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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발의: 이리가레, 마르크스, 시민권

앨리슨 마틴 |
「편집자주」- 이 글은 유럽에서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체결되면서 더욱 가속된 유럽통합의 과정에서 성별화된 시민권을 성문화하려했던 이리가레의 시도를 조명하고 있다. 이리가레는 유럽연합의 새로운 원리를 구성하기 위해서 ‘성적 차이’ 개념을 핵심으로 하는 시민권을 정의하려 했다. 이리가레의 시도는 평등에 대한 권리가 남성적 동일성에 입각하여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따라서 여성이 남성과 비교해서 결여된 것을 따라잡으려는 부정적인 방식이 아니라 긍정적인 방식으로 여성적 동일성을 구성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는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조건의 기초가 바로 성별화된 시민권이다. 이런 이리가레의 시도는 유럽연합의회에 민법 초안을 제출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지만, 결국 좌절되었다. 하지만 올해 진행된 유럽헌법조약 반대 운동에 동참한 유럽의 여성운동과 페미니스트들의 유럽헌법 조약 비판에는 이리가레의 시도와 연결성을 찾을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유럽의 여성운동과 페미니스트들이 진행한 구체적인 비판과 실천은 다음 호 기획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


* 이 논문은 이리가레의 정치사상 및 유럽의회에 대한 개입을 논함으로써 그녀가 사회정치적 변화에 참여하는 철학자라는 점을 제시한다. 이 글은 최근 그녀가 구(舊)이탈리아공산당과 함께 한 작업의 기원을 마르크스에 대한 초기 비판 및 이후 인간에 관한 헤겔의 시민적 정의에 대해 그녀가 느낀 매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의 유럽의회 발의가 실패한 것은 그녀의 사고가 그것의 실현 가능성보다 앞서 있음을 암시한다.

이리가레는 1970년대 초 첫 번째 출판물에서부터 칼 마르크스 및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사상과 거리를 드러내 왔거니와, 훗날 동유럽에서 발생한 정치적 사건들은 이러한 입장의 정당성을 확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사회학 사상 일반과도 거리를 유지해 왔는데, 이는 사회학 사상이 공공연하게 객관주의를 내세우는 반면 “내면성”을 발전시키는 문제에 관해서는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Irigaray, 1987, 436).1) 그녀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했던 사람들 중 일부가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따르던 사회학자들이었던 것은 따라서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 중 모니크 플라자(1978)는 이리가레를 호되게 꾸짖었는데, 역사에서 실존하는 여성들의 사회적 조건을 검토하지 않는 서양 철학 담론에 매몰된 분석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리가레의 작업은 이러한 역사를 결코 직접적으로 부인하지 않았던 프랑스 사상의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그것은 질문에 대답하기보다는 질문을 전위시키는 것을 선호하고, 그 대신 역사를 특정한 종류의 담론으로 만드는 언어, 표상, 주체성 등의 쟁점으로 돌아선 정치가의 외양을 얼마간 띈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작업이 포스트구조주의의 얼굴 없는(faceless) 유산이라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규정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녀는 마르크스-헤겔적인 역사 발전 도정에 선 동료 여행자로 간주되는 편이 더 나을 것이고, 그녀의 정치적 성향은 유럽사회주의 좌파 쪽에 훨씬 가깝다. 이리가레의 저작들은 평화적 혁명이라는 수단을 통해 만인에게 정의가 보장되는 문화를 실현하고 착취를 종식시키는 방향으로 인류의 발전을 추진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이는 자본주의 체계와 반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녀는 최근 작업에서 가능한 이행의 변증법을 [마르크스적 용어가 아니라] 헤겔적 용어로 정식화한다(Irigaray 1993b, 1996, 2000). 이 때문에 이리가레의 작업에서 시민권과 인간의 시민적 정의에 대한 질문과 인정(recognition)의 정치가 중요하게 고려된다. 이와 같은 목적을 위해 그녀는 이탈리아의 좌파민주당과 함께 작업하면서, 성적 차이 개념을 핵심으로 하는 유럽 시민권의 정의를 유럽의회에 제출했다. 그녀의 성적 차이의 철학에 대한 수용 여부와 관계없이, 이리가레의 사상이 유럽 대륙 곳곳에서 펼쳐지는 정치운동의 일부를 이룬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유럽의회에서의 발의가 실패한 것은 성적 차이라는 사상이 맹아적 상태에 있으며 그것이 만개할지 여부를 알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는 점을 일러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제

이리가레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대해 지적한 문제는 넓게 보자면 인정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저작에 대한 이리가레의 명시적인 개입은 작업 초기에 국한되는데, 당시 그녀는 가부장제 비판을 확립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녀는 훗날 마르크스에 관한 작업을 기약했는데, 이 문헌은 [만일 출판됐다면] 프리드리히 니체 및 마틴 하이데거에 관한 글과 더불어 [4대] “원소”(the elemental)에 대한 탐구를 완결 지었을 테지만, 결국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다(Irigaray, 1981, 43).2) 마르크스에 관한 저술은 따라서 『타자인 여성을 비추는 거울』(Speculum of the Other Woman, 이하 ꡔ거울ꡕ)(1985a)의 다소 간략한 분석과 『하나이지 않은 이 성』(This Sex Which Is Not One)(1985b)에 실린 두 편의 소론에 한정되는데, 그렇지만 이 글들은 가부장제의 “내적 메커니즘”에 대한 이리가레의 분석을 보여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리가레가 이렇게 마르크스에 관해 작업하던 1970년대 초반은, 페미니즘 내부 논쟁이 여성 억압의 주요 원인이 가부장제인지 자본주의인지를 규명하는데 초점을 맞추던 시기였다. 또 당시는 프랑스 사상계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종합이 널리 유행하던 시기이기도 했는데, 그 방식은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1972), 그리고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1974)의 경우처럼 니체를 매개로 하기도 하고, 장-조셉 구(1973)의 경우처럼 헤겔을 매개로 하기도 했다. 정신분석학의 훈련을 받은 사상가로서 이리가레는 마르크스를 “정신분석”했는데, 이는 다른 주요 서양 사상가들에 대해서도 실행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20세기 프랑스 사상계의 헤겔주의적 조류로부터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았으며, 자본주의 대 가부장제라는 페미니즘 논쟁에 대한 그녀의 공헌은 두 가지 사회경제적 체계에 대한 변증법적 분석을 강조한 것이었다(1985b, 82).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는 “체계”로서 주체에 외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교환 형태로서 주체의 구성 자체에 내재한다는 점이다. 교환은 항상 주체를 구성하는 질료(matter)이다. 비록 이리가레가 주체가 교환체계에 의해 생산된다는 통념을 마르크스와 공유하긴 하지만, 그녀는 주어진 생산 수단의 산물로서의 주체보다는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과정을 통한 상징적 교환에 의해 형성되는 물질적 주체를 강조한다. 이리가레에게 일차적인 것은 잠재적인 주체-주체 관계이며, 그녀가 볼 때 주체-대상 관계는 남성적 사고의 한 형태다. 그녀의 요점은, 가부장제 안에서 남성 주체가 여성 타자를 여성으로서(in the form of women) 인정하지 못했고, 여성 타자를 자신의 타자, 자신에게 귀속된 타자로 정의하는 단일한 보편적 존재로 스스로를 확립했다는 것이다(Irigaray, 1985a).
