중동의 아랍민족주의와 제3세계 국가들의 '비동맹주의' 등은 미국의 지배계급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런 와중에서 이른바 '파웰 메모'4)로 유명한 일화는 바로 각종 형태의 자유주의·진보주의를 미국 내부의 적으로 지목하고 이들과 대결해야 한다는 공격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보수주의자의 태도를 드러낸다. 파웰은 공산주의자, 뉴레프트를 비롯한 혁명주의자들이 대학과 언론계, 문화예술계에 침투하여 미국의 정치와 경제체제를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기업은 대학의 보수적 학생을 양성하고 진보적 교수를 보수적 교수로 대체해야하고 TV프로그램, 책, 팜플랫 등을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진보'에 맞서 보수주의를 재구축하는 데 앞장서야 함을 역설하였다. 이후 미국에서는 해리티지 재단, 건전한 경제를 위한 시민운동 등 보수적 단체들이 조직되었는데 이들은 기존의 민주당이 지원하는 자유주의 연구소들과 경쟁했다. 특히` 1차·3차 산업에 집중된 개인기업자본과 동맹을 맺어 막대한 정치자금을 바탕으로 미국 자본가 집단의 요구를 표출했다. 이러한 요구는 조세삭감, 노동신축화, 군비증강 등 레이거노믹스로 수용된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보수주의 흐름은 낙태, 동성애, 포르노, 마약, 청소년 범죄 등 미국 사회의 첨예한 이슈들에 대해서 복음주의적 기독교 집단 - 미국 기독교세력은 1940년대에서부터 70년대까지는 세속의 정치·사회적 이슈와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이들이 강조했던 전통적 가치관은 급진주의와 자유주의적 세속주의에 의해 지속적으로 약화되었다 - 이 주장하는 헌법의 남녀동등권 반대, 동성애권 반대, 낙태 반대 등 쟁점을 이동하며 이른바 단일 이슈운동을 전개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월남전과 워터게이트 등으로 추락한 전통적인 보수주의 진영은 전열을 재정비했고 결국 1980년 공화당의 레이건 행정부가 출범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2) 신보수주의(네오콘)의 출현: 급진주의와 (뉴딜)자유주의 이념에 대한 회의

