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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9.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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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 파업에 대하여 생각해볼 것들

연대와 지지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유재이 | 회원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 파업에 대하여 생각해볼 것들
- 연대와 지지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유 재 이 | 회원

7월 17일부터 25일 동안 파업투쟁을 벌였던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는 8월 10일 긴급조정권 발동 이후 복귀를 선언하고 현장투쟁에 들어갔다. 아직도 긴급조정과 관련하여 투쟁이 남아있지만 최소한 빠른 시일 안에 합법적인 파업공간이 열리기는 힘들 것이다. 또한 불법파업을 피하기 위해 복귀를 선택했던 노조가 다시 파업에 들어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
논란 속에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서 파업은 갑작스럽게 마무리되었지만 파업기간 내내 노조의 파업에 대해 가해진 정부와 언론의 총공격은 무지막지한 수준이었다. 무엇보다도 노조의 요구가 조합원들의 복지문제일 뿐 아니라 항공안전이라는 공공성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은폐하고 오히려 노사간 주된 쟁점이 아니었던 임금문제를 전면에 부각시켰다. 따라서 파업의 쟁점은 노사간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와 언론이 창조한 것이었다.

노사관계로드맵 도입을 위한 사전포석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언급하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바로 정부의 대응과 통상 ‘노사관계로드맵’이라고 불리는 ‘노사관계선진화방안’의 깊은 관련성에 대해서다. 조종사노조의 파업 과정에서 노동부의 대응은 앞으로 도입할 노사관계로드맵의 내용에 정확히 기반을 두고 있다. 필수공익사업장을 확대하지 않겠다, 긴급조정권을 사용하겠다, 파업이 미친 손해를 노조가 배상하게 한다, 대체인력 투입이 필요하다 등의 언급은 곧바로 노사관계로드맵의 핵심적인 내용이기도 했던 것이다. 노동부는 이번 파업에서 노사관계로드맵의 내용을 미리 시험해본 셈이다. 정부는 그것의 효과를 판단하고 노동자운동의 대응을 가늠하는 것은 물론, 긴급조정 확대 등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시도를 파탄 내는 것은 이후에 노사관계로드맵을 저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정세적인 의미를 띠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파업은 비록 400여 명 조합원의 파업이었지만 노동정책의 쟁점과 관련해서 중요한 계기였다. 그리고 정부와 언론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긴급조정권 사용을 정당화하고 이후 노사관계로드맵 등의 정책,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서 더욱 거셌다.

이데올로기 투쟁의 지형

그런 점에서 조종사노조의 투쟁의 성패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따라서 노조는 물론 공공연맹이나 민주노총도 정부와 언론의 공세에 맞서 투쟁의 정당성을 생생하게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조종사들이 시달리는 극심한 노동강도와 불규칙한 생활 등을 고려한다면 조종사들이 요구했던 항공안전과 연결된 노동강도 완화에 대한 요구는 상식적으로 봐도 설득력이 있는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여론몰이 속에서 문제는 요구의 합리성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문제가 되었다. 투쟁은 노사간에 시작되었지만 정부와 언론이 창조한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장에서 새로운 투쟁의 공간이 열린 것이다.
노조에 대한 공격은 사실을 왜곡, 과장하면서 계속되었다. ‘바베큐 파티’와 같은 확인되지 않은 소문부터 파업거점 선정에 대한 왜곡까지 매일매일 악의적인 정보가 언론지면을 메웠다. 노동자에게 적대적인 정부와 언론의 공세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특히 이번 파업에 대한 공격은 ‘정세에 맞게’ 이루어지면서 대중 이데올로기 동원을 극대화했다. 사회적 양극화와 빈곤의 심화 속에서 ‘고임금 귀족 노동자의 배부른 투쟁’이라는 주장은 대중에게 쉽게 흡수되었다. 노조의 항변, 즉 항공안전이라는 공공적 요구, 극심한 노동강도 완화는 대중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노조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왜일까? 그것은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정부와 언론이 동원한 거대한 물량공세에 맞설 힘이 부족해서였을까? 그렇게 판단한다면 조선일보 절독운동을 하면 되겠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언론은 노동자 계급 내부의 분할을 부각시키면서, 계급 간 대립의 전선을 계급 내 대립인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것은 극심한 임금차이를 부각시키는 방식을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이는 대단한 호소력을 지닌 것이었다.

아시아나 항공 조종사노조 대응이 부딪힌 벽

그러나 우리는 공공성을 증진한다는 측면에서 충분한 명분을 지닌 이번 투쟁에 대한 지지를 조직하는 것이 왜 실패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중의 지지를 충분히 얻지 못한 것은 사측의 불성실교섭이나 노동부장관의 긴급조정권 발동을 용이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투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요소다. 정부와 언론이 성공한 것은 대중이 자신이 처한 빈곤의 원인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고 마치 그것이 ‘고임금 노동자’들 때문이라는 식의 표상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대립의 전선을 이동시킬 수 있었고 ‘계급적 단결’을 불가능하게 했다. 심지어는 노동운동 안에서도 강력한 지지를 조직하기에 여러 어려움이 발생할 정도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노조와 노동운동 진영의 대응은 누가 누구의 편인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되어야 했다. 문제는 그것이 요구안의 성격이나 기자회견, 선전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항공기를 이용할 형편도 되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항공안전이라는 요구는 남의 나라 이야기로 들린다. 그것은 실제 투쟁의 장에서 연대투쟁을 통해서 보여주어야 한다. 고임금 노동자라도 왜 나와 같은 노동자인가를 인식하기 위해서 유명 노동강사 선생님들의 강의를 듣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나와 같은 노동자라는 것을 확인하는 장소는 바로 연대투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공동의 요구를 가지고 연대 투쟁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 대립의 전선이 이동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부와 언론의 비방과 왜곡이 멈추지는 않았을 것이고 여론의 흐름을 돌리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적 지지, 특히 노동자 대중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접근해야하는지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최소한 투쟁전술에 있어서 거점농성 투쟁 이외에 다른 투쟁 방식은 없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또는 안정적인 투쟁과 결집을 위해 거점농성을 전개하더라도 병행할 수 있는 투쟁을 생각해볼 수 있다.

