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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7.3.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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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 몰락 이후 한국사회

류주형 | 조직교육부장
노무현 정권 말기에 이르러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모순은 사회 저변의 위기 심화와 함께 노무현 정권의 몰락으로 드러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몰락하게 된 원인과 배경은 무엇인가. 또 노무현 정권 몰락의 의미는 무엇이며, 새롭게 등장하게 될 지배연합의 성격은 무엇인가. 대선을 정점으로 급변하고 있는 정치·이데올로기 지형을 분석하며 사회운동의 대응 방향을 모색해보도록 하자.

노무현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모순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은 '노사모'와 '국민경선', 여론조사에 의한 막판 후보단일화 등 초유의 정치 스타일에 의존하는 한편 '반(反)한나라당'이라는 부정적 동일성을 기초로 하여 정권 재창출에 극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당시 노무현은 386 세대-화이트칼라-개혁적 NGO·지식인-노동자운동 상층부의 실리적 지지를 핵심으로, '반창 정서'에 기초한 청년층-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의 소극적 지지와 지역주의를 결합했다. 이러한 지지연합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대한 실리적 지지와 소외된 계층·지역의 정서를 동원한 것으로, 본질상 극히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노무현은 '경제성장-고용확대-빈곤감축'이라는 포괄적 목표 하에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충실히 계승하는 한편 이를 지속하기 위한 안정적인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조건을 창출해야 했다. 이를테면, 양극화 해소와 같은 사회통합적 정책 방안을 제시하거나,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같은 정책적 보완을 통해 대중적 불만을 적절히 관리하거나, 정치·행정·사법 개혁이나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시도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불가피성을 유도하는 것이 노무현의 구상이었다.
그러나 IMF 이후 만성화된 불황 속에서 노무현 정권의 정책개혁은 이내 모순을 드러냈다. IMF 구조조정은 금융개방을 정점으로 재벌 및 금융산업, 노동시장을 국제금융시스템에 적합하게 개조하는 것으로서, 세계화된 금융적 축적체제에 깊숙이 편입한 한국 경제는 만성적인 불황과 불안정에 시달려야 했다. 기업지배구조 개혁, 무역자유화와 투자협정 체결, 금융사들의 대형화-겸업화 등 한국 자본주의의 금융화를 촉진하는 각종 법·제도도 하나씩 추진되었다. 그 결과 초민족자본과 이에 편승한 일부 재벌, 그리고 극소수 '골드 칼라'들이 금융화를 통해 막대한 경제회복의 대가를 누린 반면, 노동자 대중은 바로 이러한 메커니즘에 따라 노동의 불안정화와 경제적 불안정성이 결합된 민생 위기, 재생산의 위기에 그대로 노출되어야 했다.
노동력의 평가절하를 통한 고용안정과 사회안전망을 통한 사회보장의 평가절하를 두 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타협의 물질적 토대가 지극히 허약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동북아중심국가'와 같은 민족적 발전 전망은 허구임이 드러났고 사회통합과 같은 계급 타협은 공문구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가령 노무현 정권은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해서 비정규직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노동신축화가 핵심이라는 기만적 주장을 펼친다. 또 양극화 해소와 저출산·고령화 대책으로 제시된 '사회적 일자리' 확대와 나아가 '사회적 기업'의 설립이란, 국가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복지 등 기초서비스를 상품화된 형태로 도입하여 자본에게 새로운 이윤의 원천을 제공해 주는 동시에 실업을 불안정노동과 사회안전망의 형태로 분할 관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여성과 노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은 '여성인력활용방안'이나 고령인구 대책의 일환으로 노동력 시장의 최하층에 편입된다.
나아가 노무현은 최소한의 사회적 타협조차 거부함으로써 노사정위원회 등을 통해 일시적·부분적으로 안정화되었던 노사관계의 제도적 안정성마저 지속적으로 침해했다. 노무현 정권이 한미 FTA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 프랑스의 우익 사르코지의 '무관용'을 원용하여 '불법·폭력 시위에 대해 엄단하겠다.'고 엄포한 것 역시 매우 상징적인 사례였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과 집권세력의 지지 기반이 근저에서부터 허물어진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다.

노무현의 신자유주의 개혁 실패는 현재 한나라당 후보 빅3의 일방적 우세라는 결과로 드러나고 있다. 한나라당은 신자유주의적 처방의 실패를 진보와 개혁의 실패로 호도하며 성장이나 안정으로 상징되는 선진화 담론을 적극 유포하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신자유주의와 '미국화'를 전폭 수용하면서 반동화한 개혁세력과 보수세력의 실질적인 차이를 강조하는 것은 넌센스에 지나지 않는다.


