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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동자니까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가 있다"

이주노동조합 샤킬 수석부위원장(위원장 직무대행) 인터뷰

정영섭 |
인터뷰&정리 : 정영섭 | 노동국장

이주노동조합 안와르 위원장이 법무부와 출입국관리소에 의해 '표적연행'된 이후 이주노조와 민주노총 등은 '이주노조 탄압분쇄와 단속추방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사회진보연대도 여기에 함께 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전망을 들어보기 위해 이주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을 하고 있는 샤킬 수석부위원장을 만났다. 인터뷰는 '이주노동조합 탄압 분쇄와 위원장 구출을 위한 이주노동자 결의대회' 하루 전날인 5월 21일(토) 저녁 이주노조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지난 4월 24일 '서울경인지역 이주노동조합'(migrant.nodong.net)이 결성되었다. 한국사회에서 독자적인 이주노동조합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샤킬: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온 지 18년이 넘었다. 대략 88올림픽 전후로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당시 한국정부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1994년도에 산업연수제도를 도입하면서 정부도 이주노동자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 단속도 조금씩 시작되었다. 산업연수생들은 저임금으로 장시간 일하면서 당시 적게는 18만원, 많게는 24만원 정도를 받았다. 이름은 산업연수제지만 일은 3D업종이었다. 기술을 배우러 동남아시아 나라들에서 연수생들이 들어왔지만 현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사업장을 이탈하고 옮기면서 '불법체류자'가 되었다. 이주노동자 인권유린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자 정부는 2003년 7월 31일 고용허가제를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2004년 8월 17일부터 시행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도 국내 노동자와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고 선전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그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오히려 시행 이후에 작업시간이 길어지고 임금도 낮아졌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어서 고용주가 하자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실에 반대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은 투쟁해왔고 2003년 11월부터 380여 일 동안 단속추방과 고용허가제 문제, 산업연수제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다. 농성투쟁을 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05년 4월 24일 이주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것이다. 이주노조의 목적은 산업연수제 폐지, 고용허가제 중단, 노동3권 보장, 미등록이주노동자 합법화, 노동허가제 쟁취 등이다. 인간대접도 못 받고 노동자로서 권리도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해 싸우려고 노조를 만들게 되었다.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샤킬: 현재 비조합원들도 많은 고민을 하면서 조금씩 가입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탄압이 너무 심각하여 부담감도 있다. 그래서 가입을 거부하는 이주노동자들도 있다. 아직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노조가 뭔지 잘 모르지만 이주노조에서 교육도 하고 이해를 넓히면 많이 가입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주노동자들의 현재 상태는 어떠한가?

샤킬: 지금 16번째 합동단속을 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를 확대시키기 위해 비인간적인 단속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는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다니면서 노동조합에 대해 얘기해왔다.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은 비참하다. 단속이 심한 상황을 회사에서 이용해 일도 더 많이 시키고 일요일도 쉬지 못하게 한다. 하루 12-14시간 일하고 바로 콘테이너 기숙사로 들어가는 생활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 감옥처럼. 생활물품을 사러 나가지도 못하고 배달시켜서 산다. 담배 1갑도 그렇게 사니 물건값도 비싸게 받는다. 어떤 친구는 공장 3층에서 일하고 1층에서 생활하면서 밖에 안 나간 지 4개월이 넘기도 했다. 햇빛도 제대로 못보고 친구들도 못 만나고 고통이 심하다. 아주 가끔 나갈 때는 콜택시를 부른다. 월급도 많이 줄었다. 힘들게 일하면서 돈도 못 버는 것이다.

정부정책인 고용허가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샤킬: 고용허가제는 1년 단위로 계약해서 3년 간 일하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온다. 그래서 자기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어디에다 얘길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그걸 계속 이용할 것이다. 그리고 1년 동안 말을 잘 듣고 시키는 대로해야 계약연장이 되니까 사장이 심한 것을 요구해도 따를 수밖에 없다. 자기 의사대로 회사를 옮길 수 없다. 산업연수제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부는 단속으로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단속은 아무런 해결책이 안 된다. 미등록이주노동자는 더 늘어났다. 8월이 되면 30만이 넘을 것이다. 단속으로 그 많은 사람들을 내보낼 수 있겠는가.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노동비자, 노동허가제를 줘야 한다. 우리는 노동자니까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가 있다. 설립필증도 빨리 줘야 한다.

