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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5.7/8.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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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복지개혁의 본질과 전망

누가 부자이고 누가 빈자인가?

이진숙 | 인천지부 집행위원
1. 복지의 권리와 노동의 의무?

빈곤해결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어느 때보다 활발하고 복지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관심 역시 매우 높다. 정부가 작년에 발표한 '일을 통한 빈곤탈출 정책'과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은 빈곤에 대한 노무현정부 집권기간의 대응이 응축된 결과물로서 그에 대한 논쟁 역시 분분하다. 논쟁은 세부정책 차원에서는 자활제도의 확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의 연계 강화, 사회적 일자리 창출, 근로소득보전세제(EITC)도입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상호연관성 때문에 노동시장 차별, 최저임금제도로까지 이어진다. 특히 복지 확대를 목표로 각종 제도의 보완과 개선을 논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노동시장 참여 의무를 강요한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저성장 시대 복지확대의 한계와 노동시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빈곤은 악순환될 뿐이라며 이른바 '성장과 분배의 조화'로 응수하고 있다. 이러한 논쟁은 연원을 따지자면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생산적 복지'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이 분분했는데, 노무현 정부의 '참여복지'에 이르러 그 실체는 명확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전후 성장기를 배경으로 축적된 서구 복지체계의 해체와 재조직을 단행했는데, 주지하다시피 방향성은 노동과 복지의 연계를 강화하는 이른바 노동연계복지(workfare)였다. 노동연계복지는 해석이나 용어사용이 매우 다양하지만, 노동시장 참여에 대한 의무, 즉 직업훈련, 구직 등과 같은 일련의 활동을 복지수급의 조건으로 연계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분명한 경향성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정책방향은 1960년대 경 미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1980년대를 경과하면서 이른바 복지선진국으로 알려진 유럽대륙에서도 수용되었고, 세계적으로 확대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이를 적극적으로 내재화한다.
1960~1970년대 유럽대륙의 복지국가 황금기가 코포라티즘에 기반을 두었다는 점에서 복지와 노동의 연계는 사실 복지국가에 이미 내재된 구조적 요소였다. 또한 실제로 대다수 서구 국가에서 현대적 의미의 복지는 '남성' '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 대상으로 삼아 형성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복지의 권리'를 '노동의 의무'에 종속시킨다는 노동연계복지의 통상적인 쟁점은 실제로는 극빈층을 대상으로 하는 소득지원 제도들의 변화에 적용된다 (예를 들어보면 한국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수급의 조건으로 자활사업 참여를 의무로 내걸었다). 그런데 노동을 하면서도 기본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든, 이른바 근로빈곤층의 문제는 이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낳는다. 이들은 복지수급과 노동시장을 오가고, 임금에 더해 각종 국가 보조금이나 가족 등 공동체 내부의 사적인 소득이전을 통해, 또는 카드 빚이나 대출 등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 국가의 보조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는 극빈층과 저임금 노동자의 경계가 사실상 무의미해지고 있다. 왜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인가?
이런 현상이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국가들에서 극단적인 소득격차, 광범위한 실업인구의 형성은 일반적인 현상이며, 이는 오히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서 더 전형적이다. 또한 자본의 세계적 이동이 민족국가 간 부와 생산의 위계질서를 강화하는 가운데, 제3세계 국가들에서의 소득(부)의 격차와 극빈층의 형성은 중심부, 반주변부 국가들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에 달한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의 빈곤에 접근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유의미할 것이다. 첫째, 실업률은 감소하는데 빈곤인구는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둘째, 세계은행, IMF, OECD 등 신자유주의 정책의 집행기관으로 알려진 국제기구들이 1990년대 이후 생계유지를 위한 기본소득 보장에 관심을 두고 사회정책 계발에 주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셋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시대에 빈곤층은 과연 누구인가?
결국 질문의 핵심은 금융 세계화 속에서 세계의 부와 소득이 어떻게 할당되고 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빈곤의 원인이 무엇인지, 빈곤층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자본의 위기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금융적 확장이 헤게모니 국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중심부 국가로의 거대한 부의 이전을 낳고 있으며, 금융팽창의 수혜로부터 배제된 세계 다수의 인민들이 광범위한 빈곤층과 산업예비군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은 극도의 빈곤인구에 대해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한편 실업인구에 대한 관리정책을 구사할 수밖에 없는데, 복지는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회정책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따라서 빈곤에 맞서는 사회운동의 대응은 복지의 확대라는 주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금융세계화가 야기하는 빈부격차의 극단화에 대한 발본적인 문제제기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2. 20세기 복지의 형성: 선택된 세계인구의 인간다운 삶

