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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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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과 자본의 연대에 맞서-전력산업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자

송유나 | 정책기획부장
구조조정 반대투쟁을 복구시켜내자

6개월여의 투쟁, 한달여의 명동성당 천막농성을 끝으로, 전력산업 구조조정에 맞선 전국적 투쟁은 생각보다 긴 휴지기를 맞고 있다. 전력노조 역사상 최초였다고 말할 수 있는 1999년의 이 투쟁은 국회 본회의에서 전력특별법 통과를 저지시켜냈다는 점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력산업 구조조정은 '유보'되었을 뿐이다.

특히 작년 투쟁의 성과가 전력노동자들의 주체적 역량과 조직력에 기반한 성과라기보다는 총선을 의식한 정치권의 균열에 천착했다는 점에서, 결과 자체도 한계적일 수 밖에 없다. 2000년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의지는 여전히 민영화, 정확히 말해 사유화의 열기로 충만해 있다.
그리고 이 사유화는 정리해고와 노동의 불안정화, 유연화된 노동과정과 임금체계을 전제하고 이를 촉발해내는 양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맞고있는 이 길고 긴 휴지기는 달콤한 휴식이라기보다 나태함이라고 볼 수 있다. 전력산업만이 아닌 사유화 정책전반, 자본의 공공부문 구조조정 정책전반을 막아내기 위해, 전선을 확대·재편해내고 다시 대중적 여론을 형성해내야 할 이 급박한 정세가 '부패한 정치인과 개혁적 정치인 가르기' 정도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제 살리기라는 자본과 정권의 이데올로기에 찬동하며 노동조합의 파업에 찬물을 끼얹고,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의 핵심을 함께하는 세력들에 의해, 지난 몇 년간 싸워왔던 노동자 투쟁의 성과가 유실되어버리는 위험천만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나태해진 전선을 시급히 복구하고,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사유화에 맞선 투쟁을 복구시켜내야 한다. 이 글은 그동안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사유화 정책,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진행경과 및 2000년 추진계획에 대해 간략히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1999년 구조조정 저항투쟁의 주체였던 전력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향후과제에 대해 간략히 살펴볼 것이다.


사유화 정책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현재 완전하게 사유화된 곳은 국정교과서, 종합기술금융 등 13개사이고 포항제철, 한국전력, 한국통신이 해외 DR발행의 형식으로, 담배인삼공사, 가스공사가 국내 일반공모형식으로 사유화를 진척시켜가고 있다. 정부는 IMF이후 본격화된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사유화정책으로, 1999년 총 3.7조원(정부예산 1.2조)의 비용절감, 총 9.3조(재정수입 3.5조원, 외화수입 52억불)에 달하는 수입을 얻었다고 발표했다.

정부 부문전반에 걸쳐 1만7천명이 정리해고되었고, 공기업은 3만2천명, 출연·위탁기관은 13만 2천명이 정리해고되었다. 또 공기업에서 퇴직금누진제가 폐지되고 연봉제로의 전화가 급속도로 진척되고 있다. 이 비용절감과 매각수입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정리해고! 공공서비스의 축소! 바로 민중생존권의 압박을 의미한다. 전기요금 및 공공요금의 인상은 멀지않은 미래이며, 초국적 자본으로의 매각은 한국경제의 대외종속성이 더욱 심화되는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2000년 역시, 공기업 사유화를 추진하는 계획은 계속된다. 재경부 등 정부 일각에서 외환수급 관리차원에서 공기업 해외매각 시기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는 있다. 하지만 이는 달러가 넘쳐 환율이 상승하고있는 상황에서 공기업 해외매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으로, 전혀 민중적·노동자적 관점의 표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올해의 계획을 간략히 보자면,

·한국통신 정부지분 33.4%를 제외한 잔여지분 25% 내외를 전략적 제휴 혹은 국내외 매각
·담배인삼공사 15% 해외 DR발행 등 정부 및 은행소유지분 매각, 동일인 소유한도 7% 조정, 제조독점 폐지
·포항제철 상반기 중 산업은행지분 9.84%를 국내외에 매각하여 민영화 완료
·한국전력 상반기 중 안양·부천 열병합 발전소의 재입찰 매각, 발전부문 분리 및 경쟁도입의 추진
·한국중공업 2000년 4월까지 전략적 제휴 및 기업공개절차의 마무리, 상반기 중 국내경쟁입찰을 위한 구체적 실시방법을 확정하여 공고
·가스공사 국내외 시장여건을 고려한 증자
·한국종합화학 연내 조기처리 및 남양화성매각 등 추진
·대한 송유관공사 상반기 중 정부지분 46.5%를 매각하여 민영화 완료
·지역난방공사 상반기 중 안양·부천 열병합발전소 재입찰 및 매각

1999년만 해도, 공공부문 구조조정·사유화에 저항하는 투쟁이 각 공기업별로 다양한 쟁점을 형성하며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 투쟁은 개별 기업차원의 투쟁을 넘어 전사회적 쟁점으로 확산되지는 못했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전민중의 생존권, 사적 자본으로의 독점과 집적, 해외종속의 심화 등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에 전국적이고 전사회적 투쟁을 통해 저지되어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한 연대의 전선은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 1999년 전력산업 구조조정 정책을 살펴보면서, 공공부문 구조조정·사유화 정책의 본질과 문제점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도록 하자.