노조 출범 직후 위원장이 연행되었는데 이를 어떻게 보는가?

샤킬: 이전에 평등노조 산하 이주지부로 있었고 지부를 통해서 많은 투쟁을 했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예전에도 탄압이 많았다. 비두, 샤말, 깨비, 굽타, 헉 등 그 과정에서 많은 친구들이 잡혀가서 강제추방 되었다. 2004년 2월에 명동성당 농성단 대표이자 이주지부장이었던 샤말 타파가 납치되어 강제추방 되었다. 이번에 또 정부가 위원장을 연행해갔다. 일반단속에 의해 잡았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이주노조를 출범시키니까 잡아간 것이다. 안와르 동지 개인 단속이 아니고 노조를 압박하기 위해 그런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새벽 1시에 뚝섬역 계단에서 앞뒤를 막고 20-30명의 출입국관리소, 법무부 직원들이 덮쳐서 땅에 엎드리게 하고 두명이 어깨를 짓누르고 수갑을 채우고 연행했을 이유가 없다. 연행한 차 안에서 물도 안주고 어디로 가는지 말해 주지도 않았다. 1시간 후에야 청주보호소로 간다고 했고, 차안에서 사진도 찍고 비디오촬영도 했다. 일반단속이 아니라 노조탄압이다.

일부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사람들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샤킬: 그런 이야기는 많이 듣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은 한국노동자들이 거의 일하지 않는 곳이다. 그리고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하면서 한쪽에서는 고용허가제, 산업연수제로 인력을 더 들여오고 있지 않나. 우리는 어느 정도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오래된 이주노동자들이 합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노동자라면 한국노동자 이주노동자 다같이 힘을 모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괜찮다면 개인사에 대해 말해 달라.

샤킬: 방글라데시에서 1992년도에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오기 전 방글라데시에서 독재시절에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다. 그래서 승리했고 민주주의도 만들었다.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는 많이 힘들었다. 말도 안통하고 기계가 뭔지도 몰랐고 음식도 달라서 고생했다. 또 그 당시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얼마 되지 않아서 한국사람들이 우리를 이해 못하고 무시하고 싫어했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은 시민들이 많이 이해해준다. 같은 인간으로서 노동자로서 함께 투쟁하는 것이 좋다.

지금 제일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샤킬: 제일 힘든 것은 단속이다. 안와르 위원장이 그 이전 샤말 지부장 연행 이후에 노조활동을 맡아서 많은 역할을 했는데 지금 연행되어서 힘든 점도 있다. 지금은 우리가 감옥생활 하고 있다. 단속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잠도 잘 못 자고 잘 씻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런 시기는 얼마 가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한국노동자, 이주노동자, 시민들과 함께 단결하여 이 감옥생활을 벗어날 것이다.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

이주노동조합의 조직적인 전망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샤킬: 이주노동조합 만들자고 처음에 시작할 때 '전국이주노동자투쟁단'을 건설하자고 했다. 여러 차례 회의를 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60%가 밀집해 있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노조로 조직하고 그후에 전국적으로 만들자고 했다. 앞으로 전국의 많은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들과 '전국이주노동자투쟁단'으로 투쟁을 하고 전국이주노동조합을 만들어갈 것이다.


* 인터뷰 뒤안길
인터뷰를 마치고 샤킬 동지, 사무국장인 까지만 동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토요일 저녁이고 사무실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 갔는데도 그 동지들은 연신 창밖을 내다본다. 혹시나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샤킬 동지가 자는 방에 새벽에 누군가 와서 계속 문을 두드린 일도 있었다고 했다. 이미 불안이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린 이주노동자. 그런데도 그들은 스스로 투쟁하고 그래서 더욱 가치있고 빛난다.
몇해 전 어느 이주노동자는 전태일 정신에 대해 "전태일열사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인간선언'을 했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노동자선언'을 했고,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며 '투쟁선언'을 했다"라고 얘기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이미 한국노동자운동의 일부이고 계속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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