19세기 이후 세계적 차원에서 특히 중심부 국가들 내에서 복지를 증진시키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던 것은 분명하고 이를 통칭 복지국가의 발전으로 부른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복지의 증진이라는 수사는 냉전 이데올로기 논쟁의 핵심이기도 했다. 세계대전 이후 중심부 경제가 이룩한 경제성장의 토대 위에서 완전고용이라는 목표가 세워졌고 복지의 확대가 가능해졌다. 20세기 초 노동자계급의 성장과 세계대전은 국가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반파시즘 전쟁에 참여하는 대가로 노동자운동은 완전고용과 복지의 확대, 빈곤경감을 위한 조치로서 사회안전망의 구축을 요구하였으며, 전후 재건 과정에서 일정한 복지의 확대, 특히 빈곤경감을 위한 조치는 불가피했다. 이 시기 중심부국가 대부분은 노령, 빈곤, 실업에 대응하는 안전망의 구축, 대중교육의 확대, 국가적 의료서비스의 확대와 같은 유사한 사회정책들을 채택하였다. (구 사회주의 국가들을 포함한) 반주변부 국가들은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일련의 복지제도들을 도입하였다. 제3세계에서는 발전이라는 개념의 일부로서 복지가 수입되었는데, 제3세계 복지는 발전의 자원으로서의 인적자본(human capital), 인간개발을 중시하였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중반기까지 시기는 복지국가의 황금기이자 동시에 복지국가의 위기가 시작된 시점이다. 많은 중심부국가들의 복지지출 확대는 인구노령화에 따른 연금과 의료 비용의 상승, 경기침체로 인한 실업급여의 확대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침체가 심화하면서 복지지출은 점차 삭감되고 많은 부분이 시장으로 넘겨졌고 종교, 자선조직 등이 보완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특히 사회보험 부류처럼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프로그램에 비해 공공주택, 실업급여, 공공부조 등과 같이 빈곤층에 대한 프로그램들이 축소의 대상이 되었다. 중심부 국가들 대부분에서 신보수주의 세력들이 득세하고 이른바 '복지 반격'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복지에 대한 공격이 시작 된 후 주된 관심사는 실업과 빈곤이었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실업률이 대부분의 중심부 국가들에서 10%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빈곤층의 비율은 15% 정도로, 이는 1970년대 중반에 비해 50%가량이 증가한 수치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연계복지가 복지정책의 기조로 전면화했다. 미국의 경우 유럽보다 앞선 1960년대 이미 이러한 정책을 도입하였으며, 복지의 삭감도 유럽에 비해 매우 혹독했다. 미국은 이와 같은 복지개혁을 통해 실업률이 4~5% 수준으로 하락했지만, 유럽의 경우 여전히 5~10% 수준을 오갔다 (미국의 실업률이 유럽에 비해 미국의 상대적으로 낮은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래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한편 중심부 국가들이 복지의 부침을 겪는 사이 반주변부와 주변부 국가들의 복지는 어떠했는가? 주변부 국가 대부분에서 질병을 관리할 만한 수준의 의료, 문맹률을 일정하게 떨어뜨릴 만한 초등교육이 대중적으로 확대되는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발전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중심부 국가들이 제공한 식량과 생산기술은 지배계급의 부패와 중심산업인 농업이 국제시장에 포섭되는 결과만을 낳았다. 그로 인해 빈곤은 더욱 심화했을 뿐 아니라 세계경제에 종속되었다.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 있었던 반주변부 국가들의 경우 소득 격차는 더 심화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세계대전 이후 중심부 국가들에서의 보편적 수준의 복지확대는 세계적 수준에서의 경제 재편, 잉여의 재할당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 즉 새롭게 등장한 헤게모니국가로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경제 재편이 경제성장을 위해 시장을 재창출하고 생산성, 소비, 수요 수준을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복지가 제도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계경제로 통합 과정에서 주변부 국가의 잉여는 중심부 국가로 이전되었고, 중심부 국가 노동자들은 코포라티즘 체제를 통해 자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대가로 복지를 제공받았다. 물론 이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결과물임은 분명한데, 지배계급이 노동자계급에게 일정한 소득을 양보하도록 함으로써 지배계급의 부와 소득은 일정한 침식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이후 복지에 대한 공격은 지배계급이 억제된 권력과 권한을 회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며, 따라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이 필수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중심부 국가 내에서의 복지가 누구에게나 그 혜택을 주었던 것도 아니었으며, 특히 유색인종, 이주자, 여성은 배제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1) 복지국가가 성장하던 시기 인종주의는 더욱 강화되었고, 남성의 임금을 주 소득원으로 하는 임금모델이 정착되었다는 게 단적인 증거다. 또한 일시적으로 경기가 침체되고 일자리가 부족한 시기에 이주자와 여성들은 일차적 공격이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최종적인 질문을 다음과 같이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복지국가의 형성이 불평등을 감소시켰는가? 즉 복지국가의 해체가 실업과 빈곤을 발생시킨다는 즉각적인 반응은 타당한가?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세계경제가 성장 일로에 있던 시기 이전에, 즉 복지가 확대되던 시기에 이미 증대되고 있었다. 복지국가의 확대 속에 오히려 이러한 사실은 은폐되었고, 복지의 확대는 중심부 국가의 일부 선택된 인구에게만 혜택을 주었다. 세계경제의 침체 속에서 나타난 복지국가의 후퇴는 이러한 세계 인민들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3. 자본의 금융적 재편: 부의 거대한 집중과 빈곤의 심화