또 한편으로 미국에서는 동시에 오늘날 네오콘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신보수주의자들이 점차 공화당을 지지하며 외교안보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들의 기원은 1940년대 <파티전 리뷰>(Partisan Review라는 잡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일부 트로츠키주의 그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소련의 동유럽 점령을 반대하며 적극적인 반공(反共)을 주장했는데 이들은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과는 달리 루즈벨트의 뉴딜 자유주의와 복지국가의 이념을 지지했다. 이들이 공격적인 보수주의로 전향하게 되는 계기는 1960년대 베트남전을 비판하며 성장한 급진주의의 등장이었다. 당시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SDS)이 결성되고 신좌파운동이 출현하며 몇몇 대학에서는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학생시위가 확산되었다 (1964년 버클리대학, 1968년 콜롬비아대학). 이때 '네오콘'의 원조로 불리는 어빙 크리스톨 등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급진주의에 무기력한 민주당의 자유주의에 실망하여 점차 민주당으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한다. 또한 1960년대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 아래에서 추진된 '가난과의 전쟁'(War on Poverty)과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 등의 복지 프로그램은 이들이 보기에 빈민의 자활을 돕는 것이 아니라 복지에 의존하도록 만들었고 미혼모를 증가시켜 결과적으로 가족의 해체로 귀결된 전형적인 실패작이었다.
네오콘의 논리에 의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지와 차별의 문제는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로 자유시장경제의 가능성을 증명한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가능케 함으로써 기업가정신이 발전하여 새로운 부가 창출될 수도 있고,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차별을 시정하는 강력한 反차별 제도로 기능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차라리 문제는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탐욕과 이기심이며, 정직, 근면, 책임감, 융통성, 친절, 타인의 필요와 이해에 대한 관심을 증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5) 게다가 이들은 1970년대 미국의 급진주의에 대한 반동이라는 점에서 기독교 복음주의 및 기존 보수주의의 주장과 결합하는데, 앞서 낙태나 동성애에 대한 반대, 전통적 가족의 수호라는 점에서 일치할 뿐 아니라 외교안보정책에서도 전통적인 우방으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동맹의식도 공통적이다. 결국 미국식 선거제도의 악명을 높였던 2000년 대선에서 네오콘 세력은 복음주의 기독교 집단과 본격적인 유대관계를 구축했다. 게다가 네오콘들은 비인격적이며 물질주의적이고 개인주의·자유지상주의적인 대중문화의 공격으로부터 미국적 가치관과 문화를 방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들의 주장은 경제적 자유와 공동체적 가치를 위해서 유대-기독교의 가르침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으로 발전했다. 유대-기독교는 물질세계를 초월하는 도덕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세속 종교'인 좌파 유토피아주의와 경쟁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오경택, 2005). 네오콘은 전통적인 보수주의와 결합하면서 보수주의의 현대화, 이론화(?)에 조력하고 있다.
네오콘이 민주당 지지로부터 이탈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1970년대 후반 카터 행정부의 이른바 '인권외교'였다. 네오콘은 카터 행정부가 제3세계 권위주의 정권을 압박하는 '인권외교'를 통해 소련과 공산주의라는 큰 위협을 앞에 두고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동맹국을 소외시키고 있다며 레이건의 공화당 대선 캠프에 합류한다.6) 레이건 행정부에서는 엘리엇 에이브럼스나 리처드 펄 등 신보수주의자들이 중용되었으며 대외적으로도 1970년대 데탕트와 단절하고 군비확장('스타워즈' 계획)과 동시에 강경하고 적극적인 對소련 압박정책을 펴기 시작한다. 그러나 무리한 군비의 부담을 이기지 못한 소련이 1985년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하고, 1980년대 말 동유럽 국가들이 몰락하고,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레이건 행정부 하에서 절정기를 구가했던 신보수주의자들은 반공이라는 대외명분 자체가 소멸함에 따라 오히려 입지가 약해지고 내부적으로 분화하기 시작한다 (손봉권, 2005).7) 9·11 테러사건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던 신보수주의자들이 '네오콘'이라는 별칭으로 다시금 화려하게 부활하는 계기가 된다. 미국 밖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는 반대로 미국은 이제 도처에서 보이지 않고 예측 불가능한 위험들이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3) 9·11 이후 신보수주의의 보편화, 신자유주의의 신보수주의적 수렴?

탈냉전 이후 신보수주자들은 고립주의로 회귀하려는 공화당보다는 인권보호와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하다면 군사력을 사용하겠다는 클린턴의 '대담한 주장'에 마음이 이끌리기도 했다. 냉전구도의 소멸 이후 소말리아 사태와 보스니아에서의 인종청소를 목격하며 신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이 가치를 부정하거나 위협하는 악의 세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세계질서 유지를 위해 미국이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정치적 경제적 자유의 세계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위해 국방비를 늘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상윤, 2005).
네오콘의 일부세력은 공화당의 강경 매파그룹(딕 체니, 도널드 럼스펠드)과 연합하여 1996년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를 결성하고 9·11테러를 통해 명실상부한 미국의 대안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PNAC를 결성한 세력들은 작은 정부를 지지하고 해외개입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전통적인 보수주의자와는 달리 강한 정부와 군사력의 증강을 지지한다. 이들은 불량국가를 무너뜨리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식하여 중동분쟁 해결과 체제전환을 동시에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거나('우익 윌슨파')와 미국의 개입과 군사적 강경노선을 유지하되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또 다른 위협세력을 제거해야 한다고('잭슨적 일방주의자') 주장한다.
미국의 자본과 군사력을 상징하는 두 곳을 공격한 9·11 테러는 다른 정치세력에 비해 네오콘만이 유일하게 뚜렷한 전망을 지니고 있고 진정으로 세계의 혼란과 무질서를 걱정하고 새로운 질서를 짜내려 노력하는 세력으로 돋보이게 만들었다. 2000년 대선이 주로 사회·경제적 쟁점을 중심으로 선거운동이 이루어졌음에 반해, 2004년 대선은 외교안보 정책이 단연 압도적으로 여타의 쟁점을 압도했다. 미국 민주당은 부시의 이라크 침략전쟁을 비판했으나 이는 전쟁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전통적인 우방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는 지엽적인 문제제기일 뿐이었다. 오히려 민주당과 공화당은 국토안보의 핵심의제로서 대테러전쟁의 수행, 대테러전쟁의 핵심의제로서 핵확산 방지, 이를 위한 (핵)선제공격 불사라는 점에서 서로 수렴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국제적 협력을 추구하는 다자주의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일방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다자적 일방주의', 혹은 '다자주의의 융단장갑 속에서의 일방주의 철권'이 존재할 뿐이다 (백승욱, 2005).
이처럼 국제주의 보수파로서 네오콘의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주장은 공화당과 민주당 뿐 아니라 평범한 미국 시민들의 애국심을 고취하며 점차 보편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과 세계를 '구원'하려는 이들의 전략은 군비증강을 위한 무리한 재정적자와 (세계 최강이지만)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미약한 군사력으로 인해 실패할 공산이 크다 (토드, 2003). 이들의 시도는 평화와 안정과는 거리가 먼 무한전쟁을 야기할 뿐이다.

