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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5.10.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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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경, 박정미 외, 『인민주의 비판』

대안세계화운동은 인민주의 정치에 대한 대안이다

임필수 | 정책편집국장
오늘날 자본축적의 위기는 정치의 위기를 수반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기술관료의 지배로,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쟁점을 호도하는 인민주의 세력의 득세로 나타난다. 이는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유주의가 쇠퇴하고,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를 주창하면서 개인의 권리를 공격하는 보수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또한 유럽에서는 인종적․지방적 동일성에 기초하여 민족국가의 분리 또는 통합을 주장하는 ꡐ극우정당ꡑ(이탈리아 북부동맹의 북부 분리주의나 오스트리아 자유당의 범게르만주의 통합)이 반이민․반세계화를 쟁점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노동당은 ꡐ무지개정당ꡑ을 내세우며 정당과 노동자조직의 연계를 해체하고 블레어를 정점으로 한 기술관료 집단의 사당(私黨)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인민주의 정치스타일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역은 라틴 아메리카다. 1980년대 외채위기를 경과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수용하게 된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는 인민주의 정치 지도자들이 등장하여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수반되는 대중적 불만을 무마하고 사회운동의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 특히 사회운동 정당의 모형이 된 브라질 노동자당은 다른 나라의 인민주의 정치지도자를 대신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인 경제위기, 그리고 이에 수반하는 정치의 위기가 보편화됨에 따라 인민주의 정치스타일이 만개하고 있다.
『인민주의 비판』의 저자들은 혼란스럽게 사용되는 인민주의라는 용어를 현재 정치현상을 분석할 수 있는 개념으로 바꾸기 위해 인민주의에 대한 이념적, 역사적 분석을 시도한다. 특히 역사적으로 반복되지만 다른 형태로 등장하는 인민주의를 분석하여 그것의 고유한 성격을 규정하고, 1980년대 이후 유럽(특히 이탈리아)과 라틴 아메리카(특히 아르헨티나)에서 새롭게 등장한 인민주의의 성격을 규명한다.

1. 인민주의를 어떻게 개념화할 수 있나?

우선, 인민주의는 자본주의 축적체계의 위기, 세계 헤게모니의 위기에 대한 정치적 대응으로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 미국과 러시아의 농민적 인민주의는 영국헤게모니의 전환점인 1870년대 대불황과 함께 나타난다. 20세기 후반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가적 인민주의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대중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한 대중조작적 정치의 성격을 띤다. 한편 전간기에 등장한 유럽의 파시즘과 1940-5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코퍼러티즘적 인민주의는 영국의 고도금융을 중심으로 한 ꡐ자유무역 제국주의ꡑ의 최종적 붕괴와 대안적인 세계 헤게모니의 부재, 즉 미국 헤게모니가 아직 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등장했다.
이렇게 위기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인민주의에는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현대 정치이념들이 담고 있는 체계적인 이념이나 전략이 부재하다. 특히 인민주의는 헤게모니 이념으로서 자유주의를 거부한다. 인민주의는 모든 권력의 정당성의 근원인 인민에게 호소함으로써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을 효과적으로 동원하지만 인민주의에는 ꡐ권리의 주체로서 개인ꡑ이라는 사고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인민주의가 전제하는 인민의 공동체는 권리의 주체로서 개인들의 연합이 아니라 지방적․인종적 동일성에 기초하거나 ꡐ좋았던 옛날ꡑ의 신화에 호소하는 유기체적 공동체다. 이는 이질적인 적에 대한 배제를 통해 부정적인 방식으로 공동체의 경계를 규정하도록 하며, 권리의 주체로서 개인을 부정하므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에 의한 전제적 지배를 낳기도 한다.
요컨대 인민주의는 자본축적의 위기와 이것이 수반하는 헤게모니의 위기 상황에서 등장하여 ꡐ인민ꡑ을 동원하지만, 개인의 권리를 위한 집단적 운동이자 사회적 갈등의 대의 과정으로서 정치를 부정하는 ꡐ반(反)정치의 정치ꡑ이며, 따라서 인민의 권리와 자율적 대중운동을 파괴한다.