1980년대 이후의 금융화를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등장은 장기적 경기침체에 대한 자본의 구체적 반응이다. 전통적인 경기활성화 정책이 불가능해진 조건에서 자본은 이윤창출을 위해 금융화와 해외투자를 공격적으로 진행했다. 이를 위해 국제적, 민족국가 차원의 장애요소를 제거하는 데 주력하였고, IMF, WTO, 세계은행 등과 같은 국제기구들이 금융자본의 역할을 대행하는 준국가기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자본의 금융적 확장에 조응하는 형태로 노동시장 재편을 비롯해 각종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사회정책 전반의 개조를 동반한다. 중심부국가의 경우 특히 노동의 유연화와 복지의 해체를 통해 이중삼중의 이득을 얻는다. 노동비용은 퇴직금, 소송 등에 들어가는 해고비용의 절감, 임금억제,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사회보장비용의 축소 등 다양한 차원에서 감축된다. 광범위한 불안정 노동층과 실업인구의 존재는 그 자체로서 노동자들의 저항을 잠재우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이러한 조건 위에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은 매우 손쉽게 이루어지며, 법·제도적 차원으로 수렴된다. 주변부 국가들의 노동자는 중심부 국가에 비해 고용과 생계유지가 더욱 어려워지는 상황에 처하게 되며 광범위한 이주노동이 발생한다. 그 결과 실업인구는 투자가 이루어지는 지역, 특히 중심부 국가로 집중된다.
금융적 재편으로 인한 생산부문의 감축은 다소 복잡한 문제인데, 그 수준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생산성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등의 쟁점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주변부 국가로의 생산부문의 이동이 자유로워졌고 중심부 국가의 실업률이 증대되고 산업예비군이 중심부로 집중되는 경향이 강화된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 이후 제조업부분의 고용 감축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데, 미국에서는 2000년 이후 약 20%정도가 감축되었으며, 이른바 선진국들 전반에서 1995년에서 2002년 사이 약 11%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한편 자본의 금융적 재편으로 금융투자와 법인기업을 통한 해외투자를 주도하는 몇몇 국가, 특히 미국으로 세계의 부, 즉 잉여는 집중된다. 자본 이동의 중심에는 미국이 있다. 거대 금융기업들이 존재하는 미국은 다른 국가의 금융기관들에게 이익을 배당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이것이 반복되면서 금융자본이 미국으로 집중되는 현상은 더욱 심화한다. 이러한 금융투자로 인한 미국의 이윤은 꾸준히 증가하여 2000년 이후 해외직접투자를 통해 얻는 이윤은 전체 국내 이윤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으며, 전체 국내 이윤에서 총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대 이후 급증하여 현재 80% 수준에 이르고 있다. 수혜가 극소수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는 금융투자의 속성상 이러한 금융자본의 확대가 미국 내에서 또한 세계적 차원에서 소득의 극단적 위계질서를 만들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이와 같이 노동유연화의 증대와 광범위한 산업예비군의 존재는 임금억제, 노동강도의 강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본의 이윤율 제고에 기여한다. 반면 노동자계급은 소득의 절대적 감소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 자체만으로도 빈곤의 심화가 분명히 드러난다. 반면 자본의 잉여는 중심부국가의 극소수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 금융화의 메커니즘이다. 따라서 성장의 제고와 분배의 개선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약속이었으며, 민족국가 간, 민족국가 내부의 다양한 집단들의 분할과 배제는 필연적인 결과다. 그러므로 이러한 배제된 집단들에게 기본수준의 소득보장을 위한 사회안전망의 구축과 사회통합 정책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주요한 요소가 된다. 하지만 그러한 사회정책은 배제된 집단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데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정책개혁의 중요한 전제다. 국제경제기구들이 기본소득 보장에 대해 관심을 두고 많은 국가들의 복지개혁이 노동연계복지의 강화를 추구하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4. 미국과 영국의 복지개혁: 신자유주의 정책의 동조화2)

