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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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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맹(經盲) 이야기

장귀연 | 편집위원,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고백하건데 나는 경맹(經盲)이다

나는 분명히 경제학개론 수업을 들었다. 아주 좋은 점수는 아닐지라도 그럭저럭 학점도 받았다. 어쩌다보니 『경제학원론』이라는 두꺼운 책도 두 권이나 가지고 있다. 완벽히 정독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밑줄도 그어져 있다.
그런데도 나는 신문이나 잡지의 경제면을 이해할 수가 없다. 문맹과 컴맹이 있으니, 경맹(經盲)이라고나 할까. 뭐, 용어가 어려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어려운 용어는 친절하게 용어해설이 달려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영어나 한문 글자를 안다. 분명히 글자며 단어는 모르는 게 없는데, 그게 왜 그렇게 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글자를 읽을 줄 알아도 문장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증세로 난독증이라는 것이 있으니, 그에 비유해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경제논리 이해불가증 환자인 것 같다.

베트남에서는 한 노동자 한달 월급이 2만7천원이라고 한다. 얼마나 불쌍하냐고 한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달 월급 2만7천원은 불쌍한 게 아니라 불가능한 거다. 2만7천원은, 라면을 하루 세끼 한 달 동안 먹으면 끝이다. 계란도 못 넣어 먹는다. 그래도 그는 영양실조에 걸려 죽지 않고 일 열심히 하면서 잘 살고 있다.

이 이상한 조화를 부리는 것이 바로 환율이라는 것이다. 환율, 하면 평가절하-수출상승 어쩌구 외우던 고등학교 사회시험이 생각나는데, 환율의 조화는 단지 그것만이 아닌가보다. 1997년말 외환위기 때 우리나라 사람들도 하루아침에 딱 절반만큼 가난해졌단다. 말하자면, 어제까지 월급이 100만원이었다면 오늘은 50만원이 되는 셈이다. 적어도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렇다. 이상하다. 하지만 이상하다고 말하면, 당장 "너 바보니?"라는 말이 날아올 것이 뻔하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창피하더라도 한 번쯤은 속시원하게 고백해보고 싶었다. 나는 사실 경맹이다!


나는 상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 나는 그래도 상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상식, 그냥 보통의 추론능력으로 이치를 따질 수 있는 것 말이다.
무역과 환율에 대한 내 상식은 이렇다. 이 나라는 목화가 잘 되는 기후고 저 나라는 자동차 생산기술이 뛰어난데, 그러면 잘 맞지 않는 기후에 목화를 재배하려고 끙끙대거나 억지로 자동차 만들려고 시행착오를 겪기보다는 무역을 하여 교환하면 서로 이익이라는 것이다. 두 나라 국민 모두 따스한 옷 입고 자동차 타고 다닐 수 있으니, 무역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경제학은 자원을 잘 생산·분배해서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학문 아니던가).
그리고 환율은 물물교환하기가 어려우니까, 돈으로 교환을 계산할 수 있게 하는 화폐의 역할을 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신문이나 잡지의 경제면을 보면 그 환율차와 변동을 이용하여, 내가 감히 계산하기 어려워 포기해버리는 액수의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이 있단다. 그리고 비슷한 과정에서 한 나라가 절반만큼 가난해지거나 폭삭 망해버릴 수도 있다고 한다. 땅덩어리도 그대로고 일할 사람도 공장도 그대로인데, 그러면 열심히 일하고 생산을 해서 전세계 사람들과 나눠쓰면 될텐데, 왜 있는 공장을 놀리고 일하겠다는 사람을 일하지 못하게 만들까? 만들 수 있는 물건을 안 만들면 상식적으로 봤을 때 손해 아닌가 말이다.