이리가레의 작업은 초기부터 넓은 의미에서 현상학의 한 형태다. 그러나 이리가레는 주체가 중성적이라기보다는 남성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식별하는 한편, 자신은 철학의 주체에게 “물 자체”, 대상, 타자로 여겨지는 위치에 있는 여성적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녀의 책 『거울』(1985a)은 남성에게 타자로 등장하는 어떤 이―여성―가, 남성의 타자로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의 타자로서 목소리를 찾으려는 시도다. 초기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제2의 성』(1954)에서 여성의 타자성 문제가 여성들이 주체로서 자기주장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과 달리, 이리가레는 인정의 변증법이 생겨날 수 있는 문화적 과정을 문제화한다. 만약 문화의 양식 자체가 역사와 구조 모든 면에서 남성적이라면, 여성이 어떻게 남성적 존재가 되지 않고서 그 문화 안에서 주체로서 표상될 수 있겠는가? 이로부터 오늘날 논란이 되는 이리가레의 모방(mimicry)의 기술, 실험적인 정식화가 도출되는데, 이는 남성에게 여성적인 것으로 등장해 온 것을 모방하여 다른 형태의 여성성(타자의 타자)이 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개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최초의 기술, 여성을/으로서 말하기의 경험에 불과하며, 이리가레는 이를 다른 방식으로 계속 발전시켰다(1985b, 76).
『자본』(1970)에 관한 그녀의 에세이 「시장에서의 여성」(Irigaray, 1985b)은 흉내(mockery)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리가레가 말하는 모방(mimicry)의 고전적 사례다. 그 글은 아마도, 심각한 문제는 고유한 의미에서 경제 문제일 뿐이고, 다른 교환들, 예컨대 욕망이나 인정 및 주체의 인정 욕구(desire for recognition)의 교환은 다소 하찮고 비물질적인 문제라고 믿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의도적으로 조롱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리가레의 의도는 아주 진지한데, 젠더의 문제가 경제적 교환에 본질적이고 젠더를 넘어선다고 주장하는 모든 형태의 경제는 사실 남성적 보편의 환상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그녀가 증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리가레가 남성동성(애)적(hom(m)o-sexual, 영어로 번역하면 "masculine homosexual") 경제라고 묘사했던 것으로, 여기서 벌어지는 모든 교환은 다른 남성들과 교환하려는(따라서 인정받으려는) 남성들의 욕망을 그 쟁점으로 한다(1985b, 171). 이성애의 공식적 옹호라는 외관(semblance)은 이 경제의 필수적 외피인데, 왜냐하면 이로 인해 리비도적 투여(libidinal investment)라는 문제가 고유한 의미에서 경제 외부에 있는 “성”과 자연이라는 여성적 영역에 표면상 위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1985b, 193). 만일 여성이 남성 욕망의 자연적 저장소로 기능하고 그 욕망이 적절한 장소에 보존될 수 있다면, 남성은 [마치] 육체와 욕망을 초월한 [것처럼] 중립적인 방식으로 경제적 능동성을 지닌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경제는, 남성들이 자신의 성을 부인하기 위해서만 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서로에게 공적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오직 남성들만이 합리적이고 공정한 교환을 보증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보편의 수준에서 활동하는 까닭에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특수한 성(과 욕망)이 평가절하(discounted)될 수 있는 유일한 성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신들끼리만 교환하려는 남성들의 욕망과 여성이 자신의 언어에 입각해서 교환시장에 진입하는 것의 불가능성이 도출된다(1985b, 175).
비록 마르크스(1970)가 교환 관계에서 [발생하는] 주체의 물상화(reification)를 비판함에도 불구하고, 이리가레는 그가 노동가치론을 강조하면서 질료의 “성”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은폐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이리가레가 하이데거처럼 거부나 수용의 방식으로 철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가부장제적 철학전통으로 분류하는데, 이는 그들이 그녀가 “물질적 인접”(contiguity)이라고 칭하는 것과 단절했기 때문으로, 그들은 물질성을 사회적 노동과정의 산물로만 해석했던 것이다(Irigaray 1985b, 73). 따라서 그녀가 볼 때 마르크스의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라는 통념은 육체가 중립적 질료로부터 가치를 만들어내는 생산력주의적 경제 모형에 기초한다. 마르크스(1970)가 가치생산에서 노동자들의 육체를 인정하긴 했지만, 그 노동이 생산한 가치는 여전히 물질(material)과 가치간의 이분법적인, 궁극적으로 형이상학적인 위계를 보존하고 있는데, 이는 중립적 육체가 보편적인 노동가치를 생산하는 중립적 질료에 작용한다는 가정 때문이다. 이리가레는 이와 같은 보편주의적 분석 배후에서 남성-여성의 문화적 관계에 속하는 근원적인 성적 도식을 식별해 낸다. 그녀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마르크스의 찬탄을 인용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여성성을 질료에 남성성을 형식에 귀속시킨 것을 부각시킨다(Irigaray 1985b, 174). 남성이 자신을 자신의 성과 질료로부터 회수하고(disinvested)나면, 이제 자연과 질료는 남성에 의해 형성되는 남성 자신의 산물이 된다(1985b, 174). 이렇게 해서 이리가레는 사회구조 안에서 현실의 여성들이 역사적으로 “질료”로서 기능해 왔음을, 따라서 그녀들이 설사 등장한다 하더라도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귀속시킨 형식을 통해서만 등장한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게 된다(1985a, 18). 바로 이 때문에 여성들이 여성으로서 말하고자 시도하지만 진지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ꡔ자본ꡕ(1970)에서 풍자적으로 상품을 여성으로 지칭하고 그것을 “가지는” 방법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성적인 의도를 지닌 것이라면, 이리가레는 그것이 다른 억압된 경제―여성이 상품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여성이 현전할 경우 곤란에 빠지는 경제―를 뜻하지 않게 드러내는 농담으로 분석한다(1985b, 175-76). 여기서 모방이 나온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대한 이리가레의 논평에서는 아쉬움이 표현된다. 이리가레는 다른 서양 사상가들과 달리 그들이 처음에는 분명히 여성의 착취를 인지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따라서 그녀는 여성들의 노동력이 최초의 재산이기 때문에 일부일처제 안에서 발생하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억압이 최초의 계급 억압이라는 엥겔스의 주장을 인용한다(Irigaray 1985b, 82).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러한 통찰을 더욱 발전시키는 대신, 이 일차적 착취를 역사의 초기 단계, 곧 신화적 기원으로 추방했고, 그 결과 이러한 착취의 문제는 그들의 분석에서 제외되었다.