노무현 정권의 몰락과 개헌, 정계개편 구상의 반동성

지난 해 지방선거를 경과하며 가사상태에 빠진 집권세력은 현재 노무현 탈당과 열린우리당 분당 등 초유의 레임덕을 경험하며 사실상 해체된 상태다. 대통령 국정운영과 여권에 대한 지지율 같은 단순한 여론상의 지표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권을 지지했던 진보학계와 NGO 등 범개혁세력의 이반과 분화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임기를 1년이나 앞둔 시점에서 노무현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노무현의 집권 기반이 대단히 취약하며 지지 세력의 휘발성 또한 강력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하지만 노무현은 이러한 레임덕 현상이 '대통령 5년 단임제' 하에서는 불가피하다며 오히려 '원 포인트' 개헌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런데 현재 노무현의 '원 포인트' 개헌안은 집권 초기 여권 분열, 탄핵 사태, 4대 개혁 입법 실패, 대연정 제안 무산, 지방선거 패배, 여권의 재분열과 같은 일련의 과정 속에서 개헌 자체의 모멘텀을 지속적으로 상실한 결과다. 정치구조 개혁과 권력구조 개편을 동반하는 노무현의 개헌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여권이 역관계의 압도적 우위를 확보하거나 여론상의 확고한 지지를 확보했을 때, 또는 1987년과 같은 지배체제의 위기 상황에서 가능한 것인데, 집권세력은 이와 같은 정치 형세를 조성하지 못했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무시 전략과 여권의 분열 속에서 현재 노무현의 개헌 발의는 좌초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문제는 대통령의 개헌 발의 자체가 현행법상 상당한 규정력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일단 개헌안이 발의되기만 한다면, 국회는 공고된 날로부터 2개월 이내에 이를 의결해야 하기 때문에 개헌이라는 쟁점을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게 된다. 이에 따라 노무현은 자연스럽게 정국 운영의 중심에 복귀할 수 있으며, 설사 국회에서 부결된다 하더라도 개헌 반대 세력을 반개혁·기득권 세력으로 몰아붙이며 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 입지를 확보하게 된다. 이는 결국 레임덕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완강한 의지의 표현이자 동시에 개헌 자체를 정치 쟁점으로 만들어 정계 개편의 주도권까지 확보하겠다는 포석인 셈이다.
이러한 가정이 현실화될 경우 그 효과는 매우 퇴행적일 수밖에 없다. 우선 대통령 4년 연임제에 국한된 개헌안을 두고 찬성과 반대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인민주권의 심각한 축소를 의미한다. 여타 쟁점이 모조리 봉쇄된 가운데 대중적 개입의 여지를 차단함으로써 개헌을 지극히 폐쇄적인 정치 일정으로 협소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칫 정당한 토론조차 불가능한 상황을 조성하면서 개헌 진영과 호헌 진영 간의 지극히 허구적인 대립구도를 양산할 공산이 크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의 인민주의적 정치행태는 극대화될 것이며, 정치적 혼란은 증폭될 것이다. 이와 함께 민중운동의 입지도 곤란에 처하게 될 것이다. 개헌 정국 자체를 주도할 수 없는 객관적 상황에서, 개헌안을 숫제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수용할 수도 없는 애매한 형국이 연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계 개편과 진보주의의 발호

