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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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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셈투쟁 평가, 일보전진 그러나 이보후퇴

정종권 | 정책기획국장
무엇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민중행동의 아셈 투쟁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공유했었던 아셈투쟁에 대한 민중행동의 원칙과 기조를 확인해야 한다. 이것이 전제이다. 서울행동의 날을 3개 연대기구가 공동으로 개최하게 되었지만, 이 3자연대의 틀이 담아낼 수 없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투쟁의 민중적 원칙'을 고수할 것. 이것이 민중행동의 원칙이고 기조였다. 이것에 대한 공유가 서울행동과 독자적인 민중행동의 틀을 구성하고 일련의 투쟁을 추진하게 한 기본동인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아셈민간포럼에서 탈퇴하여 자체의 독자적 조직틀을 구성하고, 아셈 투쟁을 고민한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인권포럼'(자·세·포)에 속한 인권단체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정치조직적 근거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셈은 시민사회의 의견을 조금이나마 수용하려는 점에서 APEC과 IMF, WTO와 같은 국제기구들과 다르다는 것이 아셈민간포럼측의 인식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시각에 반대하였다. 자유무역지대화,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방안, 투자자유화를 위한 협력 강화의 내용을 논의·협의하는 아셈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담지체일 수밖에 없으며, 아셈에 대한 태도는 '비판적 개입'이 아닌 '전면적 비판과 반대'이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시각이었다.

물론 시각 차이가 모든 공동행동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히 확인해야 할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입장과 태도가 동일하여 서울행동의 날 공동개최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셈민간포럼과 국민행동·민중대회위원회 간에 상이한 시각과 태도가 존재하지만 민주노총의 처지와 입장을 고려하고 존중하여 공동개최가 한시적으로 이루어진 점이다. 달리 표현하면, 이는 민중행동에 입각한 계획과 행동이 1차적이고 우선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다면 민중행동 참여는 하나의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고 중요한 원칙이자 행동의 준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의미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연대의 파괴와 해체를 낳을 뿐이다.


10월 아셈투쟁이 가지는 일보전진의 측면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라는 강한 정치투쟁에 민주노총을 비롯한 대중운동이 실천적으로 참여하고 그 공감대를 확산시켰다는 점은 민중운동의 소중한 성과로 평가되어야 한다

추상적인 것은 가장 구체적인 것이다. 투쟁의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생활적·생존권적 요구라는 구체적인 요구와 목표에 기반하여, 이를 정치적으로 집약하고 추상화시켜가는 과정은 투쟁이 발전해가는 과정이다. 1980년대 군사독재 타도라는 목표는 민중이 생활과 현장에서 느끼는 삶의 모순과 피폐함, 고통과 어려움을 집약하여 투쟁 목표로 설정한 것이다. 물론 그 추상이 구체에 기반하지 못할 때, 정치적 목표가 대중의 구체적 삶과 현장으로부터 출발하지 못할 때 그것은 관념적 목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 측면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은 민중진영의 요구와 목표를 집약하고 있는 가장 정치적인 투쟁이다. 노동자의 구조조정에 대한 불만, 농업 파탄에 대한 저항, 빈민탄압과 노점단속으로 인한 생존의 위기, 공공성의 파괴와 기간산업의 사유화와 해외매각에 대한 반대, 실업과 불안정노동의 확대재생산 등 구체적으로 부딪히는 민중의 고통과 불안의 원인을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규정하고 투쟁을 집중한 것이다. 이것이 이번 투쟁의 가장 소중한 측면이다.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지만 이러한 성과적 측면을 무시한다면 올바른 평가일 수 없다. 물론 이러한 투쟁의 성격이 대중 속에서 선전, 교육되고 충분히 공유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많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투쟁의 성격을 규정하고 대중을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막연하고 모호한 추상 개념으로 '신자유주의 반대·세계화 반대'를 사고하는 형식주의자들 또한 존재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반대가 우리 운동의 정치적 강령이 아니라 정치적 수사와 레토릭으로 사고하는 경향도 상당하다. 이를 가르는 기준은 도대체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는 것의 현실적·실천적 함의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고 불안정화시키는 구조조정이 김대중정권만이 아니라 IMF와 WTO로 대표되는 초국적자본의 국제기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식. 이것이 이제 노동자 대중 사이에서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농민들의 경우 우루과이라운드에서 드러났던 농산믈 개방과 농업파괴적 정책에 대한 격렬한 대중투쟁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빈민들도 올림픽과 같은 국제행사 개최가 빈민탄압의 전주곡이라는 것을 알아왔고, 투쟁의 경험 또한 가지고 있다. 즉 IMF, WTO, APEC, ASEM과 같은 초국적자본의 국제기구와 행사가 바로 한국 민중들에 대한 생존권의 파괴, 구조조정의 강행, 민주주의의 후퇴, 경제종속의 심화를 의미한다는 점이 서서히 의식되고, 서서히 저항투쟁으로 조직되어 왔다.