이리가레는 가부장제적 착취가 역사적․구조적 모든 면에서 일차적이라고 보며, 이 때문에 그녀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라는 자신의 변증법의 실정적인 일차 항으로 가부장제를 위치시킨다(1985b). 영유에 관한 그녀의 분석은 이를 뒷받침하는데, 그녀는 자본주의가 질료를 제한된 특정한 재산과 고유성으로 착취․환원하는 생산양식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형이상학이 더욱 포괄적인 질문을 제한하고 차이를 동일자로 환원함으로써 존재를 존재자들의 현상태로 환원한다고 주장하는 하이데거(1980)의 주장의 한 판본이다. 그러나 이리가레는 존재와 존재자에 관한 하이데거의 질문을 두 주체들에 관한 질문으로 조정하고, 존재를 존재자(대상)로 환원하고 이를 불변의 신성(남성적인 다른 존재)으로 만들며, 타자를 여성적 존재자로 인정하길 거부하는 것은 남성적 존재자라고 분석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신은 아버지-의-이름으로 상징화되는 남성적인 보편적인 일반등가물로서, 이는 그들이 결코 될 수 없는 신성한 형식의 세속적 실례일 뿐인 남성의 독특한 형이상학적 보편 이상을 표상한다(Irigaray 1985b, 173). 따라서 이리가레는 남성들이 분열되고 소외되어 있다는 점에 관해서는 마르크스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녀가 볼 때 남성들은 더욱 근본적인 착취―남성적 주체가 자신을 초월자로 표상하기 위해 여성에게 질료와 육체가 되는 원치 않는 기능을 투사하는 착취―를 통해 자신들의 불가능한 이상을 유지해왔다. 남성은 자신의 가상에 따라 자신을 생산한다(1985b, 190).
그러므로 많은 좌파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리가레는 착취라는 질문에 맹목적이지도 무관심하지도 않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은 반세기 후에 [더욱 엄밀히 말하면] 스탈린주의와 동구 국가사회주의 이후에 대두됐는데, 때로 프랑스공산당은 이러한 [사회주의라기보다는] 반자본주의적 타자[에 불과한 체제]를 지지해야 한다는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마르크스주의가 제기한] 문제를 배제하지 않으며, 이리가레의 저술은 많은 면에서 착취의 종식 및 정의에 관한 관심과 마르크스주의 역사의 맥락을 전제한다. 따라서 그녀의 작업을 다소 “비정치적”으로 독해하는 경향은 별다른 사회주의적․공산주의적 문화유산이 없는 곳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 이리가레의 분석은 자본주의적 착취를 가부장제적 영유 충동의 또 다른 발현에 불과하며, 여성의 지위가 상이한 생산양식 안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진술한다(1985a, 121). 이리가레는 여성이 계급을 형성한다는 엥겔스의 주장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ꡔ제2의 성ꡕ에서 보부와르가 내린 것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Beauvoir 1954; Irigaray 1985b). 이는 여성이 전적으로 역사적인 범주가 아니라는 데서 일부 기인한다―여성들은 생물학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다. 그러나 보부와르와 이리가레 모두 현상학자이므로 생물학과 문화 간에 인과관계를 가정하지 않는데, 이 가정은 이제는 시효만료된 본질주의 논쟁의 최소공배수를 이룬다. 육체에 대한 해석은 양자 모두에게 결정적인데, 아마도 이리가레는 육체에 보부와르는 해석에 더 강조점을 둘 것이다.
마르크스적 언어로 육체를 해석하면서 이리가레는 여성을 계급으로 보지 않는데, 그녀들은 생산수단의 소유와 관련하여 다른 계급과 교환에 진입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녀들은 [교환의 주체가 아니라] 교환 및 생산수단의 “육체적 질료”다. 여성은 어머니일 경우에 사용가치이며, 처녀와 성판매여성일 경우에 교환가치다(Irigaray 1985b).3) 이러한 근본적인 착취에 맞서, 이리가레는 여성이 여성으로서 평가되고 여성적 주체로서 상징적 인정을 획득하기를, 이로써 모든 형태의 소외가 언명되기를 바란다. 그녀가 성적 차이를 우리 시대의 쟁점이라고 믿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 바(Irigaray 1993a, 5), 이는 다른 차이들이 덜 중요하다거나 특정 상황에서 우선권을 갖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성적 차이를 일차적이고 보편적인 차이로 인정하지 못한 실패가 모든 형태의 차이에 대한 영유적인 무시로 귀결되었다는 것이 그녀의 분석이 도달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타자에 대한 인정으로서 시민권

시민권에 관한 이리가레의 글은 동유럽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서양에서 인식상이든 사실상이든 민주주의가 불모인 상황의 결과로 시민적 영역과 시민권 문제에 대해 새롭게 관심이 대두되고 있는 일반적 현실과 부합한다. 급진주의자들은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의 마르크스의 분석에 의거하여 시민권의 문제를 사회경제적 불평등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부르주아적 자유주의로 전환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입장은 언제나 최소한 사회에서 장소가 있는 사람들, 즉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타고난 권리로서 사회경제적 영역에 진입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설득력 있었다. 점증하는 국제적인 이동과 불평등이라는 이중 압박은 추방된 사람들과 이민자들이 증가하고 있음을 의미했고, 더불어 이는 자격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기 때문에 장소를 갖지 못하고 유목 생활의 낭만이라는 것도 자신들을 불안정하게 만들 뿐인 사람들에게 중대한 문제가 되었다. 시민권(이리가레의 그것도 포함하여)으로의 선회가 가지는 한계는 명백하다. 하지만 만약 시민권이 소유의 자격과 결합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최소한 최초의 장소에 머무를 권리를 의미할 수 있다. 유럽의 시민권에 대한 이리가레의 제안은 유럽에서 변화하고 있는 사회정치적 조건을 고려하려는 시도이고, 그 제안은 가부장제의 개시 이래 여성들은 사회에서 그들을 주체로 인정하는 상징적 장소를 부여받지 못했다는 그녀의 분석을 기초로 한다. 유럽 국가들 내부에서 최근 여성이 시민적 권리를 획득함으로써 여성에게도 남성과 함께 공적인 장소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었지만, 아직 여성으로서 시민은 규정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이리가레는 시민권의 성별화된 정의로 선회했는데, 그녀는 그것이 경계가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시대에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감(a sense of identity)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리가레의 시민권에 대한 호소(appeal)는 인간이 존재하려면 인지 형식으로서 시민적 규정이 필요하다는 헤겔의 주장에 의거한다(1942, 50). 가부장제에 대한 초기 비판 이후 1990년대에 출판된 그녀의 작업은 성별화된 두 주체 사이의 인정의 변증법을 새롭게 작동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헤겔과 달리 그녀는 이것을 관념적 과정이 아니라 현실적 과정으로 파악하는데, 그녀에게 있어서 주체는 항상 성적이며 물질적으로 육화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보편은 내 안에 있다”는 통념은 수용하지만, 보편에 고유한 추상-강제(abstraction-compulsion)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녀는 두 개의 보편, 곧 남성적 보편과 여성적 보편을 제안한다(1966 43-48). 