이런 상황에서 중도실용신당과 중도개혁신당, '재선그룹+민주당+국민중심당 신당', 잔류 열린우리당 등으로 사분오열된 범여권이 완전 개방형 국민경선제를 통해 후보단일화를 추진할 수 있을지도 중요한 관심사다. 이들이 우여곡절을 거쳐 통합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노무현과 집권여당의 이미지를 불식시키면서 범개혁세력의 새로운 결집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현재 이들이 물리적으로 재통합할 근거가 지극히 희박하다 할 때, 관건은 통합을 매개할 유력인사·시민운동·전문가집단을 외부에서 영입할 수 있는가, 또 일정한 계기를 통해 반한나라당 연합의 명분을 쌓을 수 있는가 여부일 것이다. 범여권의 정계 개편과 함께 <창조한국미래구상(준)>(이하 미래구상)의 행보가 주목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우선 미래구상의 경우 시민운동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정책단을 형성한 뒤 분화된 여권 내 개혁세력과 민주노동당을 아우르는 범진보개혁세력의 후보 단일화의 촉매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들에게 여전히 핵심적인 문제는 '반한나라당'이지 범진보개혁세력의 통합이 아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을 위시한 '민중운동' 진영은 부차적인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이는 개혁의 떡고물로 각종 수혜를 누려온 자신들의 지위가 한나라당 집권 이후 박탈될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공포가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은 한나라당의 집권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중운동' 진영이 정치적 선택의 폭을 유연하게 확장하지 않는다면 선거연합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미래구상의 취약한 주체적 조건도 스스로의 구상을 제약하는 요인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결국 '반수구 국민후보'를 옹립하겠다는 미래구상의 행보가 범여권의 '합의이혼 후 헤쳐 모여' 시나리오에 강하게 결박될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시사한다. 결국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파트너를 자임한 정치적·행정적 NGO의 상층부들이나 곡학아세로 일관한 얼치기 '진보학자'들이 '반수구 국민후보' 내지 '반보수대연합 전선 강화'와 '진보세력의 동반 성장'을 주창함으로써 그 기회주의 속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 정책자문위원장을 역임한 최장집 교수가 촉발한 일련의 논쟁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최장집 교수가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한 인위적 노력을 "두려움을 동원하여 재집권하려는 편법"에 불과하다고 비난하자, <한겨레신문> 등에서는 이를 '정권교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지로 해석하며 논란을 증폭시켰다. 이에 조희연 교수는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연합을 통해 중도자유주의 정치세력을 급진화하고 이를 통해 보수세력의 비타협성을 견제할 것을 주장하며 적극 화답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구상은 결국 중도자유주의 세력의 헤게모니에 편승하면서도 시민-민중 운동의 주도성을 바탕으로 그 좌익을 형성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결국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단호한 비판과 단절을 우회하는 조희연 교수의 '민주진보세력의 헤게모니 창출론'은 자유주의의 좌익적 판본일 뿐인 '진보주의'에 불과하다.

정치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한편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려면 사회적 갈등이 정당정치를 매개해서 제도정치로 수렴되어야 함을 주장하는 최장집 교수의 '제도정치 정상화론'은 오늘날 정당 정치가 위기에 봉착한 근본적 원인에 대한 고유한 맹목을 보여준다. 그런데 정당 정치가 위기에 봉착한 것은 비단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정당 정치의 위기는 신자유주의에 따라 기존의 국가 자체가 변형되면서 나타난 범세계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전개되는 자본의 금융화와 노동의 불안정화는 화폐와 노동력의 관리를 핵심으로 하는 개별 민족국가의 경제정책의 자율성을 심각히 훼손한다.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과 같은 국제경제기구들과 초민족자본은 직접적으로 민족국가의 경제정책을 세계화된 금융축적체계에 통합하고, 이들이 제시하는 정책을 집행하는 행정 기술관료들의 영향력은 증대한다. 이에 따라 의회의 의사결정권과 정책적 영향력은 급속히 감소하고 정당체계 또는 대의제 자체가 식물화되는 경향이 발생한다. 기존의 정당은 좌우 이념을 대표하는 대신 정책정당, 심지어 '무지개 정당'을 표방하며 중도우파 중도좌파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념을 통해 대중의 참여를 조직하지 못하게 된 정당들은 각종 여론 조작적 기제에 호소한다. 이념과 노선에 기반을 두고 대중적 지지를 획득할 도리가 없는 상태에서, 결국 정치적 선전은 '차악(less evil)'을 호소하는 이미지의 정치로 둔갑한다. 즉, 오늘날 정당정치가 위기에 처한 진정한 원인은 법·제도상의 불비가 아니라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적 정치공학 그 자체다.
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는 지난 2004년 탄핵 사태를 회고할 수 있을 것이다. 당선 직후 측근 비리 사태가 터지자 노무현은 그 유명한 '10분의 1'발언을 통해 야당과 악무한적인 대결구도에 돌입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으로 인해 대중적 불만이 팽배한 상황에서, 지지율이 급락하고 여권마저 분열하자 노무현은 탄핵까지 불사하며 총선과 재신임을 연계하겠다고 공언했다. 민심 이반으로 정치적 동원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던 여야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기호지세(騎虎之勢)로 도박판에 뛰어들게 되었고, 그 결과는 사뭇 파괴적이었다.
탄핵을 반대하는 대중의 여론은 노무현에 대한 지지로 조작됐고, 탄핵심판은 민의와 상관없이 임명된 헌법재판관에 의해 '최종심에서' 해결되었다. 그 결과 노무현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에 대한 대중적 심판은 유예됐고 사법부의 권위가 민중의 주권을 대체했다. 신자유주의가 낳은 정당정치의 위기가 행정부와 사법부의 권력의 극대화를 불러오고, 이로써 무력해진 의회정치가 민의를 대표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한 셈이다. 그러나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는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이 지속되는 한 사상누각일 뿐이었다. 결국 만성화된 위기가 개혁의 실행조건으로 설정되고 위기와 개혁의 주기가 대통령선거 같은 정치일정과 일치하는 악순환 속에서, 개혁세력의 반민중성으로 인해 정치적 냉소주의만 심화된 셈이다.

