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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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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은 페미니즘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유나경 | 회원, 공공연맹 기획부장
노동조합은 페미니즘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1)
유나경 | 회원, 공공연맹 기획부장

1. 여성과 관련된 정세와 지형 개괄

1) 노조를 둘러싼 '여성' 정세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경제위기 상황은 노동유연화 정책을 필두로 하여 불안정 노동층을 꾸준히 형성해 왔다. 불안정노동의 확산을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은 기존 남성중심의 정규직 노동력을 극심한 노동 강도나 각종 세련된 통제전략(임금피크제, 연봉제, 각종성과관리 지침, 차등성과급 등)으로 관리하는 한편, 여성인력을 활용하여 불안정 노동층으로 대거유입, 여성 노동층을 일종의 '사회안전망'으로 활용해 왔다.
이는 간단한 통계를 봐도 금방 증명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성경제활동 인구가 1천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는 5년 전보다 78만 명 증가한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3년 현재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48.9%선이며 여성취업자는 900만 명이다. 그 중 임금근로자는 61.5%를 차지하는데, 임금근로자의 70%가 비정규직이다. 이 여성들 대부분은 3차 서비스산업에 집중되어, 불안정노동, 저임금, 성별 격차 심화,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집약된 주체가 되었고, 여성은 지속적으로 근로빈곤층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성 차별적 노동시장은 '빈곤의 여성화', '비정규직의 여성화' 라는 분석적 어구의 등장에서 보듯이 어느새 고착화되었고 일종의 산업예비군으로 취급되고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정부정책을 들여다보면 여성부의 여성가족부로의 개편과 건강가족기본법 시행, 저출산 시대 노동력 부족에 대비한 출산장려정책의 일환인 1·2·3 운동2)에서부터 독신세3)논란은 모두 여성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결여된 채, 여성에 대해 몰성(沒性)적이고 도구적으로 접근한 천박한 인구정책의 결과라 생각된다.

2) 노조 내 여성의제 관련 지형

<"계급관계=보편=상위" / "여성문제 = 소수 = 특수">

위의 식은 노조 내 여성의제와 관련한 인식을 단순하게 표현한 것으로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되고 있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여성의제의 진보성엔 민감하여 여성위원회나 여성국 등을 노조 내에 정치적, 수사학적으로 배치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계급의 문제가 여성의 문제와 분리된 것으로 인식한다는 데 있다. 현재 노동운동이 이야기하는 '노동해방세상'의 한계는 실재하는 성적 차별 및 성적 차이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4) 이러한 문제는 노동조합의 '몰성성'을 지속시키거나 지금까지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한편 노조가 여성의제를 접근하고 해결하는 방식도 법과 제도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노총의 10주년 여성정책 토론회 자료를 보면 1970∼80년대 전투적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는 있으나, 최근 2000년에 와서는 많은 여성단체들이 제도권 내에 편입되고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도 이의 영향을 받아 고용할당제, 승진할당제, 모성보호법안, 여성할당제 등 법·제도 개선에 상당한 역량을 투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한적 제도개선과 서비스, 소득지원 등으로 여성의 빈곤과 비정규직화를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며, 법·제도개선에의 치중은 여성 내부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더구나 여성관련 각종 법과 제도의 입법 취지를 자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는데, 이것들은 대부분 여성의 가정 내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한 보조적 장치로서 제안된 것으로, 여성역할에 대한 정부의 보수적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2. 여성의제를 둘러싼 쟁점에 대한 견해

1) 법·제도 개선을 중심으로 한 여성운동(소위 '주류 여성운동')에 대한 평가
: 비정규, 빈곤여성을 외면한 '엘리트여성을 위한 노조의 여성운동(여성의제)'이라고 덜미를 잡힐 수 있다.