효율성과 경쟁논리로 점철된 전력산업 구조조정 정책

전력산업 구조조정은 이미 1970년대부터 제기되었으나, IMF를 계기로 불어닥친 전사회적 구조조정 바람과 맞물리며 급속도로 진척되고 있다. 전력산업 구조조정의 핵심은 국내외 자본에게 팔아치우기 쉽게 전력산업을 조각조각내고, 대대적인 정리해고와 임금, 노동의 유연화를 통해 매각의 인센티브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즉 현재 가동 중인 발전소 및 건설 중인 42개 수·화력 발전소를 5개로 나누고, 원자력은 별도의 1개로 분리하는 것, 2001년까지 본사 30%, 사업소 14.7%로 정리해고를 단행할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이 구조조정의 기본방향은 장·단기로 구분될 수 있다. 단기적 방안으로는 발전부문을 5-6개의 발전회사로 분할하여 경쟁을 도입하고, 분할된 발전회사의 단계적인 민영화를 통해 '효율성'을 증진하며, 발전원가 절감을 이룬다는 것이다. 장기적 방안은 배전부문을 수 개의 배전회사로 나누어 전력 도소매부문에 경쟁을 도입할 것, 송전망을 개방하여 민간업체도 전국적인 송전망을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보장할 것, 이를 통해 공정한 '경쟁조건'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이미 1999년 3월 한전지분 5%의 해외매각(약 7.5억 달러)이 진행되었고 6월 말 안양·부천 열병합발전소 입찰이 실시되었으며 이 입찰에는 역시나 국내외 독점자본의 치열한 아귀다툼이 전개되었다.

1999년 전력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전력산업 구조개편 촉진에 관한 법률제정(안)'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이 특별법은 한전의 분할·매각시 인허가의 승계, 조세특례 등의 내용을 담고있는 것으로, 말그대로 전력산업 구조조정을 가속화시키기 위해 국내외 독점자본에게 던져주는 최대의 떡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발전소 분할계획서에 따라 10월 이사회, 11월 주주총회 의결을 거쳐 '전력산업구조개편 촉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는대로 법인설립 등기를 완료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정부는 전력산업 구조조정 정책의 주요목적으로, 독점체제인 전력산업에 경쟁을 도입하여 전력공급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 장기적으로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지속적으로 보장하는 것, 전력사용에 있어서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를 통해 편익을 증진시키는 것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전력산업과 같은 국가 기간산업이자 국민생활 전반을 책임지는 공적 영역에, 과연 사기업과 같은 '효율성'과 '경쟁' 논리를 들이대는 것이 적합한지에 대해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

물론 공기업·공적 영역은 원활한 자본축적을 위해 탄생되었고, 사적 자본의 축적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온 게 사실이다. 그리하여 사적 자본이 그 공공부문을 새로운 투자처로 지목하고 매력적 투자대상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국가는 선뜻 공공부문을 내줄 수밖에 없다. 이것이 구조조정 사유화정책의 본질이다.

그러나 공공부문이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고 국가의 성격이 친자본적이라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공공부문이라는 국가독점의 형태는 그 자체로 일정하게 '사회화'의 가능성을 내포하며 이윤과 경쟁논리에 치닫는 사적 독점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 민중적 통제의 가능성을 담지하는 공간이다. 물론 이것은 공기업의 민주화와 민중적 통제를 전제로 한다. 특히 현재 한국사회 공공부문이 여전히 보편적 서비스, 공공성이라는 측면에서 제한받고 있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이 공적 영역을 사수하고, 확대·강화해내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민영화, 자유화, 개방화를 기치로 내걸고 공공부문의 사적 점유를 통해 교두보를 확보하고자 하는 지금 시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기에 공기업은 오히려 노동자 민중의 보편적 서비스와 삶의 질 향상, 부의 재분배를 위해 기능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이다. 이러한 '효율성'은 경쟁과 파국으로 치닫는 사적 자본과 시장에서가 아니라, 국가를 통해 통제되고 운영될 때만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전기요금 문제를 보면, 현재의 요금체계는 이윤율을 억제하는 한전의 공적 성격에 기인한다. 초기투자비가 과다하게 소요되며 5-15년에 이르는 건설공기, 투자비 회수가 장기간 소요되는 특성을 지닌 발전소의 경우, 회임기간이 긴 자본을 공적 자본으로 인정하고 이윤율을 억제하는 정책을 펼 수 있는 '소유주'만이 공적 성격을 담지할 수 있다. 전기공급선택권 문제 역시도 1997년 말을 기준으로 한 수지분석을 보면, 15개 사업장 가운데 농어촌지역 등 공급범위가 넓고 부하밀집도가 낮은 9개 사업장은 적자를 내고있다.
수도권, 대도시의 흑자부문이 이를 상충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윤율 높이기에만 급급한 사적 자본이 적자를 내면서도, 농어촌이나 산간벽지에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리라는 생각은 너무나도 순진한 발상이 아닌가? 전력산업 구조조정은 이렇듯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의 측면에서 봤을 때 명백히 반민중적 정책이며, 이미 진척되고 있는 정리해고, 노동강도 강화, 임금제도 유연화와 맞물려 있는 반노동자적 정책인 것이다.


