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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 이렇게 진행됐다.

이소형(조직교육부장), 류미경(정책편집부장) |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7·3 여성행진'이 <사회진보연대>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문화연대>, <노동자의 힘 여성활동가 모임>, <세계화반대여성연대>, <전국학생연대회의> 등 10개 단체의 제안으로 준비되었다.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이라는 이름으로 체계를 갖추고 '2005년 세계 릴레이 여성행진'의 한 부분이 되는 한국 행동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이었다. 이번 세계 릴레이 여성행진은 2003년 1월 3회 세계사회포럼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제안된 후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준비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행동은 훨씬 늦게 제안되어 제대로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준비에 참여한 활동가들은 몇 차례의 간담회와 준비 회의를 통해 세계 릴레이 여성행진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 한국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행진을 통해 주되게 제기할 의제를 모아나갔다. 세계여성행진이 제안한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 제거'라는 보편적인 요구를 바탕으로 하여, 한국의 구체적인 현실을 주되게 발언하기로 했다. '가사와 직장생활의 양립'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여성정책과 더불어 대다수의 여성들이 자본의 위기를 극복할 자원으로 동원되며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극단적 폭력과 성차별 이데올로기가 어느 때보다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 이번 행진의 주요 의제를 구성하는 배경이 되었다. 그리고 주류 여성운동이 '성주류화 전략'을 앞세워 정부의 여성정책에 개입하며 협조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 때, 여성들의 투쟁을 아래로부터 일구어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여성운동을 새롭게 조직하는 것이 이번 여성행진의 중요한 과제였다.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이라는 이름아래 진행된 여러 행동들은 그 토대가 될 것이다.

6월 28일 :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 전국순례단과 전북 여성활동가들의 간담회

순례 첫 날 오후 7시,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 사무실에서 진행된 간담회는 <전북평화인권연대>, <익산 노동자의 집>, <군산 노동자의 집> 여성 활동가, 그리고 취재를 겸하여 참가한 <전북 인터넷 대안신문 참소리> 기자가 함께 했다.
우선 한국사회에서 막 출현한 성노동자운동이 어떻게 긍정적인 성과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 토론했다. 다음으로 이주여성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한 여성 활동가는 성매매로 유입된 이주여성과 공장노동을 하는 이주여성, 그리고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서 살게 된 이주여성의 경우가 각각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자고 했다. 여성들 간의 연대를 강화하고 요구를 집단화하는 실천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이 그 시작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서로 확인하면서 간담회를 마쳤다.

6월 29일: 전북대 앞 거리선전전, 새만금 여성어민 간담회

오후 1시, 전북대 앞 거리선전전
이 날은 전주에서 거리 선전전을 진행하였다. <전북평화인권연대>와 함께 여성행진 의제들을 담은 선전판을 전시하고, 7월 3일 집회에서 사용할 대형 퀼트를 걸어놓고 함께 제작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저녁 8시, 계화도에서