1987년 고용평등을 위한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1990년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위한 영·유아 보육법 제정, 2000년 출산과 육아의 사회분담화 시작, 2001년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 시작, 모성보호의 사회화를 위한 제도 개선, 성 차별적 해고에 대응하는 법정투쟁 지원, 직장 내 성희롱 근절을 위한 제도개선 등 여성운동이 그동안 힘써왔던 제도개선은 오늘날 여성노동자의 고용위기와 빈곤화 앞에서 그 내용과 전술 모두 커다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70%에 이르는 비정규직 여성의 차별 앞에서 사실상 속수무책이며, 모성보호 사회분담도 재계약해야 하는 비정규직 여성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남녀평등의식의 함양, 승진할당제 등의 적극적인 조치들이 도입되고, 호주제 폐지, 보육의 공공성 확보 등이 진행되는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의 비정규직화, 정규직·전문직 여성과 비정규직 여성간의 계층 간 격차 확대 및 빈곤의 여성화가 빠른 속도로 함께 진행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여성의 현실이다. 정부가 여성단체와 함께 나서서 추진했거나 추진 중인 모성보호법, 성매매방지특별법, 여성가족부 출범, 건강가족기본법, 직장과 가사의 양립정책, 성인지적 예산제 등의 적극적 조치와 한나라당의 '가사노동화' 관련 법률 추진 등 최근까지의 흐름을 보면 여성과 관련된 250여 개 조항에 달하는 각종 법·제도는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여 완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의 난립은 여성이 처한 경제적, 사회적 조건의 양극화와 같은 구조적 문제점들은 은폐하고 제도적 극복을 위한 연대의 힘을 분산시킬 위험을 가지고 있다. 또한 노동조합을 이익조직으로, 여성단체 등을 공익을 추구하는 조직으로 보면서 차별을 긋는 경향은 여성운동을 엘리트 운동화하거나 중산층 운동화하였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한다.5)
2) 여성위원회, 여성국 : 타자화된 '여성', '끼워넣기' 식

노조 내 여성위원회, 여성국 등 여성전담부서의 설치는 정책적, 정세적으로 여성의제에 대한 근본적 접근으로 이루어진 자발적 조치라기보다는, 여성활동가들의 끊임없는 요구에 의해서 쟁취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는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당면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여성들의 기대치가 낮은 것에도 기인한다.
이러한 여성사업의 분리는 여성운동의 분리주의와 비슷한 양상과 결과를 초래한 측면이 존재한다. 즉, 여성과 관련된 문제는 조직적 차원에서 접근하여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여성전담부서로 전담시켜 여성위원회가 여성문제를 흡수하는 완충지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화'가 '소외'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6)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 내 페미니즘적 인식의 일상화, 여성의제의 계급적 요구화는 여성위원회(혹은 여성국)의 성인지적 관점의 확대와 제도개선 위주의 사업성향 탈피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여전히 여성위원회, 여성국의 역할이 중요하고 핵심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3) 할당제: 미완의 할당제로 주요한 과제 vs 소수여성의 엘리트화

노조 내 남성들의 권력 독점적 경향으로 성인지적 조직문화가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남성 중심의 성 독점성은 그 자체로 불구화된 보편성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물론 일종의 성주류화 전략인 할당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부정적 시각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 의결기구 내에 여성이 많아지면 여성의제가 많이 논의되거나 해결되는가
- 할당제에 의해 진출한 여성은 과연 페미니즘적인가
- 엘리트 여성 키우기, 할당제 여성직의 소수여성들 독점화 등

여성할당제 논의가 지나치게 '과잉'된 측면이 상당부분 존재한다. 이런 논의의 과잉과 비약으로 지금의 할당제가 상급단체의 의결기구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미완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규약이 통과된 후 성평등이 다 이루어진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7) 민주노총 산하 18개 산별·연맹 조직 중 할당제를 시행하고 있는 산별·연맹은 전교조, 사무금융연맹, 공공연맹 3개 조직뿐이며, 15개 지역본부 중에서는 서울본부, 광주전남, 인천본부 3곳, 단위노조로는 전국사회보험노조 단 1곳뿐이다.
오히려 평가해야 할 것은 할당제 시행의 유지냐, 폐지냐의 문제가 아니라 할당제가 형식적 제도로서의 젠더적 진보성을 담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사업 집행 혹은 실천의 장에서의 젠더적 진보성으로는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4) 여성독자노조 : '유지 vs 폐기'의 구도에서 벗어나기

