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5.11.59호
첨부파일
59_서평_김철식.hwp

노동운동의 새로운 희망을 찾아서 - 비버리 J. 실버, 『노동의 힘』

김철식 | 회원
노동운동의 위기 - 노동운동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는 때로는 극복 불가능한 '최종적 위기'로 인식된다. 금융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회에서 실질임금이 하락하고 고용이 불안해졌다. 이에 저항하는 노동운동은 점차 특유의 응집성과 전투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경을 넘어 자유로이 이동하는 자본 앞에서 '바닥으로의 경주'를 해야 하는 노동의 현실은 노동운동의 '최종적 위기' 담론의 현실성을 강제하고 있다.
한국사회를 보더라도 작금의 현실은 너무나도 냉혹해 보인다. 고용이 불안해지고 개별적 경쟁이 심화되면서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에서의 불안정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불안정노동층이 증가하면서 노동자 내부의 분할선이 심화되며, 이는 노-자 갈등 이전에 노-노갈등을 오히려 더 가시화시키고 있다. 노동자 대중의 실리주의 경향이 심화되면서 작업장 이기주의가 만연하며, 이를 핑계로 한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실리주의와 무기력감도 강화되고 있다. 한편 노동조합 활동이 갈수록 무력화되면서 이제 파업 한번 하기도 갈수록 힘든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대중투쟁의 동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끊임없는 상층부 교섭을 통한 해결 노력만이 시도되고 노동조합은 끊임없이 파트너십에 천착하고 있다. 그것의 의도치 않은 결과로 노동조합의 비리 연루 사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면서 이제 노동운동의 도덕적 정당성마저도 치명적 타격을 입고 있다. 누구도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갈수록 노동운동에의 희망은 사라져 가는 듯하다.
실버의 『노동의 힘』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암울한 상황에서 이 책이 생뚱맞게도(?) 노동운동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이러한 희망이 주의주의적이고 당위론적인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끈질기고 치밀한 분석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경제라는 거대한 공간과 100여 년의 장기적 시간지평 속에서 9만여 건에 달하는 노동소요 관련 기사들을 수집·분류하는 끈기 있는 작업을 통해 대중소요의 장기적 동학을 분석한 이 책은, 역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노동운동의 최종적 위기론에 대한 세계체계 분석의 정면도전"이다(p.338).

노동운동 최종적 위기론에 대한 정면도전

노동운동의 위기를 주장하는 논의들은 우선 자본의 초이동성을 강조한다. 즉 초국적기업들이 더 값싼 노동을 찾아 생산을 전 세계로 이동시키려 함으로써(혹은 이동시키겠다고 위협함으로써) 노동의 교섭력을 약화시키고 노동의 '바닥을 향한 경주'를 강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실버는 "생산자본이 빠져나간 장소에서는 노동이 약화됐지만 새로운 투자처로 각광받게 된 지역에서는 새로운 노동계급이 탄생해 강성해졌다. … 이들은 곧 팽창하는 대량생산 산업에 뿌리박은 새롭고 강력한 노동운동을 일궈냈다"고 반박한다(p.25).
다른 한편으로 일군의 논자들은 생산조직 및 노동과정의 전환을 강조하면서 노동운동의 위기를 주장한다. 소위 '포스트포드주의'가 그것인데, 이에 의하면 포드주의 대량생산체계에서는 동질적 노동대중의 대량조직화가 용이했지만, 이와 달리 광범위한 하청망으로 구성된 유연생산체계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실버는 실제로 "포드주의는 노동조합이 잘 갖춰진 (숙련)노동자들의 숙련 기능을 낡은 것으로 만들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고용주들이 새로운 노동자원을 활용할 수 있게 해줬다. … (노동조합을 대량조직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포드주의가 노동을 약화시키기보다는 강화시켜 준다고 보게 된 것은 한참이 지나고 나서였다"는 점을 지적하면서(p.26), 새로운 생산조직 하에서의 노동운동의 잠재적 가능성을 찾으려고 한다.
실버가 지적하고 있듯이, 오늘날 노동운동 위기에 대한 인식의 이면에는 담론환경의 변화, 즉 "노동자들에게 힘이 있다는 한 세기나 된 신념"을 무너뜨림으로써, "대중의 정치적 사기를 극적으로 꺾고, 변화를 위해 싸우려는 의지마저 꺾"어버린 변화가 작용하고 있다(p.39). 이런 상황에서 『노동의 힘』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의 자본과 노동의 장기적 동학에 놓여있는 '노동의 힘'의 원천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에게 힘이 있다'는 신념을 재정립하고자 한다.