2. 코퍼러티즘적 인민주의와 정치가적 인민주의

보수언론의 지면을 통해 노무현 정부를 ꡐ파퓰리즘ꡑ으로 규정하고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노무현정부의 대중동원 스타일이나 사회정책이 정책적 일관성보다는 인기영합주의에 기울어 있고, 따라서 1940-5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 정책의 오류를 반복한다고 비판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보수언론의 이러한 규정은 ꡐ인민주의=좌파ꡑ라는 식의 낙인찍기일 뿐, 어떠한 분석적 근거도 결여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로 과거 라틴 아메리카의 코퍼러티즘적 인민주의는 해체되었다. 오히려 현재 전면에 부상한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우위를 기꺼이 승인하는 정치가적 인민주의다. 현재 노무현 정부의 정책․전략은 더 이상 코퍼러티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등장한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가적 인민주의와 훨씬 유사하다. 코포라티즘적 인민주의와 정치가적 인민주의의 차이점을 확인하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의 사례를 자세히 살펴보자.
194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는 지역적 헤게모니의 공백 상태에서 등장했다. 당시 미국은 유럽에 대한 마셜플랜과 동아시아 지역의 발전 지원에 초점을 맞추었고 1950년대까지 미국의 라틴 아메리카 전략은 분명하지 않았다. 또한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에서 의회제도는 토지귀족 세력의 과두제를 실현하는 기제에 지나지 않았고, 이는 인민주의 정치가 성장할 배경이 되었다. 이때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 정치지도자들은 전통적인 토지귀족과 타협하고 신흥 산업자본가와 노동자와 제휴하며 국내 산업발전에 기초한 민족적 발전전략을 추구했다. 그들은 제국주의를 적으로 설정했고 열정적인 민족주의에 호소했으며, 월스트리트의 자금을 조달하는 과두제 지배집단의 특권을 공격했다. 하지만 인민주의자들은 근본적인 변혁을 지향하지 않았고 특히 인민주의 정부는 자율적인 노동자운동을 억압하고 노동조합을 국가기구로 통합하는 코퍼러티즘 전략을 실현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코퍼러티즘은 1930년대 유럽 파시즘의 ꡐ국가ꡑ 코퍼러티즘처럼 의회를 완전히 철폐하지는 않았지만, 서유럽에서 재확립된 ꡐ사회ꡑ 코퍼러티즘과 달리 노동자조직의 자율성이 매우 낮았다. 라틴 아메리카 인민주의는 국가가 승인한 노동조합에게는 임금교섭과 복지혜택이라는 당근을 제공했지만, 그렇지 않은 노동자운동은 철저히 억압하는 이중적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1960년대 미국의 법인기업이 해외직접투자의 형태로 라틴아메리카에 진출하고 케네디 정부가 ꡐ진보를 위한 동맹ꡑ을 결성하면서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 각 나라의 군부를 내세워 좌파를 고무할 수도 있는 인민주의 정권을 제거한다. 군사정부의 경제정책은 초민족 법인기업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주력했고, 농업․광업 수출을 제외한 제조산업의 발전은 저지된다. 1980년대 라틴 아메리카 외채위기로 인해 경제위기 관리를 위한 문민화가 진행되었고, 이 때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가 새롭게 부활한다. 그들은 군사정부의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실패를 공격했고, 외채위기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을 비판하면서 코퍼러티즘적 인민주의에 호소하는 선거전략으로 집권에 성공한다. 예컨대 페루의 가르시아는 경제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국가와 민족자본, 민중부문의 광범위한 ꡐ연대협약ꡑ을 조직했고, 민족자본에게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민중부문에게는 재분배정책을 실시해 수입대체산업화와 국내시장 부양을 꾀한다. 그러나 1980년대에 코포라티즘적 인민주의를 부활시키려는 정책은 재정적자, 외채, 인플레이션, 자본도피와 같은 경제위기 현상을 극복하지 못했고, 1990년대 인민주의 지도자들은 신자유주의 반대에서 적극적인 수용으로 변신했다.
1990년대 대표적인 인민주의 지도자로는 아르헨티나의 메넴, 브라질의 콜러, 페루의 후지모리, 멕시코의 살리나스, 베네주엘라의 페레스를 들 수 있다. 바로 이들은 정치이념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으면서 인민이라는 통념의 모호성을 활용해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려는 정치스타일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그들을 정치가적 인민주의로 규정할 수 있다. 그들은 선거전략으로 인민주의의 수사와 동원을 활용했다. 특히 그들은 무능하고 부패한 기존 정치인(정치가와 공무원)들과 특권집단(여기에는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노동조합도 포함된다)을 제일의 적으로 설정했고, 자신은 부패한 정치계급으로부터 자유로운 제3세력임을 선언했다. 또한 집권하면 외채상환이나 긴축정책과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중단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기구, 의회, 정당을 무력화하고, 포고령이나 긴급조치와 같은 수단을 동원해 신자유주의 개혁을 강행했다 (심지어 1992년 후지모리는 의회를 폐쇄했다). 그러면서 노사정합의 또는 연대협정을 통해 노동조합 지도부를 선별적으로 포섭하여 코퍼러티즘의 외양은 유지하지만, 노동조합의 조직 토대와 협상력은 크게 떨어지고 노동조합은 분열된다. 한편 인민주의 정부는 대중적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도시 비공식부문과 농촌 빈민층을 대상으로 하는 ꡐ목표수혜ꡑ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칠레의 사회투자연대기금과 멕시코의 사회연대기금이 대표적인 예인데, 이는 코퍼러티즘 방식과 달리 ꡐ부자와 빈자의 자발적 연대ꡑ라는 형태를 취하고, 대통령이 구호자금을 직접 모금, 전달함으로써 인민의 지도자라는 수사를 강화한다.