주식에 대한 나의 상식은 이렇다. 기업이 자본을 필요로 하는데 한 개인으로서는 그 자본을 대기 어렵다. 그러므로, 주식을 통해 자본을 모으고 자본을 투자한 사람들은 그 기업이 생산을 해서 이윤을 내면 이익을 배당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기업이 생산을 잘 하고 있는지, 이윤을 얼마나 낼 것인지, 그래서 배당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인지, 이런 것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다. 심지어는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조차도 생산을 많이 하거나 좋은 기술로 더 잘 만드는 것보다 어떤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하면 주가를 빨리 올릴 수 있는지를 주로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는 며칠 사이에 몇백만원을 손해보았다고 울상이다가 다시 또 며칠 사이에 몇백만원 벌었다고 희희낙낙이다. 물론 줄어든 돈이든 번 돈이든, 단지 신문의 주식거래표에만 존재하는 유령 돈이다. 언젠가는 손에 쥐는 돈으로 바뀌기야 하겠지만, 사람들은 매일매일 주식거래표를 보면서 일희일비하고 하루의 기분까지 달라진다. 유령의 돈을 상상하면서 울고 웃는 그 장면은 솔직히 코미디다. 나는 옆에서 혼자 낄낄 웃는다. 그러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루 사이에 공장이 멈춘 것도 아니고 이윤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그런데도 주식가격이 하늘과 바닥을 왔다갔다하는 이유는 포커의 원리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상대방(여기서는 주식시장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패를 가지고 어떻게 나오느냐 표정을 살피고, 배짱으로 밀어붙일 것인지 대강 손 들고 다음 판을 노릴 것인지 판단하고 패를 내미는 원리다.

나는 경제학이란 합리성의 학문이라고 들었다. 합리(合理)란, 내가 생각하기에는 말그대로 이치(理)에 맞는(合) 것으로서 뿌린만큼 거두는 것이어야 한다. 무수한 옛 성현들이 그것이야말로 자연의 이치라고 말씀하시고 계시지 않는가. 그러나 그건 나와 옛 성현들의 상식일 뿐이고, 경제의 합리성이란 도박의 원리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결국은 돈이라는 것이 정말 이상하다. 돈이라는 것은, 물물교환은 시공간적으로도 어렵고 표준화된 가치를 설정하기도 어려우니까 만든 일종의 표시(token)다. 돈에 대한 다른 설명이 있다면 한번 대보라. 돈은 먹을 수도 없고, 입고 다닐 수도 타고 다닐 수도 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은 땅에서, 바다에서,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산된 것을 표시하고 교환하기 위해서 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의 움직임에 따라서 생산이 되고 안되기도 한다. 물건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분명히 사람들의 생활은 더 불편해지는 것인데,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는 돈 때문에 사람들이 써야 할 물건이 만들어지지 않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말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어렵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상한 것은……

친구 하나가 은행에서 천만원을 빌려 벤처캐피탈에 투자하겠단다.

"열 배는 안 되더라도 다섯 배만 해도 5천만원이잖아."
꿈에 부풀어 있는 친구에게 나는 간신히 한 마디 했다.
"그래도 빚을 내서 하는 건 좀 위험하지 않아?"
"다른 재테크하는 것도 없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재테크…. 나는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것만큼 살아왔다. 나의 노동으로 얻어진 것만 내 것이라고 생각했지, 다른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재테크(財tech), 즉 재물 모으는 기술이라는 말 한 마디에 무색해진다. 더 이상은 입을 떼지 못했다. 내가 경맹(經盲)이라는 것을 스스로 누설하고 비웃음을 살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맹인 나, 무엇보다도 이상한 것이 있다. 로크를 비롯하여 소유의 권리를 주장한 많은 위대한 사람들은 인간이 자신의 노동으로 얻은 것에 대해 가질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의 사상을 이어받았다는 이 자본주의 세계에서조차도 그런 말을 하면 바보취급을 당하느냐는 것이다. 사람의 생활에 필요한 것, 가치있는 것은 모두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통해서 나오는데, 왜 단순히 표시에 불과한 돈이 돈을 낳고 노동을 좌지우지하느냐는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라면, 자본주의는 정말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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