자본이 가는 곳마다 새로운 노동운동이 창출된다

논의의 출발점이자 이 책의 바탕이 되는 명제는 바로 "자본이 가는 곳에 갈등이 따라간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 자본주의의 기본적 모순인 수익성의 위기와 정당성의 위기간의 지속적 긴장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수익성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은 끊임없는 재정립들을 시도하는데(기본적으로 이것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강화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것은 정당성의 위기를 발생시키고 노동자들의 새로운 저항을 낳는다. 그 결과 새로운 노동계급이 형성·강화되며, 따라서 노동-자본의 갈등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착취에 맞서는 노동자의 저항과 이 저항을 극복하려고 생산과 사회적 관계를 계속 변혁하려는 자본의 노력이 새로운 모순과 갈등을 재출현시키는 경향"을 낳는 것이다(pp.11-12).
역사적으로 자본가들은 강력한 노동운동의 출현에 맞서 끊임없이 자신의 형태를 바꾸어왔다. 이러한 자본가들의 전략적 대응을 실버는 네 가지로 유형화하는데, 공간 재정립(생산의 지리적 재배치), 기술·조직 재정립(노동절약적 기술의 도입, 하청과 임시고용관계의 확대를 포함한 기업조직의 재구조화), 제품 재정립(경쟁과 갈등이 덜한 새로운 생산라인으로의 자본이동), 금융적 재정립(완전히 생산에서 이탈해 금융과 투기로 향하는 자본이동)이 그것이다. 이러한 네 가지 '재정립'은 "20세기 전체에 걸쳐 노동전투성에 맞선 자본가들 특유의 대응"이었다(p.11). 그러나 그 어떤 전략도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을 막아내지 못했고, 따라서 안정적인 자본축적을 위한 대안이 되지 못했다.
먼저, 자본은 저렴하고 유순하며, 통제하기 쉬운 노동력을 찾아 생산기능을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공간 재정립). 그러나 이러한 생산의 지리적 재배치는 "단지 위기의 시간과 공간을 재조정하는데 성공"했을 뿐이지(p.69), "위기를 영구히 해결하지는 못"했다(p.76). 이러한 사실을 실버는 20세기 자본주의의 선도산업인 자동차산업에서의 노동소요패턴 분석을 통해 입증한다. 자동차 산업에서의 자본이동은 1930~40년대 미국에서 1950~60년대 서유럽, 1980년대 브라질과 남아공, 1990년대 한국 등으로 노동소요의 진원지만을 바꾸어놓았을 뿐, 노동전투성 자체를 약화시키지는 못했다. "자본이동 전략은 자본이 철수한 장소의 노동운동을 상당히 약화시키나, 그 뒤를 이어 산업이 팽창하는 장소에서는 새로운 노동운동을 창출하고 강화"시키는 것이다(p.69).
다음으로 자본은 포스트포드주의적 조직혁신을 통해 수익성과 통제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기술·조직 재정립). 일본식 생산방식을 모방하여 유연작업, JIT 조달체계, 팀작업, 품질관리서클(QC), 그리고 수직적 통합을 벗어난 광범위한 하청투입(아웃소싱) 같은 방법이 도입되었다. 이를 통해 자본은 노동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수익성의 위기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도 대체로 성공하지 못했는데, 가령, 고용안정을 보장받지 못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높은 이직률과 빈번한 파업으로 대응했고, 따라서 새로운 생산방식이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헌신과 충성은 확보될 수 없었다. 또한 JIT 생산은 "생산흐름의 중단에 대한 자본의 취약성을 증가시킴으로써, 노동자가 생산현장의 직접행동에 기초해 교섭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으며(p.26), "부품공장과 수송부문의 파업에 대해서도 포드주의적 대량생산보다 취약했다"(pp.110-111).
공간 재정립이 보다 높은 이윤을 찾아 단일 산업 내에서 자본 이동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면, 제품 재정립은 이제 자본이 하나의 산업에서 다른 산업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본은 "혁신적이고 더욱 이윤이 높은 새로운 생산라인과 산업으로 자본을 이동하려고 시도"(p.122)하는 것이다. 공간 재정립이 노동계급이 형성되고 저항이 발생하는 지점을 산업 내에서 지리적으로 변화시켰을 뿐이듯이 제품 재정립 또한 노동계급의 형성과 저항이 일어나는 산업만을 바꾸어놓았을 뿐이다. 19세기 노동소요의 핵심 진원지가 섬유산업이었다면, 20세기 그것은 자동차 산업이 되었다. 그렇다면 21세기는? 실버는 21세기의 핵심 산업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는 산업들(반도체산업, 생산자서비스, 교육산업, 개인서비스 등)을 검토하면서 이들 산업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노동소요의 추세들을 그려내고 있다.