복지국가 형성의 역사가 매우 상이한 미국과 영국의 복지개혁은 오늘날 무척이나 닮은꼴이다. 유럽 전역으로 복지의 확대를 주도한 베버리지 보고서를 작성하고 노동조합의 지지를 받는 정당을 일찌감치 출범시킨 영국은 유럽 국가 대부분에서 보편적인 수준의 복지체제를 구축하였다. 그러나 노동당, 보수당의 양당구조에서 복지의 확대는 항상 역전 가능했고, 20세기 내내 미국이나 독일 등에 비해 산업화의 전망이 불분명했던 영국 경제는 복지를 우선순위로 두지 않았다. 세계대전 시기까지 영국의 각 정부들이 복지확대의 속도를 정했다면, 노동에 대한 공격을 본격화한 대처의 집권은 복지해체의 속도를 정했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은 중심부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노동자계급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인 복지제도를 발달시키지 않았다. 미국의 복지는 전쟁참여자를 위한 퇴역군인 연금, 장애인·노인·한 부모 가족 여성에 대한 소득보조, 의료보호제도 등 특정 인구집단을 대상을 삼는 범주적 공공부조가 중심이었다. 특히 한 부모 가족 여성에 대한 공공부조 제도(AFDC)는 예산규모가 가장 컸다. AFDC는 복지수급 권리에 대한 지난한 논쟁의 원천이었고, 다른 한편 가족주의를 유지하는 데도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미국에서 빈곤에 대응하는 국가(연방정부) 차원의 사회정책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1960년대 이후부터 복지제도의 변화에서 노동연계를 추구하는 경향성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1996년 '개인책임 및 근로기회조정법'(PRWOR)을 제정하고 AFDC를 한시적인 빈곤가족 원조 제도(TANF)로 전환한 것은 신자유주의 복지개혁의 일정한 완성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몇 가지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복지제도의 가장 중심이었던 AFDC의 폐지를 통해 노동의무를 강제했다는 점에서 복지수급 자격이 무엇인가(일하는 자), 국가의 책임은 무엇인가(연방정부에서 지방정부로의 권한 이양) 등에 대한 단호한 기준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지개혁이 진행되는 가운데에도 저소득자에게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인 역소득세(NIT), 근로소득보전세제(EITC)와 같이 조세제도 차원에서 저임금 노동자 가족에게 소득을 보조하는 제도가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대처정부 이후 영국에서는 복지예산의 축소, 민영화가 가속화했다. 대표적인 예로써 가장 보편적인 형태로 설계되었던 의료보험(NHS)은 각종 민간 의료보험들이 등장하면서 빈민들의 의료보호망으로 전락하였다. 1997년 집권한 블레어 신노동당 정부는 실업자들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구사했다. 노동가족세액보존제도(WFTC)와 같은 각종 인센티브 제공을 확대하고, 실업자 이외의 장애인, 한 부모 가족 여성 등에게 노동의무를 복지수급의 조건으로 강요함으로써 보수당 정부에 비해 더욱 광범위한 실업자층을 형성했다.