99년 전력산업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자 투쟁, 그 성과와 한계

이런 상황에서 한전이라는, 투쟁의 경험이 전무한 노동조합에서 처음으로 파업과 투쟁을 결의하고 전력관련 6개사(한국중공업, 한국전력기술, 한전기공, 원자력연료, 원자력연구소 등)와 공동투쟁위원회를 구성하여 민주노총·한국노총의 연대전선이 구축되었다. 이는 구조조정 저지 투쟁에 주요한 교두보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전력주체들 중심의 전선확대는 전력산업분할 해외매각반대 범국민대책위로 이어졌다.
전력산업 구조조정에 맞서는 이 전국적 투쟁은 한전매각의 문제점, 나아가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사유화정책의 문제점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대중적 여론은 해외매각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구조조정 일반과 사유화정책에 대한 원칙적 반대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또한 생존권투쟁과 구조조정 저지투쟁이 연관되지 못하면서 정작 투쟁의 주체가 제대로 서지 못했다. 현재의 구조조정 반대투쟁은 생존권 사수투쟁, 고용안정투쟁과 궤를 같이한다. 즉, 생존권 사수투쟁 속에서 구조조정 저지가 가능하며, 구조조정을 저지시켜내는 과정에서 개별 조합원의 고용안정과 노동조건이 보장되는 것이다.

고용안정, 정리해고저지, 연봉제 및 퇴직금누진율 폐지 등 현장의 사안과 구조조정 저지투쟁이 맞물리지 않는다면, 투쟁동력의 형성은 물론이거니와 투쟁과정에서 퇴직금중간정산제에 손들어주고 마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지도력의 부재'와도 연결되며, 주체가 서지 못하는 투쟁은 교섭중심의 투쟁, 정치권 설득중심의 활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보여준다.

2000년 구조조정은 정치권과 자본측의 공세적이고 단일한 '연대'를 통해 진행될 것이다. 이에 맞서기 위해 전력범대위와 전력공투위는 다시금 주체를 정비하고, 그 동안의 전술적 한계와 오류를 분명히 인식하고 극복해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전력공투위·범대위의 건설은, 향후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전체전선으로 확대·강화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IMF이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가장 주요한 축의 하나였음에도, 이에 대항한 투쟁은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고립·분산적 대응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 2000년 공공부문 구조조정·사유화의 일정은 이미 추진되고 있으며 별다른 저항이 형성되고 있지도 못하다. 빠른 시일내에 현재의 전선은 더욱 확대되어야 하며, 공공부문 구조조정·사유화의 문제점을 대중적으로 설득해낼 수 있는 활동력을 복구해내야 한다.



자회사 매각, 공기업의 관료적 폐해에 맞선 한국전력기술노조의 투쟁

한국전력기술은 한국전력의 자회사로서, 현재 한전의 매각이 일정하게 좌초된 시점에서 실적올리기식 매각의 대상이 되고있다. 사측은 지난 해 11월 19일 이사회를 통해 플랜트사업단 매각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총파업 돌입예고 등 강력한 대응으로 인해, 총파업에 돌입하는 1월 20일 노조의 요구대로 "플랜트사업단 매각중지와 구조조정의 노사협의"에 대한 공문을 보내왔다. 노조는 이에 파업을 철회하고 마침내 2월 8일 노사간 합의를 이끌어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측은 2월 9일 모회사인 한국전력공사 최수병 사장의 "3월말까지 플랜트사업단 분리매각" 지시로 인해 노사합의를 뒤엎어버리고, 플랜트사업단 분리매각을 재추진하고 있다. 이에 한전기술노동조합은 한달째 총파업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의 한전기술의 상황에서 국가기간산업의 매각 결정과정의 무책임함, 공기업 경영의 전형적인 관료적 양태를 확인할 수 있다. 모회사의 사장이 자회사의 노사합의를 단 하루만에 파기하게 만든 작태는, 민영화·사유화의 이유랍시고 정부와 자본이 외쳐대는 '공기업의 관료성과 비민주성'의 책임이 바로 그들 스스로에게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다.

공기업의 개혁과 혁신, 민주적 운영은 사유화를 통해 소유권 이전을 하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공기업이라는 공적 영역에 대한 자본의 탐욕을 끊어내고, 정부의 관료적 개입을 절단해냄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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