이것은 성별화되고 육화된 주체의 형상 안에서 보편주의를 확인하는 동시에 보편은 그것이 단일하기 때문에 보편적이라는 주장을 부인하는, 보편에 관한 역설적 통념이다. 이로부터 그녀는 인정에 관한 헤겔의 모델을 비판한다. 그것은 단일 주체라는 가정 때문에, 또는 다른 말로 하면 항상 이미 매개되었든 매개되지 않았든 (최소한 이성적 사고 안에서는) 단일화된 개념으로서 출발하는 동일성을 가정하기 때문이다(Irigaray 1996, 37). 이리가레에 따르면, 그 자체 내부에 타자성을 포함하고 있는 동일자(the same)는 그 타자성을 자신의 언어로 형성한다. 따라서 그것은 타자성이 아니고, 절대적 타자성은 확실히 아니다. 일자(一者, one)의 기초 위에서 생성하고 발전하는 것은 무매개적 전체로부터 일자를 분리시켜야하고 따라서 전체의 부인 속에서 파괴되어야 하는 부정의 긴장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생성의 노동은 일종의 역사적 폭력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Irigaray 1997). 폭력과 역사를 동의어로 만드는 것은 역사적 발전과 평화적 진화라는 사상 모두에 전념하는 이리가레와 같은 철학자에게 달갑지 않다(Irigaray 1996, 3).
이리가레가 헤겔의 변증법을 반대한다고 해서 그의 변증법이 구체적인 인간 타자들의 실존 자체에 주어진 타자성을 부인한다는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그녀가 보기에 그런 많은 타자들은 일반적으로 존재자의 단일한 실제 형식, 즉 남성적 형식의 다양한 사례로 동일시 되어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녀는 절대적 타자성이 두 젠더의 형식 속에 항상, 그리고 이미 존재하고, 만약 그것이 그들 사이의 공간[따라서 하나의 성이 일방적으로 영유·합병하거나 제거할 수 없는 공간]으로 인정된다면 부정은 파괴되는 대신 창조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리가레에게 있어 부정은 지식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동화하도록 추동하는 순간으로서 존재자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침범될 수 없는 경계, 곧 결코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타자의 경이로움과 신비를 일깨우는 사이의 공간이다(1997, 63). 그렇다면 그것은 더 이상 당신이 아닌 것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당신이 아닌 것을 인정하고 다른 성을 굴복시키는 대신 성별화된 동일성으로 회귀함으로써 당신 자신이 되는 것이 문제다.
이리가레는 그녀의 글에서 이렇게 두 성별화된 타자들의 변증법적 모델을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시킨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헤겔 철학 내에서 그 모델이 산재해 있다는 사실, 곧 그것은 모든 수준에서 각기 다른 순간에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필수적이다. 따라서 그녀는 개별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의 동학(dynamic)이 남성 시민과 여성 시민 사이의 시민적 수준에서 존재할 수 있는 동학으로 구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실로 그것은 자신의 실현이다(1996, 51). 그녀는 이것이 성적 선택이라는 문제와 아무런 관계가 없고, 오히려 주체의 성별화된 물질성을 부인하지 않는 객관적 동일성의 가능성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1997, 64-65).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가레는 사랑을 모든 수준에서 자신의 변증법의 원동력으로 만든다. 사랑은 타자가 존재할 수 있도록 하지만 서로를 소유하려고 시도하지 않고 각자가 자신을 책임지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문자 그대로 매혹으로 규정되는 듯하다(Irigaray, 1996). 이리가레는 사랑의 동학을 후기 하이데거(1975)의 존재의 운동과 어느 정도 유사한 등장과 철수의 운동으로 정식화하는데, 그녀의 작업이 진척됨에 따라 그 작업에서 이것은 점점 더 중요해진다(Irigaray, 2003). 사랑의 중요성과 유효성을 긍정함으로써 이리가레는 두 성별화된 타자를 위해 특정한 행복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확립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 『둘이 되기』(To be Two)(1997)에서 그녀는 인식과 애무(caress)의 현상학을 추구하며 어떻게 각각의 성이 다른 성의 공간과 그녀/그의 등장과 철수의 가능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양식에 따라 타자에게 등장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 이런 식으로 사랑에 관해 말함으로써 이리가레의 기획에 불가피하게 이상화된 요소가 도입된다. [그것이 이상적인 이유는] 이미 공적 관계에 존재하는 (갈등은 말할 것도 없고) 살벌함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해보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헌신이라는 대단히 감정적인 형식을 방임하는 정념(passion)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가레는 모든 사람들이 개인적 수준에서 자신의 성별화된 표현을 통해 타자를 인정하고 자신의 내부성을 발전시킴으로써 타자와 자신과의 무매개적인 관계를 개선하지 않는 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개혁의 모든 시도는 실패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변화는 모든 사람의 영역 내에 있지만, 만약 변화가 발생하려면 사회정치적인 과정과 제도의 추진력과 지지를 요구한다. 이리가레는 사법적 과정에 의지하는 것이 착취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고 제시하지는 않지만, 만약 여성이 여성으로서 자신들에게 필수적인 권리를 얻고자 한다면 그것[사법적 과정]도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1993b, 82). 그녀는 많은 페미니스트들과 급진주의자들이 고수하는 법률적 개혁의 실용적 가치에 대한 회의론에 동의하기보다는 시민적 권리가 국가의 권력으로부터 개인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주장을 지지한다(Irigaray, 2000, 133).5) 따라서 그녀는 능동적인 시민(active citizen)이라는 통념을 옹호하는데, 이 통념은 1990년대 초반 영국보수당이 도덕적으로 책임 있는 사회 구성원들이 빈민을 위한 자선 행동에 참여하기를 요청하면서 사용한 통념과는 전혀 다르다(Plant 1991, 50). 오히려 이리가레에게 능동적 시민은 타자와의 사회적·시민적 교류를 통해 실현되고 등장하게 되는 존재다(2000, 23). 이것은 일종의 자유로 귀결되는데, 그것은 한나 아렌트(1977)가 이론화한 것―대의보다는 참여에 기초한 민주주의 안에서 타자의 현존에 의해 실현되는 자신이 될 자유―과 다르지 않다. 이리가레는 모두가 자신의 차이 안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고, 성인으로서 동등한 책임을 누리는 권리와 책임이라는 담론의 견지에서 동정(compassion)을 정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거부한다.6)