여성 독자노조의 출발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대동단결'의 남성성과 노동자일반 운동에서 남성편향적인 노조운동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본격적 진전 속에서 여성에 대한 탄압과 착취가 공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으나 여성조직율도 낮을 뿐 아니라, 당시 여성노동자들의 특수한 현안을 노조 전체의 것으로 채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조건이었다. 노조 내 여성간부의 과소대표, 가부장문화, 성별분업(오피스-와이프) 역시 독자노조 출현에 주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여성독자노조를 평가하기 이전에 여성독자노조의 출현 배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 속에서 여성독자노조가 출현할 수밖에 없었던 - 당시 노조의 남성 편향적 - 조건이 현재 노조활동 속에서 충분히 제거되었는지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현재 여성독자노조를 평가하려면, '여성만을 조직하는 것'과 '여성주의적 노조'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여성들이 다수 조직되어 있다는 것이 독자노조 출현의 역사적 의미를 온전히 담보하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로 현 시기 여성독자노조의 역할을 재정의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억압의 집약적 당사자인 여성을 운동주체로 형성하여 대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활동을 전개하는 것은 건설초기와 다름없이 여성독자노조에게 여전히 중요한 역할이다.

5)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 여성노동에 대한 가치복원, 성별 분업 이데올로기 분쇄, 임금정책에 대한 젠더적 접근

여성 불안정 노동층이 확산되면서 3차 서비스산업이라는 특정업종이나, 같은 사업장 내 하위업무에의 여직원의 집중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성차별의 정치적 산물로서 기업은 채용 후 배치단계에서부터 여성은 낮은 가치의 업무를 담당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현실은 여전하다. 직종도 분산되어 있고 같은 직종에 남녀가 같이 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이런 조건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여성노동자들에게 그다지 유효한 슬로건이 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시급히 인식하고 이를 재구성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 가족임금(남성생계부양자모델)에 근거한 임금정책에 대한 전면적 수정과 노동가치의 개념 복원이 필요한데 이에 대해서는 모두 성인지적 접근, 여성노동에 대한 가치 복원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여성의 이익에 좀 더 현실적으로 부합하는 노동정책을 위하여 모든 형태의 여성노동의 가치를 부여하는 새로운 노동 개념을 정식화하는 것은 노동의 성적 분할을 극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단계이다.8) 이는 성별화된 권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3. 각종 사례와 기제를 통해 본 노동운동 진영의 젠더 의식

1) 일상활동

"여성문제 나는 잘 모르니까 알아서 해…" (요직의 남성간부)
"제목 좀 섹시하게 뽑아봐라" (선전문구 고민 중에)
" *** 가(여성) *** 사업장에 가면 조합원들(남성) 좋아할걸. 조직도 잘 되고…" (칭찬한답시고)
소그룹별 교육활동 때 서기는 꼭 여성, 진행자와 발표는 남성이 담당함
"그래서 우리(남성)보고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요" (양성평등 교육 중)

2) 집회투쟁

<철도 여승무원 집회 시 남성간부들의 발언록>
"꽃 같은 우리 여승무원들의 투쟁을 누가 막으려 한답니까"
"아리따운 여승무원 동지들과 투쟁하니 더 힘이 난다"
"얼굴 되지, 몸매 되지, 도대체 어디가 모자란다고 해고한단 말입니까"

위의 사례는 주로 대공장의 남성동지들의 젠더 의식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라 할 것이다. 특히 세 번째 발언에서는 같은 남성동지들도 '저건 우리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는 무언의 눈빛을 얼굴 찌푸린 여성동지들에게 보내왔다.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의 CCTV탑 점거 투쟁에서>
"저렇게 힘없는 여성들이 탑까지 점거하고 나섰는데, 경찰청은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장담하건대, CCTV탑은 웬만한 '힘 있는' 남성들도 올라가기 힘들다)

3) 포스터 혹은 상징물

아래 두 개의 포스터(두 종 모두 배포되지는 않았다) 사건에서 당시 노조활동가들의 젠더 의식이 바로 드러난다.