개혁세력의 반민중성과 보수세력의 상징조작

현재 그 결과는 한나라당의 일방적 판세, 즉 무려 75%에 달하는 한나라당 '빅 3' 지지율과 50%를 상회하는 당 지지율로 드러나고 있다. 역관계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한 한나라당은 신자유주의적 처방의 실패를 진보와 개혁의 실패로 호도하며 성장이나 안정으로 상징되는 선진화 담론을 적극 유포하고 있다. 또 이들은 전시작전권 환수 시기 재조정, 대북 지원 사업의 투명성 제고, 사회적 안전망이나 생산적 복지의 철회, 코포러티즘의 축소, 소득세율 인하와 법인세율 인하를 특징으로 하는 부유계급 우대정책 등의 이슈를 제기하며 노무현 정권과의 정책적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박근혜는 '한미FTA만 빼고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모든 정책을 바꿀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민주노총이나 전교조 등 민중운동에 대한 악마화, 이주자와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합리화하는 반동적 이데올로기도 적극 유포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신자유주의와 '미국화'를 전폭 수용하면서 반동화한 개혁세력과 보수세력의 실질적인 차이를 강조하는 것은 넌센스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이라크 파병이나 전략적 유연성 등 한미동맹 현대화의 핵심 사안들 중에서 노무현 정권과 보수세력의 차이를 찾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대북 사업의 투명성을 제고하라는 한나라당의 끈질긴 요구 역시 실상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의미할 따름이다. 물론 이는 한국의 지배계급이 보수-개혁을 막론하고 미국의 대북 전략을 그대로 추종하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또 노무현 정권이 보수세력과의 차별성을 적극 선전하기 위해 집권 후반기 핵심 전략으로 제시한 '분배-양극화 해소-사회통합론' 역시 해법이 묘연하기는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는 부유계급의 반혁명으로서 노동자 대중의 궁핍화를 필연적으로 동반하는데, 신자유주의 정책의 근본적 전환 없이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발상 자체가 기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무현 정권이 양극화 해소 재원 마련을 위해 제시하는 증세의 핵심은 이른바 '넓은 세원과 낮은 세율'인데, 그 내용은 금융과 기업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법인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은 아낌없이 인하하되('낮은 세율'), 그 부족 재원은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벌충하겠다는 것이다('넓은 세원'). 이는 노무현의 증세 논란이 실로 부유계급에 대해서는 수사적 공격에 그칠 수도 있지만 민중에게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통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아울러 보수세력의 성장 담론에 대항해서 노무현 정권은 집권 4년간 주요 경제지표에서 회복세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고 치적을 선전하지만, 여기서의 '경기회복'은 기본적으로 주식시장이나 부동산 투기를 중심으로 한 금융적 팽창을 가리킬 따름이다. 즉,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는 동시에 실질임금 상승과 노동조건 개선을 보장할 수 있는 노동과정 및 자본조직화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 상황에서, 부(富)가 일방적으로 초민족자본과 재벌 등 부유계급으로 이전되고 있음을 눈가림하려는 술책인 것이다. 노무현 정권과 한나라당이 책임공방을 펼치고 있는 부동산 문제 역시 IT·벤쳐 거품, 신용카드 거품에 이어 투기와 거품을 동반하는 금융화의 필연적 결과다.
한편 한나라당 주요 대선 주자들이 자신의 정치 노선 및 이념을 묻는 질문에 '중도'라고 답했다는 흥미로운 보도도 있다(「대선 주자 청문회」, 『한국일보』, 2006.12). 문답 모두 다분히 자의적일뿐더러 '중도'란 기준 역시 대단히 모호하다는 점에서 조사 결과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이는 적어도 한나라당과 현 집권세력의 차별점이 이념이나 노선적인 수준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최근 이명박이나 박근혜 등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이 7% 성장을 공약으로 제시한 것에 대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앞으로 10년 간 5%대 성장만 해도 다행'이라고 일축한 것도 시사적이다. 사실 7% 성장은 새로운 얘기가 아닌데, 노무현 역시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의 6% 성장 공약에 대비해서 여성인력활용방안을 제시하며 7% 성장을 주장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보수세력과 개혁세력의 대결이 이미지와 수사를 활용한 허구적 대립구도에 불과하며, 정책적으로도 '수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2007년 대선의 의미와 진보진영 대선 구상의 문제점