연대투쟁이 필요하다

이는 연대투쟁을 해야 했다는 말이다. 중소규모의 투쟁사업장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품앗이’ 연대가 형성된다. 품앗이라는 방식의 연대투쟁이 관행이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겠지만, 서로의 연대투쟁을 통해서 힘을 모으고 단결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굳이 투쟁사업장이 아니라도 중소영세비정규직노조들은 지역을 근거로 한 연대투쟁에 열심히 나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아시아나 항공 조종사노조는 필자가 알기로 파업기간에 연대투쟁에 나선 적이 거의 없다. 민주노총의 수많은 투쟁사업장은 차치하고라도 같은 공공연맹에 있는 장기투쟁 사업장들인 경찰청 고용직 공무원노조의 투쟁이나 경마진흥노조 투쟁, 상애원노조 투쟁 등 중소영세비정규직 사업장들의 투쟁은 얼마든지 있었고 파업기간에 비록 거점농성을 하고 있더라도 연대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전술적인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귀족 노동자’라는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가장 강력한 반론은 이런 어려운 투쟁사업장과 연대투쟁을 몸으로 보여줌으로써 가능했을 것이다. 조종사 노동자의 수분의 일에 불과한 임금을 받는 최저임금 사업장 투쟁과의 연대는 단결해야 할 대상이 어디인지, 대립의 전선이 어디인지 보여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연대투쟁은 단지 여론전을 위한 실용적인 것이 아니다. 파업 기간에 연대투쟁 하러 다니라는 이야기는 파업투쟁 교육안의 ABC다. 그런 원칙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조종사노동자들도 반에 반도 안 되는 월급을 받는 최저임금노동자들과의 연대투쟁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연대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고 살아가기 때문에’ 노동자라는 형식적인 의미에서 ‘같은’ 노동자이기 때문에 연대해야 한다는 당위를 넘어야 한다. 구체적인 연대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 공동의 과제가 무엇인지 깨달아 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파업이 노동자의 학교라면, 그것은 단지 사업장 내 조합원들 사이의 단결을 증진하고 사측에 대한 일치된 분노를 모으는 수준으로 공장의 담에 갇혀서는 안 된다. 파업은 사업장을 넘어 연대하면서 계급적 단결을 배우는 학교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아시아나 항공 조종사노조는 여러 가지 역사적인 갈등에도 불구하고 일반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아시아나항공 노조’와 함께 하기 위한 상호의 노력을 통해서 최소한 ‘사업장 안에서라도’ 단결을 먼저 확대할 필요도 있다.
물론 첫 파업인 만큼 조합원들의 의식이 당장 힘찬 연대투쟁에 결합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조건이 처음부터 되는 노조는 어디에도 없다는 점을 생각해야한다. 주체들이 연대투쟁을 의식적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연대투쟁의 경험을 얻어 가는 과정에서 조합원들 사이에 동의가 형성될 수 있다.

‘계급적 단결’을 다시 고민하자.

이번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 파업에 대한 정부와 자본, 언론의 공격은 공공부문 대규모 사업장 파업에 대한 전형적인 공격 양식을 반복했다. ‘국민들의 불편’이라는 논리를 펼치며 공세가 계속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한층 강화된 ‘귀족 노동자’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대립의 전선을 노동자계급 안으로 이전시키는 방식의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이러한 공세는 앞으로도 모든 노동자들의 투쟁에 취해질 것이다. 정부와 자본은 그리 높은 임금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치 대단한 특권을 누리는 것처럼 비난하는 방식으로 대립의 전선을 끊임없이 노동자계급 내부로 이전시키고, 이를 통해 계급적 단결을 봉쇄하려 하고 있다. 이를 넘어서 계급적 단결을 증진하는 것은 당위적인 선언이나 ‘노동자’에 대한 사회과학적, 법적 정의를 들이민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그것은 각자 자기 투쟁 열심히 하다보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도 아니다. 계급적 단결은 연대투쟁의 함수다.
물론 연대투쟁만으로 해결될 문제만도 아니다. 노동자계급 내부의 불신, 특히 대기업, 원청 사업장 노조에 대한 불안정노동자들의 불신은 단지 그들이 높은 임금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임금이 하청노동자들의 저임금에 기반해서만 가능했고, 이제까지 하청노동자들을 희생하거나 외면하는 방식으로 높은 임금을 확보하려 했다는 점에 기인한다. 그냥 돈 많이 받기 때문에 미운 게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 내부의 불신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연대투쟁을 활발히 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노동조합의 요구 자체를 지속적으로 전화시킬 필요가 있다. 요구를 제기하고 쟁취하는 데 있어서 노동자계급 공동의 이익을 어떻게 쟁취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을 반복함으로써만 노동자계급 내부를 끊임없이 분할하려는 시도를 넘어서 투쟁에 대한 지지와 계급적 단결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의 파업투쟁은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생각해 볼 쟁점들을 다시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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