이번 아셈 투쟁은 이 민중의 흐름을 전면화시키면서 투쟁의 분명한 목표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아셈 반대'를 내걸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투쟁을 소수의 대오가 아닌 노동조합과 같은 대중조직이 중심이 되어 전개하였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민주노총의 상경투쟁이 처음에는 10월 20일, 21일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다가 '19일과 20일 집중'으로 전환한 것이 가지는 의미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 있다.


그러나 아셈투쟁에서 드러난 이보후퇴

◆아셈민간포럼 참여와 내용적 기조를 둘러싸고 민중진영의 공통 인식과 공동의 행보가 부재하였다. 또한 서울행동과 별도로 민중행동을 조직한다는 것의 정치적 함의와 책임성에 대한 자각이 미흡하였다

아셈민간포럼은 약 2년 전부터 조직위원회가 꾸려져 준비되어 왔다.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대부분 참여하고 있었으며, 민중운동진영에서도 몇몇 주요 단체들이 참가하였다. 그러나 아셈이 임박해지고 투쟁에 대한 긴장감이 형성되면서 아셈민간포럼의 내용과 사업기조에 대한 문제제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주요 쟁점은 정부지원금에 대한 문제, 아셈에 대한 태도 문제, 투쟁의 수위 문제였다. 그러나 아셈민간포럼에 대한 문제제기와 비판은 주로 아셈민간포럼 내부의 개별 단체들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즈음 민중대회위원회에서는 아셈민간포럼이 한국 민중진영의 아셈투쟁을 책임질 수도, 대표할 수도 없다는 판단을 하고 독자적인 실천과 사업계획을 고민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힘있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아셈민간포럼에 참여하는 민중진영의 공통된 입장과 행동 방침이 필요하였다. 더욱이 민주노총이 아셈민간포럼에 참여하였으며, 아셈민간포럼에서 주최하는 '시민행동의 날' 집회를 책임지고 있는 상황에서 입장 정리와 공통의 행보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셈민간포럼에 참여하던 양대 민중운동진영 중, 전농만 공식적으로 아셈민간포럼을 탈퇴하였고 민주노총은 그렇지 못했다. 또한 민중진영과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던 아셈민간포럼 인권분과의 인권단체들은 대다수가 탈퇴를 하였다.
아셈 투쟁을 둘러싸고, 아셈민간포럼을 한축으로, 또다른 축으로는 민중대회위원회와 국민행동(물론 국민행동 단체들 중 상당수는 아셈민간포럼과 이중멤버쉽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셈민간포럼을 탈퇴한 인권단체(자·세·포)들이 존재하였다. 이 양축 사이에는 아셈에 대한 시각과 태도, 투쟁 방향을 둘러싸고 상당한 시각차가 존재한 것이다.

문제가 단순화되었다면, 아셈민간포럼의 사업과 민중진영의 사업이 서로 독자적으로 진행되면서 필요할 경우 공동사업을 논의하고 추진하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복합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계기는 민주노총이 3자 연대기구에 모두 참여하고 있었으며, 아셈민간포럼의 대중행동을 책임지는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현실이다. 민주노총이 3자 연대기구에 모두 참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뒤집어 생각하면 아셈 투쟁과 반(反)신자유주의 투쟁에 대해 민주노총이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서로 다른 경향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거나, 민주노총 내부가 단일한 입장으로 정립되지 못하고 상이한 경향들이 혼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현실은 결코 발전이나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여하튼 결과는 상호충돌하는 두 경향들이 상호 분리정립되고, 이 전제 위에서 공동행동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이라는 민중운동의 거대 권력에 의해 분리정립이 저지되고 미봉된 것이다. 이것은 아셈민간포럼에 대한 민중진영의 입장과 태도의 정립 문제이자 아셈 투쟁의 기조와 방향을 정립하는 문제이다. 서울행동의 날을 공동으로 치루고 세 연대기구의 책임자급에서 논의와 사업계획을 조율하는 실용적 처리로 미봉될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이것은 민중진영 아셈투쟁의 원칙과 기조를 교란시키게 되었다. 민중행동을 별도로 구성하고 민중진영의 투쟁계획을 이 단위에서 조직하고 실천하자는 것은 실용적으로 봉합된, 서울행동에 대한 민중적 개입의 필요성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민중행동에 대한 공감대와 원칙의 공유는 이미 이전에 아셈민간포럼에 대한 태도와 서울행동 문제에서 동요하면서 혼란을 내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민중행동의 원칙을 분명하게 공유하지 못한 채, 협의가 진행되고 각종 사업과 투쟁들이 배치·추진되지 못하였다