3. 노무현 정부의 정치가적 인민주의와 사회운동

노무현 정부의 등장과 집권 후 정책, 전략을 살펴보면 이는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나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가적 인민주의와 놀랍게도 유사하다. 사상 유례가 없는 여론조사를 통한 대선후보 결정, ꡐ반창연대ꡑ라는 네가티브 선거전략, 미디어의 적극적인 활용, ꡐ정의로운 세상ꡑ이나 ꡐ국민통합ꡑ과 같은 모호한 구호에 호소하는 방식은 다른 인민주의 정치가의 선거전략과 몹시 닮은 것이다. 또한 불법 대선자금이 한나라당에 비할 바 없이 적다는 10분 1 발언, 재신임 선언, 탄핵을 불사하거나 심지어 유도하며 선거법 위반 공방을 돌파하려는 정치행동은 대통령 개인에 대한 대중의 지지로 사태를 봉합하고, '나는 차악(lesser evil)이고 상대방이 진정 악의 두목이다ꡐ라는 전형적인 정치가적 인민주의의 도식을 활용한다 (물론 이러한 선거기법이나 정치스타일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행은 정규직 노동자의 이기심 때문이라며 노동자조직을 공격하며, 동시에 노동자조직을 선별적으로 분할/포섭하려는 노사정테이블을 추진한다. 간접세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서 약간의 복지재원으로 특정 층을 겨냥한 복지정책을 입안한다. 결국 정치 스타일뿐만 아니라 통치기법 자체가 정치가적 인민주의의 모형과 동일하다. 1)
이런 분석에서 볼 때 노무현정부와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해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첫째, 인민주의는 안정적인 '대중적 토대'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인민주의는 미국 민주당의 장기적인 집권 기반이 된 ‘뉴딜연합’처럼 헤게모니 연합(자유주의 연합)을 형성할 수 없고 따라서 인민주의에 기초한 대중동원은 극히 휘발성이 강하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과 통치를 위해 ꡐ비즈니스 네트워크ꡑ로 전환한 386세대, ꡐ개혁적ꡑ 지식인과 기술관료적 NGO,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자 대중의 일부 상층부의 명예욕과 실리주의를 자극하고, 청년층 도시프롤레타리아의 감정적인 지지를 일시적으로 이끌어 내고, IMF 구제금융협약 이후 위기에 빠진 지역들의 소외감을 자극함으로써 일시적인 지지층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는 특정한 정치이념을 보유한 다계급연합이 아니라 계급형성을 봉쇄하는 ꡐ탈계급연합ꡑ일 뿐이며 사상누각처럼 불안정하다. 노무현 정부는 선거구제 개편을 통해 전국정당화를 이루고 (내각제) 개헌으로써 위한 제도화를 꿈꾸지만 선거구제 개편과 개헌이 곧바로 안정적 지지층의 형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조차 인민주의적 동원을 반복해야만 한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와 후임자들은 인민주의적 정치스타일과 통치기법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둘째, 인민주의는 고유한 정치이념이나 전략이 없고 오늘날에는 오히려 기술관료적 ꡐ합리성ꡑ과 ꡐ전문성ꡑ으로 치장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추종한다. 