한편 경기침체와 금융적 재편이 본격화되기 훨씬 이전인 1950년대 경부터 미국의 노동시장은 충분한 유연성을 지니고 있었다. 일례로 1955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 제조업분야의 고용증대는 고작 10%에 불과했고, 반면 같은 기간 생산성의 증가는 400%에 이른다. 20세기 후반의 금융화, 서비스산업의 팽창은 임금압박 속에서 더욱 유연한 노동력을 필요로 했으며, AFDC의 폐지, 복지수급 기간 제한을 비롯한 일련의 복지개혁을 통해 수백만 명의 한 부모 가족 여성들과 실업자들을 대규모 산업예비군 저수지에 추가했다. 이를 통해 광범위한 산업예비군이 형성되었다. 실업자, 불안정노동자, 빈민 등은 산업예비군에 모두 포함되지만, 장기실업자를 제외한 이들은 국가의 '공식' 실업률에 포함되지 않는다.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미국 실업률의 공공연한 비밀은 바로 이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복지개혁은 몇 가지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첫 번째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이다. 대처 정부 시절 실업자가 최대 300만 명에 이르는 상황에서의 구조조정, 다섯 번에 걸친 노동법 개정(1990년 노동조합의 클로즈드샵 완전폐지, 2차 쟁의행위 불법화) 등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은 단호했다. 레이건 행정부가 항공관제사 노동자의 파업에 강경하게 대응한 후 노동관계법(NLRA)을 제정하여 노동자들의 저항과 파업을 원천 봉쇄한 것은 매우 가까운 예다. 둘째, 실업자들에 대한 공공부조, 실업급여를 삭감하고 EITC(미국), WFTC(영국) 등과 같은 노동인센티브를 강화하며 노동의무를 강제할 때 한 부모 가족 여성, 장애인, 청소년 등을 예외로 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세 번째로 정당들 간 복지정책의 차이가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블레어의 신노동당은 정확히 대처의 연장선에 있다. 미국에서 1996년 PRWOR 제정할 때 공화당과 민주당의 이해는 일치했다. AFDC의 폐지가 가난한 여성들에 대한 공격이라는 사회적 비난 앞에서 평소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호명했던 민주당의 여성 상·하원 의원들은 단 한 명도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클린턴이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제도를 끝내겠다"고 말한 연설은 매우 상징적이다.
매우 상이한 복지형성의 역사, 토양을 지닌 미국과 영국의 유사성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사실 이러한 유사성은 비단 영국과 미국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미국과는 전혀 다른, 오히려 복지가 낙후한 미국과 상반되는 선진적인 사례로 취급되었던 유럽국가들도 아직 초보적 단계지만 미국 복지개혁과 수렴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이 헤게모니 국가, 중심부 국가의 정책들을 모든 나라들이 따라야 할 규범과 기준으로 제시하고 각종 국제기구들이 이를 강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이후의 미국과 영국의 복지개혁은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한편 우리는 신자유주의 복지개혁의 핵심으로 제안되는 노동연계복지를 통해 복지가 사회보장이 아닌 일종의 노동력에 대한 투자를 위한 사회정책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노동유연화를 확대하고 광범위한 산업예비군을 관리하기 위한 하나의 사회정책으로 복지가 기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전통적으로 다루어진 노동의 의무와 복지의 권리 간 관계의 역전이라는 쟁점보다 더 근본적이다.