정치적 변화에 관한 이리가레 저작의 어조는 의심할 여지없이 유토피아적이지만 그 안에서 그녀는 마르크스를 포함한 훌륭한 혁명가들의 긴 계보를 따른다. 그녀는 청사진을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기 위한 다른 가능성을 개방하는 열쇠를 제공하기 위해 다른 사회 질서를 상상한다. 이것은 이리가레가 출현 중인 역사적 경향의 지평에서 발견한 디스토피아 때문에 그녀에게 필수적이고 중요한 작업이다. 이리가레는 생태적 위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더불어 세계화의 반향으로서 나타난 이동과 파편화가 증가하는 위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진다(Irigaray, 2000, 6). 장-조셉 구는 세계화의 과정을 초현대(ultramodern)의 군림과 관련짓는데, 그 속에서 현대적, 보편적 용어로 보장되는 교환은 일반적 등가물, 곧 보증도 표상도 없는 “교환 경제(commutative economy)의 조직적 활동”으로 발전했다(1994, 188). 그는 어떤 경계에도 속박되지 않는 이런 초현대의 기술은 이리가레가 분석한 현대성의 남성적-중립적 보편―개인이 자신으로 회귀하기 위해 필요한 그 무엇도 하지 않는 보편―을 강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리가레는 시민권과 유럽 연합과 관련하여 인종, 연령, 성과 같이 명백히 자연적 범주에 기초한 동일성과 민족주의의 회귀를 추진하는 것은 더 큰 초민족적(supranational) 공동체로의 진입으로 인한 동일성의 분해와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주장한다(2000, 49-58). 하지만 그녀는 이런 “자연적” 범주가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이유로 그것의 유효성을 부인하기보다는, 어떻게 사회가 자연적 영역에서 시민적 영역으로의 이행을 조직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족이 전통적으로 자연적인 것의 저장소를 구성해 온 조건에서 이리가레는 가족 구조의 문제를 민법에서 재공식화가 필요한 변혁을 겪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영역으로 제기한다. 가부장제적 가족은 사용가치의 공간, 그리고 가장(家長)―공적교환에서 이러한 사적 영역으로부터 자유로운 남성 시민―의 이해에 봉사해 온 자연적 재생산과 가내 생산의 공간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리가레는 아렌트와 달리 한 공간에는 자유를 부여하고 다른 공간에는 자연적인 것을 할당하는 공․사 구분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것이 수반하는 여성적인 것에 대한 착취는 별도로 하더라도 그것은 자유가 위협받거나 위협적이라고 생각될 때 방어적으로 복귀하게 되는 “종족의” 영역을 지지한다(Irigaray, 2000, 52).
이리가레는 자연적인 것이 더 이상 단순히 자연적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화로 존중받는 어떤 것이 될 수 있도록 그것을 재분배하고 양성하길 바란다. 그녀의 주장은 여성적인 것에 자연적인 것을 위탁하기보다는 각각의 성이 다른 자연과 문화를 표상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성적․여성적 두 영역 안에 자연과 문화 사이의 투사된 연속성이 존재하고, 그것은 남성적 문화와 여성적 자연 사이의 위계적 분리를 대체할 것이다. 이로부터 이리가레는 일차적으로 성별화된 개인으로 인식된 개별 남성과 여성을 기초로 한 가족의 규정을 옹호할 수 있다(2000, 97). 그녀는 최소한 두 개인으로 구성된 실체로서 가족을 인식함으로써 가족을 하나의 단일한 실체로서 이해하고자 하는데, 그 안에서 다른 성에 대한 인정은 타자의 문화와 자연에 대한 존중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리가레는 여성이 공적 영역에서 상징적으로 인정된 개인으로서 현존할 때, 그 존중이 남성적․여성적 개인들로 구성된 시민적 영역으로 이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방식으로 그녀는 모든 수준에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 그리고 자연과 문화 사이의 연속성을 파악한다. 그녀는 필수적이지만 비가시적인 자연적 기능을 통해 자신의 자유를 키우는 자유로운 남성의 세상 대신에 자연적이고 문화적인 책임을 공유하고 그 책임을 각자의 방식으로 수행하는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 시민적 공간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여성과 남성은 개인이 방어적 집단 동일성 없이도 다른 선택(종교적 자유 같은)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일차적으로 그 자체로 자신과 동일시하고 여성들과 남성들인 자신들로 회귀할 것이다(2000, 52).
그러므로 이리가레는 성차의 우선성에 기초하여 성별화된 시민권을 주장하는데, 그것은 성별화된 개인으로서 인간의 물질성에 결부된다. 이리가레에게 있어서 성적 차이는 차이의 패러다임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차이보다 성적 차이를 우선시하는] 차이의 또 다른 위계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이리가레의 의도와 거리가 먼 것이다. 그녀는 다른 형태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문제가 성적 차이를 정치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나타날 것이라 진정으로 믿는다. 시민권에 관한 그녀의 좀 더 최근 이론화는 집단으로서 여성들에 대한 역사적 착취에 의한 것만큼이나 인종적, 종교적 또는 문화적 차이의 정치적 중요성에 관한 관심에 의해 추동되었다. 따라서 그녀는 여성의 권리라는 의제를 다른 차이들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맥락 속에 위치 지우려고 시도한다(Irigaray, 2000, 14). 그러나 그녀는 다른 성을 인정하는 교육이 교환에서의 차이에 근본적인 민감성을 야기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성별화된 시민권을 통해 성적 차이를 인정하는 과정은 다양한 형태의 차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정치적 행동으로 제시된다. 그녀는 만약 인종, 연령, 계급, 능력 또는 다른 모든 종류에서의 차이가 성적 차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타자에게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성별화된 타자와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타자를 인정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인 것이다(2000, 6).7)
이리가레의 정치적 프로젝트의 이해관계와 목적은 분명 이상주의적이고 의욕적이다. 특수한 문화적 전통이 젠더를 인식해 온 방식에 따르지 않고 성적 차이라는 사실을 보편주의적인 언어로 정치적 제도 속에 표상할 수 있을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녀의 성적 차이의 철학은 성적 차이의 문화에서의 세계적인 균일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정반대다. 하지만 여성들과 남성들에게 적합한 권리와 법을 만드는 과정은 그런 문화적 차이를 제거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것들[권리와 법]을 규정하고 표상하는 방법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설령 성적 차이 주장의 유효성을 받아들인다 해도, 이 문제는 유럽의 입법 제도에서 젠더에 관한 지배적인 정치적 사고로부터 여전히 멀리 떨어져있는데, 차이가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고는 평등의 이상에 묶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럽의 발의

서양의 많은 이들이 여전히 성적 차이의 철학이라는 사상에 익숙해지려고 시도하고 있을 당시에 이리가레는 이미 이탈리아 좌파민주당의 구성원들과 함께 성적 차이의 원리를 구체화한 유럽적 시민권을 수립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1994년 그녀는 유럽의회의 이탈리아 의원이면서 볼로냐의 시장인 렌조 임베니와 공동으로 유럽의회에 성별화된 시민권을 제안했다. 임베니의 제안은 그가 바라던 형태로 실행되지 않았지만, 성별화된 민법과 시민권을 위한 이 프로젝트는 성적 차이가 정치적 이상으로 추구될 수 있는 방법을 조명한다.