새만금에서 만난 당당한 이름, 여성
전주에서 한 시간 반 남짓 걸려 부안 계화면으로 들어갔다. 계화도 여성어민과의 만남.
여성행진은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의 보편적인 요구는 무엇인가?"를 밝혀내기 위해 여성노동자, 여성농민, 그리고 이 땅 구석구석에서 투쟁하고 있는 여성들을 만나고자 했다. 이 날은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투쟁을 처음부터 이끌어 왔던 계화도 여성어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갯벌이 파괴된다는 것은 그녀들의 삶이 송두리째 파괴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남편 혹은 아버지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면, 여성들은 갯벌에 나갔다. 그곳에서 그녀들은 맨손으로 노동하며 자신의 삶의 터전을 꾸려왔다. 갯벌은 그녀들의 일터였고, 살림이었다. 남성들은 어선이라는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고 수확량에 따라 보상 기준을 책정할 수 있지만, 갯벌에 나가 생합을 따서 생계를 꾸려왔던 여성들은 공식적인 기록이 없기 때문에 보상대상에서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들의 삶과 노동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그 드넓은 생명의 공간은 그저 쓸모없는, 그래서 빨리 '개발'되어야 하는 땅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
바다가 허락하는 한, 넉넉하진 않지만 충분히 먹고 살 만큼의 생합을 얻을 수 있었고, 온전한 자신의 노동을 통해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그녀들… 하지만 그 노동과 지혜를 인식하지 못하는 신자유주의 개발논리는 그녀들에게 다시 맨손으로 가난해지라고 말한다. 계화면 하리 추귀례 부녀회장님은 2003년 4공구가 막히기 바로 직전, 어린 생합이 이제 막 생명을 움틔우기 시작했었던 그 때, 그리고 기어코 4공구가 막혀 6개월이 지나 바다 색깔이 죽음의 색으로 변해버렸던 그 때, 그 아프고 저렸던 심정을 길게 읊조렸다.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투쟁을 이토록 끈질기게 이끌고 있는 것은 어떠한 전문 환경운동가의 통계자료가 아니라, 바로 오랜 삶으로부터 배운 여성어민들의 노동과 지혜이다. 때문에 그녀들은 지금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당당한 주체, 여성이다.
계화도에서 투쟁하고 있는 그녀들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노동하며 살고 싶다는 다른 모든 여성들의 바람과도 동일한 그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또한 그녀들이 바다로부터 배운 자연과 공존하는 인간의 삶의 지혜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한, 새만금 투쟁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6월 30일 : 전남대학교 선전전, 광주지역 활동가 간담회

오후 3시, 전남대학교 학생회관 앞 선전전

금남로 삼복서점 앞에서 선전전을 하려고 했지만, 강한 비바람 때문에 전남대학교로 장소를 옮겼다. 광주 민중행동, 광주 인권운동센터, 전남대 학생들과 함께 선전전을 진행하는 동안, 많은 전남대 학생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여성의 권리를 적어 붙여 퀼트를 완성해갔다.

오후 7시: 광주지역 활동가들과 간담회 진행

순례단은 한국에서 준비하고 있는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의 결성 취지와 주요의제를 광주 동지들에게 전달하였고 전국 순례단 활동을 소개하였다. 이어서 두 가지 과제를 놓고 토론을 진행했다. 첫 번째는 성매매와 성노동자의 노동권에 관한 문제였다. 성매매 여성들의 삶의 권리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지만, 이를 '성노동'이라고 규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쟁점이 제기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과 노동권의 의미, 특히 여성의 노동권의 의미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은 자본에 의해 구획되어 있다는 점, 노동권을 제기하는 것은 이러한 자본의 구획 안에 있는 노동을 재구성하여 처음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 바로 이러한 점에서 '성노동'이라는 개념은 여성노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의 방식을 시사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두 번째 토론주제는 기존의 여성운동에 대한 평가와 새로운 여성운동의 전망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 주제는 충분히 시간을 두고 토론하지 못했지만 광주지역에서 새로운 여성운동의 흐름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토론회, "성노동자운동, 가능한가?!"
오후 3시부터 고려대학교에서 위의 제목으로 토론회를 진행했다. 29일 자신이 성노동자임을 선언하며 인간이자, 여성이자,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한 성노동자들이 <전국성노동자연대>라는 조직을 출범시키고 난 직후라 많은 사람들이 이 토론회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다. 작년 말 성매매특별법이 재정되고 집창촌 여성들이 이 법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점을 말하며 단식농성을 진행하면서, 성매매특별법을 둘러싼 논쟁이 촉발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논쟁은 잠시 가라앉았다. 이번 토론회는 현 시점에서 성매매가 어떻게 다루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다시 촉발되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이론> 편집주간 고정갑희 교수, <세계화반대여성연대> 엄혜진 활동가, <사회진보연대> 김정은 여성부장, <전국성노동자연대> 정희주 부대표가 발제자로 나섰다. 발제자들은 성매매특별법으로 대두되는 '금지주의'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낳은 여성의 빈곤화와 성의 상품화라는 성매매의 구조적 원인을 가리고, 성매매 여성을 범죄자의 신분에 두어 폭력에 노출되도록 함을 지적했다. 따라서 성매매를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성매매 여성들을 '성노동자'로 인정하고, 스스로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성매매를 법으로 다루지 않는 '비범죄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한 성매매는 그 원인이 되는 자본주의, 가부장제, 성의 상품화 등 사회구조적인 원인이 제거되는 가운데 궁극적으로 사멸될 것이므로, 이 운동은 여성의 육체와 성적이미지를 스스로 통제할 권리, 여성의 노동권을 쟁취하는 투쟁과 연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7월 1일: 대구지역 여성단체, 부산 한솔 학습지 노조 간담회