사정이 이렇다 할 때, 현재의 정치 형세를 구래의 관념에 따라 보수-개혁-진보의 구도로 환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보수주의·자유주의·사회주의와 같은 근대 정치 이념의 위기의 다른 표현인 신자유주의 하에서 만개한 인민주의가 현재의 정치-이데올로기 지형을 심각히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디어나 '개방형 국민경선제'와 같은 여론조작적 기제에 의존하여 합종연횡과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상황에서 이념이나 노선의 판별 기준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이 단순히 선거에 참여하여 일정한 지지율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성과를 남길 수 없다는 사실도 점점 명백해지고 있다. 진보정당이 사회운동과 결합하여 신자유주의가 낳은 위기와 불만에 대해 대중적 저항을 조직하는 데 총력을 집중하지 않는다면, 선거에서 유효한 지지율을 획득한다 하더라도 그 효과는 일시적일 뿐이다. 심지어 진보정당이 지배계급의 인민주의적 정치행태를 모방한다거나 중도세력과의 통합 등 선거 기제에 몰두한다면, 이는 진보정당 자체의 우경화와 함께 이에 동참한 사회운동의 동반 침체를 불러올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진보민중진영'의 결집을 도모하여 대(對)수구보수 전선으로 이번 대선을 치른다는 구상을 피력하고 있다. 이는 이번 대선을 '범한나라당' 대 '범민주노동당' 대결 구도로 가져간다는 권영길 원내 대표의 의정 연설에서도 재차 확인되는바, 범개혁세력의 분화로 발생한 균열과 공백을 잠식하고 나아가 이탈 세력을 포섭한다는 소위 '진보개혁 대표선수 교체론'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범진보개혁세력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헤게모니를 대체한다는 민주노동당의 장기적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응당 두 가지 전제, 즉 노동자 운동을 비롯한 급진적 대중운동의 실존과 함께, 이를 정치적으로 대표하기 위한 민주노동당의 내적 성장이라는 조건이 구비되어야 한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현재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자운동은 작년을 거치며 사실상 무장 해제된 상태며, 현재로선 이를 역전시킬 마땅한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례로, 2006년 비정규악법 및 노사관계로드맵 저지 투쟁의 패배는 민주노총 10년의 역사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요구한다. 민주노조운동으로 통칭되었던 7~80년대 노동자들의 피어린 투쟁 속에서 다시 복원된 한국사회의 변혁적, 자주적, 민주적 노동자운동은 민주노총 10년의 역사 속에서 그 순환을 마감하고 있다.
또 민주노동당도 '당내 사상운동의 부재와 종파적 분열', '거대한 소수전략의 실패', '울산 진보정치의 좌절' 등으로 한자리수 지지율에 머무른 채 위기적 정체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은 현행 당원직선제만으로는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소지가 다분하다는 진단 하에, 당원 외에 민주노총과 전농 등 대중조직의 구성원으로 이뤄진 별도의 선거인단을 구성하는 '개방형 경선제' 도입을 골자로 한 외연 확장에 몰두하고 있다. 나아가 민주노동당은 가능하기만 하다면 미래구상과 같은 기회주의 세력과의 정치적 제휴를 통해 '상황의 지대'를 확보한다는 식의 정치공학적 발상을 숨기지 않고 있다. 물론 이는 다른 한편으로 범개혁세력과 동반 몰락을 경험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내적 딜레마를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진보연대(준)>은 '반보수대연합' 프로세스에 깊숙이 참여함으로써 위험한 줄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만일 범개혁세력의 통합이 가시화되는 동시에 반보수대연합의 현실성이 제기된다면, 민주노동당의 외형적 성장과 노무현 정권의 몰락의 여파로 다소 수줍게 잠복해있던 예의 그 '비판적 지지론'은 언제고 다시 상황을 압도할지 모른다. 이는 1997년 IMF 범국본 이후 어렵사리 유지되어온 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 투쟁전선의 비극적 소실을 의미할 수도 있다.
대선이 민중운동의 단결과 전진을 도모하기보다 분열과 후퇴를 조장하는 과정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 정세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과 함께 민중의 단결을 도모할 현실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한국 사회의 전망과 사회운동의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논쟁을 활발히 전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운동의 독자적인 역량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대선 후보 선출 방식을 둘러싼 기술적 논의나 정치공학적 득표 전략에 매몰되지 말고 사회운동의 공동 활동의 조건을 창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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