공간이자 문화로서 이탈리아에 대한 이리가레의 애정은 그녀의 작업을 통틀어 다양한 곳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민주주의는 둘 사이에서 시작된다』(Democracy Begins Between Two)에서 그녀는 안토니오 그람시와 엔리코 베를링게르를 인용하면서 인간적 존엄성, 사상, 시심(詩心)을 강조하는 이탈리아 공산주의의 독특한 전통에 대해 흡족하게 이야기한다. 그녀는 지역 평의회 지도자들의 초청을 받아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의 평등기회위원회의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시민권 훈련 활성화를 도왔다. 이것은 학교에서 모든 연령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작업을 포함하는 것이었고, 그녀는 그 후에 소녀와 소년 사이의 관계를 다룬 그 아이들의 그림책을 출판했다. 그녀가 임베니와 교류한 것은 1989년부터인데, 그 때 그들은 임베니의 시장 선거운동 시기에 유럽적 시민권의 창조에 관해 토론하기 위해 한 공식 회의에 함께 참석했다. 볼로냐에서의 그 만남이 이리가레에게 가지는 중요성은 임베니에게 헌정된 책,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I Love to You, 1996)의 서문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 서문과 『민주주의는 둘 사이에서 시작된다』(2000)에서 그녀는 성적 차이에 대한 사법적 인정을 달성하기 위한 작업의 수단이자 성적 차이의 과정(process)에 대한 법률로서 유럽민법을 공식화하려는 그들의 공동 노력을 묘사하고 있다. 다른 성과 함께 정치적 목표를 위해 작업하는 것은 성적 차이의 동학(dynamics)의 가능성이라는 이리가레의 이상에 있어서 중요하다. 그러한 동학이 폭력적으로 부인되지도 억압적으로 위계적인 것도 아닌 한에서 말이다. 그녀는 그것[동학]을 성적 차이의 실현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그녀가 이탈리아에 양성의 후원 성자 혹은 보호자―아시니의 프란시스와 시에나의 카트린느―가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2000, 40).
이리가레가 제도적인 개혁을 지지하기는 하지만, 그녀는 정치적 과정의 본질을 바꾸는 것도 목표로 하고 있다. 단일한 지도자가 대표하는 추상적이고 합리적이며 정당한 원칙이라는 자유주의적 이상은 그녀의 정치에서 육화된 커플로 대체된다. 이렇게 커플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리가레의 제안은 왕과 왕비가 땅에서 신의 원리를 구현하고 왕의 죽음 앞에서 문자 그대로 분해의 위험이 있는 사회적 질서를 왕의 육체가 상징적으로 지탱하는 전근대적인 군주제 질서에 동화될 위험이 있다. 하지만 그런 동화의 위험은 그녀의 성적 차이의 프로젝트에 고유한(endemic) 것인데, 그것은 때때로 성적 차이라는 가부장제적 위계제도를 다시금 긍정하는 것과 동일시되어 왔다. 이리가레의 정치적 발의에서 커플은 단지 각 성의 가치를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이성(理性)의 한계를 표상하는 타자의 영속적인 요구 때문에 민주주의를 지속시키는 방식으로 그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두 주체의 존재는 둘 사이의 대화를 통해서만 인정․지속될 수 있고, 이리가레가 민주주의의 전제 자체로 인용한 것이 바로 타자성과 대화의 필수불가결함이다.
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이리가레는 인간에게 우선권을 부여한다. 그녀의 민주주의 원리는 소유 혹은 재산에 대한 존중 대신에 다른 개인들에 대한 존중에 기초한다. 그녀는 각각의 인간은 시민권을 완전히 부여받을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주장한다(1996, 53). 그러므로 성별화된 시민권에 관한 그녀의 제안은 구체적으로 소유의 권리에 우선하는 인간의 권리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그녀는 각각의 성이 가진 권리와 의무가 성문화된 민법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2000, 57). 민법이라는 개념 자체는 주체들이 권리를 단편적인 방식으로 획득해왔던 영국의 정치적 전통에서는 다소 생소하다. 하지만 여기서 이리가레의 준거점은 1804년과 나폴레옹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프랑스의 민법이다.8) 이 법에 의하면 여성들은 부인이나 어머니로 규정되고 결혼한 여성들은 모든 법적 권리와 책임을 박탈당한다. 남성 시민의 권리는 대개 재산의 소유권에 관하여 규정되어 있다. 도로시 스테슨(1987)이 주장한 것처럼, 1965년과 1975년 사이에 이루어진 프랑스 가족법의 전면 개정은, 비록 다른 많은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늦은 것이긴 해도, 평등을 위해 프랑스 민법의 가부장제적 가정의 토대를 상당히 무너뜨린 것이었다.
이리가레가 보는 바와 같이 그런 개정이 가진 문제는 그것이 남성/중성으로서의 시민이라는 규정과 재산 문제에 관한 권리에 기초한다는 점이며, 그러므로 성별화된 인간에게 독특한 문제들은 다룰 수 없다는 점이다. 이리가레는 강간과 같이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특정한 행위가 시민 사회 전체에 대한 범죄라기보다는 개인에 대한 범죄로 여겨지고, 따라서 각각의 경우에 피해를 당한 측은 집합성(collectivity)에 의해 지지되는 비폭력이라는 적극적 원리에 호소하기보다는 범죄를 입증해야만 하는 개별 여성이라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이런 문제의 부정적 결과를 주장한다(1993b, 87).9) 임신의 경우와 같은 또 다른 예에서 여성의 조건이라는 특정한 문제는 사회가 조직되는 방식으로 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인 기준으로부터 불편한 탈선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이리가레는 여성을 일반적이고 중성적인 시민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적극적으로 규정하는 것에 기초한 여성을 위한 권리를 욕망한다. 1988년에 이미 그녀는 처녀성과 모성의 권리를 통합하면서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권리와 인간적 동일성에 관한 권리를 포함한 여성의 기본권에 대한 제안을 제출했었다(1993b, 86). 이 제안을 통해 이리가레가 여성들에게 무엇이 여성에게 가장 적합한가에 관한 토론을 독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일단 성별화된 권리가 확립되고 나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에 관해 하나의 과정을 개시하려 한다. 그러나 이 제안을 정교화하면서 해석의 여지가 있는 구체적인 권리들의 언어(language)로 제시된 그런 권리가 얼마나 논쟁적일 수 있는지가 즉시 명백해졌다. 이리가레에게 여성을 위한 인간적 존엄성의 권리는 광고에서 여성의 육체에 대한 상업적 착취의 중단과 국가 혹은 종교 집단에 의한 모성의 착취 금지를 포함한다(1993b, 86).