금융적 재정립과 노동운동

20세기 전반기 두 번의 세계대전과 폭발적인 노동소요의 물결은 2차 대전 직후 미국의 세계헤게모니가 확립되면서 쇠퇴하게 된다. "미국은 기업과 국가 수준에서 노동력의 부분적인 탈상품화를 허용하는 세계적 수준의 제도개혁을 후원"하였고, 이를 통해 "세계자본주의 체계가 과거 반세기 동안 사회적 소요와 노동소요가 격렬히 제기한 도전과 요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 준다고 믿을 수 있도록 만들어갔다"(pp.221-222). 미국은 자유방임적인 경제와 정치가 20세기 전반기의 사회적·정치적 혼돈에 기여했다는 인식 하에서 이를 규제할 수 있는 국제적 틀을 만들어냈고,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노동운동을 억제하기 위한 개혁정책과 억압정책, 그리고 자본축적과정의 재구조화가 진행됐다. 노동자들에게 발전주의적 사회협약이 제시됐는데, 우선 제1세계 ‘발전된’ 국가들에서는 자본주의적 성장의 과실을 나눠준다는 약속을 대가로 노동 전투성의 억제와 생산성 향상에의 협력을 얻어냈다. 한편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산업화와 발전이 제시됐다. 이 모든 것은 '대중소비의 보편화'(누구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다)를 가져다줄 것이었다. 이러한 개혁 및 억압정책과 함께 공간 재정립, 기술·조직 재정립, 제품 재정립을 통해 이윤추구의 범위를 의미심장하게 확장하는 조치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후 수십 년 간 강력한 노동운동을 수용하고 통제하려던 다양한 노력은 모두 한계와 모순을 안고 있었다. … 개혁이 완전하게 실현되고, 세계노동력의 소소한 부분 이상을 끌어안을 정도가 되려면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다. … 억압도 불안정한 해결책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 자본축적 과정의 재구조화도 모순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대부분의 경우 공간 재정립은 강력한 작업장 교섭력과 노동전투성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놨을 뿐이고 기술·조직 재정립과 제품 재정립도 노동자들의 교섭력을 뚜렷이 약화시키지는 못했다"(pp.235-236).
그렇다면 금융적 재정립은 어떠한가? 1980년대 미국이 "국내의 세금 감면과 해외의 새로운 냉전 격화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 유동성 자본을 끌어들이는 경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에 따라(p.243) "금융자본의 이동 방향은 [남에서 북으로] 극적으로 역전됐다"(p.242). 그 결과 1980년대의 제3세계 외채 위기는 "IMF가 채무국가에 재대출해 주는 조건으로 '구조조정' 정책을 강요하는 길을 열어 주었"고, 이것은 제3세계에서의 "대량해고, 실업 급증, 노동자들의 시장교섭력 약화"를 가져왔다(p.243). 그 결과 "제2세계와 제3세계의 노동운동 [또한] 1990년대 들어와 대부분 위기에 빠졌다"(p.242). 이런 점에서 "노동운동의 위기가 이처럼 심각하게 확산된 핵심적인 이유는 1980~90년대에 대규모로 확산된 금융적 재정립, 그리고 금융적 재정립 자체의 성격 변화에 뿌리박고 있"다(p.242).
오늘날의 금융적 재정립이 노동운동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예측하기 위해 실버는 19세기 말에 있었던 금융적 재정립을 검토한다. "노동운동은 (금융적 재정립이 시작됐던 1890년대 말에는 패배를 겪어야 했지만, 10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노동소요를 증가시켰다"(pp.243-244). 20세기 말에도 "구조조정 정책이 제3세계에서 … 대규모 저항을 불러오자, 발전주의적 사회협약의 붕괴와 더불어 … 노동소요의 물결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런 노동소요의 물결은 21세기 초까지 계속"되고 있다(p.244). 또한 시애틀 이후의 연이은 반세계화 시위를 통해 "'대안은 없다'는 믿음이 뒤흔들렸고, 세계정치와 사회-경제적 체제를 노동친화적으로 바꾸자는 제안이 강력히 제출되고 있다"(p.260).