오후 3시, 대구지역 여성단체 간담회
대구지역 간담회는 여성해방연대를 비롯한 몇몇 단체와 개인이 함께 참석했다. 대구지역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여성단체들이 함께 안정적인 연대의 틀을 구축하고 있으며 비정규직 권리 찾기 캠페인과 같은 공동연대사업의 경험을 많이 축적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 단체들이 모두 참여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지만, 여성행진의 주요 의제인 여성들의 노동권, 성노동, 주류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 등을 함께 토론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여성행진의 주요의제에 '여성의 정치세력화'라는 부분이 빠져있음이 지적되기도 하였다.
6월 29일 출범한 전국성노동자연대를 둘러싸고, 성노동자 운동이 어떠한 전망을 가지고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중요하게 토론되었다. 성매매를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성의 상품화'의 한 부분이라고 인식한다면 성폭력에 대한 여성운동의 대응방식 역시 전면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음을 확인했다. 주어진 시간이 짧아 아쉽게도 토론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지만 여성행진이 아직까지 정리하지 못한 범위의 중요한 쟁점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소중한 자리였다.

저녁 9시, 부산 한솔 학습지 노조 간담회

한솔 학습지노조는 현재 부산지역 일반노조에 소속되어 있으며 특수고용직이라는 이름의 비정규직으로 사측의 다양한 방식의 착취와 억압에 투쟁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솔교육 동부지사는 2005년 1월부터 회원들의 회비를 인상하고 교사들에게 지급되는 수수료를 이전 수수료로 맞추기 위해 일괄적으로 한글군 5~10% 영어군 9~13% (평균 20만원) 까지 낮추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 이에 한솔교육 학습지 교사들은 2005년 1월 22일 노동조합(203명 중 177명 가입)을 결성했다. 2월부터 총 11차례의 교섭이 진행되었으나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 2005년 4월 25일 조정이 결렬되면서 쟁의권을 갖게 되었는데, 2005년 5월 15일 사측은 단체행동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2005년 7월 28일, 이에 대한 판결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학습지 교사는 대부분 여성들로 구성되어있다. 학습지 자본은 이직률이 높은 여성들의 조건을 자신의 이해에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불안정한 일자리와 부당한 착취를 정당화하여 왔다. 그러나 법이 규정하는 노동자성 조차도 인정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학습지 노동자들은 어떠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한솔 학습지 노조의 투쟁 상황과 여성 특수고용직이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들을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영, 유아 교육과정 등 보육과 유사한 노동자체가 여성화되어가는 과정, 이 때문에 학습지 노동자들의 노동은 가치 절하된 여성노동으로 치부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수고용직의 투쟁의 과정에서도 확연히 드러나는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의 차별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정형화된 생산가치 측정도 불가능한 영, 유아 교육은 단지 가정에서 여성이 해야 하는 역할로 인식되어, 가치 있는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솔노조의 동지들은 이렇듯 자본이 여성의 노동을 악랄하게 이용하고 있는 조건 속에서 여성학습지 교사들이 스스로 여성노동자라는 주체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노동을 "다만 한시적이고 부차적인 노동"이라고 안주해버리는 인식을 깨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우리는 학습지 여성노동자들이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자신의 온전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여성운동과 노동운동, 이 양자가 상호 결합하고 상호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 이를 위해 각각의 처한 구체적인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또한 모두 같을 수밖에 없는 여성농민, 새만금 여성어민, 그리고 여성노동자들이 빈곤과 폭력에 맞선 투쟁에서 연대를 강화해야 함을 확인했다.