5. 생산적 복지에서 참여복지로: 노무현 정부의 복지개혁

소위 사회 양극화 문제에 대해 노무현 정부가 취하고 있는 사뭇 비장한 태도는 과장처럼 보이지 않는다. 실업률, 빈곤률, 비정규직 비율, 임금(소득) 격차 등의 각종 지표는 노무현 정부 집권 3년 동안 줄곧 위로만 달음질쳤다. 근로빈곤층, 신빈곤, 체감실업률 등이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새로 등장한 용어와 지표들이다. 정부정책에 각별히 관심을 두지 않더라도 현실을 환기할 수 있는 사건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끊이지 않는 생계형 범죄와 자살, 재활용에 가까운 급식 도시락, 세금 장기미납으로 인한 단전·단수, 급기야는 촛불화재로 목숨을 잃은 청소년 등 생존의 위협은 일상 깊숙이 들어앉아 있다.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을 강제하는 대표적 국제기구로 알려진 IMF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한국정부에 사회안전망의 확대를 권고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이는 한국 복지의 낙후성을 역설한다는 논리에 따라 복지에 있어서 만큼은 '위기가 기회'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IMF 외환위기와 함께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본격화해야 할 위기관리 정부였다는 점에서 생산적 복지의 관리주의적 성격은 명확했다. 생산적 복지는 급증한 빈곤과 실업에 대한 대응이라는 일차적 과제, 즉 죽지 않을 만큼의 사회안전망의 확충을 통해 정책개혁의 충격을 완충하는 장치를 구축하고 동시에 정책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복지개혁의 이데올로기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내놓은 '제1차 사회보장 장기발전계획'을 통해 이러한 방향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김대중정부의 계획안은 가족 해체, 대량실업, 소득분배의 악화에 대한 대응을 중심 기조로 삼고, '국민복지 기본선'의 보장과 '생산적 복지'를 기본 이념으로 제시한다. 이에 따라 사회보험 적용확대를 통해 1차적 사회안전망을 완비하며, 이로부터 배제되는 계층에 대해서는 공공부조를 확대하는 방향을 지향하되, 생산적 복지의 이념에 따라 자활사업 등을 통해 노동능력자에 대한 노동의무를 강화하겠다는 정책계획을 밝히고 있다. 건강보험 통합, 고용보험 확대적용, 국민연금 확대 등 사회보험의 개혁이 추진되었고,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의 시행, 자활사업의 확대 등 일련의 정책들이 추진되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말기에 접어들면서 실업률은 다소 완화되는 가운데 빈곤률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했다. 노동의 불안정화의 심화에 따른 이른바 일하는 빈곤층, 혹은 차상위 계층의 빈곤문제가 가시화된 것이다.
이 시점에 집권한 노무현정부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차원의 문제에 중심을 두었다. 지속 가능한 위기관리를 위한 성장동력의 창출, 김대중 정부 당시에 더욱 심화한 사회적 배제를 관리하기 위한 사회통합 정책, 그리고 이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통치의 안정성을 제고하는 것. 여기서 노무현 정부의 '참여복지'는 배제된 자들을 관리하기 위한 사회통합 정책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안정성을 재구축하기 위해 NGO와 같은 민간조직들을 동원하고 서비스 제공을 위한 전달벨트 또는 매개자로 재조직하는 역할을 가진다.3) 따라서 '참여복지 5개년 계획'에도 반영되어 있듯이 참여복지라는 타이틀로 제시되는 '참여복지 공동체', (생산적 복지에 비해 상대적 의미에서의) '보편적 복지'의 제공은 노무현 정부에게 별 대안이 없는 선택지라 할 수 있다.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과 '일을 통한 빈곤탈출'을 살펴보면 노무현 정부의 빈곤에 대한 대응책은 몇 가지 요소들을 핵심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노동자 일반의 임금상승은 억제되는 가운데 최저임금, 최저생계비에 대한 관심은 증대한다는 점. 둘째, 여성인력 활용방안, 사회적 일자리 창출 방안 등 저임금의 고용창출전략이 적극적으로 활용된다는 점. 셋째, 공공부조 차원의 지원과 다양한 소득보조가 동시에 강조·확대되고 있다는 점. 넷째 각각의 제도들이 낳는 효과의 상호관계를 민감하게 비교한다는 점. 넷쩨, 이런 가운데서도 공공부조 정책을 어쨌거나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는 점.
특히 노무현정부의 빈곤정책에서 여성정책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성인력 활용과 출산장려, 가족정책의 개혁으로 압축되는 여성정책은 노령화, 가계소득의 감소에 대한 대응으로 일종의 '사회안전망'으로서 가족의 기능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여성들 역시 저임금 노동시장의 준비된 예비인력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이다. 이로써 여성들은 고갈되지 않는 사회적 자원으로, 자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최후로 완충지대로서 이중삼중의 부담을 강요받는다.
또는 부동산 가격안정 정책에 대한 정부의 '집착'은 빈곤이 단지 일시적 소득격차 차원의 문제가 아님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정부는 금리생활자들의 천문학적인 소득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이들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일반적 규범을 주도한다는 사실은 앞서 이미 살펴보았다.