노동운동을 추동하는 것은 노동의 힘인가 자본의 힘인가

이 책에서 실버는 자본주의 기본적인 노동-자본 갈등이 있는 한, 노동의 최종적 위기란 없음을, 다만 노동운동의 불균등 발전과 끊임없는 재정립이 있을 뿐임을 주장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균등 발전과 끊임없는 재정립을 가져오는 주된 원인은 무엇인가? 실버에게서 이것은 "수익성의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는 역사적 자본주의의 재정립들이 (새로운 중심지와 산업의 등장을 포함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잇달아 새로운 노동계급을 형성하고 강화시"켰기 때문이다(p.340). 다시 말해 자본의 끊임없는 재정립, 자본의 지속적인 노동착취 전략이 한쪽에서의 노동운동을 쇠퇴하도록 만들기도 하며, 반대로 다른 쪽에서의 새로운 노동운동의 폭발을 낳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변화하는 역사적 자본주의의 지형을 읽어내고 그 속에서 전개되는 자본의 구체적인 전략을 분석하는 일은 노동운동의 발전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우선시되어야 할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상과 같은 실버의 논의는 또 하나의 더욱 근본적인 고민들을 던져주는 듯하다. 실버는 라이트의 논의를 빌어 노동자들이 갖게 되는 힘의 원천을 연합적 힘과 구조적 힘(시장 교섭력과 작업장 교섭력)에서 찾으면서 이러한 힘들이 역사적 자본주의의 동학 속에서 어떻게 발휘되면서 노동운동을 활성화 혹은 쇠퇴시켜 왔는지를 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의 힘들은 끊임없이 노동을 착취하려는 자본의 전략에 대한 대응으로서, 자본의 재정립 형태에 종속되어지고, 조건 지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은 자본의 전략적 대응에 따라 쇠퇴하거나 부흥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노동은 자본의 움직임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는 종속적인 존재인가? 자본축적을 위한 끊임없는 재정립 시도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노동운동을 만들어내는 것은 과연 노동의 힘인가 자본의 힘인가? 자본의 힘에 속박되지 않는 진정한 노동의 힘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조건에서의 새로운 노동운동의 활성화를 위하여