인민주의 정치는 의회나 정당을 우회하여 이로부터 분리된 대통령 비서진이나 자문단에 의존해 정책을 입안하고 행정부의 강력한 권력에 기대어 신자유주의를 실행한다. 이를 합리화하는 수단은 미디어와 전문가 NGO다. 초민족 자본이나 재벌은 이러한 경로를 통해 좀 더 쉽게 정책입안 과정에 접근한다. 그들은 더 이상 특정 정당을 자신의 이해 대변자로 여겨 로비를 펼치는 게 아니라, 국제금융기구나 각종 경제공동체(유럽연합, 아펙 등등)에 직접 참여하거나 싱크탱크를 운영하여 기술관료를 배출한다 (최근 삼성과 노무현 정부의 밀월관계는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대중들은 선거에서 어떤 정당을 선택할 권리는 있으나, 그들이 무엇을 할지 통제할 수 있는 권리는 박탈된다. 따라서 국가에 의존하는 사회운동의 전략은 위기에 처한다.
셋째, 인민주의가 구사하는 사회정책은 국가온정주의라는 보수주의에 훨씬 더 가깝다. 1930년대 국가 코퍼러티즘뿐만 아니라 전후 서구에 재확립된 사회 코퍼러티즘도 비스마르크의 보수주의나 파시즘적 경제학에 기원을 둔다. 인민주의 사회정책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실행하는 수단으로서 종속적 의미만 지닌다. 따라서 ꡐ완전고용ꡑ과 같은 케인즈주의 목표는 제거되고, 장기 실업층을 산업예비군으로 포섭하려는 사회정책이 ꡐ국민통합ꡑ이라는 국가온정주의적 시혜의 형태로 제공된다. 그러나 국가의 시혜에 의존하라는 인민주의 정책은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의 자율성을 해체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넷째, 정당과 의회를 우회하는 대중동원과 기술관료적 전문성의 활용을 위한 인민주의의 효과적인 수단 중의 하나가 바로 전문가 NGO다. 그들은 국가기구의 역할을 대행하지만, 지식이라는 고유한 수단을 통해서 대중의 지성을 박탈하고 전문가 독점을 강화한다. 한국에서 NGO 운동은 점차 이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ꡐ소수주주운동ꡑ(기관투자가, 금융자본의 이해 보장)부터 사회양극화 해소 국민연대 결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안세계화운동은 신자유주의와 인민주의에 대항하는 운동이자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의 해체와 NGO 독점을 비판하는 운동으로서 자기 역할을 찾을 수 있다.

1) 노무현 정부의 인민주의에 대해서는 월간 『사회진보연대』에 실린 지난 기사들을 참조할 수 있겠다. 「노무현 정권의 출범과 정책개혁의 전망」(2003년 1월), 「한국사회의 위기와 사회운동의 도전」(2004년 1월), 「대통령 탄핵사태의 본질과 대응방향」(2004년 4월), 「총선결과 분석과 사회운동의 과제」(2004년 5월)를 보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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