1999년 '당신만이 희망이에요'(투쟁조끼와 머리띠를 두르고 파업투쟁에 나서는 남편을 뒤에서 배웅하며 아기를 안아 든 여성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
2005년 '정규직 되면 결혼하자'(벤치에 남성이 여성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고, 서로 정규직 되면 결혼하자고 함)

노동절, 문화제 등의 걸개그림은 모두 남성노동자로 '노동자=남성노동자'로 상징화 된다. 특히 포스터나 상징물은 노동자들의 의식을 재전유하고 조직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다는 지점은 일상화된 성차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벼이 볼 문제는 아니다.9)

4) 성희롱, 성폭력
: 성희롱, 성폭력은 여성에게 가장 강력한 노동권 침해

노조 내 성희롱, 성폭력 문제는 단 한 번도 사건 그 자체로 인식된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 그것도 잘 나가는 활동가를 모함하려고 제기되었거나, 다른 불만이 있었거나, 정치세력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 성희롱, 성폭력 문제가 정치세력 간 갈등으로 비화된 사례도 있다.

<성희롱, 성폭력과 관련된 발언>
"훌륭한 활동가인데 꼭 그렇게 내쫓아야 되겠냐"
" ***파의 음모다"
"별 것도 아닌 걸로 성폭력이라고 호들갑이다"
"언제까지 이름 부르며 낙인을 찍을 거냐"(성희롱, 성폭력 사건 해결과정에서 가해자의 이름공개 문제는 쟁점이 된다)
성희롱, 성폭력 규정 제정 과정에서의 남성들의 저항

무엇보다 성폭력, 성희롱 문제는 일부 여성들에게만 우연적 혹은 재수 없어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며, 명확한 여성노동권 침해임을 분명히 자각해야 한다. 그동안 노조 내에서 발생된 성폭력 사건 이후 거의 모든 피해여성들이 일자리를 떠났다는 사실은 여성이 노동하는 사업장에서 성폭력은 저임금, 강한 노동강도, 불안정성, 해고위협…. 그 어떤 것보다 가장 강력한 노동권 침해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4. 노동조합은 페미니즘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1) 노조 내 '페미니즘' 실천의 의미
: 지금의 여성문제는 역사적 성별체계로서의 가부장제와 역사적 생산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가 역동적으로 결합해 만들어낸 사회적 구성물
: 여성운동(여성의제)은 정세적으로 변혁적, 계급적 성격을 가지며 이는 노조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초가 될 것임