역자들도 지적하고 있듯이 한국의 노동운동은 역사적 자본주의의 재정립 과정에서 "노동계급이 새롭게 형성되고 노동운동의 중심지가 비서구로 옮아온 주요한 사례"로 볼 수 있다(p.339). 그리고 이는 다시 전지구적 자본이동의 경향에 따라 또 다른 지역으로 노동운동의 중심지가 이동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노동운동 또한 이러한 자본이동의 영향에 따라 약화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역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중심지 이동이 기존 지역적 노동운동의 최종적 위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실버의 논지 중의 하나이다. 자본의 공간 재정립은 기존 노동운동의 중심 축을 지역적으로 이동시킬 수는 있지만, 다른 형태의 새로운 재정립들 때문에 기존의 공간에 새로운 노동-자본의 갈등관계가 발생할 수 있다"(pp.339-340). 이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실버는 그간 주목받지 못하고 조직되기 힘든 집단으로 인식되었던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미국에서의 조직화 경험들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여 집중 조명하고 있다.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자동차 노동자들과 같은 강력한 작업장 교섭력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이들은 취약한 구조적 힘(시장교섭력, 작업장 교섭력)에도 불구하고, "당면 문제에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계층들과의 동맹에 크게 의존"하는(p.168) 연합적 힘을 성공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미국 역사상 노동소요의 수준이 가장 낮던 시기에 노동운동의 사회적 행동주의를 폭발시켰다"(p.167).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한국에서의 노동운동의 전개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실로 당시의 대량생산 산업에서의 노동소요는 과히 폭발적인 수준이었고, 새로운 노동운동의 가능성에 희망을 안겨다주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신화'가 되었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이러한 신화는 한국사회의 하나의 제도가 되었다. 제도화된 노동운동이 내부적인 임금인상과 노동조건의 개선에 골몰하고 있는 사이에 자본의 재정립 전략은 강화되었고, 노동시장의 분절구조도 심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제는 과거의 신화에 집착과 향수를 넘어서 새로운 조건들을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새로운 조건 하에서 성장하고 있는 새로운 노동운동의 세력에 주목하는 것이다. "자본이 일으킨 변환 탓에 … 기존의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등장하고 단련된 새로운 노동계급에 의해 … 모순과 갈등이 출현한다"(p.12). 오늘날 자본의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의 전략은 광범위한 하청과 파견, 비정규노동, 이주노동자들을 대규모로 양산하였다. 이들은 오늘날 자본의 구조조정의 모순에 저항하는 중요한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노동세력의 움직임에 주목하여 이들을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 운동들을 활성화시켜나가는 것은 한국 노동운동에 있어서의 핵심적 이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날의 노동자들의 힘의 원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실버는 섬유산업과 자동차산업 내 노동소요의 역사적 동학을 비교하면서 "강력한 작업장 교섭력과 노동전투성 사이에는 별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해내고 있다(p.254). 실제로 강력한 작업장 교섭력을 바탕으로 20세기 노동운동을 주도한 자동차 노동자들은 요구사항을 쟁취하는 데는 더욱 성공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적인 전투성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체제내화 되고 제도화되었다. 반면 노동자들의 연합적 힘을 활용한 노동소요는 점차 강화되고 있으며, 노동운동이 쇠퇴했다고 여겨져 온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그러하다. 실제로 (자본의 힘에 상대적으로 민감한) 구조적 교섭력 - 시장 교섭력과 작업장 교섭력 - 이 쇠퇴할 때 최종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힘의 원천은, 노동운동의 가장 기저에 놓인 강력한 무기는 결국 연합적 힘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놓인 과제는 이상과 같은 연합적 힘을 바탕으로 새로운 노동세력의 움직임을 기존의 노동운동의 신화 세력들과 결합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한국 노동운동의 모습들로부터의 일정한 전환이 필요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바로 우리들의 몫일 것이다.
주제어
노동 이론
태그
파견법 비정규직 불안정노동 철폐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