6. 나가며

오늘날 빈곤과 실업의 확대는 엄밀하게 말해, 중간계층의 몰락이 아니며 금융 소득자로의 부의 거대한 집중의 결이다. 빈곤의 심화는 거꾸로 말해 자본의 금융적 확장이 그만큼 심화했음을 의미한다. 자본의 금융화로 인한 부의 양극화, 고용의 감소, 비용절감을 위한 불안정 노동의 심화가 오늘날 빈곤과 실업의 원인이다. 언제든지 바닥 수준의 임금으로 노동시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관리되는 산업예비군들이 바로 오늘날의 빈민들이다. 다층적으로 구성된 복지정책들은 빈곤인구에 대한 사후적, 소극적 관리를 넘어 더욱 적극적으로 산업예비군들을 관리한다. 노동연계복지를 핵심으로 한 복지의 변모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다. 오늘의 불안정노동자가 내일의 빈민이 되고, 일용직 노동자가 빈민인 시대인 것이다. 빈곤과 실업에 맞선 사회운동은 빈곤의 원인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4)


1) 복지에 대한 권리는 '평등'이라는 쟁점과 연결되어 있다. 특정한 사회적 집단과 그들에게 부여되는 사회적 지위 사이의 갈등에 의해 시민권은 끊임없이 재정의되는데, 20세기 시민권을 구축해온 역사의 중심에는 노동자계급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자계급은 그 속성상 권력을 구성하고 권리를 확장하는 데 있어 정당, 노조 등 대의적 조직과 사회보장, 사회협약과 같은 행정적 제도들을 통과하게 된다. 이로써 노동자계급과 국가의 발전과의 관계는 매우 양가적인데, 완전고용이나 사회보장이라는 요구들이 제도화·통합되고, 국가가 이를 실행하는 방식으로 시민권이 균형을 유지한다. 이때 집단적 대표, 집단이해의 대표가 정치의 구성요소가 되며(코포라티즘), 따라서 소수자(여성, 이주자 등)는 보호의 대상이자 공포의 대상이 되며, 동시에 동화되지 못하거나 통합을 강제 받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이후 자본의 위기를 활용한 완전고용, 사회보장의 해체는 시민권의 감소를 의미하기도 하며, 역으로 정치가 '민족적' 정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압력을 더욱 증대시킨다. 에티엔 발리바르, [시민권에 대한 명제들], {사회진보연대} 2001 년 7-8월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2) 미국과 영국의 복지개혁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원종현 「1996년 미국 복지개혁: 복지에서 노동으로」, 『사회진보연대}, 2004년 11월호와 임필수, 「2005년 영국 총선과 블레어주의의 본질 - 블레어정부와 노무현정부가 꼭 닮은 까닭은?」, 『사회운동}, 2005년 6월호를 각각 참조하라. 본문으로

3) 그 역할에 대해 지배계급 내에서도 비난이 쏟아져 나왔던, 정부 내에 각 부처와는 별개로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되어 있는 각종 '위원회'는 이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다. 복지 영역을 담당하는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는 NGO를 비롯해 자활, 사회복지 기관들을 정책수립과 사회복지서비스 제공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본문으로

4) 얼마 전 8,000억 원의 주식배당금을 챙겨 SK로부터 자본철수를 단행한 영국계 투자펀드 소버린에 대해, 지난 2003년부터 참여연대가 취해온 태도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참여연대가 만들었다'는 말이 있을 만큼,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참여연대는 정부의 복지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 또한 최근에는 '아름다운 재단' 등 독립기관을 설립하여 기업후원금을 조성, 다른 NGO나 사회복지 기관, 활동가들을 지원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최저생계에 미달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충분히 확대하기 위해서는 대략 3000억 원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라면 투기자본에게 세금을 물려서 복지예산을 충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충분히 상상 가능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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