여성이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불안정노동', '보살핌노동', '성적억압' 등 빈곤과 폭력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앞에서도 자세히 살펴보았다. '여성'이라는 의제, 혹은 그와 관련된 의제를 우회하고는 대안적 운동과 주체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특히 여성운동, 여성의제에 대한 관점 키우기와 페미니즘 문화가 노조의 전통적인 가치와 여성노동에 대한 분석에 접목된다면 사안과 정세에 대한 새로운 분석과 조직형태, 그리고 노조활동의 새로운 형태들을 생산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탈리아의 노조페미니즘을 잠시 소개한다. 1970∼80년대 이탈리아 노조페미니즘을 자세히 보고 연구할 필요가 있는데 이탈리아 노조는 노조페미니즘의 모범적 전형으로서 알려져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의의는 '150시간 코스'10)로 3대 노총의 여성노동자들의 함께 모여 페미니스트 그룹들 사이의 성, 건강, 낙태, 여성 노동의 문제와 같은 가장 결정적인 페미니즘의 주제들에 대해 공동의 행동을 이끌어냈고, 경험과 의견을 교환했다. 노동조합 여성 활동가만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그룹들 사이의 협동에 의해 '코스'가 계획되고 협력할 수 있었다는 데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첫 단계에서 성차별에 맞선 투쟁을 진행하였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성적 차이11)와 자율적인 여성주체에 대한 확신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노조 페미니즘을 이탈리아 공산당에서 수용하여 1986년에는 '여성으로부터 나오는 여성의 힘'이라는 부제를 토대로 하는 성별화된 권리인 여성권의 목록을 처녀성과 모성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탈리아 노조 페미니즘은 노조에 어떻게 페미니즘 의식이 침투될 수 있을 것인지, 노동자 운동이 표방해야 하는 여성권의 실내용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역사적, 이론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할 것이다.12)
노동운동의 위기를 말하면서 낮은 조직율, 탈조직된 노동층의 확산, 운동의제의 획일성, 사회적 고립성 등을 진단하고 있는데, 이는 곧 노조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문제일 텐데, 여성의제는 이를 관통하는 가장 비중 있는 의제다.
사회운동의 대(大)의제인 빈곤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신자유주의의 여성인력활용은 필연적이며 이로 인한 여성인력의 불안정 노동화와 빈곤문제 또한 필연적이라고 할 때 남성에 비하여 여성이 더 빈곤한 이유와 탈빈곤화가 어려운, 즉 빈곤이 지속되는 구조적 이유, 양육자로서 경제적 주체자인 여성가구주의 경우 빈곤의 위험이 더 큰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빈곤문제에 대한 젠더적 접근 또한 필수적이다. 여성노동권문제를 단순히 '자본-임노동'의 관계로 파악해왔던 이제까지의 좌파정치는 싸워야 할 적의 놀라운 복합성/역동성에 비해 지나치게 단순하고 평면적인 비판에 머물러왔다. 이런 비판을 페미니즘 시각을 통해 전변시켜 좌파정치의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2) 제대로 된 노조페미니즘의 실천, 어떻게 가능한가
: 보편적 시민권에 기반을 둔 성별화된 권리로서의 여성노동권을 중심으로 변혁운동으로서의 자기전망을 가지자!
: 위계적 구조에 굴하지 말고 '해달라'기 보다는 해결주체로 여성이 직접 나서자!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간단히 한 번 더 살펴보자. 여성노동자 고용불안의 심화, 여성의 비정규직화와 소득격차의 확대, 성별직종분리의 심화, 노동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여성 특수고용 노동자의 증가, 여성가장 취업자의 증가와 빈곤, 여성노동자 조직률의 지속적 하락….
여기에 가사와 육아의 전담이라는 측면까지 고려하면, 가히 여성노동자들의 잠재적 역동성은 무궁무진하다.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성운동의 의제와 총론적 과제에 대한 검토는 의외로 꽤 진전되어 있다. 2005년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여름캠프에서 발표되고 논의된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여성의제 검토>
- 여성노동권 : 주변화된 여성노동(가사와 직장의 양립 불가능), 여성억압의 근원인 가족형태에 대한 문제제기, 성별분업구조 철폐
- 가족에 대한 신자유주의 반격: 가족의 위기(핵가족과 가족주의 이데올로기), 가족임금 = 남성생계부양자모델의 존립 근거 상실
- 신자유주의 정부의 여성정책 : 출산장려정책, 건강가족기본법 제정, 여성가족부 개편, 호주제 폐지, 성매매방지법 시행
- 전쟁과 여성 : 반전반제운동
- 계급과 여성문제 : 이주여성노동자/ 장애여성노동자