3. 신자유주의 속에서 신보수주의의 수렴과 신자유주의의 '반동적' 전환

미국에서 네오콘의 주장이 큰 틀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의 새로운 수렴을 구성하는 데 강력한 구심으로 작동하고 있듯이 한국에서도 단지 뉴라이트라는 집단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뉴라이트가 등장한 후 지배계급의 전략이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될 것인가가 중요하다. 미국에서 클린턴 행정부의 신자유주의는 금융적 팽창을 거듭하며 호황을 누렸지만 이제는 민주당마저 전쟁과 테러에 대해 오히려 공화당의 무능을 질책하며 대테러전쟁의 중요성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처럼 신보수주의 의제는 공화당이나 한나라당만의 전유물이 아닐 수 있다.
한국의 뉴라이트는 이미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과 그리 다르지 않은 주장을 하고 있다. 이미 그들이 주장하는 질서자유주의, 상생의 자유주의, 공동체 자유주의는 참여정부의 국정목표인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 성찰적 민주주의, 토론민주주의와 대동소이하고, 법치주의는 '원칙과 신뢰'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임혁백, 2004). 네오콘이 주도하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태도는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으로 드러났던 바, 뉴라이트가 제시하는 한미동맹 강화와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북한에 대한 이들의 호전적인 민주화 운동 역시 북한의 시장경제로의 진입을 유도하려는 노무현정권의 대북정책과 본질적으로 다른 주장이라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이른바 시장경제에 대한 뉴라이트의 주문은 지난 10여 년 동안의 자유화·개방화로 인해 이미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을 초국적 투자자들이 내세우는 '시장의 법칙'에 맡겨놓았던 'IMF 지부장'과 그의 후계자에게 오히려 반가운 주문이 아닐 수 없다. 즉, 보수주의를 앞세우며 호전적으로 현 집권세력을 공격하는 겉모습과는 달리 이들은 김대중 정권 이후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재편과 차별적인 이념적 지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 공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공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돗자리를 깔아주고 있다. 뉴라이트의 출현은 단지 '보수꼴통'의 출현이 아니라 앞으로 현재의 집권세력을 포함하여 신자유주의의 우경화·보수화를 촉진하는 촉매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8) 뉴라이트가 단지 현 집권세력의 뒤꽁무니를 따라가고 있다고 얕잡아 볼 것이 아니라, 뉴라이트가 지배세력의 보수화와 우경화를 촉진하며 현존하는 체계의 위기를 여성과 노동자에게 전가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러한 지배계급의 시도가 민중의 저항과 불만을 불러일으키는 한에서는 앞으로 필연적으로 훨씬 야만적인 정세가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 뉴라이트 비판이 '무기의 비판'이 되려면 바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사회운동의 형성, 대안적인 주체형성의 과제가 따라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고자료※
마상윤(2005), 「미국 신보수주의의 역사적 배경 - 탈냉전부터 이라크 전쟁까지」;남공군 편, 『미국 신보수주의의 이념과 실천 - 네오콘 프로젝트』, 사회평론
백승욱(2005), 「미국 신보수파 주도 아래의 새로운 세계질서」;백승욱 편저,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 세계체계 분석으로 본 미국헤게모니의 역사』, 그린비
손봉권(2005), 「미국 신보수주의의 역사적 배경-1930년대에서 레이건 행정부 시기까지」;남공군 편, 『미국 신보수주의의 이념과 실천 - 네오콘 프로젝트』, 사회평론
오경택(2005), 「미국 신보수주의의 정치이념의 구성과 주장」;남공군 편, 『미국 신보수주의의 이념과 실천 - 네오콘 프로젝트』, 사회평론
이삼성(1993), 『미국의 대한정책과 한국 민족주의』, 한길사
임혁백(2004), 「한국의 뉴라이트 배경과 전망」;『관훈저널』2004년 겨울호
엠마뉘엘 토드(2003), 주경철 옮김, 『제국의 몰락』, 까치