민중행동은 단일한 블록으로써 아셈민간포럼과 의견을 조율하고 자신의 계획과 기조를 관철시키려고 노력했어야 한다. 그러나 아셈민간포럼과의 관계에서 결정적으로 두가지 문제에서 민중행동은 실패하고 무능하였다. 첫째, 아셈민간포럼은 10월 9일 아셈민간포럼의 독자적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이미 3자연대기구는 10월 10일에 공동으로 서울행동 기자회견을 개최하자고 합의한 상태였다. 아셈민간포럼은 기자회견의 주요 내용으로, 10월 18~19일 아셈민간포럼과 20일 서울행동의 날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결국 민중행동은 이에 대해 항의하지 못했다. 아셈민간포럼의 기자회견은 3자연대기구 공동의 서울행동 기자회견을 할 필요성과 의미를 박탈한 것이다. 이러한 현실 결과에 추수하면서 민중행동은 별도의 기자간담회를 10월 17일 진행했다.

그러나 서울행동의 날에 대한 사회적 이니셔티브를 아셈민간포럼에 선취당한 상태에서, 민중행동 기자간담회의 주요 내용은 서울행동의 날 이전 프로그램(19일 전야제 등)과 관련한 것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나마 민중행동의 주체적 상황으로 인하여, 치밀하고 구체적이고 풍부하게 준비되지 못한 상태였다.

둘째, 서울행동의 날 장소와 관련된 것이다. 올림픽공원이 경찰측과 협의된 상태에서 아셈민간포럼은 이에 동의하였고, 민중대회위원회와 국민행동은 내부에 상당한 이견이 존재하였다. 그래서 3자간의 최종 합의 결과는 민중대회위원회 대표자회의가 열리는 10월 17일 오전에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아셈민간포럼은 이에 앞서 10월 16일 기자회견을 통해 서울행동의 날 장소로 올림픽공원으로 선포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이 아셈민간포럼의 기자회견에 민주노총이 참석한 것이다. 결국 17일 민중대회위원회 대표자회의에게 부여된 선택의 폭은 이러한 발표에 굴종하든가, 아니면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민중행동이라는 공동실천 단위는 이미 금이 가기 시작하였고, 와해되어 가고 있었다.

이와 관련한 논의 내용을 첨언하면, 민중행동 전술단위에서는 애초에 올림픽공원으로 경찰과 협의가 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보고받고, 두가지 의견을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다. 하나는 올림픽공원 협상안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이전에 우리가 가졌던 원칙에 근거하여 경호구역 B구역 내의 도로를 요구하는 재협상을 진행할 것. 둘째, 이러한 요구가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경찰과의 교섭은 결렬시키고, 교섭과 무관하게 우리 투쟁의 의의를 살릴 수 있는 장소를 독자적으로 판단 결정하고 강행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견을 교섭단과 지도부에 전달하였지만, 이 과정과 의견은 철저하게 상층 논의에서 배제되어 버렸다.

3자 연대기구간의 협의과정에서도 민중행동의 원칙이 분명하지 못했고, 그나마 존재했던 원칙도 동요하고 교란되는 상황에서 그리고 이전부터 아셈투쟁을 아래에서부터 조직하고 추진하는 사업계획과 역할도 미약한 상태에서, 민중행동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애초부터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또 동요할 수 밖에 없었다.


◆민중행동의 아셈투쟁 지도부는 사실상 부재하였으며, 이에 대한 책임의식이 미흡하였다. 전술과 각종 투쟁과정에서의 혼선과 동요, 불안은 결국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민중행동의 10월 아셈투쟁을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투쟁 지도부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민중행동의 공동투쟁기획단을 구성하기로 한 '정치적' 결정은 있었으나, 이 단위를 중심으로 투쟁을 책임지고 이끌어가려는 계획은 부재하거나 대단히 미흡하였던 것이다. 투쟁은 특정 행사의 기획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민중행동은 몇몇 행사에 대해 회의를 하고, 의견를 교류하고, 개인과 단위로 역할 분담을 하였지만 투쟁 지도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하였다. 지도부의 역할은 사업계획과 투쟁방향에 대해 논의를 조직하고 토론과 의견수렴에 근거하여 방침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을 '집행'하는 것이며, 그 결과를 '평가'하는 것이다. 결정과 집행, 평가가 없다면 그것은 난상토론의 장일 수 있을지언정, 책임있는 투쟁 지도부로써의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평가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10월 19일 이전의 여러 투쟁과 사업에 대한 결정과 책임성, 19일 전야제에 대한 판단과 결정 그리고 공유, 20일 오전 투쟁의 기조와 행동방침에 대한 결정, 서울행동의 날에 대한 민중행동의 개입계획 수립과 결정·집행, 그리고 아셈민간포럼에 대한 협의과정에서 일관된 방침의 수립과 집행, 이것들이 바로 (민주노총이나 개별단체의 개별적 몫이 아니라) 민중행동 투쟁지도부가 책임있게 결정하고 집행·점검해야 할 주요 지점들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 모습은 이에 미달하였다.