이리가레는 여성을 위한 인간적 동일성을 요구하면서 여성들이 육체-질료(body-matter)로서 이용된다는 자신의 분석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녀는 처녀성과 모성에 대한 권리를 요구함으로써 여성 육체를 이용하는 가부장제를 강화한다는 주장에 노출된다. 그러나 그녀가 의미하는 처녀성의 권리는 [한편으로] 자신에 대한 정절(fidelity)이라는 의미에서 상당히 일반적이고, [다른 한편으로] 가족, 국가, 종교 집단에 의한 처녀성의 상업적이고 사회적인 착취에 맞서 자신의 육체적 통합성을 통제할 수 있는 소녀의 권리라는 의미에서 상당히 구체적인 어떤 것이다(1996, 87). 마찬가지로 모성에 대한 권리는 여성의 육체가 여성들을 잠재적인 어머니로 만든다는 시민적 인정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어머니가 될지 여부를 선택하는 권리의 문제다(1996, 87). 이것은 분명 여성을 어머니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낙태의 권리에 대한 요구의 한계로부터 추동된 것으로, 그녀가 보기에 그것은 여성의 조건을 단일 개인의 규범으로부터 부정적인 탈선으로 위치 짓는 또 다른 제한적이고 사후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따라서 권리로서 그것은 쉽게 취소될 수 있고, 많은 유럽의 국가에서 단지 그때그때 사례별로 부여될 뿐이다. 이리가레에게 모성에 대한 권리는 여성이 어머니가 될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여성의 시민적 권리를 인정하는 것으로, 그러한 선택이 부여됨으로써 여성을 자연적 기능을 초월한 존재가 된다(2000, 44). 이로부터 이리가레는 성별화된 개인의 육체와 생활을 존중하는 노동 시간의 필요성과 아버지와 어머니의 구체적인 권리를 규정하는 법의 필요성에 관련한 제안으로 나아갔다(1993b, 87; 2000, 45).
이리가레에게 성별화된 시민권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치적 개입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바로 그녀와 구(舊)이탈리아공산당의 공동 협력과 1993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조항들이었다. 조약은 유럽연합의 시민권에 관한 조항을 작성했고, 시민적자유및내무위원회는 렌조 임베니에게 유럽의 시민권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할 임무를 부여했다. 임베니는 자신의 선거 운동기간 동안 시민권 문제에 대해서 이리가레와 함께 작업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그들은 둘 다 유럽의회위원회(European Parliamentary Commission)의 입안 그룹(Planning Group)에 임명되었고, 이리가레는 『시민권 법률 초안』을 제출할 것을 요청받았다(Irigaray 2000, 69~72).
이리가레와 임베니가 서명한 이 『초안』은 유럽연합 소속 국가의 국회에서 대표자로 선출된 유럽의회의원들과 다양한 관심을 가진 조직, 집단, 개인들에게 회람되었다. 그것은 유럽연합의 시민권에 관한 주장을 간명한 용어로 제시하고 있으며, 여기서 개괄한 것처럼 이리가레의 철학적 논의에 빚진 바가 크다. 그것은 문화적 차이 문제, 가족을 재구성할 필요, 젊은 사람들과 두 성들의 권리를 제기할 필요, 그리고 연합 소속국가의 상이한 법률에 내재한 다양한 문제와 세계인권선언과의 차이 등과 같이 특정한 사회정치적 현상들을 고려하려는 시도다. 그것은 (심지어 육체마저도 그 대상이 되는) 소유권에 우선하여 남성시민과 여성시민이 자신과 타자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이런 문제들을 제기하는 변화를 요구한다. 물론 여성에게 적절한 권리의 필요, 따라서 남성시민과 여성시민의 존재를 인정할 필요 역시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둘 사이에서 시작된다』(Irigaray, 2000) 에 부록으로 전문이 수록되어 있는 임베니의 「연합의 시민권에 관한 보고서」는 이리가레가 작성한 초안의 관심사를 상당수 반복하고 있다. 그것은 편협하게 사고된 경제적 요소를 넘어서, 개인에 대한 적극적인 시민적 인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시민들의 권리는 더 이상 법률에 의해 영향 받는 경제적 또는 시민적 이해의 방어를 통해서가 아니라 적극적인 용어로 규정되어야 한다. 연합의 시민은 단지 경제적 주체가 아니고, 따라서 존재의 총체(totality)는 개인 상호간의 인정에 기초한 사회적 관계의 구조화를 옹호하는 방식으로 적극적 권리로서 표상되어야 한다.(Irigaray, 2000, 209)

보고서는 포괄적인 문서로서 시민적 개인의 인정을 원칙으로 제시함과 동시에 다양한 문화적 전통을 발전시킬 권리를 제시할 뿐 아니라 고용, 의료, 환경, 교육에서의 균등(parity) 문제를 다룬다. 그것은 유럽 내 인민의 자유로운 이동뿐만 아니라 다른 회원국에서도 선출권과 피선출권을 요구함으로써 연합의 단일성(unity)을 주장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연합 내 민주주의의 기초로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필요성을 주장(affirm)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자신과 타자의 자유에 대한 소극적 규정(개인의 영역에서 타인의 비-간섭)뿐 아니라 개인의 시민적 동일성을 강화하는 적극적 규정에 기초하여 공존을 가능케 하는 규범의 창조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다-민족적․다-문화적․다-종교적인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문화적 다원성은 새로이 개인적 자유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시민, 민족, 문화간의 민주적 연합의 기초로서 여성과 남성간의 차이를 존중할 필요성을 암시한다. 새로운 긍정적 규범에 기초한 더 광범위하고 무엇보다 사법적으로 인정되는 주체성의 영역을 창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그 결과이자 전제로서 남-여 관계의 광범한 재규정을 포함한다. (Irigaray, 2000, 210)

1994년 1월 투표에서 유럽연합의회는 「보고서」를 승인하지 않았다. 수많은 이유가 있으며, 모든 이유가 이론적이거나 정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한편으로 몇몇 이유는 의회에서 지지자가 부재했고 잠재적 지지자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데 주어진 시간의 부족처럼, 민주주의 정치에서의 실제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보고서」에 대해 수많은 우익적 개정안이 제출되어 통과되었고, 그 결과 임베니는 사실 자기 자신의 보고서에 반대하는 투표를 요청했는데, 그러나 그는 당시에 그것이 수용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임베니의 「보고서」에 대해 이리가레가 공식적으로 제시한 논평에서도 드러나듯이, 그것이 고려된 곳에서[유럽의회에서] 남녀의 차이를 인정할 필요를 주장하는 것이 그것이 수용되는 데 특별한 장애가 되었음은 명백하다. 여성권리위원회(Commission for Women's Rights)는 남성들과 여성들 사이의 차이에 대한 존중이라는 사상을 개인적 선택에 대한 존중이라는 사상으로 대체했다. 차이와 적극적 권리라는 이리가레의 민주주의 대신에 그들은 시민적 권리보다는 사회적 권리에 더 초점을 맞추면서 평등한 기회와 비차별을 요구했다. 고용의 영역에서 평등은 여성으로서의 삶이라는 더욱 포괄적인 맥락에서 여성의 노동문제로서 고려되는 대신, 자율성의 획득이 중요한 요소로 강조되었다. 평등과 경제적 자율성에 관한 이런 문제들이 1960년대 이래로 페미니즘의 의제이긴 했지만, 이리가레에게 그런 문제들은 여성이 남성의 세계와 관련하여 결여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여성들의 부정적 동일성을 표상한다. 여성은 가부장제에 의해 남성과 다르다고 규정되어 왔다는 이유로 자신의 차이를 부인할 이유가 없다는 그녀의 분석은 분명 많은 여성의원들에게는 이해되지 않았거나 아니면 남성과의 차이라는 사고를 강화하는 것이 여성들의 열등성을 보증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잠재적으로 위험한 것으로 보였다.