1) 〈자유주의연대 창립선언문〉(2004.11.24)에 나온 말이다.본문으로

2) 자유주의연대(www.486.or.kr)의 홈페이지나 시사웹진 뉴라이트닷컴(www.new-right.com)의 홈페이지에는 사회 각계에서 활약하는 이들 '신보수주의자'들의 각종 칼럼과 토론회 자료가 등록되어 있다.본문으로

3) 임혁백(2004)는 '뉴라이트'운동을 한나라당의 '선진화 프로젝트'에 대한 호응으로 해석한다.본문으로

4) 파웰 메모는 변호사인 루이스 파웰(Lewis Powell)이 1971년 8월23일 당시 미상공회의소 의장 스나이더(Eugene B. Snyder)에게로 보낸 "미국의 자유기업제도에 대한 공격"이란 제목의 메모를 가리키는 것인데 2개월 후 파웰은 연방대법관으로 임명된다.본문으로

5) 이들은 또한 빈곤의 문제 역시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기대치도 상승해서 심화된 것으로 인식될 뿐이며, 과거의 시점에 비해서는 오히려 현재의 최극빈층이라고 하더라도 과거에 비해서는 몇 배나 더 잘 살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은 빈곤은 감소했다"는 것이다. 현대 빈곤문제를 고대 노예의 삶과 비교하라는 의미인가?본문으로

6) 그러나 카터 행정부의 인권외교란 이중적이었고 집권 초기에 한정되었다. 카터가 무기수출을 규제하고 국방예산을 감축하려고 시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지역 안보에 대한 책임을 친미 동맹국이 부담하게 하는 것으로서 동맹국들이 추구했던 자주국방은 사실상 미제무기로 무장하는 것을 의미했다. 카터 행정부가 권위주의/독재국가에 대해 직접적으로 취한 조치는 '성명외교'에 머무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나마도 이란과 니카라과에서 친미정권이 무너지고 반미 혁명정권이 세워지자 '인권외교'는 카터 행정부 말기인 1979-80년 사이에 CIA의 해외공작을 통한 공작외교와 군사적 수단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이삼성, 1993: 82-90).본문으로

7) 고르바초프가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되고 개혁·개방 노선을 천명했을 때 신보수주의 진영은 여전히 소련의 박멸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과,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예전의 고립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으로 양분되었다.본문으로

8) 일례로 지난 프랑스 대선에서 국민전선(FN)의 르펜이라는 극우파가 결선에 올라 프랑스인들을 경악에 빠트린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외국인혐오와 인종주의적 수사를 늘어놓은 르펜에 대항하여 프랑스 시민들은 우파의 시라크를 당선시켰지만 그는 르펜의 인종주의를 비난하면서도 이민자들에 대한 배제와 탄압을 강화하였고 중도-좌파(?) 정당인 프랑스사회당 역시 날로 악화되는 치안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준비하며 사실상 인종주의적 의제에서 수렴되어가고 있다. 즉 극우파의 출현은 사람들에게 기존 가치관을 혼란시키는 주범으로 비난받지만 정작 그들이 주장한 배제의 논리와 가치체계는 이미 모든 경쟁자들에 의해 공유되는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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