10월 아셈 이후에 대한 고민과 과제

◆이번 10월 아셈 투쟁으로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은 일단락된 것이 아니다. 이제 출발점에 서있다. 그러기에 국제적인 반신자유주의 투쟁에 대한 연대의 고민과 '3차 아셈 이후'에 대한 문제가 민중운동에게 제기되고 있다

이번 10월 아셈 투쟁은 한국의 민중운동이 국제적 민중운동 흐름에 대해 시야를 확장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며, 시애틀과 프라하 투쟁이 먼 나라의 어렴풋한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한국민중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구조조정 반대가 아셈과 IMF·WTO에 대한 반대와 동전의 양면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한국의 민중운동에서 서서히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아셈 투쟁 이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4차 아셈에 대한 고민과 아시아와 유럽, 한국의 민중운동이 보다 전투적이고 긴밀하게 연대할 수 있는 정치적 내용과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아셈민간포럼과 한국 시민운동이 주도하고 있는 국제연대의 틀에 대한 인식과 시각 정립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3차 아셈, 10월 투쟁이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 닥쳐올 오늘의 문제라는 관점이 중요한 것이다.

또하나의 폭발성을 가진 쟁점이 '사회포럼의 설치와 NGO 의견을 수렴'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아셈 관계자의 발언이다. 이것은 개인의 발언으로 폄하하기 이전에, 아셈에 대한 시민운동의 시각과 민중운동의 시각이 치열하게 부딪히고 갈등할 수 있는 쟁점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아셈에 대한 '비판적 개입' 전략의 핵심은 사회포럼을 아셈공식회의에 설치하고, 이를 매개로 시민사회와 NGO의 의견이 정상간의 공식회의에 반영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아셈에 대한 '전면 비판과 반대'의 입장은, 이 사회포럼이 노사정위원회의 국제판에 다름아닌 것, 국제적 코포라티즘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아셈투쟁이 주는 교훈 중 하나는 국제적 연대운동에 대한 한국 민중운동의 입장과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연대운동에 대한 수동적 동참이 아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민중운동의 시각에서.


사족 ; 아셈투쟁과 상설공투체 건설과 관련하여

아셈 투쟁은 일회성 투쟁이 아니라 민중대회위원회의 강화와 상설공투체 건설논의와 연관되어 이해되어야 한다. 아셈 공동투쟁의 경험이 민중대회위원회와 상설공투체 논의의 강화 발전에 기여하여야 했으나 현실의 결과는 부정적이다. 이것은 공동투쟁 연대투쟁의 원칙과 정치적 방향이 합의되고, 이것이 결정· 집행·평가되는 과정이 부재하였다는 점을 의미한다. 우리가 상설공투체를 지향하고 건설하려고 하는 것은 단순한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구조를 정비하고, 상근자를 확보하는 것 이전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상설공투체를 왜 만들려고 하는가? 그리고 이것의 바운더리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형식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이다. 어떠한 정치투쟁의 방향을 누구와 공유하고, 이렇게 공유된 내용을 어떠한 조직형식으로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상설공투체의 핵심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개별 단체의 실용적 필요에 의해 상설공투체가 고민되고 추진된다면, 그것은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이 허망하게 해체될 수밖에 없다.

조직 형식의 정비로 상설공투체가 건설될 수 없다면, 또는 투쟁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와 호소만으로는 아무 것도 만들어낼 수 없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투쟁의 방향을 치열하게 논의하고, 의견을 수렴하고 합의하고, 정치적 발언에 대해 조직적으로 책임지려는 '운동의 기풍'을 만들어가는 것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아셈투쟁에 대한 치열한 평가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평가는 흠집내기가 아니라 지난 투쟁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이후 투쟁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현재와 미래의 문제이다.

상설공투체 건설의 핵심은 정치 투쟁의 방향을 책임있게 '결정'하고 이것을 '집행'하고 '평가'할 수 있는 조직 구조를 만들어 가는 점에 있다. 결정하고 집행하고 평가할 수 없는 조직 구조라면 무의미한 것이다. 이 과정은 조직의 계통선을 따라 질서있게 토론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서는 안된다. 모든 논의와 평가점을 대중 앞에 공개하고, 사회적인 토론과 비판과 수렴 과정이 전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풍운동과 쇄신의 바람은 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아래에서부터 시작되어 확산되어 가는 것이다.
주제어
국제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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