7월 1일, 토론회, "세계여성행진을 통해서 본 세계화반대 국제연대 투쟁의 방향과 전망.
이 날 1시부터 성균관대에서 진행된 토론회에는 세계여성행진 아시아지역 코디네이터인 말레아 무녜스가 참석했다. 토론회에서는 1995년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빵과 장미를 위한 행진"부터 올해 릴레이 세계 여성행진까지, 세계여성행진의 활동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는 말레아 무녜스의 강연과 성주류화를 중심으로 하는 여성운동의 국제연대운동에 대해 평가하고, 여성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는 토론을 진행했다. 1995년 북경여성대회에서 채택된 '성주류화' 전략은 이후 전 세계 여성운동의 주요 목표가 되었는데, 이는 성평등을 '제도화'하고 여성운동의 급진성을 탈각시키는 역할을 했음이 지적되었다. 한국에서도 여성부가 설립되어 '가사와 직장생활의 양립'을 기조로 하는 여성정책이 시행된 이후, 소위 '여성 직종'이라 불리는 보살핌 노동 형태의 불안정한 노동이 확산되어 여성의 빈곤화는 가속했다. 뿐만 아니라 출산, 육아 등에 대한 여성의 부담이 더욱 커지게 되어 여성은 이중적인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성주류화'를 중심적인 전략으로 삼는 여성운동은 이러한 여성 대다수의 현실에 눈감으며, '호주제 폐지', '성매매특별법 제정' 등의 법·제도적인 성과를 강조하면서 신자유주의 개혁에 조응하고 있음이 지적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여성운동이 강화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런 의미에서 세계여성행진이 '아래로부터의 여성 연대'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7·3 여성행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브라질에서 출발한 '인류를 위한 세계 여성헌장'과 '연대 퀼트'가 7월 3일 한국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 날 마로니에 공원에는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은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에 저항하는 한국의 여성들이 함께 모였다. 자신의 요구를 적은 피켓을 손에 든 여성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니 장마 비도 멎었다. 10년 동안 정든 일터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 경찰 고용직 공무원 노동자들, 장시간 고된 노동을 하고도 법정 최저임금을 최고임금으로 받으며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는 청소용역 노동자들, 인종차별 · 성차별로 인해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낮은 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이주노동자들, 생존의 벼랑 끝에서 선택한 직업 때문에 사회적 낙인을 얻고 배재당한 성노동자들, 정부의 근로연계복지 정책으로 더욱 가난해져 가는 빈민들…. 모두가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여 자신의 요구를 외치며 서로에게 연대를 호소하고 또 다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노동을 하고 충분한 소득을 보장받으며 인간답게 살 권리', '여성이라는 이유로 억압과 폭력에 시달리지 않을 권리',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할 권리',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조직화할 권리'가 여성의 권리임을 선언했다. 구호를 외치고 노래하며 행진하는 동안 여성에 대한 착취와 폭력을 가중하는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고, 스스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여성의 힘을 모아 갔다. 브라질에서, 남미 전역에서, 미국과 캐나다에서, 유럽 곳곳과 호주에서, 그리고 일본에서 외채와 자유무역협정, 군사주의, 빈곤, 폭력에 맞서 행진을 진행하고 있는 세계의 여성들과 한국의 여성들이 이렇게 만났다.

7·3 여성행진은 시작에 불과하다.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은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투쟁으로 여성운동의 자율성을 실현하는 데 있어 단초를 제공했다. 이를 발판으로 불안정 노동의 확산, 성 역할의 고착화, 출산과 양육에 대한 여성의 부담 강화, 빈곤의 여성화, 폭력의 증가에 대항하는 다양한 여성들의 투쟁이 만나고 서로간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활동이 확산되기를 희망한다.

주제어
여성 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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