유럽연합의회의 절차에 대한 개입의 결과로 이리가레는 여성들을 대의하는 위원회에 앉아있는 여성들이 놓인 지반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는데, 만약 그녀들이 여성의 이해를 대의하지 않는다면 [그녀들의] 자격은 순전히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점]인 것이고, 이는 이리가레가 보기에 진정 퇴행적인 움직임이다(2000, 83). 그러나 여성의 이해를 규정하는 것은 정치적인 문제, 곧 여성을 위한 적극적인 권리의 필요성을 수용하는 것조차 토론의 여지가 있는 문제로 남아있다.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이리가레의 이해와 특정 제도(institution) 안에 있는 다른 이들의 이해 사이의 차이는 이리가레의 성적 차이의 철학이 현재의 정치적 주류로부터 어느 정도로 평가절하 되는지를 드러내준다. 가부장제가 여성적 존재를 유사-보편적인 남성적 존재로 영유한다는 이리가레의 분석은 그녀가 여성의 시민적 권리, 특히 그녀들의 성별화된 육체와 관련된 시민적 권리에 대한 상징적인 인정을 요구하는 방향을 지시하도록 한다. 평등이라는 자유주의적 목적은 항상 법 앞에서 육체의 차이에 대한 무관심을 강조했고, 사회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유의미한 자유로 나아가는 방법으로서 사회경제적 권리에 우선권을 부여했다. 이리가레의 정치적 기획은, 만약 그것이 지속되고 성공적으로 발전하려면 이러한 지지자들의 지원을 요구할 것 같다. 이리가레의 철학적 주장이 유럽에서 더욱 일반적인 이해를 얻지 못한다면 그런 지지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정치적 발의는 어쩌면 시대를 앞서 간 것일지도 모른다.

1) 1990년에 출판된 소책자 “Une attention au souffle dans la vie, la pensee, l'amour”에서 이리가레는 다음과 같이 쓴다. “가부장제적 전통에서는 개인과 집단의 삶이 자연적 환경을 넘어 질서 잡히는 것이 바람직하고 실행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소우주로 지칭되는 육체는 대우주로 지칭되는 우주로부터 단절된다. 육체는 그 감각과 생생한 지각, 예컨대 낮과 밤, 계절, 식물의 생장 등으로부터 소원해진 사회학적 규칙과 리듬에 묶여 있다. 이는 빛과 소음, 음악, 향, 심지어 자연적 맛의 경험조차 더 이상 인간적 자질로 계발되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지각을 영적으로 발전시키는 훈련을 받기보다, 육체는 더 추상적이고 사변적이고, 사회-논리(socio-logical)인 문화를 위해 감각으로부터 분리된다.”(1990, 5, 필자 번역). 본문으로
2) 쓰기로 했던 책은 마르크스와 불(fire)에 관한 것이었다. 본문으로
3) 마르크스에 대한 이리가레의 논의(engagement)가 더 자세히 분석된 글을 원한다면, 나의 책, Luce Irigaray and the Question of the Divine (2000)을 보라. 본문으로
4) 공동체를 설립할 수 있는 이리가레의 성별화된 결합의 이성애주의(heterosexism)의 가능성에 관해 비판적인 토론은 Jagose, 1994와 Deutscher, 2002를 보라. 본문으로
5) 그녀의 주장은 그녀의 작업에서 영향을 받은 아드리아나 카바레로 같은 이탈리아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과 대비된다. 카바레로는 생활세계의 사법화(juridification)에 관한 하버마스의 관심을 공유하고 있으며, 국가의 간섭과 공적 생활에서 분리된 “가정”을 여성의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본문으로
6) 비록 이리가레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시민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특히 민법에서의 성인 연령과 결혼이 허용되는 법적 연령 사이에 존재하는 불일치와 관련하여 젊은이들의 지위에 관심을 갖긴 하지만, 잠재적 시민으로서 소년·소녀의 권리와 책임이라는 문제를 실제로 제기하지는 않는다. 본문으로
7) 이리가레는 『동양과 서양 사이』(Between East and West)(2000)에서 이런 주장을 더 발전시키는데, 여기서 그녀는 성적 차이의 문화가 다른 인종과 전통간의 구조적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 글에 그 글에 대한 평가를 포함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이리가레 주장의 불충분한 점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Deutscher의 글(2003)을 보라. 본문으로
8) 임베니의 『연합의 시민권에 관한 보고서』에 대한 논쟁에 관한 이리가레의 평가에서 그녀는 유럽의회의 한 영국의원이 민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했다는 점에 주목한다(2000, 92). 본문으로
9) 남성에 대한 강간에 관한 문제는 어떤 금기에 종속되어있다(아마 틀림없이 남성들은 그들의 육체적 존재와 그것에 수반되는 취약성을 부정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남성들이 비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은 더 많은 기소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여기서부터 남성에 대한 강간이라는 사실에 대한 선재된 시민적 인정이 도출된다. 이것은 남성의 폭력을 여성의 폭력과 필연적으로 동등하게 다루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은 확실히 남성들의 육체와 그것에 대한 학대라는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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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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