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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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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내전,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김석 |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아프리카에 자욱한 내전의 불길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이 아프리카에 왔을 때, 그들은 성경을 갖고 있었고, 우리는 땅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눈을 감고 기도하자고 말했고, 우리가 눈을 다시 떴을 때, 우리는 성경을 갖고 있었고, 그들은 땅을 갖고 있었다."
- 랜달 로빈슨

아프리카 대륙 국가들의 거의 3분의 1이 내전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분쟁에 휘말려 있다. 르완다에서 시에라리온까지, 앙골라에서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까지, 종족·종교·자원·토지 문제 등을 둘러싼 분쟁의 불길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다.
1994년 르완다에서 벌어진 투치족에 대한 후투족의 대학살은 언론에도 상당히 보도되어 큰 관심을 끈 바 있다. 당시 전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백만 명 정도가 살해되었고, 서구의 무관심과 무대응이 지적되었다. 학살 이후 투치족 게릴라 조직인 르완다애국전전(FPR)이 권력을 획득했고, 이번에는 백만 이상의 후투족 난민들이 옛 자이르 동부로 밀려들어왔다. 이제 후투족 출신의 전 르완다 정부군과 후투 민병대가 이들을 인간방패로 내세우며 르완다의 FPR 정부와 대치하고 있다.

문제의 근원을 더듬기 위해서는 이 지역 중앙아프리카의 식민 종주국인 벨기에의 제국주의 정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벨기에는 고위급 통치계통에 의도적으로 투치족을 우대하였고, 후투족에는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사실 그 이전에는 종족적 갈등이나 분규는 그다지 존재하지 않았었다. 이것이 분할 지배라는 제국주의 식민지 정책의 고전적인 실례로서 현재의 파국적 상황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벨기에의 소수 투치족 강화 전략은 1950년대에 종막을 고했다. 후투족이 중심이 된 르완다민족연합(RNU)이 독립 투쟁을 전개한 것이다. 벨기에는 바후투해방운동당을 만들어내고 종족간의 분규를 격화시켰다. 1959년의 전쟁을 통해 후투족은 투치족을 몰아내고 1962년 르완다를 후투족의 공화국으로 선포했다. 비슷한 상황이 이웃 부룬디에서 연출되었다. 투치족의 부룬디 정부가 후투족을 탄압했으며, 부룬디는 1963년 르완다를 침공했다. 이러한 상황은 1990년대까지 계속되었고 1994년의 대학살에서 정점을 이루었던 것이다.


다이아몬드와 석유를 둘러싼 전쟁

아프리카 대호수지역은 이런 분쟁은 콩고민주공화국(DRC, 옛 자이르)의 내전 격화와 함께 새로운 양상을 띤다. 1997년 르완다와, 우간다, 앙골라, 부룬디, 에리트레아 등의 지원을 받아 옛 자이르의 모부투 세세 세코 정권을 무너뜨린 로랑 카빌라 정권이 부패하고 무능한 독재 정권으로 비판받으면서 콩고민주공화국의 내전은 국제전으로 전개되어 간다. 전 정부군과 투치족으로 이루어진 바야물렝게 반군은 콩고(DRC)내 후투 난민에 대한 처리에 불만을 품은 르완다와 부룬디, 우간다 등의 지원을 받으며 영토의 3분의 1일 정도를 장악한 것이다.

반면 앙골라, 나미비아, 짐바브웨 등의 지원을 받는 카빌라 정부는 르완다 등을 물과 광물 자원에 대한 감춰진 속셈 때문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사실 이 전쟁에 개입하고 있는 양쪽 모두에 광물 자원에 대한 이해가 작용하고 있다. 짐바브웨의 경우 군사지원을 제공하고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광물채굴권을 넘겨받았던 것이다.

엄청난 양의 광물 자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암투는 앙골라와 시에라리온에서도 마찬가지로 격렬한 분쟁을 야기시키고 있다. 앙골라에서는 반군 세력인 UNITA(앙골라의 완전독립을 위한 민족동맹)가 대부분의 다이아몬드 산지를 장악하고 있으며, 여기서 채굴되는 다이아몬드 원석들은 초국적 다이아몬드 기업인 드 비어스를 비롯 슈타인메츠, 오데르브레히트 등의 서구 회사들에 음성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이들과 함께 샌드라인이나 아웃컴 같은 용병회사가 개입하는 것은 물론이다. 특히 드 비어스와 그 자회사인 CSO의 경우 매년 5억 2천만 달러에 달하는 앙골라산 다이아몬드 원석을 구매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UNITA가 장악한 지역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 돈은 그대로 UNITA의 무기 구입대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권을 잡고 있는 MPLA(앙골라 인민해방운동)측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석유 판매 수입을 무기 구매에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다이아몬드 산지를 장악하기 위한 양측의 격돌은 30여 차례에 걸친 중재 시도를 무산시키며 1989년 이래 50만 이상의 사망자를 내고 있다. 그야말로 앙골라는 석유를 철철 흘리며, 다이아몬드로 가득 찬 거대한 시체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위 국제 사회의 관심은 미미하여 1998년에야 불법적인 다이아몬드 거래에 대한 UN 차원의 경제 봉쇄가 내려졌을 뿐이다. 시에라리온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다이아몬드 산지를 장악하고 있는 반군과 무능하고 부패했다고 비난받는 정부, 그리고 외세의 개입. 전형적인 '아프리카적' 구도이다.
석유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내전적 상황 역시 심각하다. 니제르 델타 지역의 석유 채굴에 개입하고 있는 모빌, 셰브론, 엘프 등의 초국적 석유회사들이 나이지리아 정부군과 함께 환경과 생활 터전의 파괴에 항의하는 원주민들의 투쟁을 탄압하고 있는 것이다. 셰브론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헬기에 탄 정부군이 마을을 불태우고 군중들에 발포하는 장면도 곧잘 목격된다. 프랑스계 엘프의 경우 석유채굴권을 따내기 위해 콩고의 반군을 지원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분쟁은 서구제국주의의 대리전

다이아몬드나 석유 등 부의 원천으로서 엄청난 자원을 가진 아프리카 국가들이 세계 최빈국의 대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이런 자원을 둘러싼 끊임없는 분쟁에 시달리는 것은 이 문제가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최근 영국의 [선데이 타임즈]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독립 이후의 상황은 이제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들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잃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전형적인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시각이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것처럼 보이는 아프리카의 상황 이면에는 지난 식민 통치기 이래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이해 관계가 얽혀 있음이 간과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아프리카가 근대화의 과제가 아직 성취되지 못한 곳이라는 설명은 발전주의적 환원론이라는 비판과 함께 문제의 근원을 아프리카인들에게로 돌려버릴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근대화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근대화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종속적 하위 구조에 편입되어 있는 것이다.

"구 식민지들의 독립은 선진 열강의 구미를 맞추는 데도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큰 이윤을 뽑아낼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독립은 그들이 좀 더 싼 비용으로 우리를 착취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신식민지가 되었다. 세계은행과 IMF의 정책과 부과조건은 개발을 위한 것이 아니라 채무를 갚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을 뿐이다. 이제 우리는 부도덕한 채무와 신식민주의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할 새로운 해방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 줄리어스 니에레레


아프리카 해방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무신론자였던 조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기독교 정신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도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니에레레는 사회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회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주의가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도된 적도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프리카의 진정한 해방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아프리카의 해방운동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제대로 시도된 적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오랜 투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했던 아프리카 해방운동의 빛나는 전통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대다수 아프리카인에게 해방은 아직 오지 않았으며, 진정한 해방은 여전히 앞으로 달성되어야할 진행형의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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