<총론적 과제>
- 여성의 독자적인 자기계획화 계획과 실천, 여성의 동수 대표
- 가족임금, 젠더 이데올로기 극복
- 신자유주의 하 여성쟁점 공론화 지속적인 신자유주의 반대투쟁
- 주변화된 여성노동, 빈곤의 여성화 극복
- 여성노동권 쟁취와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전략
- 노조운동과 여성운동의 결합, 이른바 '노조페미니즘' 구축13)

물론, 각 영역에 대한 구체화와 실행 경로는 차차 밝혀나가야 할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페미니즘의 주체들의 공동행동(2005 세계여성행진가 같은 유의미한 실험)과 이탈리아 노조와 같은 다양한 여성들의 결합과 협력, 새로운 운동형태의 등장에 대한 기대는 희망적이다.
일차적 결론으로서 여성의 권리실현은 건강권, 모성권, 노동권, 평등권, 주거권 등 보편적 시민권의 획득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더 나아가 노동유연화를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시대 여성운동은 노동권과 결합될 때 가장 급진적이고 변혁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요구가 될 것이라는 것인데, 보편적 시민권에 근거한 성별화된 권리로서의 여성노동권이 바로 변혁적 여성운동의 담론이 되어야 한다. 이는 노조의 여성위원회가 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운동의 직접적 과제이다. '여성노동권', 바로 이 지점에서 덜 사회적이고, 덜 조직되어 있고, 덜 경제적인 여성의 젠더적 위치를 전복시킬 수 있는 변혁적 전망을 찾자!
특히 여성노동자들은 아래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요직에 있는 남성들에게 '해달라'고 하기 보다는 스스로 해결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 저임금의 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왜 남성보다는 여성인가?
- 가사노동을 비롯한 일련의 재생산노동을 하는데 적합하다고 가정되는 것은 왜 여성인가?
- 왜 여성이 억압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여성문제 자각하는 자 스스로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했던가. 노동조합의 페미니즘적 실천, 그 고통의 과정을 주저 없이 만끽하자!



1) 이 글은 지난 8월14-15일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주최로 진행된 '2005 여성캠프'에 제출한 글을 재구성한 것이다. 본문으로

2) "여성이 결혼 후 1년 내에 임신하여 첫 아이를 출산하고, 두 명의 자녀를 30살이 되기 전에 낳아 건강하게 기르자"는 것으로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와 한국모자보건학회가 제안한 운동 본문으로

3) LG 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저출산 시대의 경제 트랜드와 극복방안」이라는 연구보고서에서 배우자나 자녀가 없는 모든 독신노동자에게 독신비용을 세금으로 매길 것을 제안한 것으로 로마시대에 도입된 독신세를 활용한 것. 본문으로

4) 시타, 「여성주의, 좌파의 새로운 싸움」, 카피레프트모임, 『읽을꺼리』 4호 본문으로

5) 최상림,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여성노동운동」, 『기억과 전망』 2004 여름 본문으로

6) 김세옥, 「노동조합 '여성할당제'의 의의와 한계」, 『민주노동과 대안』2003.10 본문으로

7) 김세옥, 앞의 글 본문으로

8) 알렉산드라 메코지, 「일하는 여성: 노조」, 『사회진보연대』 2003년 10월호 본문으로

9)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김세옥,「포스터의 변화를 통해 본 노동운동 진영의 젠더의식」2005 참조 본문으로

10)1978년 튜린에서 열렸던 여성들의 건강과 의학에 대한 코스에는 여성 공장노동자, 사무직 여성, 주부, 학생, 노동조합 내에서 일하는 여성, 페미니즘 운동 내에서 주조된 사상을 가진 여성 산부인과 의사 등 13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본문으로

11) 성차의 페미니즘과 관련된 내용은 이리가레, 『성차의 페미니즘』, 공감, 2003 참조 본문으로

12) 알렉산드라 메코지, 앞의 책. 본문으로

13) 이황현아, 「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의 조우 = 변혁적 여성노동자운동을 위하여」,『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2005 여성캠프' 자료집』 중.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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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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